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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권우성



"자랑스런 대한민국 군인인 너 떠나가네 저 먼 낯선 곳으로/(중략)조국을 위한단 거짓말 넌 그저 총알받이일 뿐야 우리 아버지처럼/(중략)힘도 없고 빽도 없는 대한민국 군인인 넌 그저 미군의 총알받이/자랑스런 대한민국 군인인 넌 군인인 난 그저 미군의 총알받이" (안치환 8집· '총알받이' 중)

한달 전쯤 '효순·미선 2주기 추모 촛불집회'에 안치환(38)씨가 오랜만에 무대에 올랐다. 무대차량 밑에서 안씨의 매니저와 우연히 대화를 나누게 됐다.

"이번에 8집에 나오는데 아마 방송심의 통과할 수 있는 곡이 드물 것 같아요. 한번 들어보세요."

얼마 뒤, 안씨의 음반을 구했다. 음반 제목은 '외침!!'. 누군가를 째려보는 듯한 안씨의 사진이 음반 앞면의 2/3를 채웠다. 재킷 뒷면을 보니 매니저의 말대로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개새끼들', '피 묻은 운동화', '총알받이', 'STOP THE WAR', '꼭두각시'…. 소위 메이저 음반에서는 보기 드문 제목들이다.

민중가요에 뿌리를 둔 가수로서 그는 '소금인형', '내가 만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등 히트 곡들을 내면서 대중들과 밀착해왔지만, 한편에서는 '변절'이라는 소리도 들어야 했다. "반미, 독재타도를 외쳤던 민중가수가 웬 사랑타령이냐!", "돈 좀 벌더니 돈만 밝힌다." 그를 향한 공격은 노동, 진보진영에서 더 거셌다.

그랬거나 말거나. 그는 꾸준히 이 사회의 부조리와 왜곡, 통일과 평화 등을 노래했다. 97년 민중가요를 모은 포크음반 <노스텔지어>와 광주민중항쟁 20주년인 2000년에는 김남주 시인을 위한 헌정음반 <리멤버>를 내놓았다. 바로 이전 7집의 '매향리의 봄', '철조망 앞에서' 등 노래 역시 같은 선상의 곡들이다.

하지만 이번 음반처럼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언어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내일모레면 불혹을 바라보는 그에게 어떤 변화라도 있던 건 아닐까. 더구나 음반 후기에 '이제 타협의 시대는 끝났습니다'라고 적은 그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2일 촉촉한 장맛비가 내리는 날 '10년 고생 끝'에 올 초 마련했다는 그의 연희동 녹음실 겸 작업실(참꽃 스튜디오)을 찾았다.

"더 이상 미군의 총알받이는 안된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수많은 소재 중 최근 몇년간 가장 큰 주제와 화두는 '미국'이었다. 미국에 대해 제대로 봐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미국 얘기만은 어떤 읊조림도 어떤 표현으로도 안됐다. 직접적이고 직설적 표현만이 가능했다. 미국의 본질을 생각하면 욕이 나온다."

이번 음반을 통해 안씨는 '왜곡되고 비뚤어진 미국'에 대해 똑바로 봐야 한다고 외친다. 인트로를 포함, 15곡의 수록곡 중 5곡이 미국에 대한 내용이다.

"떠나라 이 땅에서(미친 탱크여 떠나라)/ 피를 부르는 오만한 양키들아"라며 효순·미선이를 죽게 만든 미국을 비판하는 추모의 노래 '피 묻은 운동화'를 지나면 안치환이 생각하는 미국의 본질을 노래하는 'America'를 들을 수 있다.

"악의 제국 아메리카여! 평화의 가면을 쓰고 미소 짓지 마라/ 그 가면 속엔 더러운 전쟁의 굶주린 잔인한 피가 넘쳐흐른다/ 만만한 놈 핵자만 내밀어도 평화 위협 개소리들 지껄여 질 때/ FXXking America, Dirty America여!" ('America' 중)

안씨는 "전세계 5% 정도의 인구를 차지하는 미국이 40%의 자원을 사용한다는데, 그러기 위해 남의 것을 빼앗지 않으면 안되겠지만 마치 아름다운 것처럼 치장한 것을 다 까발려버리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이어 "세계 거의 모든 전쟁과 내전에 관여된" 미국에게 '제발 전쟁을 그만 하라'고 부르짖는 'STOP THE WAR'를 통해 거칠고 강하게 미국을 비판한다.

