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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최근 국가보안법 폐지논쟁과 관련, 국민 여러분의 판단을 돕고자 '국가보안법 보도비평'을 연재합니다. 연재는 5명의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국가보안법폐지 국민연대 언론대책팀' 소속 대책위원이 맡습니다. 스물다섯번째 비평은 김진(민변) 변호사가 작성했습니다.... 편집자 주


"오로지 폐지만이 당론"이던 한나라당이 국가보안법 내용에 관해 입을 열었다. '나라 지키기'로 법사위 회의장을 8일째 점령한 15일 하루 종일 의원 총회에서 '끝장 토론'(경향신문 4면)을 하더니, 박근혜 대표가 한밤중에 기자회견을 했다는 것이다.

그 주된 내용은 "4대 입법의 합의처리를 약속할 경우 임시국회에 응하겠다"는 제안이며, 특히 국가보안법 폐지안의 경우는 법사위 이외 별도 기구에서 논의해 합의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외부로 확정된 안을 발표한 것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보안법 개정에 당론을 모았다고 했다. 다만 법안의 명칭, 제2조의 '정부 참칭' 조항 손질 문제 등 일부 쟁점에 대해 의견이 엇갈려 표결 끝에 당론 결정을 지도부에 위임하였다고 했다.

국회 정상화의 공이 열린우리당에 넘어갔다?

16일 언론들은 이 소식을 주요하게 보도하면서 "이제 국회 정상화의 공이 열린우리당에 넘어갔다"고 보도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1면 머릿기사에서 「국보법→국가안전보장법」제목 아래 "한밤 의총서 개정안 사실상 확정"이라며 「불고지죄 조항 삭제, 반국가단체 수정, 찬양·고무 처벌 축소」 제목의 상자기사로 정리했다. 즉 "한나라당이 현행 국보법의 근간을 상당히 바꾸는 내용의 개정안을 마련함에 따라, 파행을 겪고 있는 임시 국회가 타결될 단초가 마련됐다"(A1)며, 이를 다시 "열린우리당을 향해 승부수를 던졌다,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상당히 전향적인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사실상 확정했다"고 보도했다(A3).

야당의 이러한 방향 선회는 "한나라당이 개정안을 만들지 않으면서 법사위 점거 농성을 장기화시키는 것보다는 국보법 개정 정국을 주도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전략적 판단 때문"이며 "이철우 의원 사건을 통해 국민들은 색깔논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해진 것"도 그 배경이라고 한다.

동아일보는 「야, 4대 법안 합의처리 약속 땐 등원」이라는 제목으로 박근혜 대표의 기자회견을 보도하고(A1), 한나라당이 사실상 확정했다는 개정안의 내용을 "한나라당의 국보법 개정안엔 불고지죄가 빠지게 되었다…목적이 분명히 드러나는 찬양 선전 활동만 처벌하도록 했다(A8)"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같은 한나라당의 태도 변화에도 "열린우리당은…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 국회 조기 정상화 전망이 불투명하다"며 은근히 열린우리당의 책임을 물었다(A8). 이와 함께 헌법포럼 세미나를 소개하는 지면에 이른바 뉴라이트를 표방한다는 '자유주의연대'의 국보법 관련 성명 내용을 상자기사로 처리(A4), 「국보법 전면폐지 반대…형법 흡수도 이치에 안 맞아」라는 제목으로 열린우리당 형법 보완안을 비판하는 내용을 옮기고 있다.

중앙일보 역시 「여, 4대 법안 합의처리 약속 땐, 박근혜 대표 등원하겠다」라는 제목으로 박근혜 대표가 "국가보안법 폐지안을 국회 법사위 이외의 별도 기구에서 논의해 합의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 것을 "국회를 정상화하기 위하여" 제안한 것으로 인용했다(4면).

국보법 '지연'하겠다는 속셈, 실제 개정 내용 없어

그러나 조·중·동의 이같은 보도에는 두 가지 큰 함정이 있다.

