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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노총각 노처녀 눈 맞다

우리 부부는 서른다섯의 늦은 나이에 노래방에서 우연히 합석한 것을 계기로 만났습니다. 만나고 보니 우리는 서로 2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첫 번째는 이성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막연한 것 같으면서도 아주 구체적인 환상이었습니다.

남편의 환상이란 건 '남자는 하늘이고예, 여자는 땅이라예'의 대명사인 경상도 여자에 대한 것이었고, 저의 환상이란 건 '서울 남자는 살살 녹는 아이스크림 같고 달콤한 초콜릿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서울서 나고 자란 남편이나 부산서 학창시절을 보낸 저도 알고 보니 10여년 세월 그렇게 지리산 자락에서 객지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잘난 것 없고 내세울 것 없는 서른다섯 노총각 노처녀가 오랫동안 간직해온 환상적인 사람을 만났으니 서로 튕길 것도 내숭 떨 것도 없었죠. 우린 만난 지 3개월 만에 결혼이라는 것에 흔쾌히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이라는 인륜지대사를 앞에 놓고 보니 참 막막했습니다.

그 당시 남편은 전기가게를, 저는 양품점을 했었는데 둘 다 인덕이 없어선지 아니면 수완이 없어선지 만년적자에 허덕이다 못해 빚이 탐스런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습니다.

▲ 우여곡절 많았던 제 결혼식입니다.
ⓒ 김정혜

결혼 D-1, 술상을 차리다

그래서 결론을 내린 것이 결혼식은 잠깐 뒤로 미루고 혼인신고를 먼저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곤 서로 가게를 정리하여 어느 정도 빚을 해결하고는 서울에 계신 시부모님 댁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결혼식을 뒤로 미룬다는 우리 의견이 시부모님들껜 아무래도 석연찮았는지 시댁으로 들어간 지 6개월 만에 간단하게 격식만이라도 차리자는 데 의견일치를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간단하게 격식만 차린다는 그 결혼식이 결코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시부모님은 남편이 장남이기 때문에 집안의 첫 잔치라며 청첩장을 만들고 가까운 친척 분들은 며칠 먼저 올라오실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드디어 결혼식 이틀 전. 시어머님은 집으로 오시는 친척 분들을 위해 음식장만을 준비하셨습니다. 물론 저도 장을 같이 보고, 음식준비도 함께 했습니다.

결혼식 전날. 아무리 살다가 격식만 차린다지만 막상 다음날 면사포를 쓴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들뜨기도 하고 허파에 바람 든 것처럼 붕 뜨고 야릇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야릇한 기분도 잠시. 오전 일찍부터 도착하는 손님들을 맞기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집안의 첫 잔치라 그런지 손님들이 쉴 새 없이 줄을 이었습니다.

저는 아침상 차리는 걸 시작으로 잠시 잠깐 엉덩이 한번 바닥에 붙일 새 없이 이 방 저 방을 동동거리며 혼자 바빠야 했습니다. 식사하시고 나면 술상 올려야하고 뒤이어 또 들어오시면 또 상 차리고 또 술상 차리고 과일 내가고…. 그런데 그 많은 손님들 중에 나를 도와줄 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몸은 지쳐가고 새록새록 서러움 아닌 서러움도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저를 위로해줄 사람은 결국 또 저 자신 밖에 없었습니다. 하여 스스로 위로를 하였습니다. '다들 우리를 축하해주러 오셨으니 고맙게 생각하자' 이렇게 말입니다.

어느덧 날은 어두워지고 몸은 물먹은 솜 마냥 녹초가 되고 너무 힘이 드니까 그 순간엔 결혼식도 다 귀찮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를 더욱 서럽게 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어른들의 위로 말씀들이었습니다. "아이구. 새색시가 이렇게 힘들게 일을 해서 어쩌누…" 하시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시부모님은 친정에 가 있다가 결혼식에 맞춰서 오라고 하셨지만 친정은 부산에 있어 멀기도 하거니와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번거롭기도 해서 그만두었는데 그것조차도 왜 그렇게 후회스럽던지…. 그러나 서럽다고 해서 내일 결혼식 할 새색시가 방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소리 내어 울 수도 없었습니다.

