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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 김대홍
설레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요. 없으시다면 제가 자랑 좀 해야겠습니다. 제가 매일 2시간짜리 설레는 여행을 하고 있거든요. 시원한 강바람과 코를 간질이는 풀 냄새, 가끔씩은 발을 물에 담그고 개울가를 건너는 경험까지, 다양한 여행 일정을 하루에 두 번씩 꼬박꼬박 경험하고 있거든요.

무엇이냐고요? 서울 홍제천 끝에서 여의도까지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고 있거든요. 그게 뭐 자랑거리냐고 핀잔을 주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에게는 이게 너무나 신나는 일입니다.

지지난해 정확하게 100세를 채우고 돌아가신 할머니가 가끔씩 하시던 말씀 중에 이런 내용이 귀에 아련합니다.

"기억나나, 니 고성에 살 때 세 살 땐가, 네 살 땐가 자전거를 사갖고 왔는데, 새벽에 소리가 드륵드륵 나는 게 아이가, 문을 열어봤더니, 마루에서 홍이 니가 자전거를 타고 있더만."

저는 기억에 없지만, 아마 어려서부터 자전거를 무척 좋아했나 봅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자전거를 선물 받고 얼마나 기뻤던지요. 그러던 것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오락실 앞에서 잃어버리고 난 뒤로는 자전거 없는 암흑기(?)를 거쳐야 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시외로 쏘다니던 저를 어머니께서는 무척 불안하게 생각하셨고, 게다가 오락실 출입이 발각되면서 저는 감히 자전거를 사 달라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뒤 대학시절 잠깐 타고 다녔지만, 직장생활을 하고 난 뒤로는 자전거를 타고 다닐 엄두를 못 냈습니다. 관악구에 살 때 자전거를 몇 번 끌고 나선 적이 있었지만, 지하 통로를 몇 번이나 들고 오르내려야 하고, 인도와 뒤섞인 길을 어기적어기적 간다는 것은 아무리 자전거를 좋아하는 저라도 견디기 힘들었거든요.

▲ 자전거를 타면 건강에도 참 좋습니다.
ⓒ 김진수
그런데, 얼마 전 홍제천 자전거길이 한강까지 이어져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곤, 쾌재를 불렀습니다. 날아갈 듯이 매끄러운 자전거길, 콸콸 시원하게 흐르는 하천, 종아리를 간질이는 길게 자란 풀들, 저보다 늦게 달리는 차들을 보면서 승리감까지 느끼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첫 날은 상처뿐인 영광이었습니다. 홍제역에서도 10여 분을 산쪽으로 더 들어가야 하는 곳에서 여의도역 근처까지 출근하는데 걸린 시간은 무려 1시간 30분.

한강 건너편에서 여의도로 넘어가는 자전거길을 찾지 못해 마포대교까지 빙 둘러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여의도에 들어선 뒤에도 방향을 찾지 못해 한동안 헤매야 했습니다. 도착하니 지각. 아! 첫날부터 지각이라니 이게 웬일입니까.

그렇지만, 지도를 펴놓고 길을 확인하고, 주말과 퇴근시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한 노력을 거듭하면서 이제 출근 시간은 1시간 이내로 줄었습니다. 도착하고 난 뒤에는 넉넉하게 남은 시계를 보는 여유까지 생겼지요.

비가 잔뜩 내린 오늘(5일) 아침은 사실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불어난 물로 연결된 길이 끊어졌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이 추진력을 떨어뜨리지 않을까 겁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유심히 살펴보니, 징검다리 끝이 살짝 드러난 것이 보였고, 바람도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아니라, 옆에서 불어오는 바람이었습니다.

▲ 한강다리에서도 자전거는 유용합니다.
ⓒ 김대홍
중간에 위기도 있었습니다. 비가 내린 뒤 생긴 웅덩이가 많아 지나칠 때마다 면바지에 검은 물이 튀기곤 했거든요. 비내린 날 면바지로 멋을 부렸으니,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이었지요. 대신, 비 내린 날은 꼭 검은 바지를 입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것은 수확이었습니다.

오늘은 자전거를 들고 징검다리를 두 번이나 건넜고, 다리 위로 네 번이나 오르내렸으니, 틀림없이 근육도 많이 생겼겠지요.

저를 보고 직장 동료는 "우리 고물 자전거 동호회 하나 만들죠"라고 농을 걸곤 합니다. 잔뜩 녹슨 모양새가 그리 시원찮게 보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점심시간에 동료를 태우고, 여의도 공원을 한 바퀴 돌자, "와 자전거 좋네요"라며 찬사로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자전거를 왜 버렸는지 모르겠다고 말하자, 동료도 저에게 하나 구해달라며 부탁을 합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출퇴근시 책을 읽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출퇴근 시간이 꽤 적지 않은 시간인데, 두 가지를 다 가지려고 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겠지요. 아무튼 내일은 돌아오는 길에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들 틈에 끼어 철봉이며, 허리 돌리는 기구 등을 해보는 여유도 부려볼 계획입니다.

▲ 장애물을 만난 자전거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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