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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8월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 (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해 5월, 나는 당시 서울시청 앞에 있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한 구석에서 '6월 난장'이라는 축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곳의 2층은 교육관이었는데 이런저런 사회 단체의 심포지엄 공간으로 자주 쓰이고 있었다.

그날도 여러 매체에서 본 전문가들이 모여서(내 기억이 맞다면) 남북관계와 국가보안법에 관한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때마침 나는 화장실을 가려다가 뒷문 틈으로 잠깐 들여다보았는데, 정형근 의원이 있었다.

아, 저 사람이구나.

이상한 기분이었다. 심포지엄 주최측에서 잠깐 대여한 공간이지만 어쨌거나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사업회였고 그 속에서 정형근 의원은 자신과는 전혀 상반된 이념을 지닌, 조금 현실적으로 말한다면 자신이 추적하고 심문하던 측의 사람들과 토론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5월 봄볕의 나른한 오후였으므로 그는 남들이 발표할 때 잠깐씩 졸았고 그가 발언할 때는 다른 사람들도 조금씩 하품을 했다.

구경꾼의 입장에서는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다소 지루한 토론회였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그마저도 이상했다. 약간의 생각의 차이를 지닌 사람들이 아니라, 붙잡아 심문하고 피하여 도망치던 사람들이 민주화를 기념하는 사무실에서 나란히 앉아 토론하는 것은 그 자체로 '민주화'를 입증하는 것일지 몰라도, 마음 한 구석이 무겁게 내려앉는 기이한 광경이었다. 나는 서둘러 화장실로 갔다.

'정형근'이라는 추상적 존재를 피와 살이 있는 실존으로 바라보았던 순간은 매우 짧았으나 그 인상은 지금도 깊이 남아 있다. 나는 '다행히' 그가 국회의원을 하기 이전의 직장으로 불려갈 일은 없었으나 수많은 증언과 기록을 통하여 형성된 그의 인상은 서슬 퍼렇고 날카로운 것이었다. 그런데 그날 심포지엄에서 정형근 의원은 그저 봄볕을 이기지 못하고 잠깐씩 졸음에 빠져들던 참가자일 뿐이었다.

나는 지금 이런 따위의 과도한 감정 낭비를 스스로 막기 위해 이 칼럼을 쓰는 중이다. 도대체 이따위 몰역사적인 감상이 무엇이란 말인가.

더불어 몇가지 가슴아픈 기록들이 생각난다. 김근태의 <남영동>, 임철우의 <붉은 방> 그리고 이창동의 <박하사탕>. 이 셋은 그 장르의 특성 및 각 기록의 핵심 인물이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공통적인 장면이 있다. 그것은 때려잡고 윽박지르고 고문하는 사람들도 겪고보니 하나의 사람, 그것도 자신의 직업에 매우 철저하며 동시에 박봉 타령에 자식 걱정을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김근태의 경우, 자신을 고문하는 자들이 잠깐 쉬면서 여느 직장인과 다를 바 없는 푸념이나 늘어놓는 것을 듣고는 절망하고 만다. 임철우의 경우, 소설 속에서 고문 당하는 자는 자신을 고문하는 자의 자조적인 피로를 보고 연민을 느낀다. 이창동의 경우, 영화 속의 형사들은 붙잡아온 학생을 흠씬 두들겨 패고는 농담이나 주고 받는다.

이 세 기록에서 고문하는 자들은 각목으로 후려칠지 물고문을 할 지를 마치 점심 메뉴로 해장국이나 순대국을 저울질 하는 정도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듯 보인다. 그야말로 일상적인, 그저 수많은 직업의 하나에 충실한 듯하다.

박제화된 추상의 영역에서는 자기 직업에 '충실'했던 그들 역시 가해자이자 피해자였을지도 모른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사람을 짐승 다루듯이 패놓고는 두다리 쭉 뻗고 잘 사람이 누가 있으랴. 괴로웠을 것이다. 자책의 심정으로 몰래 울거나 피묻은 손을 몇시간씩 씻고 또 씻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마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신념과 소신'이 짐승같은 시간을 위로해 주는 것이다. 가족을 위하여 불가피했으며 국가를 위하여 충성했다고 자위하는 것이다. 전자에 대해서는 가슴아픈 이해가 있을 수 있지만 후자는 명백히 반성과 자책의 대목이다.

역사적인, 그리고 정치적이며 법률적인 차원에서 그들은 가해자이다. 그러나 어떤 점에서는 그들 역시 피해자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인생을 두 번 세 번 살 수 있다면 다음 인생에서는 변명과 자책 없는 소시민의 평안을 누리면 그만이겠으나 그들에게 주어진 삶 역시 일회적인 숙명일 뿐! 린치와 구타, 물고문과 조작으로 청춘을 떠나보낸 삶.

