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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 전 지부장이 독립기념관 앞에서 세조각난 충의사 현판을 들고 있다.
ⓒ 이정희
▲ 독립기념관 앞에서 세 조각이 난 충의사 현판을 들고 있는 양 전 지부장(가운데)과 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부 관계자들.
ⓒ 이정희
[최종신 : 1일 밤 10시]

양수철씨, 경찰에 자진출두...'공용물 손상' 혐의로 불구속 입건


"친일청산이 안되고 국회에서의 과거사법 논의도 지지부진해 너무 답답했다. 정치권과 정부가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국민이라도 나서야 한다."

충남 예산군 충의사에 걸려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현판을 전격 철거해 친일작품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독립기념관의 겨레의 집 앞에 전시했던 양수철(전 민족문제연구소 충남 지부장)씨의 말이다.

그는 1일 밤 7시경 예산 경찰서에 자진 출두해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양씨를 상대로 현판 철거 사실 관계와 이유 등에 대해 조사했다. 경찰은 또 도끼로 부순 현판을 증거물로 압수하려고 했으나 양씨가 "분실했다"면서 현판의 위치를 밝히지 않아 증거물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경찰은 양씨를 공용물 손상과 건조물 침입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한 뒤 밤 9시경 귀가시켰다.

한편 양씨는 1일 밤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경찰도 내가 현판을 뗀 이유를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면서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를 모욕하는 다카키 마사오 현판을 떼기 위해 1년 전부터 준비했고, 예산군이 이 사실을 알고도 현판을 제거하지 않아 직접 뗐냐는 질문에 '예'라고 답변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내가 지은 죄가 없기 때문에 떳떳하기 조사를 받은 것"이라면서 "경찰은 현판을 내놓으라고 요구했지만, 나는 현판을 분실했다고 답변했다"고 말했다.


▲ 강제 철거된 윤봉길 의사 사당 현판(박정희 전 대통령 친필)이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 계단에 전시되자 관람객들이 구경하고 있다.
ⓒ 조호진

[3신 : 1일 오후 5시 40분]

양수철씨, 1일 저녁 경찰서 자진출두 예정


윤봉길 의사 사당 앞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현판을 떼어낸 양 전 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부장은 1일 저녁 예산경찰서에 자진출두할 예정이다.

양 전 지부장은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도주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만큼 관할 경찰서에 자진출두해 현판을 떼어낸 이유와 과정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예산경찰서는 양 전 지부장이 자진출두할 경우 조사 후 귀가조치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해 몇몇 회원들과 철거를 시도하다 관리사무소 측의 집단 저지로 불발에 그치자 자신의 차에 사다리와 도끼 등을 싣고 다니다가 3.1절을 택해 이날 아침 현판을 떼어냈다.

양 전 지부장 등 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부 회원들은 이날 낮 12시부터 오후 4시경까지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 앞에서 현판을 전시했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 관심을 나타냈다. 단체 회원들은 현판 아래에 '이 현판은 예산 윤봉길 의사 사당인 충의사에 걸려 있던 것으로 다카키 마사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창씨명)가 자신의 행적을 감추기 위해 쓴 글이다'라는 설명문을 붙여 놓았다.

이날 독립기념관 앞에서 현판 전시행사를 함께 한 이정학 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부장은 "관람객들이 뭔가하고 모여 들어 지켜보다가 박 전 대통령이 일본제국 헌병장교인 것을 알고는 놀라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 지부장은 또 "양 전 지부장의 앞선 노력이 전국으로 퍼져 나가 더 이상 친일 행위자들이 진짜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대접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양 전지부장은 부서진 현판을 자료로 보관하자는 단체 회원들의 의견에 따라 지인 중 한사람에게 이를 보관하게 했다.

한편 충의사 관리사무소와 예산군 공공시설관리사업소는 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부의 현판 자진철거 요청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의 업적과 과오 등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입장을 밝혀 왔다.


[2신 : 1일 오후 1시40분]

양수철씨, 철거한 충의사 현판 들고 독립기념관에서 기자회견


1일 오전 충의사 현판을 철거한 뒤 사라졌던 양 전 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부장이 낮 12시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양 전 지부장이 승합차에 싣고 온 충의사 현판은 도끼로 찍혀 있었고, 이미 3조각이 난 상태였다.

양 전 지부장은 이 자리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그동안 수차례 친일파 현판 철거 요청을 했으나 이를 거부한 예산군 측에 더 이상 기댈 것이 없었고, 국회의 과거사법은 논의조차 진전이 되지 않는 것에 참을 수 없어 직접 철거하게 되었다”고 밝힌 뒤 “(이로 인한) 어떠한 불이익도 감수하겠다“고 말했다.

양 전 지부장은 또 "윤봉길 의사는 우리가 가슴 속으로 존중하는 독립운동가"라면서 "더이상 과거사법을 방치한다면 앞으로 전국 방방곡곡에서 들고 일어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온 국민이 우리의 잘못된 과거를 짚고 넘어가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 전 지부장은 "우리 민족의 아픔을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다"면서 "오늘 하루 독립기념관에 전시한 후 친일 자료로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그는 "윤봉길 의사 사당에 박정희가 현판 쓴 것을 1년 전에 알았다"면서 "지난해 8.15 때 철거하려고 회원들에게 연락했는데 경찰이 배치돼 실패했다"고 말했다.

