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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2일 금요일,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발의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193표 찬성에 반대 2표의 압도적인 표로 가결되었다. 탄핵안 본회의 상정을 저지하기 위해 밤새 본회의장을 지켰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박관용 의장의 질서유지권 발동으로 회의장 밖으로 쫓겨나가게 되었고, 그 자리를 차지한 거대 야당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신속히 탄핵안을 가결시킨 것이다.

현행 헌법상 국회는 대통령에 대해 탄핵안을 가결시켜 현직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킬 수 있는 헌법적 권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대통령의 자의적인 권력행사로 인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헌정질서를 유지하며, 3권 분립이라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보장하기 위해 국회에 주어진 권한이다. 따라서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이번 탄핵안 가결은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의 이번 탄핵안 가결은 1987년 이후 진행되어온 한국의 민주주의의 뿌리내림을 저지하는 반민주적 폭거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16대 국회의 탄핵안 가결은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했음과 아울러 탄핵의 이유로 내세운 명분도 약했을 뿐더러, 탄핵안 가결의 주체들이 그러한 자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YS, DJ 정권 당시, 현직 대통령이 당 총재로 있으면서 자기 당의 선거대책위원장을 청와대로 불러 보고를 받았고, 자신이 공천한 국회의원 후보들을 청와대로 불러 식사를 같이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 어느 누구도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사실을 주장하지도 않았고, 탄핵을 입에 담지도 않았다.

이런 점에서 지금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어 더 민주화된 것이 아니냐 하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그렇다. 분명 전보다 나아졌다. 그러나 이번 탄핵안은 민주화가 더 되었기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니라, 덜 민주화되었기 때문에 나왔다는 역설적인 측면이 강하다.

대통령은 국민의 직접 선거에 뽑힌 국민의 대표이자 국가의 대표이다. 그에게는 국민의 정치적 의사가 위임된 정치적 대표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대통령은 의원내각제의 총리와는 달리 오로지 국민에 대해서만 책임을 진다.

이런 측면은 국민들에 의한 선거에서 뽑힌 국회의원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모두 정치적 대표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정치적 대표성의 이원성(二元性)이 우리와 같은 대통령제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번 탄핵안의 근본적인 구조적 뿌리는 바로 이 이원성에서 기인한다.

해방 이후, 한국(남한)에서 친일파가 청산되지 못했다. 반민특위가 이승만 정권과 기득권에 속한 친일파에 의해 해체되면서 중대한 역사적 작업이 중지되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1987년 민주화 이후, 군부세력의 청산이 선행되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현재 우리 사회의 요직을 점해 왔고, 그들과 정치적 이익을 함께 한 이들 중 상당수는 전·현직 의원으로 정치권에 남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최병렬 대표나 정형근 의원 같은 사람이 대표적인 사람일 것이다. 이들은 지금도 강인한 생명력을 발휘하며 이 나라 정치를 주도해 하고 있다.

DJ의 당선 이후 강고했던 한국 내 엘리트 구조에 변화가 일어났다. 이른바 민주화 세력이라고 불리던 이들이 사회의 주요 위치를 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5.16 쿠데타 세력인 JP와의 연대를 통해 이룩한 불안한 동거정권이 임동원 국정원장 해임건의안을 계기로 깨졌듯이, DJ를 비롯한 민주화 세력은 기존 보수기득권의 엘리트 구조를 깨지 못하고 소수세력으로 남았으며, DJP연대 붕괴 이후, DJ 정권은 퇴임까지 내내 소수정권으로서의 비애를 절감해야만 했다. 한나라당이라는 거대 보수정당이 국회를 좌우하는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제한적이었다.

민주화 세력이 중심이 된 민주당에서 노무현 후보가 16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민주화 세력이라 할 수 있는 정치세력에서 연속으로 대통령이 당선된 것이다. 젊은 대통령, 젊은이들의 정치적 참여의식 고양, 지역주의 약화 등 한국 정치발전에 우호적인 조건이 마련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조건에도 불구하고 강고한 보수기득권의 구조는 끄덕 없었다. 대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재검표를 시도했는가 하면, 당 대표가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발언을 했을 만큼, 보수기득세력은 끊임없이 민주화 세력을 흔들었다. 이유는 크게 볼 때 하나다. 정권재창출(그네들의 말로 정권탈환)이 그것이다.

그래서 보수기득의 힘을 안토니오 그람시가 정의한 헤게모니라는 용어로 정의하고 싶다. 그가 말하는 헤게모니는 한 계급이 단지 힘의 위력으로써만이 아니라 제도, 사회관계, 관념의 조직망 속에 동의를 이끌어냄으로써 자신의 지배를 유지하는 수단이다.

