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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아동병원에 간호사로 근무하던 선배에게 들었던 이야기 한 토막.
"나는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이곳에 와서야 알았다. 머리가 상상도 못할 정도로 큰 아이가 있는가 하면, 팔 다리가 거의 없어서 굼벵이처럼 기어 다니는 아이가 있어. 그런데, 그런 아이들이 너무 많은 거야."

일반 및 장애아동 전문 치료병원이었는데, 특히 장애아동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심한 중중 장애아동들이 바깥 구경도 못한 채, 이런 병원으로 직행하기 때문에 아마 일반인들은 그런 아이들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으리라. 과거에 비해서 장애인이 눈에 띄지 않는 이유는 줄었기 때문이 아니라, 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새삼 가슴에 와 닿던 순간이었다.

한동안 그렇게 들었던 이야기를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다시 그때를 떠올리는 경험을 하게 됐다.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신관에서 열리는 있는 '2004 서울 세계보도사진전(9.9-21)'에서였다. 너무나 가난해서 피를 팔던 부모가 에이즈에 걸리자, 에이즈에 걸린 상태로 태어난 중국 아이들. 그러나 환자임에도 아이의 손은 노동으로 인해 노인의 손과 다를 바 없었다.

가족이 다 죽고 홀로 남은 상태에서 복수를 다짐하며 총을 손질하고 있는 체첸 여인. 소 몇 마리에 팔려 시집간 뒤, 남편의 학대가 두려워 분신자살을 기도한 아프가니스탄의 15세 소녀.

▲ 세계보도사진재단이 '올해의 대상(1st Prize People in the news Singles)'으로 뽑은 철조망에 갇힌 이라크 포로가 자신의 모습을 보고 경기를 일으킨 4살된 아들을 달래는 모습의 사진. 4월초 여러 일간지에 실렸다.
ⓒ 세계보도사진재단
'충격'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사진들이 입구에서부터 실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번 행사는 전 세계 사진기자들과 보도사진분야에서 가장 큰 축제 중 하나로 5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24개국 36개 도시에서 순회전시중인 '2004 세계보도사진전(월드프레스포토)'의 일환으로 서울전시회가 마련됐다.

해마다 수천 명의 사진기자들이 수만 장을 출품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번에는 124개국 4176명의 사진기자들이 지난해 촬영해 출품한 6만 3093개 사진 중에서 고른 192점의 사진이 전시중이다. '올해의 대상(1st Prize People in the news Singles)'에 뽑힌 철조망에 갇힌 이라크 포로가 자신의 모습을 보고 경기를 일으킨 4살 된 아들을 달래는 모습도 이곳에 전시되고 있다. 올해 4월 초 국내 대부분의 일간지에 실렸던 사진.

전시관 입구에서 스태프가 대기하면서 수시로 설명을 하기 때문에 아주 풍부하게 사진을 감상할 수 있었다. 스태프의 설명을 줄여서 전달한다.

선진국 애완견보다 못한 수많은 사람들

"여기 조나단이라는 아이가 14살입니다. 118kg입니다. 9살 동생은 98kg입니다. 지금 환자라서 호흡기를 끼고 자는 것이 아니라, 고도비만이기 때문에 자다가 살에 눌려서 호흡이 멈추는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호흡기를 끼고 잠을 자는 것이죠. 피를 팔아 생활을 연명하는 아버지 밑에서 손이 새까맣게 되도록 노동을 하고 있는 이 나이 또래의 중국 소녀와 비교를 해보시죠."

해설을 맡은 스태프는 뉴스·시사 부문에서 스포츠·인물 부문으로 옮겨오자, "정말 성이 난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뉴스·시사 부문이 대부분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어두운 부분들을 다룬 반면, 스포츠·인물 부문은 유럽이나 오세아니아, 북아메리카 등의 선진국을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 아프리카 내전에서 살해된 사람들
ⓒ 세계보도사진재단
뉴스·시사 부문에서는 아직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을 아이가 총을 들고 있는가 하면(르완다), 얼굴에 보자기를 뒤집어쓴 채 아이를 보듬고 있는 포로(이라크), 심하게 노동을 하다 병에 걸려 뼈만 앙상하게 남은 부인을 안은 남편(중국) 등 어두운 사진들이 대부분이다.

사진 옆에 붙어있는 설명도 충격적이다. '라이베리아 내전, 25만명 사망, 32만명 난민' '몽고의 가출소년, 울란바토르에 1천 명 이상의 가출 소년' 등.

이에 반해 스포츠·인물 부문은 이색적이면서 재미난 사진들이 많다. 물속에서 잡은 세계 최고 수준의 러시아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선수들. 수많은 사람들 밑에 깔린 럭비선수, 황토와 기름을 바르면서 몸싸움을 벌이는 쿠스티(인도 레슬링) 선수들. 바그다드 함락 전날 만난 부시와 블레어. 바바라 부시에게 식사를 조르는 전 대통령 부시.

