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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준만 전북대 교수
ⓒ 인물과 사상
삼성과 현대 등 대기업들이 청와대 등 정부기관와 시민단체, 여야 정당보다 높은 영향력과 신뢰도를 갖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중앙일보가 동아시아연구원(EAI, 원장 김병국)과 공동으로 18세 이상 남녀 1619명에게 우리 사회의 23개 '파워 조직'에 대해 실시한 평가조사 결과에서 삼성과 현대자동차가 영향력과 신뢰도에서 각각 1, 2위를 기록했다.

이번 조사는 11일 531명을 대상으로 11개 기관을, 12일 540명, 13일 548명을 대상으로 각각 10개 기관씩 영향력과 신뢰도를 전화로 묻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2∼4.3%포인트.)

이번 조사에서 SK가 신뢰도 3위, 영향력 4위를 기록하고 LG가 신뢰도 5위, 영향력 6위를 기록하는 등 4대 그룹이 상위권에 대거 포진했다.

반면, 국가기관으로는 지난해 '대통령 탄핵'과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굵직한 이슈들에 결정권을 행사한 헌법재판소가 영향력 3위, 신뢰도 4위를 기록했을 뿐, 청와대와 검찰·경찰·국세청·국가정보원 등의 국가기관들은 5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청와대 영향력은 11위, 신뢰도는 18위

청와대 영향력에 대한 평가는 5.56점으로 11위였고, 신뢰도는 이보다 낮은 4.34점으로 19위에 머물렀다. 한나라당은 영향력 평가(14위)에서는 청와대에 밀렸지만, 신뢰도에서는 청와대보다 다소 높은 17위를 기록했다. 열린우리당은 원내 최다의석을 보유하고도 영향력(19위)에서 한나라당에 밀렸고, 신뢰도에서는 조사기관중 꼴찌(23위)를 기록했다.

수사권 조정을 놓고 힘 겨루기를 하고 있는 검찰과 경찰의 영향력은 각각 6.12점(7위)과 6.11점(8위)으로 비슷했지만, 신뢰도에선 5.03점의 경찰(7위)이 4.79점의 검찰(9위)보다 후한 점수를 받았다.

참여연대는 신뢰도에서 시민단체중 가장 높은 8위를 기록했지만, 영향력은 12위에 그쳤다. 한국노총과 민주노동당의 영향력은 각각 18, 21위였고, 신뢰도에서는 공동 20위에 머무는 등 하위권으로 밀려났다.

이러한 조사결과가 우리 사회의 권력구도에 대한 절대적인 평가기준이 될 수는 없지만 "이미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16일 발언을 뒷받침하는 것이어서 여러모로 관심을 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 같은 이는 심지어 "우리 시대는 '노무현 시대'라기보다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시대'로 기록될 지도 모른다"는 전망까지 내놓았다.

강 교수는 25일자 <한국일보> 칼럼에서 "대통령과 삼성의 관계를 승패의 관점에서 보는 시각에 동의하긴 어렵지만, 삼성은 대통령 권력 위에 존재하는 더욱 막강한 권력일 수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건희 회장 '노블리스 오블리제' 시험대 위에 서게 됐다"

강 교수는 "우리는 삼성이 곧 국력이고 외교인 시대에 살고 있다"며 특히 삼성의 '문화적 패권'에 주목했다.

강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은 '정치'와 '경제'의 이중 구조가 문화로 고착화된 사회다. 우리 국민들은 경제생활에 있어서 "기존 질서에 순응해 일단 잘 살고 봐야 한다"는 원칙에 집착하기 때문에 보수·진보 갈등은 주로 비(非)경제 영역에서 벌어지고 시민 의식이 정치적으로는 개혁·진보적이더라도 경제적으로는 보수적인 경향이라는 것이다.

강 교수는 이러한 이중구조의 대표적인 예로 이건희 회장에 대한 분열주의로 표현했다. 개혁·진보적 관점에서는 이 회장이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경제적 순응주의의 관점에서는 평가가 전혀 달라지는 셈이다.

강 교수는 최근 고려대에서 있었던 '이건희 소동'에 대해 "고려대 당국과 보수언론이 이 사건에 대해 호들갑을 떨면서 학생들에게 과잉 대응을 했던 진정한 이유는 사회적 묵계로 존재해 온 이 회장에 대한 분열주의에 정면 도전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강 교수는 "이 회장은 스스로 역설해 온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시험대 위에 서게 되었다"며 "그는 자신의 위상에 걸맞는 발상의 전환을 시도해 '삼성 왕국'의 높은 담장을 허물고 사회와 소통해야 한다"고 권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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