그는 언제나 미대사관 앞에서 우리 국민을 줄 세우는 미국이 싫다는 '오늘도 미국 대사관 앞엔'이란 곡에선 조용히 "과연 우리에게 자주적인 주권국가로서 자존심이 있는가"라고 자문한다. '총알받이'에선 "미국의 자원 수탈을 위한 전쟁에 왜 총알받이로 가야 한단 말인가"라며 "더 이상 이라크 파병은 안 된다"고 한탄한다. 이라크 전에 반대한다는 그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파병반대, 광화문 10만 이상 모여야"

안치환과 자유, 7월 22일 대학로 공연

안씨는 지난 1997년부터 그의 백밴드인 '자유'와 함께 활동하고 있다. 구성원들이 파트별로 한번씩 바뀌어 '자유 2기'에 들어섰다. 안씨는 "더이상의 맴버 교체는 없을 것"이라고 못박는다.

안씨는 1년이면 약 150여회 이상 무대에 선다고 한다. 안씨는 "지난 80년대의 관중들은 모두 (운동과) 관련된 사람들이었기에 진지하게 노래부르고 손뼉 쳤지만 지금은 더 열광한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팬들은 나이가 많아 처음에는 조용히 앉아 있다가 나중에 일어나 환호하곤 합니다"라고 팬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안치환과 자유'가 8집 음반 발매 기념으로 오는 10일 평택 청소년문화센터에서 콘서트를 갖는다. 또 오는 22일에는 서울 대학로 동덕여대 예술센터에서 역시 공연을 가질 예정이다.(공연문의 : 050-2040-1000)
- 파병찬성론자들은 '국익'을 주장한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정치·경제·사회·문화 어느 것 하나 미국과 연관되지 않은 게 없다. 남북 관계 역시 미국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만약 파병을 하지 않는다면 미국놈들이 경제 제재를 하고 불이익을 줄 수도 있다. 그러면 국내 수구보수들은 파병 안해서 그렇다고 정부를 비판하고 여론을 호도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파병은 안된다. 오히려 이럴 때 자주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걸 보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국민의 의사가 표출돼야 한다. 광화문에 10만 명씩 모여 우리의 의사를 보여줘야 한다. 외신 보니까 파병반대를 위해 수만 명이 광장에 나온 걸 보고 놀랐다. 그 나라 국민의 성숙도와 의식수준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안씨는 인터뷰 내내 '미국놈'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미국에 대한 그의 생각을 대변해주는 표현인 듯했다. 그는 이라크에서 목숨을 잃은 고 김선일씨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김선일씨의 죽음은 전쟁을 일으킨 미국 때문에 벌어졌다. 이라크 사람들 입장에서 봐라. 갑자기 미국놈들이 쳐들어와 수탈하고 수천 명의 사람들을 죽였는데 한 명의 외국인 목숨은 어찌 보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성전'을 벌인다는 그들이다. 우리의 입장 아닌 이라크인들의 입장에서 생각했으면 한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반미주의자'로 보지 않았으면 한다고 부탁한다. '친미와 반미' 이분법식으로 나누기 보다 '미국의 본질을 제대로 봐야 한다는 것'.

"미국을 환상을 가진 채 색안경을 끼고 보지 말고 추악한 패권주의 미국을 제대로 된 눈으로 보자. 미국의 영향을 받는 한반도에 사는 우리들이 정확한 인식을 갖길 바란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대중성 때문에 곡 끼워 넣기는 이제 안한다"

벌써 한 시간이 지났다. 잠시 담배를 피우며 숨을 가다듬는다. 이제 그에게는 아플지도 모르는 부분을 질문해야 할 차례다.

- 안치환씨는 사랑 받는 만큼 안티세력도 많다. 언제가 시작인지 궁금하다.
"80년대를 거쳐 소련이 붕괴된 뒤 노래운동을 하는 나는 가치를 상실했다. 민주화와 독재타도는 더이상 대중의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노래운동은 키 잃은 배처럼 떠돌았다. 그 때 사회적인 메시지보다 개인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 3집 때까지는 비판의 소리가 없었다. 하지만 4집(1995년)에 '내가 만일'이 들어가면서 비난을 들었다. 원래 수록곡에 없었는데 방송에서 틀 노래가 없다고 우연히 넣은 곡이다. 하지만 그 음반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그렇게 욕하진 않을 것이다."

