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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등학교 때 조숙한 편에 속했다. 항상 세 살 많은 형들과 같이 어울리다 보니 또래들보다 어른들의 본모습(?)에 대해 좀 더 많이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아기가 배꼽이 아니라 자궁에서 나온다는 얘기를 초등학교 3학년에 알았다. (요즘은 빠른 것도 아니지만 당시에는 반에서 나만 알고 있었다.) 또 그 아기는 결혼해서 손잡고 자면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합방을 통해 생긴다는 사실을 초등학교 4학년에 알아버렸다. 그 사실로 인해 한참을 방황했던 기억이 새롭다.

하지만 초등학교 5학년에 안 사실은 이보다 훨씬 충격적이었다. 모든 남자들은 자신의 성기의 일부분을 짤라내야 한다는 사실. 어릴적부터 목욕탕에 가면 주위에 어른들의 그것과 내 것이 똑같지 않다는 것을 대충 알고 있었지만, 그 차이가 그것에 칼을 대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그 사실을 친구들과 공유한 이후 나와 친구들의 모든 관심은 '포경수술'이었다. 어느 날 동네 형들에게 포경수술에 대해서 물어봤다.

"형아, 포경수술 안하면 어떻게 되는 기고?"
"빙신, 그것도 모르나? 고추가 큰 병에 걸리가 점점 썩는다."
"정말이가?"
"그것뿐만 아이다. 결혼한 신부까지 큰 병에 걸려 죽을지 모른다 카더라."

이 말을 들은 난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포경수술 얘기는 우리 반에 점점 퍼져나갔고 일찍이 수술대에 올랐던 친구는 모든 관심의 표적이 되었다.

"(부러운 눈으로) 야, 포경 수술할 때 많이 아프더나?"
"그라먼. 주사를 고추에다 팍 꼬자 뿐다 아이가. 죽는 줄 알았다."

주사를 고추에 놓는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그때부터 충격과 공포는 시작되었다. 날마다 무서움에 떨었다. 이런 사실은 중학교 선생님들을 통해서도 접할 수 있었다. 선생님들은 포경수술의 필요성을 역설하셨고, 우리는 얼굴이 상기된 채 얘기를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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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중학교 3학년 연합고사를 마치고 난 수술대에 오르기로 결심했다. 너무나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담담하게 부모님에게 얘기했다.

"엄마, 저…. 나 수술해야 한다."
"(놀란 표정으로) 와? 어디 아프나?"
"아니 거기 있잖아.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포경…."

엄마는 한참을 웃었다.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수술하기 하루 전에는 공포심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밤새 큰 가위가 내 고추로 들어오는 상상에 떨어야 했다.

드디어 수술 당일. 숨을 한번 내쉬고 당당하게 옷을 벗었다. 수술은 남자의사 선생님이 담당했으나 옆에는 간호사가 있었다. 세상에 태어나 고이 간직했던 내 모든 것을 처음으로 여자에게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이 때는 수술의 공포보다 수치심이 밀려왔다.

말로만 듣던 주사가 들어왔다. "아----악."

눈물이 핑 돌며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헉, 그러나 한방이 아니었다. 무려 네 방을 맞았다. 그러나 아픔은 점점 줄어들었다. 마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내 표피가 "스---윽" 하는 소리와 함께 잘려나갔다.

내 인생에 최대 숙제가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시원함마저 느껴졌다. 의사선생님은 붕대를 잘 감아주시고는 아프지 않게 반창고로 고정까지 시켜주셨다.

"약 잘 먹고 너무 심한 운동하지 말고, 밤에 발기하면 좀 아플 거야."

주사 맞는 것 말고는 별로 아프지 않았다. 너무나 혈기가 넘쳤던 시절이라 집에서 쉬지 않고 바로 친구들을 만나러 교회로 갔다. 친구들은 여학생들과 같이 난로 가에 모여 있었다. 내가 수술한지는 아무도 몰랐다.

친구 중 한 명이 나를 보자마자 달려왔다. 반갑다는 표시로 엎어 치기를 하는 버릇이 있는 친구였다. 내가 소리도 치기 전에 나를 엎어 쳤다. 반갑다는 말과 함께….

다행히 정면으로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통증은 심각했다. 그러나 여자동료들이 지켜보고 있었기에 아프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언가 심각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화장실로 달려가 상태를 확인하니 붕대가 빠져있었다. 너무 부어 올라 개구리가 공기를 가득 머금은 형상으로 변해 있었다. 실제 아픔보다 보는 것이 더 무서웠다.

고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억지로 치료를 하고 잠을 청하고 있으니 새벽에 남자에게 일어나는 반응이 나타났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아-----악!"

뛰어나갈 힘도 없었다. 그냥 그렇게 절규할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 이후 일주일간 그런 고통이 계속됐다.

성인이 된 후 '구성애의 아우성'을 보기 전까지 나는 그래도 이 고통스런 기억도 추억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 말인가? 우리나라처럼 포경수술을 많이 하고 있는 나라는 중동지역과 미국, 필리핀 등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일본, 스웨덴, 러시아의 포경수술 비율은 5%을 넘지 않는다고 한다.

좀 더 살펴보니 포경을 하지 않은 사람이 여성에게 자궁암에 유발시킨다는 얘기나, 자신이 병이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것 역시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우리나라는 그렇게 포경수술을 권장했는지 알 수 없다.

지금도 수많은 영아들과 청소년들이 수술대에 오르고 있다. 이들이 수술을 거부할 권리는 없다. 오직 기성 세대의 잘못된 정보와 편견으로 평생 한 번 경험하기 힘든 고통을 수술실에서 감내하고 있다. 건강이라는 이유로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설사 이 수술이 약간의 장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수술받는 당사자가 성인이 돼 당사자의 선택에 의해 해야 되는 것 아닐까. 그러나 우리 사회는 마치 스무 살 전에 하지 않으면 당장 절단이라도 나듯 포경수술을 권장하고 있다.

아직도 그 수치심과 공포심은 없어지지 않고 있다. 포경수술은 잘못된 건강 정보에 의해 기성세대가 선택권이 없는 어린 세대에 강요하는 '폭력'이다.

덧붙이는 글 | 사이버참여연대(www.peoplepower21.org) 기고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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