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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최근 국가보안법 폐지논쟁과 관련, 국민 여러분의 판단을 돕고자 '국가보안법 보도비평'을 연재합니다. 연재는 5명의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국가보안법폐지 국민연대 언론대책팀' 소속 대책위원이 맡습니다. 여섯 번째 비평은 김은주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협동사무처장이 작성했습니다... 편집자 주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에 대한 보수신문의 여론호도는 계속되고 있다. 이들은 중요사실을 축소하거나 폐지가 아닌 부분개정이라는 특정한 방향으로 논의를 이끌어나가려는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심지어 국민 인권을 축소시키려는 태도도 엿보였다.

입맛에 맞지 않으면 사실도 축소하나

한국형사법학회 등 형사법 관련 3대 학회는 지난 20일 ‘현행 형법으로 보안법을 대체할 수 있다’며 국보법 폐지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보안법이 한시적 법률로 태어났고 보안법을 폐지해도 처벌공백이 없으며 국제기구의 폐지 권고 등을 근거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했다. 이번 형법학자들의 입장표명은 형법관련 학회가 망라된 것으로 전문가들이 법 해석을 둘러싼 논란을 정리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21일 이 사실을 아예 보도하지 않았으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다른 기사에 섞어 보도하는 등 사안을 축소했다. 특히 조선일보과 동아일보는 3대학회에 대한 해석은 하지 않은 채 회견내용을 간단히 정리하고 말미에 ‘14명이 참석했다’고 적시해 학회 대표성을 희석시키고 소수 학자들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것처럼 호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동아일보> 21일자 3면 기사.
ⓒ 동아일보 PDF

'정치타협론'은 양시양비론의 변종에 불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20일 ‘체제를 지키는데 지장이 없다면 보안법 2조의 ‘정부참칭(반국가단체)’ 조항을 없앨 수 있고, 보안법 명칭도 바꿀 수 있다’고 밝혀 파장을 일으켰다. 이에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야당이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며 여당의 입장변화를 요구하고 부분개정을 유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동아일보는 21일 「‘국보법 수술’ 여야 접점 찾을까/박대표 입장변화로 새 국면」을 3면에 싣고 그 아래 양당의 입장을 비교하는 기사를 실었다. '전진우 칼럼' 「갈라지고 막힌 세상」에서도 다수 국민이 부분개정을 원한다며 여야의 소통을 강조했다.

중앙일보의 경우 사설 「국가보안법 타협 가능하다」를 통해 “극단으로 치닫던 정쟁차원에서 한발 물러나 협상의 여지가 보다 커졌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며 “이제는 여권이 변할 차례다‥여당이 내놓은 형법개정이나 대체입법 내용은 보완해야 할 대목이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극단적인 주장으로 유명한 '문창극 칼럼'도 보수원로들의 문제를 일부 지적하며 여야간 소통과 대화를 주장했다. 여야간 타협이 필요한데 이번엔 야당이 큰 양보를 했으니 여당도 기존 입장에서 후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박 대표의 발언은 ‘모든 것을 걸고 국보법 폐지를 막겠다’던 기존 입장에 비하면 진일보한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현행 국보법은 법의 존재자체가 불합리와 인권침해 요소를 담고 있어 폐지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게 시민사회단체 주장이었다.

열린우리당이 대안으로 내놓은 형법보완이나 대체입법의 경우, 독소조항을 부분적으로 옮겨다놓은 것에 불과해 ‘이름만 바꾼 보안법’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문제를 안고 있는 여당 안에 대해서조차 후퇴를 요구하는 것은 이들 신문이 궁극적으로 국가보안법 존치를 바라고 있음을 드러내는 의도에 다름 아니다.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는 정치권의 타협 대상이 아니라, 그 폐해인 인권침해를 어떻게 종식시키느냐이다. 따라서 폐지가 정답이고, 아니라면 어떻게 인권을 침해하지 않을 수 있게 하느냐에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 야당이 한발 양보하면 여당도 한발 양보하는 단순한 정치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신문도 사회 현실에 대해 일정한 견해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명확한 주장이어야 한다. 양시양비론의 또 다른 변종인 ‘정치적 타협론’은 언론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 <조선일보> 9월 21일자 A5면.
ⓒ 조선일보 PDF

반국가단체 유지 주장하는 조선

그런 점에서 조선일보는 한발 앞서 간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가 ‘눈 가리고 아웅’식의 타협과 개정을 요구한다면, 조선일보는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열린우리당 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하며 반국가단체 조항 유지가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21일 5면 머릿기사로 열린우리당의 국가보안법 폐지후 보완입장에 대한 법무부의견서 내용을 「반국가단체 등 핵심조항 유지 필요성 강조 /법무부 ‘국보법 의견서’ 어떤 내용인가」라는 제목의 6단 기사로 대서특필해 여당 안에 대한 비판을 상세히 다뤘다.

물론 여당안의 준적국개념이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면서도 노골적으로 적국으로 규정하는 모순과 함께 개념이 애매모호해 ‘반국가단체’보다 인권침해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에서 여당의 보완책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법무부 의견서를 상세히 소개하면서 반국가단체, 고무찬양, 불고지죄 등 핵심 조항 유지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할 뿐이다.

또 박 대표 발언과 관련해 「북한정부 실체는 인정 반국가단체 개념은 유지/ 박대표, 정부참칭조항 삭제 언급 의미는」(A5)에서 유독 반국가단체 규정을 유지하는 쪽만 강조, 동아일보나 중앙일보에 비해 국보법 보호에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

이는 1년 7개월만에 복귀한 류근일씨 첫 칼럼이 “이땅에 숙청의 회오리가 휘몰아칠 것이고 인민재판식 서슬이 판을 칠 것”이며 “좌파 통일전선에 맞설 힘있는 범자유민주대안진영을 창출”하자는 비이성적 상황판단과 선동으로 가득차 있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인권보호마저 딴지 거는 조선일보

아울러 조선일보는 피의자 인권을 보호하고 불이익을 최소화하려는 법관의 의무 이행을 ‘정치권의 눈치보기’로 호도했다. 조선일보는 이날 <법원 판결마저 ‘갈팡질팡’>(A10)이라는 기사에서 국보법 위반혐의로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학생에게 해외연수를 허용한 사례와 국보법 위반혐의 피고에게 현행 보안법으로 재판을 받을 것인지를 묻고 당사자 동의 아래 재판을 연기한 사례 등을 들며 법원이 “정치권의 움직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미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헌재의 결정이 나기까지 재판을 연기했던 사례도 있을 뿐 아니라, 법의 개폐가 예상되고 있는 상황에서 재판을 연기한 것은 국민의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한 법원의 당연한 조치이다.

조선일보 역시 지난 17일자에 국보법이 폐지될 경우, 이미 처벌받은 사람들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내용의 보도를 한 바 있다. 사회적 약자와 국민의 인권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할 언론이 오히려 권리를 축소하고 훼손하는데 앞장서는 현실은 우리 언론의 현주소가 어디인가를 다시금 시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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