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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그 말을 한 본 뜻과는 조금 다르겠지만 제 자신을 돌아보면 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제 자신이 참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저는 두 아이의 아비이자 한 여자의 남편입니다. 부모님이 보시기엔 여전히 물가에 내 놓은 어린애지만 큰 애가 학교에 다니는 학부모이기도 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부천시의 시민이며, 경기도민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회사에서는 사원이고, 국세청에서 볼 때는 납세자입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기독교인으로 불리기도 하고, 생물학적으로는 남자, 아이들이 볼 때는 어른, 나이로 따져서 30대로 불리기도 합니다.

사람들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 다양한 모습으로 세상과 마주하며 살아갑니다.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여러 내 모습 중 가장 적합한 모습을 골라 내 모습을 드러내며 사는 것이지요. 특히 선거에 참여할 때는 자기 자신을 누구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선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할 때입니다.

국회의원 선거는 나를 대신해서 국회에 들어가 일을 할 사람을 뽑는 것입니다. 유권자들이 각자 자신을 가장 잘 대변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투표를 해야 하고, 국회의원은 자신을 지지한 유권자들의 뜻을 올곧게 전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자신을 학부모라 여기는 사람은 교육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에게, 장애인이라 여기는 사람은 장애인의 복지를 향상시켜 줄 사람에게 표를 더해 주는 게 옳습니다. 농민들이 농민 대표를, 노동자들이 노동자 대표를 선출하면 선출되는 수만큼 권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자신의 존재를 잘못 규정하면 전혀 엉뚱한 선택을 하게 됩니다. 노동자가 노동자 후보 대신 재벌 회장에게 표를 주고, 통일이 가장 절실한 실향민들이 반통일 세력에게 표를 주며,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친일파 후손에게 표를 주는 경우가 생기는 것입니다.

지역구 중에서 노동자 수가 전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울산 동구의 지역구 국회의원은 아이러니 하게도 재벌 회장인 정몽준 의원입니다. 영남지역 64개 선거구 중 63개를 한나라당이 석권했던 16대 총선 때 정몽준 의원이 유일하게 무소속으로 당선될 수 있었던 데는 자신을 노동자로 규정하기보다는 현대중공업 직원으로 규정했던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힘이 컸습니다.

노동자 수가 많은 포항, 창원, 거제에서도 노동자들은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일하겠다는 진보정당이나 노동자 후보에게 표를 주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노동자이기보다는 지역 주민으로, 회사 직원으로만 규정했기 때문입니다.

유권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지역 주민으로 국한하는 바람에 선거 때마다 나라가 동서로 나눠졌습니다. 정치인들은 정책으로 승부하기보다는 지역감정에 기대어 손쉽게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습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에서‘우리’를 묶는 끈은 이념도, 정책도, 계급도 아니었습니다. 주민등록증에 적힌 본적지 하나가‘우리’와 ‘너희’를 갈랐고 그에 따라 특정 정당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부끄러운 행태가 수도 없이 반복되었습니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17대 총선은 사상 초유의 탄핵사태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지역색 옅은 열린우리당의 출현 때문인지 예전의 지역감정은 그 기세를 많이 잃은 것처럼 보입니다. 대신 진보정당의 원내진출 가능성이 올라감에 따라 유권자들이 지역 주민의 한 사람에서 탈피해, 자기의 이념이나 계급에 눈을 돌리는 바람직한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민주노동당 지지선언은 유권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제대로 자각하기 시작한 좋은 사례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교사나 공무원이기 이전에 노동자임을 자각하여 노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이번 민주노동당 지지선언은 노동자의 한 사람으로서 선거에 참여하고, 노동자의 권익 향상에 도움이 되는 정당에 투표하겠다는 노동자 권리선언이자 유권자 권리선언인 것입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무리하게 법을 적용해 주동자를 처벌하고, 관련자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하겠다고 합니다. 이같은 행위는 국민의 손으로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민주주의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위입니다. 노동자가 노동자 후보를, 농민이 농민 후보를, 자본가가 재벌 후보를 자신의 대표로 인정하고 공개 지지하는 것을 무슨 근거로 막을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고,‘영도 다리에서 빠져 죽자’며 유권자들을 지역 주민의 한 사람으로만 묶어두려 한 이들을 잡아들이라고 만든 법을 엉뚱한 곳에 들이대는 정부의 헛발질에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노동자, 농민, 서민, 장애인, 여성 등 이제껏 이 나라의 주인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이들이 주인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을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을 국회에 많이 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17대 총선에 참여하는 유권자들 모두가 자기 자신의 존재를 명확히 규정하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노동자가 재벌 회장을, 철거민이 부동산 투기꾼을, 독립운동가가 친일파를 자신의 대표로 선출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할 테니까요.

나를 제대로 아는 것이 17대 국회를 나와 우리를 대표하는 인물로 채우는 시작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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