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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권우성
"처남 봉달이 집에까지 데려다 준다 했어요. 술 먹어서 안 된다고 했더니 다 방법이 있다 했어요. 자기 못 믿냐고 난리 쳤어요. 할 수 없이 차 타고 오는데 결국 경찰한테 걸렸어요. 봉달이 갑자기 울더니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했어요.

저 아버지 뒤에 있는데 봉달이 술에 취해서 제정신 아닌 것 같았어요. 할 수 없이 '경찰아저씨 저희 처남이 술을 많이 먹어서 헛소리하는 것 같아요, 이해해주세요' 했어요. 처남 구속됐어요. 저 집에서 쫓겨났어요. 뭡니까 이게! 음주운전 나빠요."


"뭡니까 이게, 사장님 나빠요!"란 유행어의 주인공 '스리랑카에서 온 외국인노동자 블랑카' 정철규(25)씨.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그는 지난 17일 97회 '폭소클럽'에서도 여지없이 시청자들의 배꼽을 뺐다. 개그맨 정철규는 몰라도 블랑카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로 인기인이 됐다.

<오마이뉴스>는 최근 정씨와의 만남과 전화를 통해 '블랑카'로서, 인간 '정철규'로서의 삶과 생각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지난 여름, 3개월 이상 포털사이트(네이버) 개그맨 순위 1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데뷔한지 1년도 안된 신인이 명성을 얻었던 것은 그 동안 보기 힘들던 '사회성 짙은 코미디'를 선보였기 때문. 제작진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공개 오디션을 통해 발탁돼 올 2월 부터부터 '폭소클럽'에 출연했던 개그맨 지망생이 1년도 채 안돼 스타가 된 것.

"나름대로 웃기는 데는 자신이 있었지만 '아마추어 무대'에서 조차 떨어졌다. 지난해(2003년) 12월 방에 누워 TV를 보다가 '외국인 노동자 강제 추방' 소식을 접하고 '개그는 시대를 담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내용으로 웃겨보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말투만 듣고도 쓰러졌다. 그렇게 반응이 좋을지 몰랐다."

그는 지난 2000년 7월부터 3년 간 병역특례업체에서 일 했다. 대기업에 냉장고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였는데 그곳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많았다고 한다.

"사장님보다 성질 나쁜 동료들이 외국인들을 때리고 멸시했다. 아마 어눌한 말투가 멍청해 보였던 것 같다. 하지만 한국말을 못할 뿐이지 않은가.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했지만 변하지 않았다."

- 철규씨는 무시하지 않았는지.
"난 정말 잘해줬다. 외국 가서도 지금까지 연락하는 친구 있다. 주말에 부모님께서 안 계시면 그들을 불러 요리도 해주고 함께 술도 마셨다"(웃음)

'외국인 노동자 강제 추방' 소식에 블랑카 착안

▲ 블랑카 정철규씨는 "'외국인노동자 추방'하는 것을 보고 블랑카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는 인기 개그맨으로 탄탄대로를 밟았지만, 그 과정에서 몇 차례 어려움도 겪었다.

"'폭소클럽' 나간 얼마 뒤, 중소업체 사장들이 KBS로 찾아와 항의를 했다. 때문에 코너 시작한지 3주만에 회사에서의 차별과 학대는 더 이상 소재가 될 수 없었다. 그 뒤부터 블랑카는 '봉숙이'와 결혼해 그 눈을 왜곡된 한국사회로 돌렸다."

그랬더니 이제는 '봉숙이'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비하시킨다고 딴지를 걸었다. 또 외국인노동자에게 사기결혼을 당했던 사람의 협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후 한참 잠잠해지던 것 같더니 난데없이 KBS로 스리랑카 대사관의 '뭡니까 이게'를 수정해달라는 공문이 날아든다.

