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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20일 일산 돌체, 여성노숙인 쉼터를 위한 첫 번째 작은 음악회 - 아마레 앙상블
ⓒ 아마레 앙상블
지난 20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 장항동에 위치한 고전음악감상실 '돌체'에서는 여성노숙인 쉼터 후원을 위한 작은 음악회 첫 공연이 있었습니다. 공연 시간 20분 전에 도착한 사람들이 40여분쯤 기다렸을 때, 장진(제3채널 프로듀서) 감독이 제작한 영상과 함께 음악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영상은 서울시 용산구 서계동 사단법인 노숙인복지회 열린여성센터에서 운영하는 여성노숙인쉼터의 일상을 담고 있었습니다.

여성노숙인 쉼터에는 집 없는 사람 28명이 살고 있습니다

서부역 건너편 산동네, 방 8개가 딸린 낡은 2층집. 그곳에는 때리는 아버지를 피해 집을 나온 3세대 11명(세 엄마, 여덟 아이)의 모자가정과 가족에게 버림받고 장기간 거리에서 생활해온 정신질환이 있는 독신여성노숙인 17명, 이렇게 모두 28명의 집 없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 용산구 서계동에 위치한 열린여성센터 여성노숙인 쉼터
ⓒ 장진 프로듀서
'쉼표를 위한 에튀드(연습곡)'라는 제목의 작은 음악회는 그 집의 겨울나기 그리고 그곳 쉼터에서 생활하는 여성노숙인의 재활기금마련을 목적으로 준비되었습니다.

보증금 5천만원에 월세 55만원, 여름에 불을 조금만 때도 80만원쯤 든다는 쉼터, 월세가 전세만 되어도 좋겠다는 바람에서 시작된 일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더 큰 목적은 "여자가 어디 가 설거지라도 하지, 노숙을 하냐" 하는 여성노숙인에 대한 사회인식 개선에 있다는 것이 음악회를 기획한 분들의 설명입니다. 어디 가서 설거지를 할 수가 없는 그들의 본질적인 문제, 대부분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은 것입니다.

쉼터를 소개하는 짧은 영상에 이어 쉼터 운영자인 열린여성센터 소장 서정화님이 사람들 앞에 섰습니다. 특유의 밝고 활달함으로 씩씩하게 인사를 시작한 그녀는 음악회를 기획하고 준비한 최영미(방송인·99.1Mhz 국악방송 '우리 마음 우리 음악' 진행자)님과 신혜원(KBS 방송작가)님에게 감사를 전하다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합니다.

목이 메어 말을 못하는 앞에 선 사람이나 지켜보며 앉아 있는 사람들이나 부끄러움이나 조급함 같은 건 없습니다. 낯선 긴장도 없습니다.

"여기 이렇게 와주신 분들을 뵈니까, 우리 식구들 지금보다 더 힘든 삶은 살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라는 서정화 소장의 인사말이 끝나고 먹먹하고 따뜻한 기운 속에서 여성노숙인 쉼터를 위한 작은 음악회 첫 공연의 주역, 아마레 앙상블의 연주가 시작되었습니다.

브람스의 '집시의 세레나데', 그리고 이어지는 '어메이징 그레이스'… 좋은 연주, 음악의 힘을 느끼게 하는 연주자들이었습니다.

아마레 앙상블은 단국대학교 소속 실내악단으로, 모두 학생들을 가르치는 분들입니다. '사랑하다(Amare)'라는 뜻의 이름처럼,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이웃에 봉사하기 위해, 기쁨과 희망을 담아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창단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멤버는 김호영(제1바이올린)님, 윤혜경(제2바이올린)님, 장은식(비올라)님, 장계림(첼로)님, 김문철(피아노)님입니다.

아마레 앙상블은 1999년 7월 천안 단국대 병원에서의 첫 연주회, '환자 쾌유를 위한 음악회'를 시작으로 연 50회 이상 자선 봉사연주 및 순회연주를 해오고 있습니다. 병원, 청소년을 위한 복지시설, 장애인 시설, 양로원, 구치소, 소록도의 교회 등 그들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갑니다.

올해 자선봉사 연주회는 1월 10일 인천의 중증 장애시설 명심원 공연을 시작으로, 지난 주말 여성노숙인 쉼터를 위한 돌체 공연은 257회째 무대였습니다.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 나오는 '축배의 노래', 엘가의 '사랑의 인사', 탱고의 대명사 '라 콤파르시타' 연주가 끝나고 여성노숙인의 사연을 담은 영상이 이어졌습니다.

