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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우호를 저해하는 일본의 망발

올해를 '한일 우정의 해'라고 한다. 온갖 축하행사가 기획되고 있다. 한일 간의 국교를 정상화한 한일협정 체결 40주년을 기념한다는 명목이다. 과연 한일협정은 기념할 만한 것인가? 두 나라 사이에 축하할만한 우정이 있는 것인가?

지난 40년 동안 일본 유력 정치인들의 망언은 끊임이 없었다. 한일합방은 한국도 원한 것이라는 둥, 일제 35년은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둥, 일제가 그리 나쁜 짓 한 것도 없는데 왜 자꾸 사과하라느냐는 둥. 이들의 망언을 모으면 두꺼운 책이 될 정도이다.

일본의 총리는 전범들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보란 듯이 참배하고, 일본의 교과서는 일제침략의 만행을 외면하며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마디 사과도 없고, 징용 등의 피해에 대한 일본법원의 배상판결을 일본정부는 외면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독도를 찬탈하려는 억지를 재연하고 있다.

치욕의 역사가 이렇게 이어지고 있는데 도대체 축하하고 기념할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배용준이 일본 여성팬들의 인기를 모으고 보아의 음반이 백만장씩 팔린다고 우정이 깊어지는 것인가?

애당초 한일협정 40주년을 기념하는 한일 우정의 해 행사라는 게 역사인식이 결여된 인사들의 3류 쇼에 불과했던 것이다. 치욕의 40년을 철저히 돌아보고 반성해도 시원찮을 판에 말이다.

▲ '한일협정'에 서명하는 박정희 대통령. 왼쪽부터 정일권 총리, 박 대통령, 이동원 외무장관, 김동조 주일대사
ⓒ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일제침략에 대해 한마디 사과없는 한일협정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왜 두 나라는 불행한 역사를 국교정상화를 통해 정상화시키지 못하고 치욕의 역사를 이어와야 했는가? 그 원죄는 바로 한일협정에 있다.

한일협정이란 1965년 6월 22일 조인되고, 12월 18일 성립, 발효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과 이에 부속하는 4개 협정을 총칭한다. 부속협정은 <청구권·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재일교포의 법적지위와 대우에 관한 협정> <어업에 관한 협정> <문화재·문화협력에 관한 협정> 등이다.

이 중 한일기본조약의 전문을 보자.

'대한민국과 일본은 양국 국민 관계의 역사적 배경과, 선린 관계와 주권 상호 존중의 원칙에 입각한 양국 관계를 정상화에 대한 상호 희망을 고려하며, 양국의 상호 복지와 공통 이익을 증진하고 국제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양국이 국제연합헌장의 원칙에 합당하게 긴밀히 협력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며, 또한 1951년 9월 8일 샌프란시스코우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의 관계규정과 1948년 12월 12일 국제연합총회에서 채택된 결의 제195호(Ⅲ)를 상기하며, 본 기본 관계에 관한 조약을 체결하기로 결정하여, 이에 다음과 같이 양국의 전권위원을 임명하였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일본이 35년 동안 한반도를 강점하고 저지른 만행에 대해 한마디의 사과도 없다. 아니, 그런 사실 자체에 대한 언급조차 없다. 일제침략의 과거사가 있었던 두 나라 사이의 국교정상화 조약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일본이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전문에 침략전쟁에 대한 사과를 명기하고 본문에 중국이 전쟁배상 책임을 면제해준다고 협정을 맺은 것과는 전혀 다르다. 전쟁을 일으켜 침략한 중국에는 사과를 명기했지만, 35년 동안 식민지로 지배하고 수탈한 한국에 대해서는 전혀 사과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을 '졸'로 보았고 박정희 군사정권이 그것을 받아들였기에 맺어진 치욕의 문건이 바로 한일협정이다.

조약은 법률의 효력을 갖는 국제법의 하나이다. 한일기본조약은 두 나라 사이의 관계를 서로 규정하는 헌법과 같다. 여기에 일제 35년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아무런 사과도 없으니 두 나라는 아무런 잘못된 역사도, 아무런 사과할 역사도 없는 관계임을 선언한 것이다.