이중 관객들이 가장 신기하게 쳐다봤던 사진이 온몸에 테이프를 바르거나, 가죽옷을 입고 있었던 사람들 모습이었다. 무슨 사진인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에게 스태프가 설명을 하고 나서야 사람들은 이해한다는 표정이었다.

▲ 스포츠 인물 부문에서는 재미난 사진들이 많다. 럭비도중 밑에 깔린 상대팀 주장.
ⓒ 세계보도사진재단
"지금 아이들 없죠.(웃음) 이 사람들은 모두 호주의 성도착증 사람들입니다. 일명 페티시즘이라고 하는데, 기저귀를 찬 이 사람은 자기 소변이 몸에 닿을 때만 성적 흥분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은 가죽옷을 입어야 흥분하는 사람입니다. 부부가 똑같이 가죽옷을 입고 있죠. 제가 생각하기에, 이 사진기자는 이 사람들을 폄하한다기보다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보도사진이 현재는 해결 못해도 미래는 바꿀 수 있다

"여기 수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의 앞에서 비는 것 보이시죠. 빌고 있는 대상이 라오스 정부군이 아니라, 필립이라는 사진기자입니다. 정부군이 어차피 살려주지 않을 것을 아니까, 사진기자에게 비는 것이죠. 저는 이 사진을 보면서, 이 생각을 합니다. 어차피, 이 사람들은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진기자의 이 사진 한 장으로, 다른 지역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었다고 말입니다."

▲ 사진기자 필립에게 목숨을 호소하고 있는 라오스 반군들.
ⓒ 세계보도사진재단
스태프의 설명에 의하면 라이베리아, 라오스 등 분쟁지역을 취재하는 기자들은 목숨을 내놓고 활동을 한다. 분쟁지역을 취재하려면 특별출입증이 필요한데, 관리들이 쉽게 내주지 않는단다. 1년 정도 이곳에 살면서, 뇌물도 주고, 환심도 사면, 어느 순간 '따라가자'고 하면서, 각서를 쓴다. 그런데, 이게 발각이 되면, 강제 추방되는데, 몇 몇 지역이나 아프리카에서는 거의 살해한다고 한다.

이스라엘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에게 총을 맞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찍은 사진도 그런 위험 가운데 찍혀졌다고. 총소리가 들리자, 본능적으로 사진기를 꺼낸 기자가 몸을 돌리자마자 파편이 튀어 다리 정맥이 끊어졌다. 넘어지는 순간 찍은 사진이 그 곳에 진열돼 있었다. 사진 각도가 기울어진 이유가 넘어지면서 찍었기 때문이라는 스태프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들이 이렇게 목숨까지 바꾸면서 사진을 찍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태프도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Lu Guang'에 대한 사진 설명에서 그에 대한 답이 어느 정도 나오고 있었다.

"1995년까지 중국정부는 에이즈를 부인했습니다. 자본주의의 찌꺼기가 들어올 리가 없다고 주장했던 거죠. 이 사진 보이시죠. 당시 중국농촌마을에서 심한 곳은 100명이 사는 마을에 40명이 에이즈에 걸린 적도 있습니다. 한 번 피를 팔면 50위안을 받는데, 그것으로 자식들 밥 먹이고 학교 보내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렇게 몇 번 하다가 덜컥 에이즈에 걸리는 것이죠. 줄곧 에이즈를 부인하던 중국정부가 이 사진이 알려진 뒤 에이즈를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진 속 주인공들은 모두 죽겠지만, 그 뒤부터는 훨씬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겠죠."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는 사진 한 장

보도사진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2002년 미순 효순이가 미군 장갑차에 치어 죽었을 때, 그 끔찍한 현장을 촬영한 사진은 분노를 촉발시키는 한 요인이 됐다. 이와 반대로, 91년 정원식 총리 계란 투척 사건을 담은 사진은 당시 왕성하게 전개되고 있던 학생운동을 일거에 잠재우는 위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계란과 밀가루가 범벅이 된 장면을 과연 어떠한 화려한 문체가 그 사진보다 더 잘 담아낼 수 있었을까.

보도사진은 여러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여러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과도하게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진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세상은 어둠과 빛으로 돼 있다

▲ 부시와 블레어. 바그다드가 함락되기 하루 전 회담 사진이다.
ⓒ 세계보도사진재단
우리나라에서도 가려진 부분들을 사진으로 전시하면 사람들이 놀랄 만한 장면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스태프는 터키가 유럽화돼 있지만, 나라의 절반과 나머지 절반은 극과 극이라고 이야기했다. 서구화된 지역의 경우 청바지 입고 코카콜라를 마시며 자유롭게 지내는데, 아나톨리아라고 불리는 이슬람지역에서는 아직까지 팔려간 신부들이 목매어 죽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의 모습은 과연 빛에 가까울까, 어둠에 가까울까. 지구를 반으로 나눠 본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어둠에 가까울까, 빛에 가까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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