"정신질환이란 너무 여린 사람들이 힘들어서 생기는 병이거든요"

▲ 일요일 점심 시간 쉼터 현관에 놓인 신발들
ⓒ 장진 프로듀서
2003년 6월에 쉼터를 찾아온 미미, 자신을 스물 한 살이라고 주장하는 그녀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어린아이가 되어갑니다. 딸아이와 함께 쉼터에 온 서른 한 살의 아기 엄마, 폭력 남편과 힘든 이혼 이후 요리사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쉼터의 어린아이들과 똑같이 대해주지 않는 것에 불 같이 화를 내는 미미는 가뜩이나 쉼터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동네 사람들과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고 툭하면 112에 신고전화를 합니다.

"김치를 못 먹게 해요", "신발이 없어졌어요", "나보고 나가래요"… 경찰 조회 결과 미미는 63년생이고, 바로 며칠 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그녀가 결혼을 했었다는 것입니다. 소장님이나, 쉼터 식구들은 그녀를 너무 갑자기 나이 먹게 할 수가 없어, 나이를 말해주지 못합니다.


장진 감독님의 흑백 스틸 사진 영상 때문에 쉼터 소장님은 많이 울었습니다. 매일 보면서도 식구들 표정이 저렇게 어두운 줄 미처 몰랐다고, 그게 너무나 가슴 아프다고요. 상담을 하다보면 어디서부터 진짜이고 어디서부터 가짜인지 모르겠는 그들의 이야기에 문득 문득, 얼마나 힘들었으면, 어떤 일을 당했길래… 싶어진다고 합니다.

▲ 모자가정 3세대 11명이 생활하는 2층 출입문
ⓒ 장진 프로듀서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하고 함께 지낸다는 게 위험하지 않느냐고들 하시는데요. 정신질환이라는 게 너무 여린 사람들이 힘들어서, 유약해서 생기는 병이거든요. 위험하지 않아요. 근데 보통 시설에서는 그런 사람들의 상태들을 감당할 수가 없는 게 현실이라, 우리 쉼터에선 그냥 견뎌주는 거죠. 식구들이나, 실무자들이나, 나는 그런 게 너무 익숙하거든. 이제…."

최영미, 신혜원님과의 인연은 그분들이 담당하셨던 KBS 제3라디오 '우리는 한 가족'에 소장님이 매주 화요일 15분씩 1년간 '노숙 문제 전문가'로 출연하면서였다고 합니다.

방송인들과 맺은 작은 인연이 만든 음악회

▲ 열린여성센터 서정화 소장
ⓒ 장진 프로듀서
2002년 3월까지 KBS 소속 아나운서였던 최영미님과 몇 해 전 장애인 프로그램을 함께 했던 인연으로 쉼터 영상물을 만들어준 장진 감독은 시베리아에 가서 1년 넘도록 호랑이만 지켜보고 온 프로듀서입니다. 소속이 있는 매인 몸이라 잠자는 시간을 쪼개 부탁한 사람들이 미안해 절절 맬 정도로 밤을 꼴딱꼴딱 새면서 공연 시작 몇 시간 전까지도 붙들고 있었다는 그의 영상에는 찍은 사람의 시선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마음 여는 게 무엇보다 힘든 여성 노숙인들이 그의 카메라에 자연스레 잡히게 되기까지 그는 그냥 옆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냥 지켜보면서요. 그러다가 같이 있기가 곤란해질 때면 산동네를 내려가 서울역엘 가 있곤 했는데, 우두커니 앉아있다 보면 어느 노숙인이 "담배 있수? 댁은 어디서 왔수?" 하며 말을 걸기도 했다지요.

2인 5만원, 1인 3만원의 티켓을 구매하고 음악회를 보러 온 사람들은, 모두 최영미 아나운서와 신혜원 작가의 지인들이었습니다.

4, 5년 전 최영미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KBS 1FM '노래의 날개 위에' 다음 카페 회원들, 2002년 3월 이후 지난 7월까지는 프리랜서 신분으로 최영미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KBS 제3라디오 '우리는 한가족'의 전임 진행자였던 성우 성병숙님과 아나운서 범효춘님. 그리고 쉼터를 통해 정신질환을 극복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쉼터의 첫 번째 성공 사례의 주인공이자, 쉼터 실무자들의 감동과 보람인 옛 쉼터 식구 한 사람도 조용히 음악회를 지켜보고 돌아갔습니다.

"드러나지 않는 한 분 한 분의 존재, 그게 바로 희망입니다"

▲ 월 평균 4~5회의 자원봉사연주를 해온 아마레 앙상블의 257회 연주회
ⓒ 아마레 앙상블
이탈리아에서 성악을 전공한 테너 황국재(세종문화회관 예술단 지원부)님은 아마레 앙상블과 함께 아름다운 노래를 선사해주었습니다. 무상으로 장소와 커피를 제공하신 일산 돌체 김종수 사장님, 포스터와 티켓을 디자인해주신 김영미(KBS)님, 프로그램을 만들어주신 이명식님….

