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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문광위 교육방송 국정감사에서 이재웅 한나라당 의원은 EBS의 '국제다큐페스티벌' 팜플릿을 `불필요한 호화판 책자`라고 질책하며 책자를 들쳐보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11일 열린 EBS를 상대로 한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오전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의원은 유난히 방송프로그램에 대한 '인상비평'들을 쏟아냈다. 정체성을 둘러싼 현안질의에 피 튀기는 KBS, MBC 국감과는 대조적인 풍경. 하지만 과녁에선 빗나갔다.

이재웅 한나라당 의원은 EBS <세계의 명작> 프로그램에 방영된 '정사', '바람둥이 알프레드' 등의 영화를 언급하며 "이게 국민의 교육적 발전하고 무슨 관계가 있나, 재원도 없다면서 왜 이런 걸 늘리나, 본연의 역할(수능방송)에 충실하라"고 다그쳤다.

이에 고석만 사장이 "별 5개를 받은 세계적인 명작"이라고 답하자 궁색해진 이 의원은 "교육방송에서 왜 이리 영화를 많이 편성하냐"고 재차 따졌다.

이 의원은 또 전례 없는 '문화실험'으로 격찬을 받은 바 있는 EBS의 국제다큐페스티벌의 팸플릿을 문제 삼았다. 이 의원은 "다큐 이거 누가 보나, 이런 짓 하지 마라, 이거(팸플릿) 보내면 돈벌이 되나, 돈 받는 건가"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이 의원은 "이걸 누구 보라고 비싼 돈을 들여 찍나, 돈 낭비하지 마라, 인터넷으로 보게하라"고 충고(?)했다. 지상파TV가 일주일간 정규방송을 접고 하루 17시간 동안 다큐멘터리를 방송한 국제다큐페스티벌. 하지만 방송국으로는 찍지도 않은 국제다큐페스티벌의 '포스터'를 구하려는 매니아들의 문의가 쇄도한 바 있다.

심재철 의원은 한발 더 나아가 국제다큐페스티벌을 폐지하라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 언어문제를 꼽았다.

"국제다큐영화제의 심사위원 중에는 외국인도 있는데 원주민의 언어를 해독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있다. 외국의 사실관계를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 이 영화제에서 상을 주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이 행사는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내 지적에 일리가 있나?"

고석만 사장은 "자막처리를 했다"고 답했으나 심 의원은 "말과 글은 다르다, 자막으로 보는 느낌은 전혀 다른 것"이라며 한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다면 칸느니, 베니스니 세계 유수의 국제영화제 심사위원들은 어떻게 다른 언어권의 영화를 시상했던 것일까.

<명동백작> 재방송 보고 질의했다가 무안해진 이재오 의원

▲ 고석만 교육방송 사장에게 질의하는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다음은 EBS의 또 다른 히트작 <명동백작>. 다큐+드라마 형식의 이 프로그램은 1950년대 명동을 중심으로 활약하던 문인들의 생활상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로 기획된 '문화사 시리즈'의 제1편. 이재오 의원은 EBS의 비정규직 문제를 짚다가 <명동백작>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삑싸리'를 냈다.

이 의원은 "한 예술가의 삶은 그 시대상을 보여준다"고 전제한 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50년대 전후를 통해 그 시대의 사회상을 그리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예술인들의 낭만적 삶을 다루는 것인지 분간이 안간다"며 "누굴 타깃으로 하는 방송이냐"고 따졌다.

고석만 시장이 "중장년과 청소년층을 대상으로 한다"고 답하자 "오전 시간에 누가 보나, 직장 가고 학교가는데"라고 방송시간대를 문제 삼았다. 하지만 명동백작의 방송시간대는 토요일과 일요일 밤 11시. 고 사장은 "의원님은 재방송을 말씀하는 거다, 시청율은 높지 않지만 네티즌의 접속이 굉장히 많다"고 답했다. 이 의원은 "방송 효과를 생각해서 편성을 하라"고 얼버무렸다.

고흥길 의원은 제작비를 이유로 '문화사 시리즈' 후속편부터는 다큐멘터리로 만들라고 주문했다. 고 의원은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면 870만원이면 일회분을 제작할 수 있는데 굳이 10배가 되는 9천만원씩 들여서 제작할 필요가 있나"라고 지적했다. 물론 다큐의 형식은 고 의원의 말마따나 진실성, 역사성, 사실성을 보다 잘 드러낼 수 있다. 하지만 밥만 먹나? 다큐와 드라마를 섞는 것도 또 다른 형식 실험.