이날 3.1절을 맞아 독립기념관을 찾은 관람객들은 겨레의 집 앞 계단에 전시된 현판을 관심을 깊게 지켜 보았다. 독립기념관에선 친일작품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1신 : 1일 오전 10시 30분]

박정희 친필 '충의사' 현판 전격철거


▲ 양수철 전 지부장이 충의사 현판을 떼어내고 있다.
ⓒ 이정희
▲ 양 전 지부장이 충의사 현판을 철거한 뒤 액자를 떼어내고 있다.
ⓒ 이정희
▲ 2005. 3.1 아침 충의사 박정희 전대통령 친필 현판액자가 철거된 채 나뒹굴고 있다.
ⓒ 이정희

충의사와 박정희 친필 현판

충의사(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소재)는 지난 1967년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지어졌다. 충의사 본전에는 매헌 윤봉길 의사의 영정이 봉안됐다. 문제의 글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윤 의사의 의거일에 맞춰 1968년 4월 29일 이곳을 방문해 준공식 겸 의거 기념행사를 하면서 내걸었다.

가로 183cm에 세로 83cm의 검은색 바탕의 현판에는 흰색으로 '忠義司'라고 가로 쓰기 한 후 우측에는 세로글씨로 '1968년 무신년 4월 대통령 박정희'라고 적혀 있다.

충의사는 1968년 사당이 처음 창건되고 1972년에 사적 제 229호 및 보물 568호로 지정 받아 여러 차례 정화사업을 거쳐 현 사적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매년 7~8만명의 참배객들이 이곳 충의사를 찾고 있다. 주변에는 7만여평의 부지에 윤 의사의 탄생가와 망명길에 오르기 전까지 살던 저한당(成長家), 기념관 등이 자리잡고 있다. / 심규상 기자
충남 예산 충의사에 걸려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현판이 3.1절 오전 8시경 전격 철거되었다. 박 전 대통령의 친필 현판이 철거된 것은 탑골공원의 '삼일문'에 이어 두 번째다.

충의사는 매헌 윤봉길 의사의 영정이 모셔진 사당으로 이번 현판 철거는 양수철(46·전 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부장)씨가 감행했다.

양 전 지부장은 현판 철거와 관련,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윤봉길 의사의 사당에는 친일파 박정희의 현판이 어울리지 않는다”며 “국가가 나서서 철거해야 되는데 그런 의지가 보이지 않아 직접 나서게 되었다. 과거사법 처리가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더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미 2차례에 걸쳐 충의사 현판 철거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했으며, "국가가 현판을 철거하지 않으면 내 손으로 직접 떼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 이번에 철거된 박정희 전대통령 친필 현판
ⓒ 이정희
▲ 2005. 3. 1 아침 현판이 철거된 충남 예산 충의사(윤봉길 의사 사당) 왼쪽의 감시카메라와 현판이 있던 자리에는 무인 감시경비 시스템 경보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 이정희
철거 소식이 알려지자 충의사 관리사업소 직원들은 비상 출근한 상태다. 현판 철거와 관련하여 강성원 소장은 “이번 철거 행위는 명백한 불법행위이므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하고 “현재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라고 밝혔다.

현판이 철거된 후 한 때 충의사 본전의 출입문 폐쇄되기도 했으나 10시 현재 개방돼 일반 참배객들이 입장하고 있는 상태이다. 철거된 현판은 사라진 상태이며 현판의 잔해들이 본전 옆 잔디밭에 뒹굴고 있다. 양 대표는 그동안 예산군 측에 충의사 현판을 철거해 줄 것을 공개적으로 주장해 왔었다.

▲ 2004. 1. 17 박정희 현판 철거를 요구하며 성명서를 발표하던 양수철 전 지부장(오른쪽 네번째)
ⓒ 이정희
이번 충의사 현판 철거에 앞서 지난 2001년 11월 23일 곽태영 박정희기념관건립반대국민연대 상임공동대표 등 2명은 서울 종로 탑골공원 정문인 '삼일문'을 철거한 바 있다. 곽 대표는 "민족의 성지인 탑골공원에 일본군 장교를 지낸 박 전 대통령이 쓴 현판이 버젓이 내걸려 있는 것은 민족적 수치"라며 전격 철거했다.

이 일로 곽 대표 등은 공공기물 파손죄로 형사입건돼 재판에서 2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매헌 윤봉길 의사는 누구?

▲ 충의사 사당에 모셔진 윤봉길 의사의 영정
매헌 윤봉길 의사는 1908년 6월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태어났다. 12세 때 일제의 식민지교육을 받지 않겠다고 보통학교를 자퇴, 한학을 독학했다. 19세 때에 농촌부흥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일제의 탄압이 극심해져 1926년 중국으로 망명, 김구 선생이 이끄는 한인애국단에 가입했다.

윤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소위 일왕의 생일인 '천장절'에 상해사변 전승을 기념하는 홍커우공원 행사장에 폭탄을 던졌다. 이로 인해 행사장은 아수라장이 됐으며, 상해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따와 상해 파견군 사령관 시리까와 대장 등이 현장에서 즉사하고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제9사단장 에우다 주중공사 시게미쓰 등이 중상을 입었다.

거사 직후 현장에서 체포되어 오사카로 이송,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25세의 일기로 순국했다.

윤 의사의 유해는 해방후 김구 선생의 지시로 고국으로 봉환돼 왔다. 정부는 윤 의사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을 추서했다. / 심규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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