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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이! 뭐해? 빨리 올라오지 않고."
"잠깐만 사진 좀 찍고¨."

등산길에 좋은 경치를 만나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그래서 사진을 찍다보면 뒤처지게 되고 그럴 때마다 친구들이 한마디씩 한다.

"저 친구, 또 기사 쓰려고 그러는구만."

지난 여름 모처럼 친구들 몇 명과 점심을 먹게 되어 근처에 있는 꽁보리밥집에 들어갔다. 꽁보리밥상이 차려지자 갑자기 옛날에 먹던 풋고추에 된장을 꾹 찍어 먹던 보리밥이 생각났다. 그래서 우선 사진부터 한 장 찍었다. 밥먹으려다 말고 갑자기 사진을 찍는 내게 친구가 한마디 툭 던진다.

"어이, 밥 먹는 것도 기사가 되냐?"
"이 친구는 이제 뭐든지 기사로 보이는 모양이야."
"혹시, 우리들 얼굴도 모두 기사로 보이는 것 아냐?"

그러자 한 친구가 농담 반 진담 반의 의미 있는 한마디를 던진다.

"그 나이에 웬 기자질이야? 하고 있던 기자도 그만둘 나이에…. 그거 주책 부리는 거 아냐?"

그렇다, 어쩌면 내가 주책을 부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랴, 그래도 어설프나마 기사를 쓰고 또 하루라도 오마이뉴스를 못 보면 몸살이라도 날 것 같은 걸. 기사를 잘 쓰지도, 많이 쓰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오마이뉴스에 대한 나의 짝사랑은 점점 깊어만 가는 것을 어쩌겠는가.

우연한 기회에 오마이뉴스를 만나 2003년 7월에 올린 '이런 시절이 있었지요'라는 기사가 사는이야기 란의 잉걸기사로 채택되면서 뉴스게릴라로서의 첫걸음을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어떻게 기사를 작성해야 할지, 어떤 기사를 쓸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렇게 시작해 9월에 3건, 12월에 1건을 쓴 것으로 첫 해를 보냈다. 그러다 나름대로 열심히 쓰기 시작한 것이 작년 7월부터다. 그래도 시민기자가 되면서 오마이뉴스를 통해 내 의식과 사고(思考)의 근간을 이루고 있던 보수적 색채는 서서히 개혁지향으로 변모되어 갔다.

공직이라는 직업 테두리와 나이와 교우관계에서 오는 의식의 한계를 벗어던지기가 결코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느새 내 일터였던 회사 연수원 강의실에서 사원들을 상대로 하는 내 강의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오마이뉴스를 읽으라는 것이었다.

수강생들의 나이가 30대 후반에 40~50대여서인지 대부분 보수일간지를 선호하고 있었다. 뜻밖에도 오마이뉴스를 읽는 비율이 너무 낮은 것이 놀라웠다.

그래서 급변하는 세상을 바로 보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접하는 정보의 균형이 필요하다, 보수일변도의 정보만 접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주 보수적인 사람이 되고 만다, 인터넷 개혁신문 오마이뉴스를 봐라, 그러면 그런 편향된 정보 때문에 나도 모르게 굳어진 의식과 사고의 영역을 넓히고, 세상을 바로 보고 바로 알게 되어 훨씬 진취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는 식의 강의를 한 것이다.

어느 날인가 강의가 끝나고 나자 한 수강생이 웃으며 농담을 하는 것이었다.

"꼭 오마이뉴스 전도사 같으시네요."
"오마이뉴스 전도사? 그거 그럴듯한 이름인데요."
"그런데, 참 대단하십니다, 그 연세에 인터넷 신문기자를 하시다니."
"대단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으니까 하는 거지요."

내가 좋으니까 하는 거지 남이 시킨다고 하겠는가. 그래도 젊은 축들은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표정들이다. 일반적으로 기자라면 대개 젊은 사람들의 몫이 아닌가.

친구나 또래들의 모임에 가도 마찬가지다. 시국에 관한 이야기나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대부분 외톨이가 된다. 그렇지만 나는 겸손하지만 당당하게 오마이뉴스의 시각으로 그들을 설득한다.

처음에는 그런 일들이 상당히 힘들고 어려웠지만 요즘은 많이 완화되었다. 어떤 친구들은 "저 친구는 오마이뉴스 기자야"하며 아예 한 수 접어주기도 한다. 요즘은 그들 중 상당수가 오마이뉴스 독자가 되어 있는 것을 보며 동지애를 느끼기도 한다.

한번은 재래시장을 취재하려고 하는데 어느 상인이 "요즘은 이렇게 늙은 기자도 있습니까? 기자들은 젊은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하고 노골적으로 질문을 하기에 자세히 설명해 줬다.

오마이뉴스의 성향과 기자 제도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들은 상인들은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인터뷰에 응해 주어서 기사 작성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노숙자 취재 때도 그랬다. 노숙자들은 언론에 대하여 깊은 피해의식을 갖고 있었다. 지하도에 집단으로 몰려 있는 그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취재에도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냈다.

다행이 내가 나이가 들어보여서 그런지 그들을 취재하기가 수월했다. 허술한 차림에 늙수그레한 모습은 그들이 별 반감 없이 받아드리기에 적절한 대상이었던 모양이다. 취재에 응한 어느 노숙자가 뱉은 "기자양반도 우리들이랑 비슷하구만요"하는 말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일선 취재기자는 젊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일반적인 통념을 뛰어넘어 회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그것도 인터넷 신문의 시민기자로 활동하는 것에 별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다. 때때로 그런 문제에 부딪치기는 하지만 극복하는 것 또한 재미있는 일 아닌가.

주책을 부린다는 친구의 농담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쩌면 뉴스게릴라 활동에 재미를 붙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건강과 여건이 허락한다면 앞으로도 계속 주책없는 뉴스게릴라 짓을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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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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