한편 이계진 의원이 EBS 사보의 지질과 '한(아래아)사람'이라는 제호를 문제삼은 것도 이채로웠다. 이 의원은 "이렇게 호화로운 지질은 화장품 회사나 삼성같은 회사에서나 맞는다"며 "교육방송 같은 데에서 양질의 종이를 쓴다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시정을 요구했다. 또한 제호에 대해서는 "아래아는 안쓰는 것이 맞춤법에 맞다, 장난할 때나 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대 맞춤법 상으론 맞는 지적이다. 하지만 훈민정음의 '아래아'를 오늘에 되살려 나랏말씀을 사용코자함은 '시적허용' 같은 것일 터.

EBS도 '코드방송' 나섰다?

▲ 11일 문광위 교육방송 국정감사에서 고석만 교육방송 사장이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사실 이날 한나라당 의원들의 '혼선'은 EBS 정체성 공방에서 빚어졌다. EBS가 지상파TV(평생교육체널)와 위성채널(수능전문·중학·직업채널)로 이분화 되면서 일반 시민을 상대로 한 평생교육채널이 현대사, 시사다큐 등 예민한 주제를 다루는 것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깔려 있다. 하지만 이날 국감에서는 사전경고의 수준에 그쳤다.

박형준 의원은 'EBS도 코드방송 나섰나'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해 최근 3년간 EBS의 현대사 프로그램이 늘어난 까닭과 내용의 편향성 문제를 지적했지만, 국감장에서는 "유의하라"는 수준에서 말을 아꼈다.

박 의원은 "KBS, MBC도 한두 가지 때문에 편향됐다는 지적을 받는다"며 "EBS의 현대사나 정치관계 프로그램은 그런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지적했다.

심재철 의원은 좀더 구체적이었다. 심 의원은 "특정이념사관으로 방송을 만들면 안된다"며 고석만 사장에서 다음처럼 물었다.

6·25는 남침인가, 군사적 충돌인가?
새마을 운동은 자립운동인가, 장기집권의 정당화인가?
한국경제는 외자를 바탕으로 경제 건설했나? 자본과 기술이 외세에 종속되는 과정이었나? 천리마운동은 극단화된 주민동원인가, 대중의 열정에 기반한 사회주의 운동인가?


"1번이냐, 2번이냐" 심 의원이 다그치자, 고 사장은 "꼭 선택해야 하나, 선택하기 어렵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내용들이다"라고 머뭇거렸다.

심 의원은 이어 "최근 역사교과서에 나타난 문제가 EBS 프로그램에 투영되어서는 안된다, 학생들에게 좌파적 이념을 심어주려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다.

이렇게 나가다간 EBS도 다음 국감에선 MBC와 KBS처럼 '코드방송', '색깔방송' 공세에 휘말릴 가능성이 농후해 보였다.

'수능교육=EBS 정체성' 유감
나는 요즘 자꾸 EBS 채널로 시선이 간다

▲ EBS 다큐드라마 '명동백작'의 등장인물인 시인 김수영(이진우 분).
ⓒEBS

11일 국회 문광위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는 '수능방송' 채널로서의 EBS 정체성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성인인 나는 불만이다.

사실 성인들이 재교육을 받을 기회란 거의 없다. 물론 직업과 관련한 '기술' 재교육의 기회는 회사에서도 마련해 주지만 문제는 '교양복지'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것.

그런 점에서 최근 EBS 지상파TV 채널의 변화는 반갑다. 흡사 나는 TV 앞 삐딱하게 앉아 있는 학생같다. '사회변화형 프로그램'이란 수식을 달고 있는 <똘레랑스>, <미디어 바로보기>, <도전 죽마고우>도 좋고, 정범구 전 의원이 진행하는 < TV 정치교실>은 현실정치에서 한발짝 뒤로 물러나 교양적으로 정치에 접근할 수 있어 좋다.

의원들은 EBS가 웬 영화프로그램을 그리 많이 하냐고 뭐라하지만 나는 토요일밤 <세계의 명화>, 일요일 낮 <일요시네마>를 통해 세계 명작을 어디 문화원에 가서 보지 않아 좋다. 사실 월요병이 시작되는 일요일 자정, 잠을 이루지 못할 때 한국영화특선을 틀어놓고 신파를 즐기기도 한다.

특히 최근엔 <명동백작>(토·일 11시 방영)에 푹 빠져 있다. 시간대가 안맞으면 녹화해서 본다. 명동백작을 보면서 1950년대 전후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거친 황폐한 사회상을 보고, 이를 이겨내기 위해 역으로 로맨티시즘에 빠져드는 문화예술인들의 '모순'을 보는 게 흥미롭다.

그 덕에 문학을 전공하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한 시간 동안 수다를 떨며 모자란 정보를 얻고, <김수영 평전>을 제대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요즘 자꾸 EBS 채널로 시선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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