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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과메기(2004년11월15일)
ⓒ 권선희
과메기 철이다. 정육점이고 국수집이고 닭집이고 할 것 없이 촘촘히 걸어놓은 과메기들이 초겨울 바람을 고스란히 쐬며 말라간다.

▲ 구룡포 장터
ⓒ 권선희
이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건물도 사람도 변한 게 없는 경북 포항의 구룡포 장터, 그 곳에서 반백년 삶을 살아 온 황복연 할머니(75세)가 있다. 노란 식용색소 푼 밀가루 반죽을 바르고 오징어며 새우, 고구마, 가자미…. 그녀의 손에 닿는 것은 뭐든 튀겨져 채반 가득 오른다.

염색한 머리칼 속에서 연신 흰머리가 뽀얗게 일어서는 할머니 연세를 여쭈었다.
“야야, 니 한번 맞춰봐라. 솔직히 내가 몇이나 뵈노?”
갸우뚱거리다가 뱉은 60대 후반 숫자에 할머니 얼굴 꽃처럼 피우시더니 “아고야, 참말이가. 참말로 그래 보이나? 니 오늘 이거 다 묵으라” 하신다.

걸어가는 굽은 등허리마다 사연 없는 몸 어디 있으랴. 더군다나 해풍처럼 인생에도 센 바람만 불어왔던 바닷가 사람들, 꺼내지 않아 그렇지 모두들 한 보따리씩 한 많은 사연을 품고 있다는 걸 안다. 할머니 역시 박하사탕을 물고 웃으시는 웃음 저 너머에 시장 살이 50년 세월이 살고 있다.

▲ 황복연 할머니(75세)
ⓒ 권선희
울산이 고향인 할머니는 여섯 딸 중 셋째로 아주 고운 처녀였다. 25세에 같은 고향 사람과 결혼하여 포항 구룡포로 들어온 뒤 지금까지 50년을 살고 있다. 할아버지는 마흔 아홉의 젊은 나이로 삼십 년 전 돌아가시고 지금 앉아계신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아이들 넷을 가르치고 출가시키며 살아 온 것이다. 걸터앉은 모습이 이젠 세간처럼 익숙하여 나는 ‘누군가 박아놓고 까맣게 잊어버린’ 장아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살아 갈 길이 막막하여 반찬가게를 바로 이 자리에서 시작했지만 먼 포항까지 나가 장을 봐야 하는 일이 어린 아이들 넷을 둔 형편에 너무나 힘이 들었던 것, 그래서 할 수 시작한 게 바로 지금의 튀김집이다.

“그 때는 지금처럼 먹거리가 흔해 빠지던 시절이 아니었지. 간식이 아니라 한 끼 배를 채우는 음식이었다. 그라고 명절이나 제사 때는 와가 고기들로 맞추기도 했다. 요즘에사 제사 음식이고 뭐고 쪼매씩 하지만 그 때는 식구들이 많으니 양도 많았다. 그 때는 구룡포가 고기 마이 나는 시절이었으이 사램도 많았고 당연지사 내 손님도 많았재.”

한참 이야기 나누는데 청년 하나 불쑥 할머니 가게 안으로 들어가더니 상자를 어깨에 둘러메고 나온다. 먼 데 물건 부치느라 부른 단골 택배회사 직원이었다. 할머니 달려가 한사코 잡아 오더니 나무젓가락만큼이나 긴 오징어 튀김을 먹인다. 내가 가끔 수제비를 먹으러 지날 때도 꼭 하나씩 집어 주시곤 했다. 신문을 돌리는 중학생도 곁에 야채를 팔러 나와 앉은 할머니에게도 툭 하면 집어 주는 마음이 모두 노란색이다.

▲ 갖가지 종류의 튀김
ⓒ 권선희
“할머니, 그렇게 퍼주시면 남는 것도 없겠네요.”
“남는다. 일단 해 놓으믄 마 남는다. 내는 사람들한테 진 빚이 많아가 이래 갚으며 살아야 한다. 고마운 사램이 얼마나 많았는 줄 아나. 내가 반찬 장사 그만 둘 때 여기 저기 빚이 쪼매 있었는데 와가 빚 독촉은 안하고 마카 앤갚아도 좋다고 하드라. 돈 싸짊아지고 있으면 뭐하겠노. 죽을 땐 마카 홀홀 맨 몸으로 가드라. 이래 줘도 다 남는다. 걱정 말그라.”

할머니는 40년이나 된 당뇨를 신랑처럼 안고 산다. 덕분에 몸은 자꾸 줄어들지만 그래도 박하사탕을 늘 입에 달고 사신다. 단 것은 당뇨에 안 좋은 것 아니냐고 물으니 병원에서는 사탕도 돼지고기도 닭고기도 먹지 말라고 하지만, 먹고 싶으면 돼지고기도 사다가 볶아먹고 닭도 한 마리씩 잡아먹고 사탕도 맛있으니 먹으며 산다고 하신다. 병 때문에 먹고 싶은 거 안 먹고 참으면 더 큰 병난다며 잘 먹고 일하며 사는 날까지 사는 게 옳다 신다.

할머니께서 즐겨 보시는 건 ‘아침마당’, ‘가요무대’, 그리고 밤새도록 유선방송에서 나오는 레슬링이란다. 질질 짜는 드라마와 속시끄러운 얘기들은 보기가 싫단다. 자꾸 슬픈 걸 보면 덩달아 슬퍼질까 봐 그러신가 보다. 할머니집 대문이 튀김 솥 걸린 좌판인 셈이다. 거기 나와 앉아 삼십 년을 끓는 기름에 갖가지 애환을 담았으리라. 그리고 하나씩 세상으로 노랗게 내보내며 언제나 비워진 마음으로 욕심 없이 사셨나보다.

▲ 조용히 저무는 것은 아름답다(구룡포항 일몰)
ⓒ 권선희
잘난 연애 한 번 못해보고 참말로 곱다는 소리도, 부잣집에 중신 설 테니 재가 하라는 소리도 먼먼 세월 속에 꽁꽁 가두어 놓고 언제나 웃으며 큰 손으로 쥐어 보낸 노란 튀김들, 그 따뜻한 온기가 쓸쓸한 장터를 지키고 있다. 할머니 가난해도 참 부자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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