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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시가 시민들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10가구 중 3가구가 주차문제로 이웃과 다툰 경험이 있다는 기사를 며칠 전 조간신문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을 신문기사였는지 몰라도 필자에게는,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 동네 사람들에게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기사라는 생각이 든다.

▲ 주택가 골목길에 늘어선 주차행렬
ⓒ 최관묵
현재 필자가 살고 있는 이곳 성남시 수정구 일대는 주차문제로 인한 이웃간 다툼이 심하기 이를 데 없다. 추측컨대 우리 동네 주민들을 상대로 이와 같은 설문조사를 실시했더라면 아마도 ‘10가구중 7가구는 주차문제로 이웃과 다툰 경험이 있다’라는 좀 더 심각한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그만큼 주차문제에 관해서라면 우리 동네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예민하고 날카로운 반응을 보인다. 이렇다 보니 동네에 새로 이사 온 사람이 골목 그 어느 곳에라도 겁 없이(?) 주차를 하는 날이면 여지없이 이웃간 고성이 오가고, 급기야는 경찰이 와서 중재를 하곤 한다.

왜냐하면 우리 동네는 골목 어느 한 공간이라도 이웃간에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각자의 주차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 사정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되지 않을 불문율이기도 하다. 참고로 우리 동네는 거주자 우선 주차제도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주차공간 확보를 위한 백태 1
ⓒ 최관묵

▲ 주차공간 확보를 위한 백태 2
ⓒ 최관묵

▲ 주차공간 확보를 위한 백태 3
ⓒ 최관묵

▲ 주차공간 확보를 위한 백태 4
ⓒ 최관묵
완패로 끝난 나의 주차싸움

올해로 5년째 이곳 성남에 살고 있는 우리 가족도 이사 초기에 주차문제로 인한 이웃간 다툼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내 경우 주차와 관련한 동네의 불문율(?)을 어긴 죄로 타이어 3개를 펑크 당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주차분쟁은 일터로 나갔던 자동차들이 귀가하는 저녁 시간대에 대부분 발생한다. 따라서 저녁시간에 낯선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에 대해 동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경계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며칠 전, 퇴근 후 저녁밥상을 물리고 하루 중 가장 편안한 자세로 TV를 시청하고 있는데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핸드폰 액정에 뜨는 발신자 전화번호를 확인해 보니 낯선 번호다. 순간 ‘한동안 주차 싸움이 뜸하더니 오랫만에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은 긴장되면서도 굳은 마음으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목소리에 한껏 힘을 넣은 필자는 “여보세요”라고 말했다. 곧바로 "XXXX번호 차량 주인 되시죠?"라는 상대방의 질문이 날아온다. 순간 나의 예상이 적중되었음을 직감한다. 이 동네에 5년을 살면서 무수한 주차싸움을 통해 갈고 닦은, 베테랑의 실력을 보여줘야 할 순간이다. 그간 나의 주차싸움 경험을 통해서라면, 이런 때일수록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초기 기선제압이라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목소리를 최대한 깔고, 다소 불량스럽기까지 한 목소리로 “그래서요?”라고 선제공격을 시도했다. 이쯤되면 상대방의 대답은 뻔하다. “여기 우리집 앞이니까, 차 빼세요 !”라는, 본격적으로 주차싸움의 시작을 알리는 상대의 반격이 날아올 것이 예상된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을 정면으로 깨는 상대방의 한 마디. “아저씨! 자동차에 라이트가 켜져 있어요”, "아? 아! 예! 예!”라며 말끝을 얼버무리는 필자의 목소리는, 사뭇 상대에게 카운터 펀치를 제대로 한방 맞고 쓰러져 가는 복서의 비명에 가까웠다.

이웃에 대한 배려와 정으로 주차다툼만은 해결하자

초저녁에 주차해 놓았던 골목으로 급히 나가보니 필자의 승용차는 미등이 켜진 채로 주차되어 있었다. 성격 급하고 꼼꼼하지 못한 성격 탓에 승용차의 미등을 미처 끄지 않은 채로 주차해 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지나가던 이웃주민이 이를 발견하여 승용차에 메모된 핸드폰 번호로 필자에게 전화를 해주었던 것이다.

자동차 라이트를 제대로 끄지 않고 주차했다가 다음날 출근시간에 밧데리 방전으로 자동차 시동이 걸리지 않는 황당함을 경험했던 사람이라면 이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라는 것쯤은 잘 알 것이다.

▲ 주차공간 공유를 위한 이웃의 배려
ⓒ 최관묵

▲ 주차공간 공유를 위한 이웃의 배려
ⓒ 최관묵
전화상으로 미처 고맙다는 인사조차 제대로 못했던 터라 뒤늦은 인사라도 건네려고 주변을 둘러봐도 그 고마운 이웃은 이미 가버리고 보이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조금 전 필자의 생각과 행동이 우습기도 하고 창피한 생각이 들어 뒷머리를 긁적거리고 말았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꼴'이라고나 할까 ?

이런 필자의 경험이 있은 후에도 우리 동네의 주차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계속되고 있는 주차싸움의 해결방법은 동네의 주차공간을 절대적으로 늘리는 길밖에는 없다. 관할구청과 시청에 주민들의 민원은 오랫동안 계속되어 오고 있지만 수년 동안 해결의 실마리는 못 찾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이에 대한 민원제기와 대책요구는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언제 해결될지 모르는 이 문제를 두고 언제까지 매일 저녁마다 이웃과 다투며 살 것인가 ?

이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내가 변해야 이웃도 변한다’라는 기본원칙을 지켜야한다고 생각한다. 즉, 지금까지 이웃간 묵시적으로 인정하고, 인정받아왔던 동네 골목의 특정 공간에 대한 특정인의 독점적 주차권리를 주민들 각자가 깨고 누구라도 상황에 따라 주차를 하고, 상황에 따라 양해를 해줌으로써 최소한 이웃간의 다툼은 피해야한다는 생각이다.

물론 이것은 우리 동네의 주차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아니다. 대신 매일 저녁 벌어지는 이웃간의 다툼은 피하면서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주민들이 힘을 모아 관계기관과 머리를 맞대자는 것이다.

자동차 라이트가 켜져 있는 사실을 전화로 알려줌으로써 이웃이 당할 어려움을 미리 막아주는, 이웃간의 배려와 정이 있는 우리 동네사람들이라면 이것은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해본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재소인들과 편지를 나누며 사랑과 희망을 전하는 봉사모임인 '편지쓰는 사람들'(www.letterpeoples.com)의 4월호 소식지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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