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국인 보호소에 있는 한 미국인이 <오마이뉴스 인터내셔널>에 보내온 편지.
ⓒ 오마이뉴스 안홍기

"우리가 저지른 범죄라는 게 무엇인가. 먹고살기 위해 일한 게 죄인가. 여기서 우리는 한국 정부 비용으로, 한국 국민들이 낸 혈세로 매일매일 조금씩 말라 죽어가고 있다."

한 외국인 보호시설에 수감되어 있는 흑인남성(34·미국인)이 <오마이뉴스 인터내셔널>에 우편으로 보내온 편지의 일부분이다.

관련
기사
<반론문> ' 외국인 보호시설 수감자의 편지 ' 기사에 대한 법무부 입장


그는 취업비자 없이 부산의 한 어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다가 지난 3월 24일 경찰에 연행된 뒤 여수출입국관리소 외국인 보호시설에 수감돼 있다.

지난 5월 2일자로 쓰여진 자필 영문편지는 무려 18쪽에 달한다. 그는 깨알같은 글씨로 쓴 편지에서 민간인들의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는 외국인 보호시설의 열악한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그는 특히 이 편지에서 불법 체류자로 체포되는 과정, 변호사 없는 경찰 심문과 외국인 보호소에서 벌어지는 '인권 유린'에 대해 강력히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또 여수출입국관리소 외국인 보호시설에서 발생한 외국인들의 자살 기도와 화재 사건 등 각종 사건에 대해서도 생생하게 편지에 써내려갔다.

우선 그는 편지에서 "교회 갈 때도 쇠고랑을 찬다"며 불법체류 외국인들이 강제 추방 과정에서 겪는 인권침해를 고발했다. 또한 외국인 강제 추방방식이 "외국인 노동자들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도록 개선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미국인이란 사실 알고 태도 180도 바뀌어"

그는 국적에 따라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실태를 다음과 같이 고발하기도 했다.

"부산 출입국 관리소에 처음 끌려갔을 때 여권 제시를 거부했더니 최소 7명의 출입국관리소 직원과 경찰들이 나를 억지로 누르고 여권을 뺏어갔다. 미국인이란 사실을 알고 나서는 그들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그는 "경찰과 출입국관리소에서 구류 당하는 내내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며 "진술서를 작성하는 경찰관은 체포과정에서 공무원들에게 말과 신체적으로 협박받았다는 내 말을 은근슬쩍 넘겨버렸다"고 주장했다.

그는 함께 수감돼 있는 동료 외국인 환자를 예로 들며 외국인 보호소에서는 종기조차 치료할 수 없는 현실을 폭로하면서 "출입국 관리소가 우리의 자유를 뺏을 권리가 있다면 우리의 건강도 책임져야 하는 일이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외국인 보호소에 있는) 우리는 전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하루 세 끼 밥만 먹고 있다"고 보호소의 일상을 소개했다. 그는 "최소한 희망을 갖고, 그것도 아니면 인간적 존엄만이라도 지킬 수 있도록 뭔가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국민이 낸 혈세로 조금씩 말라죽어"

그는 보호 시설의 안전 관리의 허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지난 4월 11일에 여성 한 명이 목을 매 자살을 시도했고, 4월 22일에는 화재가 일어났다. 철창 안에 갇힌 누구도 안전한 곳으로 대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이어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다, 왜 우리를 창살과 자물쇠가 달린 이곳에 가두고 있는가, 교회 가는 길인데도 어째서 쇠고랑을 채우는가"라며 외국인 보호시설의 처우 개선을 촉구했다.

그는 "사람들이 여기에 너무 오래 갇혀 있다. 비행기 값을 지불하고 집으로 보내는 게 나은가, 아니면 무한정 오랫동안 가둬두며 그 비용을 다 감수하는 편이 나은가"라며 "내 생각에 이는 경제적으로 어리석은 짓이고 도덕적으로도 잘못된 일이다"고 지적했다.

또한 "우리가 법을 어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처벌을 위한 형사기관 대신에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대안적 정책이 필요하다"며 "강제추방을 위해 노동자들을 체포, 구금하는 방식은 미봉책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편 이 미국인은 "왜 임금을 체불하는 공장 주인들에게 책임을 묻고 재산을 압류하지 않는 거냐"며 "노동자들이 돈을 찾고 제 각기 살아갈 길을 가게하지 않고 여러 달을 억류한다. 감호소 안 노동자들의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절규했다.

정부 "우리도 맞는다, 인권 침해는 없다"

하지만 이 편지와 관련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의 한 관계자는 "외국인 불법체류자에 따라 여권 구비 기간이 달라 외국인 보호소에 머무는 시간이 제각각"이라며 "그곳에 머무는 동안 인권침해는 없으며, 변호사 접촉도 법률구조공단의 도움을 받아 문제없이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불법 체류자 체포 과정에서 벌어지는 가혹행위와 관련해 "단속 공무원들도 불법체류 노동자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런 경우는 단 한번도 언론에 거론되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활동하는 이혜경씨는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범죄자 취급받으며 좁은 시설에 여러 명 수용되는 보호소 생활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며 "정부 당국은 불법 체류자들에게도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외국인 강제추방도 인종차별?

지난 2월 <경향신문>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2004년 출입국관리법 위반자 국적별 처리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보면 '인종차별'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정부 당국에 적발된 외국인 불법체류자 중 중국 동포와 구소련 지역의 고려인 동포 및 아시아와 아프리카 출신의 강제추방 비율이 30%가 넘는다. 반면 미국, 일본 등 선진국 출신의 강제추방 비율은 1~2%에 불과하다.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출신 불법체류자는 전체 5만7000여명 가운데 30.3%인 1만7000여 명이 적발돼 강제 추방됐다. 반면 북미와 일본, 유럽 출신이 강제추방된 경우는 각각 1.7%(3482명 중 58명)와 2.2%(501명 중 11명), 13.3%(652명 중 87명)다.

이에 반해 강제추방보다 수위가 훨씬 낮은 '출국권고'는 일본과 북미, 유럽이 각각 24.6%와 22.9%, 14.1%로 고려인(6.0%)이나 중국동포(1.0%), 아시아(1.6%), 아프리카(1.3%) 등에 비해 월등히 높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