사람을 때리면서 흘려보낸 청춘, 그 잃어버린 시절에 대해 과도하게 부여한 '신념'이란 이름의 '정서적 보험'으로 살아가는 그들은 다름 아닌 자기 삶의 재판정에서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사람은 두 번 살지 못하는 것이다.

정형근 의원이라면 어떨까.

그는 가족을 위하여 상부의 부당한 명령을 이행할 수밖에 없었던 <붉은 방>이나 <박하사탕>의 '하급 기술자'가 아니다. 그는 '상부' 그 자체다. 그는 수많은 공안 사건의 책임자였고 정권 수호의 그랜드 디자이너였다.

평소 그가 밝혀온 소신으로 보건대 그는 자신의 영육에 걸쳐 뚜렷한 신념과 소신으로 일관한 듯하다. 실무적 처리에 있어 다소간의 아쉬움은 있을지 몰라도 공직생활 전체에 대한 총괄 평가에 있어 그는 긍지와 신념의 당당한 걸음을 걸어온 듯 보인다. 나로선 이해하거나 지지할 구석은 조금도 없는 신념과 그 실천이지만, 그는 어쨌거나 그 나름의 신념대로 살아온 듯 보인다.

그리고 이번 총선에서 당선하였다. 당선 이후 그는 다시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몇몇 토론회에서, 특히 민주노동당 노회찬 당선자와의 대담에서 밝힌 '뜻밖의' 생각들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변화된 정치 지형과 그 시민적 감수성에 대한 그의 발언은 나름의 독특한 정세 판단과 노련한 정치 전술이 결합된 측면도 있지만, 특히 과거 자신과 악연을 맺었던 세력에 대한 발언에 있어서는 섬뜩할 정도의 단단한 신념을 느끼게 한다.

그가 정말 민주노동당의 약진으로 요약되는 지금의 정치 지형을 역사적 차원에서 인정하고 있다면, 그러니까 무슨 포퓰리즘이나 이미지 정치 따위로 빚어진 해프닝이 아니라 장차 집권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정도로 민주노동당의 등장이 역사적으로 중차대한 현실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라면, 그는 틀림없이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도 바윗장같은 신념으로 긍정하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것이 아니라면, 지금의 정치 지형에 대하여 전술적인 립서비스를 한 것에 불과하다면, 그의 과거는 독재 정권의 악역을 자청하여 권력적 출세에 청춘을 불사른 인간으로 멈출 따름이다.

과연 그는 어떤 사람일까. 그는 정말 자신의 혈액형과 조금도 닮은 데가 없는 민주노동당이 집권할 시대가 올 것임을 의연히 긍정하는 현실적인 정치인인가? 아니면 쏟아지는 비판의 폭우를 당장 피하기 위해 '건전 보수'라는 비좁은 우산 속에 억지로 어깨를 들이민 재빠른 정치꾼인가?

나는 깊은 의문이 들어 그의 홈페이지를 가보았다. 그의 홈페이지는 여느 정치인과 다를 바 없이 자화자판의 당의정들로 가득차 있었다. 나는 '팩트'를 보고 싶었다. '프로필'과 '라이프 스토리'라는 항목이 내 눈에는 유일한 팩트였다.

그런데 클릭을 하면서 나의 의문은 더욱 깊어지기만 했다.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라는 제목으로 그의 '프로필'과 '라이프 스토리'는 구성되어 있는데 그 어느 곳에서도 정작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없었다.

그는 자신의 과거에서 가장 중요한, 개인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가장 중요한 행적에 대해서는 요약하고 생략해버렸다. 무려 26줄에 이르는 '프로필'에서 그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이력은 다만 '안기부 대공수사국장', '안기부 제1차장'이라는 단 두 줄로 그치고 있다. A4 용지 1장에 이르는 그의 '라이프 스토리'에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그의 '인생 이야기'는 단 한 줄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당선을 위한 연성화 전술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스스로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안기부' 경력에 대해 단 한 음절도 적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암약세력'이니 '일망타진'이니 하는 활약상은 어디에 있는가?

이 심층심리의 밑바닥에 침전된 물질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가 확신에 찬 정치인이라면 왜 자신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대목을 생략한 것인가. 단순히 선거 전략상의 연성화 전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비겁한 체위 아닌가? 만일 그가 기민한 전술가라면 민주노동당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무엇이란 말인가? 전술적 립서비스일 뿐이란 말인가.

자기 인생의 활약상을 홈페이지에 전혀 기록하지 않는 이 기이한 정치인에 대하여 어떤 판별식을 적용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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