"한달 전쯤 피디로부터 소식을 접했다. 처음엔 농담인줄 알았다. 사실 그 이전에 스리랑카 대사관에 '스리랑카 홍보대사'를 하고 싶다고 제안했던 터라 뒤통수 맞는 느낌이었다. 서운했다. 크게 신경은 안 썼지만 이후 아이템 선정 할 때도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스리랑카 대사관은 홍보대사를 제안할 당시만 해도 '블랑카'를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정씨 측의 제안이 들어간 뒤 스리랑카 대사관에서는 '뭡니까 이게'를 봤고 공문까지 보냈던 것.

홍보대사 하겠다고 자청한 '스리랑카' 대사관, 뒤통수!

"사인 해줬더니 버리고 간 것 가장 큰 상처"

'블랑카' 정철규씨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 정도로 스타가 됐다. 하지만 데뷔한지 1년이 채 안 된 그를 국민 모두가 알 수는 없을 것.

"사인에 대한 아픈 추억이 있다. '개그콘서트'팀과 한 초등학교로 농구를 하러 갔는데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와 사인을 부탁했다. 개콘 사람들은 다 알았지만 난 몰랐던 모양이다. 하지만 내게도 사인을 받는 친구가 있었다. 사인을 다 해준 뒤 농구를 해야 한다고 아이들을 내보냈는데 골대 근처에 종이 한 장이 떨어져 있는 걸 봤다. 가서 보니 내가 사인 해준 종이였다. 모르는 사람의 사인이라고 버리고 간 것이다."(웃음)

이후 사인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고.

반면 그는 "한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와 만났는데 그의 한국인 친구가 '외국인노동자들을 비하한다'는 이유로 내 코너를 싫어했지만 그가 '오히려 우리의 힘든 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가장 보람있는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여름 부산 해운대로 휴가를 갔는데 주변에서 자신의 흉내를 내는 사람들이 많아 뿌듯했다고.
그는 코너 말미에 "한국에 많은 외국인노동자 있어요. 모두 한국에서 좋은 추억만 가지고 갔으면 합니다"란 말을 빼지 않는다. 그 역시 외국인노동자들에게 좋은 추억을 주기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직·간접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지난 7월부터 국민일보의 패러디 뉴스 N2N(www3.kmib.co.kr/n2n/main.asp)에서 '열린외국인당 대변인 블랑카'로 출연해 외국인노동자의 눈으로 본 한국 사회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이와 함께 직접 외국인노동자들과의 만남도 지속하고 있다.

"외국인노동자센터 홍보대사를 하는 남희석 선배가 함께 하자고 해서 시간이 날 때면 노동자들을 찾아 축구도 하고 그런다. 또 많은 얘기도 나눈다. 여력이 되면 경제적으로도 돕고 싶다."

최근 '뭡니까 이게'가 재미없어졌다는 얘기가 가끔 들린다. 그 역시 듣는 얘기라고. 그는 무대에 5분 서기 위해 일주일 동안 스트레스 속에서 치열하게 산다고 한다.

"이주일 선배님께서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끊었던 담배를 한 달 전부터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5분 동안 단 한번 웃기는 것도 어려운지… 사실 코너 시작하고 3주 지나면서부터 '이 자리에 영원히 서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솔직하게 자신의 두려움을 털어놓은 블랑카. 하지만 이내 "(중소기업 사장님들, 봉숙이들의) 항의가 들어올 때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내가 고민한다고 바뀌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내 일에 충실하면 된다고 생각한다"라며 "대신 블랑카 이후에도 우리 사회 약자들을 위한 코미디를 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조심스레 비쳤다.

외국인노동당 대변인도 하고 함께 축구도 하고

그는 우리 사회의 외국인노동자 인권은 낙제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국민들에게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변론을 남겼다.

"그들은 차별을 받고 있다. 아직도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선입견이 안 없어지는 게 문제다. 같은 외국인이라도 서양인보다 동남아 등 못사는 나라 국민들에게 민족적 우월감을 가지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도 한 가정의 가장이고 아들, 딸이다. 말이 어눌하다고 멍청한 건 아니라는 점 기억했으면 한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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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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