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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박호성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국가보안법과 이적표현물, 그리고 사상과 양심의 자유'에 관해 보내온 칼럼입니다... 편집자 주)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을 엄중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법 당국 스스로가 앞장서서 이러한 헌법 정신을 모독하는 만용을 부릴 때가 잦은 것이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예컨대 검찰과 법원이 국가보안법을 들이대며 특정 도서를 <이적 표현물>로 확정판결을 내린 처사 역시,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도대체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가?

1996년 <한국정치학회>의 학술상을 수여 받은 적이 있는, 한 정치학 교수의 저서 『평등론: 자유민주주의·사회민주주의·맑스주의의 이론과 현실』(창작과 비평사, 1996, 5쇄)이라는 책 속에는,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적 원칙의 하나로서 - 근래 우리나라에서 '똘레랑스'란 말로 널리 대중화되기도 한 - '관용'(tolerance)이 제시되고 있다.

"관용은 한마디로 '국가, 사회, 또는 개인의 편에서 볼 때, 누구나 선택한 대로 행동하고 믿을 수 있는 타인의 평등한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비록 어떠한 행위나 신념이 마음에 들지 않고 동의할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고 방해놓지 말아야 할 의무'를 일컫는다.

말하자면 공적인 일에서나 개인적 사안에서 서로가 가지고 있는 견해나 신조를 절대적인 것으로 고집하지 않는 태도가 곧 관용인 것이다 …. '관용의 적(敵)은 광신(fanaticism)' 이다"(p.75 참조). 요컨대 자유주의 최대의 적이 바로 '광신'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학문적으로 국제적인 공인을 받고 있는 이 논리를 따른다면, 예컨대 국가보안법적 논리를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반 자유민주주의적 전횡이 될 수 있다는 말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국가보안법은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반 헌법적 독소 법률이라 할 수 있다.

이 지상의 어느 누구도 신(神)처럼 자신의 특정적인 입장이나 견해를 절대적인 것으로 강요하고, 그리고 그 판단을 반드시 추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압할 수는 없다. 그것은 광신이 난무하는 전체주의 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박정희 시대 "반공을 국시의 최고로 삼는다"는, 반 자유주의적인 구호가 난무하기도 하지 않았던가. 왜 <학문과 사상의 자유>가 저 프랑스 대혁명이래 자유민주주의의 꽃으로 기능해왔는가 하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국가보안법, 반 헌법적 독소 법

이렇게 볼 때 예컨대 리영희의 <우상과 이성>, <전환시대의 논리> 및 <8억 인과의 대화>, 그리고 백기완의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 강만길의 <한국 근·현대사>, 송건호 등의 <해방전후사의 인식>, 황석영의 <사람이 살고 있었네> 등을 '이적 표현물'로 매도하는 공안당국의 입장이나 견해는 오히려 "광신"에 가까운 것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말하자면 자신들의 공안적 논리를 "절대적인" 것으로 강요한다는 말이다.

이 책이 지하에서 나돌고 있는 비밀문건이 아님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역사와 사회를 바라보는 자신의 생각을 평화적으로 기록하고 또 당당히 시중에 공개한 것이 어찌 공공연한 '이적행위'로 매도될 수 있는가.

또한 우리의 지난 역사를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것은 지식인이라면 반드시 수행해야 할 역사적 책무라 할 수 있다. 그를 통해 우리는 잘못된 과거를 되풀이하는 어리석음을 면할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할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박정희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박정희를 비판하고 단죄하는 것 역시, 지식인으로서의 합당한 자세라 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시각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진정으로 민족통일을 원한다면 통일의 한 주체인 북한에 대해 당연히 객관적으로 그리고 포괄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마르크스주의를 모르고 어떻게 북한 사회를 검증할 수 있고, 또한 마르크스주의적 변증법과 유물론 등을 모르고 어떻게 마르크스주의에 접근할 수 있겠는가. 유물론이란 것이 관념론과 더불어 본질적인 철학적 세계관의 한쪽 날개를 이루고 있는 것이니,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여성을 모르고 어찌 남성에 대해 말할 수 있으며, 여성해방 없이 어찌 인간해방에 대해 논할 수 있겠는가. 다 같은 이치다.

이런 취지에서 나는 <사회주의 정치사상사>라는 이름이 붙은 내 강의에서, 핵심적인 마르크스주의 관련 서적을 학생들에게 읽도록 권유한다. 아울러 대한민국이 근본적으로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민주 국가임을 주지시키면서, 소위 어떠한 '불순한' 경향을 대변하는 입장이라 하드라도, 자신의 개인적 견해를 자유롭게 펼치고 또 그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도록 권장한다.

이미 100 여년 훨씬 전에, 프랑스의 계몽철학자 볼테르는 이렇게 절규했다. "당신의 의견은 바로 나의 견해와 정반대다. 그러나 당신이 그 견해를 밝힐 자유를 위해, 나는 내 전 인생을 걸 것이다"라고. 예컨대 성경을 읽는다고 다 기독교 신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따라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만 '이적 표현물'로 단죄 받고 있는, 칼 마르크스의 <헤겔 법철학 비판>, <자본론>이나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및 국가의 기원>, 그리고 블라디미르 레닌의 <국가와 혁명> 등은 필독서에 속한다.

우리나라에는 왜 '좌익수'만 있고, '우익수'는 야구장에만 있는가

그러나 우리를 더욱 슬프고 참담하게 만드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뒤흔드는 위헌적인 판결이, 더욱이 스스로 '참여정부'라 칭송하는 시대임에도 어김없이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박호성 교수
모든 국민들이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새로운 희망에 부풀어 있는 이러한 역사적 상황인데도, 아직껏 국가보안법이 남용되고 있다. 대단히 통탄할만한, 시대 착오적이고 반문명적인 작태라 아니할 수 없다. 오늘날 가장 준엄한 우리 국민대중의 역사적 소명은 이러한 야만적인 국가보안법의 멍에를 신속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청산함으로써 역사의 진보에 헌신하는 일이다.

새벽은 새벽에 눈뜬 자만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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