첫째, 박 대표의 제안들이 '별도 기구 논의'를 내세우고 있으나, 이는 사실상 연내 처리를 무산시키고 시간을 끌겠다는 것일 뿐이라는 점이다. 국회내 논의를 합법적으로 진행시키고 국회를 진정으로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별도 기구'가 아니라 해당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 안건으로 올려야 하고, 필요한 경우 법령이 정하는 공청회 등 절차를 거치면 된다.

이런 식으로 상임위원회가 아니라 별도 기구에 올려야 할 이유란, 결국 실질적 심리나 의결을 막겠다는 것인데(전여옥 대변인은 "별도 기구에서도 표결은 절대 안된다"고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결국 국보법 '처리'보다는 지연의사를 내비친 것이며, 이종걸 열린우리당 원내 수석부대표의 말처럼 "영영 하지 말자는 얘기나 다름없다"(경향신문 4면).

그럼에도 조·중·동은 한나라당의 의도를 애써 모른 척 하며, 박 대표의 기자회견을 마치 큰 전환이라도 되는 것처럼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속내를 보면 연내 처리를 막기 위한 '우회 전략'이자 '시간 벌기' 성격도 없지 않다"(경향신문 4면).

이렇게 시간을 벌기 위해 한나라당이 사용한 두번째 함정은, 실질적 내용이 없는 '개정안'을 내놓은 것이다. 조·중·동은 불고지죄를 삭제하고 찬양·고무의 처벌 대상을 크게 축소한 것처럼 한나라당 안을 소개하고 있으나, 실제로 국보법이 가지는 문제점을 없애고 폐지의 진정한 의미를 달성하기보다는 그야말로 시늉만 내거나 오히려 처벌 범위를 넓힐 가능성도 있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반국가단체 정의에서 "정부를 참칭"을 "정부를 표방하면서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이라고 하여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 요건을 추가함으로써 그 적용 범위를 좁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통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더욱 불명확하고 애매할 뿐 아니라, 헌법 영토 조항을 전제로 남한 정부가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임을 전제한 이 규정에 의할 때 북한은 와해되기 이전에는 반국가단체의 낙인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이 조항의 문제점을 제거한다는 것은 '개정'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고 반드시 폐지하는 것이어야 하며, 실제 내란 기타 질서 전복을 목적으로 한 단체에 대하여는 형법상 '내란목적 범죄단체' 문제로 해결할 수 있어 폐지해도 별 문제가 없다.

또한 '찬양·고무'에 관한 제7조 조항이 사상·양심의 자유 본질적인 내용 등 인권을 침해하고 정권안보를 위해 반대자들을 탄압하는데 남용됐다는 문제점을 개선하려면, 단순히 '찬양·고무'라는 문언을 없애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용어의 불명확성·애매함을 없애는 것과 동시에 사상·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인권을 침해하면서 '반대자에 대한 억압'으로 남용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방향이어야 한다.

여전히 '확정된 당론'을 내지 않는 한나라당

그런데 한나라당의 개정안에서는 그러한 방향조차 읽을 수가 없다. 오직 '공공연히 찬양한 것'만 처벌한다고 하는데, 이전에도 내밀하게 개인적으로 동조하는 행동을 처벌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공공연히' 행하는 것만 처벌할 수 있었기 때문에 '처벌 범위를 축소'하고 말 것도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나라당이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확정된 당론'을 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오직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여러 내용을 언론에 흘리고는 있으나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거나 그 논거를 제시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이것이 마치 진일보한 대안이거나 국회 정상화의 의지인 것처럼 소개하면서 국회 공전의 책임을 열린우리당에게 전가하는 내용으로 보도돼서는 안되며, 그 내용 없음을 지적하면서 "공식적인 회의 테이블로 나오고 의회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법안을 처리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맞다.

적어도 홍준표 의원이 지적한 바와 같이 "열린우리당이 폐지안과 형법보완안을 냈는데 그게 저들의 개정안이다, 이를 철회하라고 주장하면 안된다, 각자 안을 내놓고 국민을 상대로 설득하고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정말 국민이 폐지를 원하면 폐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당당하게 제대로 된 자기 안을 공식적인 논의의 장으로 내놓고 국민들을 설득(경향신문 31면 사설 「국보법안 마련이 그렇게도 어려운가」)하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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