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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공군의 F-117 스텔스 전폭기. 이 전폭기는 적대국 군사 시설을 기습 폭격할 때 자주 이용된다.
ⓒ 자료출처: FAS
북핵 사태가 미국의 북한 영변 핵시설에 대한 폭격 시도로 한반도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던 지난 1994년과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다.

지난 94년 북핵 위기는 북한 영변의 5MW 원자로 가동 중단→북한의 핵 폐연료봉 인출과 재처리→미국의 대북 제재 시도 등의 수순을 밟았다. 문제는 94년 '1차 북핵위기'를 특징지었던 이런 사건들이 현재의 '2차 북핵위기' 때도 똑같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11년 전과 똑같이 현재 남북한 정권도 상대방에 대한 상당한 불신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지난해 7월 이후 남북 당국자간 대화가 10개월 째 완전 끊긴 상태다.

북한은 노무현 대통령의 이름까지 직접 거명하며 남한 정권을 자주 비판해왔으며 현 정부 인사들도 북한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정부의 공식적인 부인에도 불구하고 '6월 위기설'은 심화되고 있다.

94년 북핵위기는 연초부터 조금씩 절정으로 치달았다. 92년부터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북한 핵시설에 대한 사찰 문제를 놓고 북·미간에 지루한 협상이 진행됐으나 모두 실패한 상황이었다.

94년 5월 18일 북한은 영변에 있는 5MW 원자로의 가동을 중단하고 폐연료봉 인출을 시도했다. 폐연료봉을 재처리해 핵물질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IAEA는 6월6일 열린 이사회에서 대북 제재 결의안을 채택했다.

북한 "대북 제재는 선전포고로 간주"

북한은 6월13일 IAEA를 공식 탈퇴했고 "대북 경제 제재를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당시 빌 클린턴 미 행정부는 6월15일 대북제재 결의안 초안을 발표했다. 미국은 북한 핵시설을 폭격하기 위한 실질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남한에는 생필품 사재기 파동이 이는 등 사회가 큰 혼란에 빠졌다.

그러나 6월15~18일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극적인 타결을 이뤄 전쟁을 막았다. 그 해 10월 북·미는 제네바 합의를 체결했다. 북한은 핵 동결을 했고 미국은 대신 경수로 2기를 건설해주기로 했다.

현재의 2차 북핵 위기는 지난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미 특사가 방북하면서 시작됐다. 켈리는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제네바 합의에 의해 진행되던 북한에 대한 연간 50만t의 중유 공급을 끊었고 이어 경수로 공사도 중단시켰다.

제네바 합의는 완전 파기됐다. 6자 회담을 3번이나 열었으나 북·미 간의 첨예한 입장차이로 아무 진전이 없었다.

북한은 지난 2월10일 핵무기 보유를 공식 선언하고 6자 회담 무기한 불참을 선언했다. 북한은 최근 영변의 5MW 원자로의 가동을 중단했다. 한성렬 주 유엔 북한 차석대사는 18일 미 < USA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핵폭탄을 만들기위해 폐연료봉을 재처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스콧 매클렐런 미 백악관 대변인은 "북한이 끝내 6자 회담에 복귀하지 않을 경우 유엔 안보리에 회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은 유엔 안보리 회부 만으로자국에 대한 선전포고로 간주할 것이다.

▲ 북한 외무성이 핵무기 보유를 공식 선언해 관심을 끌고 있다. 사진은 2002년 8월 13일 촬영한 북한 영변 핵시설 위성사진.
ⓒ 연합뉴스
북한의 대남 라인이 누구인지도 몰라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20일 당정 협의회를 열고 북핵 문제의 안보리 회부 및 대북 경제 제재에 찬성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는 표피적인 제스처일 뿐이다. 현재 남한은 중국이 북한에 압력을 가해 6자 회담에 끌고나오기만을 기대하는 것 외에 쓸 수 있는 수단은 아무 것도 없다.

북핵 문제의 중재자 역할을 중국한테 맡긴데다가 남북한 당국자 대화 마저 완전 중단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현재 노 정부는 대북 '핫 라인'을 갖고있기는 커녕 북한의 대남 정책 라인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구조적으로 심도깊은 남북 당국자간 대화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동안 북측 대남 라인은 김용순 노동당 비서와 송호경 조선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2003년과 2004년에 각각 사망한 뒤 북한의 대남 라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94년 김영삼 정권은 "핵을 가진 북한과 협상할 수 없다"며 대화를 거부하는 등 냉탕과 온탕을 왔다갔다 했다. 북한도 미국과 직접 대화를 추구하면서 남한 배제전략을 사용했다. 이 때문에 남북한 채널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남한은 제네바 합의로 북한에 건설할 경수로 2기의 총 공사비 46억달러 가운데 70%인 32억달러를 부담하면서도 아무 발언권도 확보하지 못하는 덤터기를 썼다.