그렇게 보면 한일협정 이후 40년 간 이어지는 일본의 망언과 망발은 그들로서는 당연하고 정상적인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틈만 나면 사과해라 보상해라 하는 이상한 나라로 비춰질 수 있다. 제3국이 봐도 그럴 수 있다. 그렇게 잘못한 역사가 있고 사과받을 일이 있다면 왜 한일기본조약에 담지 않았느냐는 의문을 살만하다. 일본이 보기에, 그리고 다른 나라가 보기에 한국이 억지와 떼를 쓰는 것으로 보일 만도 하다. 5억달러를 받고 써 준 한일협정 때문이다.

일본의 역사인식에서 보면 사과할 일이 없다

사과 한마디 없는 한일기본조약, 그 이후 40년 간 이어진 망언과 망발의 과정은 일본의 역사인식에서 보면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다. 그들의 역사인식은 우리가 식민사관이라고 부르는 것과 거의 같다.

한국은 오랜 역사 속에서 늘 외세의 지배를 받아왔고 자주성이 없다는 것, 구한말 조선의 상태는 일본의 천년 전 사회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 그래서 '일한합방'을 통해 일본이 한반도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것, 그리고 태평양전쟁은 미국 유럽 등 서구의 아시아 침탈에 일본이 아시아를 대표해 맞선 성전이었다는 것 등이다.

그러니 일본으로서는 한국에 사과할 일도 보상할 일도 없다. 2차대전 중의 일도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일본이 진 게 안타까운 일일 뿐이다. 역사교과서에 일본이 잘못한 것처럼 기술하라고 하는 것은 주변국들의 잘못된 주장이다. 이게 일본으로서는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진실한 과거사 사과는 한일협정 개정으로

▲ 태평양전쟁유족회원 등은 지난 1월 26일 서울 중구 청구동 JP 자택으로 몰려가 한일협정 진상공개와 사죄를 촉구했다.
ⓒ 오마이뉴스 조호진
노무현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의 진실규명과 사과, 배상을 요구했다. 민주적 정통성을 가진 대통령이라 할 수 있었던 당연한 요구다. 그러나 중요한 게 빠졌다. 그 한일협정을 개정해 거기에 사과를 명문화하지 않는 한 역시 도로아미타불이다.

두 나라 관계를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한일기본조약에 과거사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 없다면 두 나라의 관계는 역시 아무 일도 없었던 관계가 된다. 일본 정치가 말로 사과를 한들 달라지는 게 없다. 이미 일왕이든 총리든 여러 차례 애매하게나마 구두사과를 했다. 하지만 아무 소용 없지 않은가?

그래서 한일기본조약은 개정해야 한다. 일제침략 35년의 잘못된 역사를 명기하고, 그에 대한 일본의 사과를 명문화해야 한다. 배상이든 보상이든 그 건 다음 문제다. 돈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역사를 바로 보고 진실하게, 그리고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일이다. 이렇게 한일협정이 개정되지 않는 한 두 나라의 진정한 화해와 우정은 백년이 지나도 기대하기 힘들다.

우리의 패배주의를 경계한다

올해 초 한일협정 외교문서가 공개되자 한일협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잠시 터져나왔다. 그 와중에도 현실론을 내세우며 개정은 곤란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런 패배주의부터 떨쳐버려야 한다. 사과 한마디 담지 못한 치욕적인 한일협정을 체결한 군사정권도 그런 논리였다. 경제개발이 급하고 외자가 필요한데 사과를 명문화해서는 현실적으로 한일협정 체결이 어렵다는.

아무리 현실이 녹록치 않아도 쉽게 포기하지 말자. 한일 두 나라의 관계가 제대로 되려면 기본조약에 관계를 명확하게 설정해야 한다. 진실한 사과가 담겨야 한다. 십년이 걸리건 백년이 걸리건 그건 필수적인 목표다. 그게 없이는 십년 백년이 지나도 한일관계가 제대로 설 수 없다. 섣부른 패배주의로 포기하지 말자. 길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아무리 험난하고 오래 걸릴지라도.

한일협정 개정을 위한 전략

한일기본조약을 개정하기 위해 우리도 철저하게 준비하자. 십년이 걸리더라도 치밀한 전략을 세워 대처하자.

일본 정부가 선뜻 개정에 나설 리는 만무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본의 국민들을 대상으로 설득해야 한다. 지금도 일본 안에는 많지는 않지만 양심적인 세력들이 있다. 징용 피해자나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알고 반성하며 함께 싸우는 일본인들이 있다. 또한 일본 국민들이라고 해서 다 나쁜 건 아니다. 역사의 진실, 조상들의 만행을 모르는 게 문제일 뿐이다.

