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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부를 다 뜯어낸 건물 지하에 들어가자 별천지가 펼쳐졌다. 이 곳에 있는 만화책은 약 20만권.
ⓒ 김대홍
"노다지다, 노다지. 아니 허영만의 <오 한강>이 이렇게 많다니. 한질도 아니고, 한칸 빼곡히 있잖아."

서울 중랑구 상봉동 중고도서매장 '좋은 책 많은데(사장 전영희)'를 방문한 첫 소감이다. 중고 도서점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허영만의 <오 한강>이 책장에 가득히 꽂혀 있는 것을 보고 이 곳이 비범한 곳(?)임을 첫눈에 알아봤다. 전 사장은 "지금까지 구해 달라는 만화책을 구하지 못한 적이 없다"는 말로 만화 보유량을 간접적으로 설명했다.

80평의 면적을 자랑하는 '좋은 책 많은데'에는 20만권의 중고 도서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 중 대부분이 중고 만화다. 이 수량도 2000년 12월까지 확인된 수치다.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만한 통로만 빼고는 모두 만화책이다. 한 쪽 면에는 국내소설, 외국소설, 무협소설, 시집 등의 도서 등도 비치돼 있다. 전 사장은 "매장이 좁아 책을 다 꽂지 못하고 쌓아둔 분량이 꽤 많다"고 말한다. 요즘도 한달에 트럭 한대 이상씩은 도서가 들어온다.

▲ 전영희 사장이 책을 정리하고 있다.
ⓒ 김대홍
중고 전문점이기 때문에 가격이 무척 저렴하다. 원가 2500원인 허영만의 <비트>는 권당 1300원, 원가 3500원인 오토모 가츠히로의 <아키라>는 권당 700원에 판매중이다. 대부분 1300원대에 판매되고 있으며, 희소 가치가 있는 책은 2000원, 가장 비싼 책이 2500원이다. <아톰>의 작가 데즈카 오사무의 책들은 1700원에서 2000원에 판매된다. 다카하시 류미코의 <도레미 하우스>(원제 메종이고쿠)와 같은 책들도 고가에 거래된다. 소설은 1000원에서 1500원에 판매된다. 인터넷 홈페이지(www.gagopabook.com)를 통해서도 책을 구입할 수 있다.

이 곳의 고객은 전국의 모든 사람들이다. 멀리 떨어진 경남 마산을 비롯, 제주도에서부터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하곤 한다. 만화가들이 자신의 책을 수집하러 오기도 하고, 희귀한 책만 모으는 만화 마니아들이 수소문 끝에 이 곳을 찾기도 한다. 허영만 팬클럽 회원들이 허영만 만화 목록을 만들기 위해 찾은 곳도 이 곳. 얼마전에는 이 곳에서 <대한민국 왕대장>을 찾은 고객이 "9년 동안 찾아 헤맨 책"이라며 감격한 적도 있다고 전 사장은 귀띔했다.

영화 <올드보이>의 제작에도 '좋은 책 많은데'가 영향을 끼쳤다. <올드보이>의 촬영 조감독이 제작을 앞두고 <올드보이> 원작을 구하러 다녔는데, 만화책을 구한 곳이 바로 이곳이라고 한다. 전 사장은 촬영 조감독이 이 곳에서 네다섯 시간을 뒤져 <올드보이>를 구하고 난 뒤, 무척 기뻐했다고 전했다.

▲ 전영희 사장이 고객과 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닥터 노구치요. 잘 알죠. 그것 보고 울었어요."
ⓒ 김대홍
만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좋은 책 많은데는 넉넉한 인심을 베푸는 곳이기도 하다. 돈이 없어 수시로 들러 만화만 보다 그냥 가는 여중생에게 전 사장이 그냥 만화를 쥐어준 적도 있고, <취중진담>의 송채성 작가도 무명 시절 이 곳에 들러 공짜로 책을 얻기도 했다. 학교나 청소년회관에 가끔씩 무상으로 책을 기증하기도 하는데, 최근에는 성곡정보고등학교, 정릉 청소년회관 등에 책을 기증했다. 가끔씩 가족들이 주말에 이 곳을 방문해 2~3시간씩 시간을 보내다 가는 나들이 장소로 이용될 때도 있다.

지금은 만화 제목만 대면 "아 그 만화요"라고 내용을 줄줄줄 대는 전 사장이지만, 그는 원래 만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여고생 시절에도 소설만 읽었을 뿐 만화는 한 권도 읽지 않았다. "글을 읽어야 하고, 그림도 읽어야 하기 때문에 복잡했다"는 게 그가 만화를 꺼렸던 이유. 그러다가 생계를 위해 도서 대여점을 차린 것이 만화와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다. 도서 대여점을 3~4년 정도 하다가 중고만화점을 차려 운영한 지 올해로 6년째다.

▲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만한 통로만 빼고 모든 공간에 책이 가득차 있다.
ⓒ 김대홍
도서 대여점을 하기 전까지는 그 또한 만화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 청소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 것. 이제는 아이들에게 마음껏 만화를 보게 한다며 웃는다. "원래 서울 안 가본 사람이 가본 사람을 이긴다고 하잖아요. 저도 그 전에는 만화를 본 적이 없으면서 어른들 말만 듣고 부정적인 인식만 가득했죠. <닥터 노구치> 같은 만화는 왠만한 책보다 더 예술적이에요."

요즘은 만화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져 중학생들부터 40대 중년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이 곳을 찾는다고 전 사장은 말한다. 40~50대는 중국정통무협물을 선호하고, 여학생들은 순정만화를 많이 찾는단다. 고객 중에는 남편에게 말못하고 몰래 보는 3, 40대 주부도 있다고 덧붙인다.

▲ 이런 책장 수십개가 매장 내에 있다.
ⓒ 김대홍
전 사장은 요즘 경기가 많이 어려워졌다는 것을 몸으로 느낀다. 이 곳을 방문하는 도서 대여점과 만화방 주인들의 하소연이 늘고 있고, '좋은 책 많은데'의 매상도 2년 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는 것. 지난해에 비해서도 절반 가량 줄었단다. 특히 성인들의 주머니가 얇아지면서 도서 대여점의 성인만화 대여량이 대폭 줄었다는 하소연을 많이 듣는다고 설명한다. 특히 만화 지망생들의 생활이 어려워 마음이 안타깝다고 털어놓는다.

"언젠가 만화가 한분이 시리즈 만화 중 1권을 출간했는데도 불구하고, 수중에는 돈이 없더라구요. 그 이야기를 듣고 공짜로 만화를 드린 적이 있어요. 어렵더라도 만화 읽고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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