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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섬뜩한 질문 하나. 당신은 당신의 사후 처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양지바른 곳에 묻어달라든지, 화장이라든지, 장기기증이라든지, 생을 마감한 당신의 육신을 처리할 방법과 당신의 죽음을 추모할 방법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 천장대가 위치한 산꼭대기. 수백 마리의 독수리가 서식하고 있다.
ⓒ 염미희

티벳인들의 일반적인 장례법 중 하나인 천장을 보고 왔다. 라싸 시내에서 북동쪽으로 2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드리쿵 사원으로 출발한 시간은 새벽 4시. 오전 8시에 시작하는 장례 시간에 대기 위해서이다.

사방은 어둠에 잠겨 있고 차는 끊임없이 덜컹거렸다.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의 죽음을 보러 가는 길, 더구나 한 번도 목격한 적 없는 낯선 의식에 참가하러 가는 길이었다. 긴장과 두려움을 애써 떨치며 창밖의 어둠을 응시했다.

천장(天葬, sky burial)은 죽은 사람의 시신을 새들의 먹이로 내주는 장례법이다. 우리가 흔히 조장(鳥葬)이라고 알고 있는 장례법은 시신을 높은 나무 위에 오랜 시간 방치해 새 또는 짐승들의 먹이가 되게 하는 방법으로, 사람이 직접 시신을 잘게 나누어 여러 마리의 새들이 짧은 시간에 먹도록 하는 천장과는 조금 다르다.

오전 7시가 조금 못 되어 드리쿵 사원에 도착했다. 아침 햇살이 밝아오자 산 위에 우뚝 서 있는 사원과 탈초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풍경이다. 8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드리쿵 사원은 문화혁명 시기에 피해를 적게 입은 사원 중 하나로, 본래 모습을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하고 있다. 해발 4800m 고지에 위치해 있으며, 수백 마리의 독수리가 서식하는 뒷산에 천장대를 갖추고 있다.

▲ 날개를 완전히 편 독수리의 몸집은 작은 소 한 마리와 크기가 맞먹는다.
ⓒ 염미희

▲ 드리쿵 사원 전경.
ⓒ 염미희

젊은 승려들이 바쁘게 오가며 아침 준비를 하고 있는 사원을 뒤로하고, 천장대를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사원을 빙 둘러 산꼭대기까지 이르는 '코라'를 따라 30분 정도 오르니 파란 하늘이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있다.

날개를 펴고 하늘을 가르는 독수리들이 한두 마리씩 보이는가 싶더니 산꼭대기에는 벌써 수많은 독수리들이 모여 앉아 있다. 독수리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천장대가 차려져 있다.

천장대를 둘러싼 철조망에는 영어와 중국어와 티벳어로 씌어진 "사진촬영 금지" 푯말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다. 바윗돌을 동그랗게 늘어놓은 중심 제단에는 나무 밑동을 깎아 만든 커다란 도마가 여러 개 눈에 띈다. 벌써부터 심장이 오그라든다.

▲ 천장대 한켠에 놓인 스투파. 천장사들은 스투파를 시계방향으로 빙빙 돌며 의식을 준비한다.
ⓒ 염미희

▲ 탈초를 곧쳐 세우는 노스님. 경전이 시작되면 승려들은 향을 피우고 경전을 외운다.
ⓒ 염미희

시간이 흐르자 천장을 행하는 천장사 두 명과 노스님 한 분, 그리고 젊은 승려 두 명이 나타나 분주히 의식을 준비한다. 천장사들은 먼저 스투파 주위를 시계방향으로 몇 바퀴 돌더니 긴 앞치마를 두르고 칼을 갈기 시작한다.

이윽고 자루에 든 운구를 들쳐멘 사람들이 나타나고, 독수리들이 한두 마리씩 천장대 안으로 모여든다. 철조망 바깥에서 보게 되리라는 예상을 깨고, 노스님의 손짓을 따라 우리는 중앙 제단 바로 앞에 모여 섰다. 이렇게 가까이서 볼 필요까진 없었는데. 또다시 두려움이 앞선다.