십여 년 전 만난 한 일본 방송기자의 말이 생각난다. 어릴 때 집과 학교에서 한국에 대해 매우 안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그러나 사할린 한인들의 이야기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만행을 처음 알았고 그 후 생각이 달라졌다고.

일제가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들에게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분명하게 알게 된다면 많은 일본국민들도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일본의 정부는 국민들이 민주적으로 선출한다. 국민여론이 달라지면 정부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지금은 일본정부가 아니라 일본국민들을 대상으로 한일협정이 개정되어야할 이유를 설득하는 게 시급한 일이다.

일본의 만행에 피해를 입은 중국 등 아시아인들, 그리고 미국 유럽 등 전세계의 국민들도 우리가 호소하고 지원을 이끌어내야할 대상이다. 세계 여론이 달라진다면 일본도 어찌할 수 없다.

게다가 일본에게는 아킬레스건이 있다. 유엔 안보리의 상임이사국 문제다.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상임이사국이 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쓰나미 피해를 입은 남부아시아 국가들에게 미국보다도 많은 원조를 약속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과거를 반성할 줄 모르는 철면피 위선자의 모습이 아시아는 물론 전세계 국민들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면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 염원은 불가능해진다. 원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태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 한일협정 외교문서가 공개된 지난 1월 17일 오전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회원들이 서울 세종로 외교부청사앞에서 '한일협정 무효'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과거사 바로 알리기부터

일본은 제국주의 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만행을 저지른 국가이다. 그들이 일제 35년 동안 저지른 야만적 행동들을 낱낱이 알리자. 젊은 여성들을 끌고 가 군대 위안부로 삼은 일, 수백만의 젊은이들을 강제로 끌고 간 일, 제암리 학살사건 등 수많은 만행들. 그리고 중국의 남경대학살 등 아시아 전역에서 저지른 씻지 못할 죄악들까지.

동시에 나치보다 훨씬 심한 악행을 저지르고도 독일과 달리 과거에 대한 진정한 반성도 없고 역사교과서까지 왜곡하는 그 후의 철면피 행동들까지. 그래서 지금의 일본은 독일처럼 세계의 주도적 국가가 될 자격이 전혀 없음을 소상히 알리자. 그런 역사적 자료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얼마든지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 인터넷 강국의 위력을 십분 활용하자. 일본어 중국어 영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해 각 나라의 사이트에 시리즈로 올리면 된다. 일제의 만행은 워낙 충격적이어서 그런 역사적 자료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분노를 촉발하기에 충분하다.

1년이 걸리건 10년이 걸리건 이런 작업을 해나가자. 그러면 결국은 세계가 일본의 참모습을 바로 알게 될 것이다. 일본의 많은 국민들도 진정으로 과거를 부끄러워하고 역사를 바로세우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치욕스런 한일기본조약은 얼마든지 개정할 수 있다. 그 때부터 진정한 한일 우정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치욕의 역사 끝내기, 정부가 못하면 우리가 하자

우리 정부는 한일협정 개정에 더 당당하고 자신있게 나서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과거 정권들의 잘못이기는 하나 정부는 연속성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들이 열화와 같이 들고 일어나면 사정은 달라진다. 대한민국의 온 국민이 수치스럽고 잘못된 한일협정의 개정을 요구하고, 일본의 과거사와 그 후의 뻔뻔스런 행동을 전세계인에 고발해 나간다면 우리 정부도 일본 정부도 지금처럼 안일하게 있을 수는 없다.

가장 중요한 건 우리 자신, 우리 국민들이다. 한일협정 외교문서가 공개됐을 때 반짝 떠들다가 이내 식어버리는 냄비기질로는 안된다. 요즘 독도 문제로 떠들썩하지만 일본정부는 '또 저러다 말겠지'하며 비웃고 있을지 모른다. 치욕스런 역사는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될지 모른다.

이제 냄비기질을 버리자. 은근과 끈기로 몇 년이 걸리건 일본의 이중성과 위선을 벗겨내는 작업, 일본을 바로 세우는 일에 나서자. 우리 정부도, 일본 정부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오직 우리 국민들, 우리 네티즌들만이 할 수 있는 역사적 사명이다. 치욕스런 한일협정 40년 역사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우리가 떨쳐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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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1997 : 한국일보 사회부/편집부 기자, 런던특파원, 뉴미디어 총괄팀장 소비자주주협동조합 http://cresum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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