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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들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안내자의 입에 주목하고 가리키는 손에 따라 시선을 한곳으로 모은다. 평소엔 늘 앞장서서 걷곤 했는데 한두 걸음 뒤에서 유심히 바라보고 서 있다.

▲ 낙안읍성을 찾은 궁궐길라잡이 회원들이 생생한 현장의 정보를 들어보기 위해 문화해설사의 말에 유심히 귀 기울이고 있다.
ⓒ 서정일
궁궐길라잡이(www.palaceguide.or.kr)은 내외국인에게 우리 궁궐의 역사와 가치를 설명하는 것은 물론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올바른 시각과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시민자원봉사자들로, 지난 5일 낙안읍성을 방문했다.

"방문 전에 미리 자료를 준비해서 공부를 합니다."

오정택 회장은 이번에도 여행 일정에 맞춰 학습서를 만들고 서로 질의응답까지 가졌다면서 10여 장이 넘는 자료를 내보인다. 얼마나 준비가 철저하면 처음 방문하는 회원들이 대부분인데도 도착하기 전에 이미 훤히 꿰차고 있다.

그런데 설명이 시작되는 매표소 앞에서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처럼 또다시 연신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대고 뭔가를 노트에 끄적이기 시작한다. 안내자의 입에서 나온 생생한 말을 주워 담고 안내자의 손이 가리키는 살아 있는 풍경을 훔쳐오고 있었던 것. 명실상부한 우리 문화 최고의 지킴이들답게 남다른 관람 태도가 인상적이다. 도대체 사소한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이런 야무지고 당찬 모습들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 궁궐 길라잡이 회원들은 어느곳을 방문하기 전에 안내서를 만들어 미리 공부를 하고 온다고 한다. 그들이 이번 답사여행을 위해 준비한 안내서에서 얼마나 꼼꼼히 준비했나를 엿 볼 수 있다.
ⓒ 서정일
황성미씨는 마음가짐에도 있지만 철저한 교육 탓인 것 같다고 말한다. 아는 바와 같이 궁궐길라잡이가 되기 위해서는 8개월간의 이론교육과 실습교육을 이수해야만 한다. 그만큼 까다롭기로 소문난 교육이기에 어찌 보면 몸에 밴 자연스런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들의 이런 관람태도는 보는 이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본받을 만한 관람태도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설명이 모두 끝난 동헌에서 일행은 다음 장소로 움직이고 있는데 남자회원 두 명은 웬일인지 조금 지체한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눈치다. 그러더니 몸이 불편한 분의 휠체어를 도와서 함께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봄날만큼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는 길라잡이 8기생인 서동철씨와 김종민씨. 바쁜 일정에 쫒기면서도 관람객을 먼저 생각하고 도와주는 것이 여간 미덥지가 않다.

뙤약볕 아래서 그렇게 1시간 가량을 세심하게 돌아봤다. 송광사와 선암사를 거쳐 온 길이었기에 피곤할 만도 하련만 전혀 내색을 하지 않는다. 다소 짧은 시간이었다고 이구동성 말하지만 볼 것은 다 보고 또 느낄 것은 다 느끼고 돌아선다.

▲ 그들은 생생한 현장의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노트와 카메라를 필수적으로 준비했다. 동헌 뒤 굴뚝의 모양새를 유심히 관찰하면서 카메라에 담고 있다.
ⓒ 서정일
"상업화가 되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군요."

성곽을 돌면서 회원 몇 분에게 아쉬운 점이 무엇인가를 물어보니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하지만 낙안읍성 만큼 정감이 가는 민속마을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말로 마무리 지으면서 성안에 사람들이 거주하는 만큼 서로 잘 협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더 중요할 것 같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런데 멀리서 이들의 방문을 지켜보고 있던 한 사람이 있었다. 읍성관리소의 송갑득 선생, 전통을 누구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한 사람으로 이들의 방문을 나 몰라라 하지 않는다. 한걸음에 달려가 낙안읍성에 관한 책자를 들고 나오더니 그들의 손에 건네주면서 소중한 자료로 활용해 달라는 부탁을 한다. 옛 것을 사랑하고 지키는 사람들만이 통하는 이심전심. 그리고 그들은 차에 오른다.

1시간은 너무 짧았다. 하지만 그들이 남겨놓은 것들은 너무도 많았다. 특히 관람문화만큼은 교본처럼 새겨놓았다. 미리 방문할 곳에 관해 자료를 수집하고 토론하고 출발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해설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사진을 찍고 메모를 하면서 또 다른 생생한 자료를 수집한다. 더구나 자신들도 관람객의 입장이면서도 다른 관람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점은 각별한 점이었다.

▲ 관람객의 입장이면서도 불편한 또 다른 관람객을 돌봐주기 위해 솔선수범하는 회원들의 모습은 봄바람과 같은 따뜻한 마음이었다.
ⓒ 서정일
궁궐길라잡이들의 이번 낙안읍성 방문은 의미가 있었다. 우리문화를 알리고 지키는 사람들이란 점에서 다른 관람객에 비해 조금은 특별한 시각으로 다가올 것이라 짐작되었다. 그 짐작은 빗나가지 않았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봄바람을 일으키고 갔다. 따스한 봄바람이었다.

덧붙이는 글 | 우리문화를 알리고 지키는 궁궐길라잡이의
낙안읍성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길 바란다.
http://www.naga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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