알레스뮤직 한필웅 이사님은 선물용 음반과 영상 배경 음악을 제공하셨고, 김미라(KBS 1FM '세상의 모든 음악' 작가)님은 여성노숙인 사례를 정리해주셨습니다. 영상물의 내레이션은 성우 이광자님, 성병숙님, 방송인 이금희님, 아나운서 홍소연(KBS)님이 맡아주셨습니다.

출판계 대박 상품이라는 연하·성탄도서의 기획자인 출판평론가 김영수님은 책을 매달 100권씩 기증해 주기로 하셨고, 일본어 전문번역가 한은미님은 선물용 도서를 기증해 주셨습니다. 이정희님과 김진애님은 먹는 사람마다 감탄한 맛있는 쿠키를 구워주셨고 귤도 장만해 주셨습니다.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인사를 전하던 최영미님은 "포스터 디자인을 맡아주신 김영미님 이름 뒤에 다섯 분, 영상 제작해주신 장진님 이름 뒤에 또 다섯 분, 그렇게 감춰진 이름들, 드러나지 않는 한 분 한 분의 존재, 그게 바로 희망입니다"라고 했습니다.

80명이 넘으면 대만원 사태일 작은 음악회, 빈 자리가 많을까봐 걱정하던 사람들이 모두 기분 좋게 돌아갈 수 있을 만큼, 알맞게 들어찬 가운데 연주회는 끝이 났습니다. 아마레 앙상블이 연주하는 우리 민요 '경복궁 타령'과 '동요메들리', '생일축하노래 변주곡'은 정말 좋았습니다. 대부분 참석자에게 책이나 음반, 다음 번 공연 초대권 등이 돌아가는 즉석 추첨 이벤트도 있었고요.

"왜들 그렇게 기를 쓰고 도와주시는 걸까, 생각해봤는데요,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는 거요. 무슨 한풀이하듯 그렇게들 나서서 할 수 있는 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즐거움 때문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 분들 때문에, 음악회를 그만 할래야 그만 할 수가 없을 거 같아요. 3년까지는 그냥 갈 거 같은데요."

첫 공연을 치른 최영미님의 소감입니다. 추석 무렵, 안 입는 옷가지와 생필품을 챙겨 쉼터를 방문했던 그날 오후, 돌아오는 길에 '사고치자' 하고 결정한 음악회를 준비해오면서, 모든 일이 놀랍도록 저절로 이루어졌다고, 힘은 하나도 들지 않고, 그저 감사할 뿐이라고, "우리가 한 건 하나도 없다"면서 최영미, 신혜원님은 사진 촬영도 거부합니다.

"어쩌면 백만원이라는 돈은 무척 적은 돈일지도 모릅니다. 그냥 누군가 한 사람이 쾌척할 수도 있는 정도의 액수. 그러나 그 돈은 적은 액수임에도 무척 소중합니다. 여러 사람의 마음의 밭에 사랑의 씨앗을 심기 위한 정지작업을 하는 첫 음악회에서 얻은 소중한 수확이니 의미가 있을 수 밖에요….

고급 레스토랑의 비싼 식사는 우리의 허영은 채울 수는 있으나 허기를 채우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차려주신 소박한 밥상은 우리에게 살아갈 힘을 줍니다. 그래서 백만원이란 돈은 앞으로 어머니의 정성어린 기도와 같은 큰 역할을 할 것이라 믿습니다.

명태가 시인의 기꺼운 안주가 되듯이… 돈 많은 사람은 수십 억으로 불행해지기도 하지만 우리는 백만원으로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을 음악회를 통해서 경험했습니다.

그 돈은 요리사를 꿈꾸는 모자가정의 엄마에게 학원 다닐 교통비가 될 것이고 거리에서 남자들에게 돈 털리고 몸 뺏기다 나이 들어 더 이상 갈 데 없는 여성들이 몸을 누이는 방을 따뜻하게 데우는 연료비가 기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성경의 말씀을 믿습니다." - 최영미


▲ 겨울이 다가오는 쉼터, 2층 연결 난간에서 본 쉼터와 밤풍경
ⓒ 장진 프로듀서
여성노숙인 쉼터를 위한 작은 음악회 첫 번째 공연 수익금 100만원에는 세상은 아직 살 만한 곳이라는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작지만 따뜻한 힘이 모여 있습니다.

여성노숙인 쉼터를 위한 작은 음악회 두 번째 공연은 12월 25일, 토요일 오후 5시 일산 돌체에서 있습니다. 재즈보컬 정말로님과 탱고&플라멩코 무용가 송연희님의 무대로 꾸며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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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기 기자만들기 과제 수행을 위해 가입함. 일기체, 수필체로 할 수 있는 잡다한 이야기. 주관심사는 사람과 문화. 근성이나 사명감은 거의 맹물 수준. 훈련을 통해 오마이뉴스의 다양성과 열린 진보 사회를 위한 실뿌리로서 역할을 다하며 의미있게 살다죽길 희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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