그때 마침 일이 바빠 결혼식 전날도 일을 나갔던 남편이 퇴근하여 집으로 막 들어섰습니다. 저는 남편을 보자 서럽던 마음이 조금 위로가 되고 이 많은 손님시중도 혼자보단 남편이 거들어 주면 훨씬 수월할 것 같은 생각에 구세주를 만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들어서자마자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다짜고짜 저에게 "나 좀 나갔다 올게.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어서…"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이 많이 미안해하며 어렵게 이야기를 꺼낸 듯해 다소 못마땅했지만 "알았어. 대신 빨리 들어와"라고 말하며, 그렇게 울며 겨자 먹기로 남편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 언제 싸웠냐는 듯 다정한 우리 부부의 모습.
ⓒ 김정혜

결혼식 앞두고 노래방으로 도망가다

시간은 흘러 자정을 넘어섰습니다. 이방 저 방 가득한 손님들은 여전히 안 주무시고 계셨지요. 저는 피곤한데다가 남편에 대한 서운함까지 보태어져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은 못하겠다싶어 어디에라도 눕고 싶은 생각에 누울 자리를 찾는데 어느 한 구석 제가 누울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새색시인데 누구하나 저의 고단함을 알아주는 이 없다는 게 정말 너무 서러웠습니다.

저는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다가 슬그머니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곤 무작정 눈에 띄는 노래방으로 들어갔고 들어가자마자 그냥 엉엉 울어 버렸습니다. 얼마를 울었는지도 모르게 한참을 그렇게 울고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두어 시간은 족히 노래를 불렀을 겁니다.

그때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고 저는 그냥 끊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계속 전화를 했고 저는 계속 끊어 버렸습니다. 급기야 문자 메시지가 들어왔습니다.

'전화 안 받으면 내일 결혼식 못할 줄 알아.'

순간 기가 막혔습니다. 지금 누가 누구에게 무슨 소리를 하는가 싶었습니다. 그때 다시 벨이 울렸고 저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기가 막혀서 따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남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저의 말문을 막아버렸습니다.

"집에 손님들 계시는데 뒷시중은 누가 하라고 나와 있는 거야!"

순간 기가 꽉 막혀버렸습니다. 저는 말없이 전화를 끊고 문자 메시지를 넣었습니다.

"우리 헤어져!"

그 순간엔 그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아내의 마음을 모른다면 같이 살 필요가 없다는 아주 단호한 결정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곤 노래방을 나와서 호프집으로 갔고, 못 마시는 술을 정신없이 마셨습니다. 그리고 창피한 것도 모르고 또 그렇게 엉엉 울었습니다.

나의 폭탄선언 "우리 헤어져"

그러다 어느 한 순간 정신을 잃었는데 깨어보니 세상에, 시동생 차 안이었습니다. 참 난감했습니다. 집으로 들어가야 할지 정말 결혼식을 포기하고 끝장을 내야할지…. 한참을 그렇게 차 속에서 갈등하고 있는데 남편이 차 문을 확 열더니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결혼식은 하고 헤어져"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잠시 망설이는데 남편이 얼른 시동생 차에 올라타더니 시동을 켜곤 쏜살같이 예식장 미용실로 향했습니다.

달리는 차 안에서 남편이나 저나 그래도 자존심은 굽히기 싫어서 또 티격태격 했고 일단 결혼식이 코앞이니 결혼식은 하고 대신 신혼여행이 아닌 이별여행을 다녀오자고 참 희한한 합의를 보았습니다.

결혼식을 마치고 우리 부부는 그 희한한 이별여행길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이별여행이 아닌 달콤한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 우리 부부는 이구동성으로 외치고 있었습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야!

지금도 그 칼로 물 베는 일을 수시로 하고는 있지만 이젠 그 칼도 많이 무디어 진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결혼에피소드 응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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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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