다시 말하면 성공적인 헤게모니는 지배계급의 이해(利害)를 표현할 뿐만 아니라 종속집단인 피지배계급으로 하여금 이것을 자연스러운 것, 또는 상식적이며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더 나아가 헤게모니의 기초는 단지 경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의 문화생활 속에 존재하는 통합적 관계망이라고 생각하였다.

이 점에서 볼 때, 친일부역자들의 미청산, 군부독재세력의 미청산이라는 구조적 문제 속에서 성장한 기득권층이 주조해 놓은 헤게모니는 때로는 민족주의 때로는 반공주의 때로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옷을 바꿔 입으며, 끊임없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해 왔다. DJ 정권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리고 그 결정판이 3월 12일 국회에서의 탄핵안 가결이다.

비록 이것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빚어낸 산물이지만, 구조적으로는 이러한 보수기득 헤게모니가 그 막강한 위력을 발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보수기득권에게는 노무현이라는 인물은 그들의 이익구조를 해체 또는 약화시킬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든지 약화시키거나 제거해야만 하는 인물인 것이다.

젊은 층의 지지와 상대적으로 젊은 정치인으로서의 추진력과 그의 경력은 자신의 이익을 침해할 그 어떤 변화를 거부하는 보수기득권을 위협하기에 충분했다. 따라서 필자는 DJ와 노무현 정부를 '보수기득 헤게모니에 포획된 정권'이라고 평가하고자 한다. 헤게모니에 포획되었기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 등 야당은 대통령제에서의 이원적인 정치적 대표성이 제공하는 국회의 권능을 남용하여,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탄핵받아야 할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시켰다. 국민적 지지도 받지 못했다. 받을 생각조차 별로 없었다. 일단 노무현이 쓰러지고 조금 욕먹고 나면 그 다음은 자신을 위협할 중심축이 사라지면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것이고, 다수를 점하게 되면 개헌을 통해 그들에게 유리한 헌정구조, 국가구조를 만들면 되는 것이다.

선거를 30여 일 앞두고 선거법을 통과시킨 것이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특별법'을 누더기로 만들어 겨우 통과시킨 것에서 보듯, 그들에게 국민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에게 두려운 것은 그들이 가진 기득 이익이 침해받는 질서가 형성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기존 질서에 변화를 가져올 어떠한 움직임에도 극단적으로 반응할 뿐이다.

결국 공은 헌법재판소와 국민에게 넘어왔다. 법적인 결정은 헌법재판소가 하지만, 탄핵반대에 대한 국민의 여론은 지금의 '국회 쿠데타'를 실패시킬 수 있다. 예전 검찰은 전두환, 노태우 등의 쿠데타에 대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하였다. 하지만 국민적 여론은 검찰의 그런 기회주의적, 반역사적 결정을 그냥 두지 않았다. 그리고 쿠데타의 수괴와 그 하수인들은 법원의 판결을 받고 형을 받았으며, 추징금을 납부하였다. 국민의 힘이 이만큼 큰 것이다.

이번에도 우리 국민들이 우리의 힘을 정치권에 보여줄 때가 왔다고 본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탄핵안 발의에 반대해 왔고, 탄핵에 반대해 분신을 택한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그 분신은 과거 군부 권위주의에 대항해 한 것이 아니라, 의회 독재에 반대하여 온 몸으로 항거하고 있다.

지금은 우리가 더 이상 국민을 볼모로 국익을 내세워 자신의 기득이익을 고수하려고 하는 정치권에 분명한 반대의 의사를 내 보여야 할 시점이다. 그리고 4.15 총선에서 지금의 정치권을 분명히 심판해야 한다. 정치권이 국민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 중 큰 것은 바로 아무리 그래도 자기들이 뽑힐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그들을 용서해 줄 수 없다. 그들은 넘지 말아야 할 다리를 건넜기 때문이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자신이 책임지고 해결한다는 의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당하게 국민들의 선택에 의해 선출되었다. 따라서 근본적으로는 국민의 책임이며, 국민이 해임하는 것이다.

현 상황에서 국민 여론이 국회가 가결한 탄핵안에 찬성한다면 국회는 그 정당성을 의심받지 아니할 것이다. 그것은 국회가 국민들의 뜻을 대변하여 이를 탄핵안이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표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의 70% 정도는 분명 이번 탄핵에 반대하고 있다. 따라서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의 탄핵안 가결은 그들을 선출해 준 국민들의 뜻에 반하는 반(反)국민적인 행위이며, 국민의 뜻에 반했으므로 반(反)민주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국민들을 위해, 국익을 위해 탄핵했다는 말이 거짓임을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알 수 있다. 국민의 뜻이 없는 국회는 국회가 아닌 것이다.

16대 국회는 노무현 대통령을 버렸지만, 국민들은 아직 노무현 대통령을 버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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