현재 남북 당국자 대화 단절은 지난해 7월 시작됐다. 당시 북한은 김일성 주석 사망 10주기를 맞아 민간 조문단의 방북을 남한 정부가 불허하고, 동남아 제3국에 있던 탈북자 460여명을 한국으로 데려온 것을 '대북 적대시 정책'이라고 비판하고 대화의 문을 닫았다.

▲ 지난 2003년 8월 주한 미군이 경기도 포천군 미 8군 종합사격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남한 "할 만큼 했다... 북한은 민족 공조 말할 자격없다"

현재 남북 정권의 상대방에 대한 불신감이 극에 달한 이유에 대해 양쪽의 진단은 다르다

남한 정부 쪽은 "우리는 북한에 대해 최소한 지난 10개월 간 할 만큼 했다"며 "그러나 북한의 막무가내식 태도는 이해할 수 없다. 파국의 책임은 김정일한테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2월 정동영 통일부 장관 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조문 무산 및 탈북자 한국행에 대해 사과했다. 지난해 11월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미국의 강경책에 제동을 걸었다.

올 1월 베를린을 방문한 정동영 장관은 "북한이 핵포기에 들어가는 순간 대규모 지원을 하겠다"고 말했다. 북한이 요구한 비료 50만t도 공식적인 당국자 회담에 나오기만 하면 준다고 말했다.

현 정부는 이 정도 노력했는데도 북한이 여전히 남북한 당국자 회담을 거부하고 미국과의 직접 대화에 매달리는 것에 극도의 배신감을 토로하고 있다. 이런 북한이 '민족 공조'를 주장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1월과 2월초 북한의 6자 회담 참가를 낙관하던 남한 정부는 북한의 느닷없는 2월10일 핵무기 보유 선언에 '뒤통수를 세게 맞았다'는 생각을 갖고있다.

그러나 이런 현 정부의 생각에 반론도 상당하다. 노 정권이 김대중 정권 때 어렵게 쌓아놓았던 남북한 신뢰 관계를 파괴했던 행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자기 주장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노 정권은 출범하자마자 북핵 문제 해결 전에 대규모 남북 경협은 없다'는 '선 북핵 해결론'을 내걸었다. 이는 정치와 경제를 분리했던 햇볕정책과는 분명히 달랐다. 따라서 원래 2003년 말에 가동을 시작해야할 개성공단을 1년간이나 방치했다. 기껏해야 김대중 정권 때 이미 합의했던 사항을 이행하는 정도였지 더 이상의 남북 경협의 진전은 의도적으로 회피했다.

노 정권은 대북 송금 특검 수용으로 남북한 협상 라인을 모두 파괴했고 결국 정몽헌 회장이 자살했다. 이라크 파병으로 미국의 침략 전쟁에 동조했다. 6자 회담에서 이른바 한·미·일 공조를 강조하면서 북핵 문제의 중재자 역할은 중국한테 넘겨버렸다.

자신들에 대한 선제공격 시도라고 북한이 반발했던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했다. 주한 미군 기지를 오산·평택으로 이전하는 것은 바로 이곳이 전략적 유연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 이전비용 전액을 부담하기로 약속한 상태다.

▲ 지난 2004년 2월 2차 6자회담을 위해 모인 각국 수석대표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중국 역할론이 유일한 해결책

피해 의식과 의심이 많은 북한 정권은 현 정부의 이런 행태를 살펴보고 남한 정권에 대한 신뢰를 거둔 지 오래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난해 7월 발생한 조문단 사건이나 탈북자의 한국 행으로 대화의 문을 닫은 것은 표면적인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현 정부가 올해 1월과 2월 북한의 6자 회담 참가를 낙관하면서 남북 관계에 획기적 진전이 있을 것처럼 말했던 것은 결국 그 정도로 김정일 정권의 상황과 입장에 무지했기 때문이라는 비판도 있다.

한 북한 문제 전문가는 "노 정권은 항상 한·미 정상간의 신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며 "그런데 정작 남북간의 신뢰 구축에는 신경을 쓴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런 상황인데 이제와서 거지한테 적선하듯이 비료 몇 포대 제공하고, 북핵 포기의 첫 단계로 들어가면 대규모 경제지원을 하겠다는 말 한마디로 북한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고 지적했다.

아무튼 최근 '동북아 균형자'론 내세우며 중·일간의 패권 싸움을 말리겠다고 큰소리 쳤던 노 정권이 정작 민족의 터전인 한반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지금 팔짱만 끼고 있는 상황이다. 흡사 북핵 문제에 관한한 자포자기 상태인 것처럼 보인다.

남한이 기대하는 것은 오직 중국의 역할이다.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할 경우 일본과 대만의 핵 무장을 막을 수 없다는 의미에서도 중국이 더 이상 참고 있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런 생각은 '대화는 하되 협상은 하지 않는다'는 자세로 북한이 '사고를 칠 때'까지 기다리면서, '중국 역할론'을 강조했던 조지 부시 정권의 생각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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