자루에서 꺼낸 시신 두 구는 천장사들에 의해 저미어지고 헤쳐진다.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시신을 알맞게 조각 내 펼쳐놓자, 수백 마리의 독수리들이 한꺼번에 몰려 덤벼들기 시작한다. 앙상한 해골만 남기고 시신 두 구가 완전히 사라지는데 걸린 시간은 한 시간이 채 안 되었다.

천장사들은 남은 근육과 살점을 독수리들이 완전히 먹도록 도운 다음, 해골을 잘게 부수어 밀보리 가루와 섞어 다시 던져 준다. 목숨을 다한 두 구의 시신은 남김없이, 완전하게 새들에게 먹이가 되는 셈이다.

천장을 보러 온 여행자들은 의식이 시작된 지 몇십 분만에 대부분 자리를 뜨고 없다. 의식이 진행될수록 처음 가졌던 두려움은 사라지고, 이 낯선 광경 앞에서 나는 저 익명의 망자들이 살았던 짧은 생을 상상한다.

척박한 땅에서 무거운 생의 짐을 지고 힘겹게 살았을 사람들. 무거운 육체로 한없이 낮은 곳으로 가라앉아야 했던 사람들. 생을 마친 이들이 깃털처럼 가볍고 자유로운 영혼을 얻기 위해 제 몸을 날것들에게 보시하고 있다. 새들에게 통째로 집어 먹히는 사람들. 쓸모 없어진 육신을 온전히 새들의 먹이로 내놓는 사람들.

티벳에서는 천장 외에도 매장이나 화장 등의 장례가 함께 행해진다. 그러나 한랭건조한 기후 때문에 땅 속에서 시신이 쉽게 썩지 않으며, 일부 지역을 제외한 티벳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목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 화장도 널리 행해지지 않는다. 이곳에서 천장은 가장 빠르고 깨끗하게 운구를 처리하는 방법.

자연 환경에 따라 발달한 장례법이지만, 천장은 티벳인들의 불교적 가치관과도 맞닿아 있다. 육신은 쓸데없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자기 몸을 살아 있는 짐승들의 먹이로 내주고 다음 생의 복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의식이 끝나갈 때쯤 천장대에 남은 여행자는 우리 둘 뿐. 철조망 바깥에서 일본인 한 명이 사진촬영을 시도하다가 저지를 받는다. 천장의 장면이 외부에 비추어진다면, 시퍼런 칼로 사람의 몸을 베고 있는 천장사의 모습이 달랑 사진 한 장으로 찍혀져 있다면, 아마도 엽기적인 화젯거리가 되어 사람들의 주목을 살 것이 분명하다. 자신들의 문화와 세계관에 대한 이해 없이 야만적인 장례 풍습으로 비쳐질 가능성을 두려워하고 있는 듯하다.

천장을 보고 온 날, 이상하게도 기력이 빠져 움직이기가 힘이 들었다. 숙소에서 꼼짝없이 앉아 쉬면서 삶과 죽음을 곰곰 생각하며 하루를 보냈다. 나는, 자유로운 영혼을 얻기 위해서 쓸모 없어진 육체를 온전히 보시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무엇이든 그것을 필요로 하는 생명에게.

▲ 하늘을 가르는 독수리의 모습.
ⓒ 염미희

여행정보

라싸 주위에서 천장을 행하는 사원은 대여섯 군데. 그중 드리쿵 사원은 공식적으로 여행자들의 관람을 허용하는 곳이다(입장료 25위안). 거의 매일 있지만 음력 날짜로 피하는 날이 있으므로 여행사 등에서 확인해야 한다.

오전 8시에 시작되는 천장을 보기 위해서는 전날 사원에 가서 하룻밤 묵거나, 라싸에서 새벽에 출발해야 한다. 몇몇 여행사에서 새벽 4시에 출발하는 차량과 기사를 800위안 정도에 알선해주고 있다(왕복, 5명 기준).
/ 염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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