- 사실 이후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음반이 만들어졌다. 팬들이 안타까워하는 것은 '통일성', 특히 사회 비판적인 목소리에서 벗어남에 대한 것이 아닐까.
"사실 4집 이후 한두 곡씩 끼어 넣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 대중성을 고려한 것이 비겁하게 보이는 것을 인정한다. 당시 상황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7집부터는 그렇지 않았고 앞으로도 않을 것이다."

- 후기에 적은 '타협의 시대는 끝났다'는 표현과 연결될 것 같은데.
"'내가 만일'은 정말 좋은 곡이다. 난 그런 아름다운 연가로 대중에게 따스한 마음을 전할 수 있다면 욕먹을 각오할 수 있다. 내가 운동권 가수출신으로 대중적 명성을 얻으면서 실망감을 줬다면 그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호락호락 무너지지 않는다. 나 스스로 부끄럽지 않다."

그러고 보니 이번 음반에도 '물속 밧딧불이 정원' 등 사랑을 비유적으로 노래한 곡이 들어 있다. 그러나 이 곡은 대중성을 위한 '방송용 노래'로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 '개새끼들'이란 곡에서 그 스스로가 외쳤던 '밥그릇' 앞에 타협하지 않겠다는 그의 다짐이다.

하지만 매니저가 처음 말했던 대로 최근 CBS 방송국에서 이번 음반 중 7곡이나 금지곡이 됐다고 한다. 특히 '특정 국가'를 비하하는 내용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도대체 시사와 다큐멘터리를 중심으로 다룬다는 방송국에서조차 현실문제의 고민을 담은 노래들에 대해 통과시키지 않는다면 어쩌란 말인가. 그 기준이 무엇인가."

막상 심의에 통과하지 못한 것이 속상한 모양이다. 그렇지만 개의치 않겠다는 분위기다. 음반 자체에 만족하기 때문이란다.

2시간 동안의 인터뷰에서 안치환씨는 때론 소년처럼 자신의 음반에 대해 자랑하듯 이야길 늘어놨고 때론 심각하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한 개인이 살아가면서 인식한 세상과 미국에 대한 인식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을 뿐이다. 예술가는 나이를 먹으면서 자신의 세계를 더 확고히 가지면서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지금 시대는 내가 느끼기에 이 정도로 강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급박하다."

"드디어 곡의 반 이상이 욕으로 채워졌구나"
미국 비판 이외에도 사회비판 등 메시지 담아

ⓒ오마이뉴스 권우성
사실 이번 안치환씨의 8집은 '미국에 대한 비판' 말고도 우리 사회에 대해 통렬히 비판을 가한다. '개새끼들', '부메랑', '내버려둬' 등이 그것. 반면 '산맥과 파도', '물 속 반딧불이 정원' 등 노래에서는 각박한 세상에서 상처받은 개인에 대한 사랑과 치유의 메시지를 아름다운 멜로디의 안치환식 포크록음악에 담고있다.

"절대 선은 없어 절대 악도 없어 니 밥그릇 앞에 내 밥그릇 앞에/ 영원한 적은 없어 영원한 친구도 없어 니 밥그릇 앞에 내 밥그릇 앞에/ 넌 개새끼야 난 개새끼야."('개새끼야' 중)

안씨는 가사를 적다 보니 나오는 가장 정확한 말이 욕밖에 없었다고 고백한다. 곡을 만든 뒤 그는 "드디어 곡의 반 이상이 욕으로 채워지는 노래를 만들었구나"며 "스스로 감격스러웠다"고 농담반 진담반 말했다.

'부메랑'에 대해 안씨는 "정통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조선일보를 비롯한 동아·중앙일보를 비판하는 노래를 만들고 싶었다"며 "그러다 보니 수구언론에 빌붙어 폼잡으면서 글을 쓰는 지식인과 글쟁이까지도 함께 포함시켰다"고 설명했다.

도종환 시인의 시를 노래로 만든 '산맥과 파도'는 안씨가 슬럼프를 겪고 있을 때 힘이 됐다는 곡이다. 안씨는 "힘든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개인의 삶에 힘이 될 수 있는 노래이길 바란다"고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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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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