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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오후 4시 광화문에서 열린 '무적의 투표부대' 캠페인. 참가자들이 직접 핸드프린팅한 '투표참여' 플래카드를 들고 '투표부대가'를 부르고 있다.
ⓒ 권박효원
▲ 10일 오후 광화문을 지나는 지나는 어린이들은 '투표부대' 캠페인 중 특히 '폐인햏자' 캐릭터를 보고 재미있어 했다. '우리는 무적의 two표부대'라는 피켓에서 'two'는 1인2표제를 의미한다.
ⓒ 권박효원
"투표하는 날 놀러가면 대략 좋지 않다!"
"투표 안하고 놀러가면 방법('응징'이라는 뜻의 인터넷 유행어)감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햏자'들이 광장으로 나왔다. 10일 오후 4시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네티즌들이 주도한 투표참여 캠페인을 벌인 것이다. 그동안 촛불행사에는 몇번 나왔지만, 단체가 아닌 네티즌들이 집회신고를 내고 주도적으로 집회를 연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들은 '무적의 투표부대'를 자칭하는 '디시인사이드(www.dcinside.com)' 회원 30여명. 회원들의 깃발과 모자의 '개죽이'라는 강아지 사진이 붙어있다. '개죽이'는 '디시인사이드'를 나타내는 마스코트 중 하나다. 한 회원이 입은 인형옷은 '폐인햏자'의 캐릭터다. '투표부대'라는 컨셉에 맞춰 군복을 입고 나오거나 국방색 코트를 걸친 회원들도 눈에 띈다.

이들은 2시간 가까이 투표에 참여하자는 구호를 외치고 "4월 15일 꼭 투표해서 정치개혁의 꽃씨를 싹 틔워달라"며 시민들에게 꽃씨를 나눠주었다.

초록색 물감을 묻힌 손으로 플래카드 위에 '투표참여'라는 글씨를 만들자 한 참가자가 "휴지로 닦으세요. (손닦을) '물은 셀프'입니다"라고 말해 좌중을 웃기기도.

대부분 회원들은 이런 집회가 익숙하지 않다. 이날 캠페인을 주도한 '통키'라는 별칭의 네티즌은 "원래 '디시인사이드'는 정치적인 사이트가 아니었는데, 탄핵안 가결 이후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골방 PC 앞에 앉아만 있어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급한 마음이 들었다"고 전했다.

@ADTOP@
탄핵안 가결 이후 결집된 네티즌, 투표참여 운동으로

카페, 블로그, 게시판, 메신저까지...
인터넷은 지금 4.15 투표운동 중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는 '총선전국대학생연대' '우리가 바꾼다' '빈머리, 무색무취도 투표는 한다' '투표참여' '투표참여운동' 등의 다양한 투표참여 카페가 마련되어있다. '네이버' 사이트에도 '타락천사' '곤만의 세상 뿌시기' '[투표참여]그래, 한번 미쳐보자' 등 투표참여를 주제로 한 블로그들이 눈에 띈다.

'디시인사이드'에서는 "지난 대선에서의 20대 투표 참여율 30%에 경악했다"는 한 벤처기업 사장이 독자적으로 '20대 투표참여 독려를 위한 패러디 콘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개인이 후원하는 콘테스트지만 상금은 최우수상 50만원, 우수상 30만원, 장려상 10만원 등으로 푸짐하다. 이 후원자는 가작 30명에게도 PC 캠을 시상하는 열성을 보이고 있다.

메신저에서도 'OO당을 찍자' '투표 안 하면 너랑 안 놀아' 등 호소형부터 협박형까지 다양한 대화명이 눈에 띈다. 핸드폰 메시지로 '투표한 당신 떠나라' '투표하러 간다. 같이 가여' 등의 내용으로 이모티콘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 권박효원 기자
실제로 탄핵안 가결 이후 정치사회에 대한 네티즌들의 관심은 부쩍 뜨거워졌다. 탄핵안 가결 찬반을 주제로 한 카페는 물론, 애니메이션 동호회, 명품 정보교류모임 등 정치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카페에도 탄핵안 찬반 토론방이 마련된 사례가 많다. "사이트 취지와 다르게 요즘 게시물은 다 정치 일색"이라는 불평이 게시판에 올라올 정도다.

최근 네티즌들은 탄핵안 가결을 계기로 모아진 열기를 투표참여 운동으로 이어가고 있다. 근조리본(▶◀)에서 투표를 나타내는'㉦'표시를 메신저 말머리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부재자투표 요령이나 1인 2표제 등 투표참여 방법을 소개하는 글도 널리 퍼지고 있다.

네티즌들은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동시에 정치 관련 보도사진과 토론회 장면을 이용해 발빠르게 패러디만평이나 플래쉬를 만든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선대본부장을 스타로 만든 것도 네티즌의 '어록 퍼나르기' 활동이다. '하얀쪽배' 아이디의 네티즌은 정치풍자 만평을 그리다가 선거법 위반혐의를 받기도 했다.

'투표부대'라는 표현도 '디시인사이드'를 중심으로 인터넷을 떠돈 합성포스터에서 비롯됐다.

네티즌들은 지난해 2차대전 당시 전시 포스터를 패러디해 '솔로부대' 포스터를 만들었는데, 이번 총선에는 같은 포스터에 "폭설이 내려도 투표는 하라" "총선날 꾀병은 방법"등의 메시지를 담았다. 민중가요 작곡가 윤민석씨는 이들 구호를 가사로 활용해 '투표부대가'도 만들었는데, 캠페인에 나선 네티즌들은 여러 차례 이 노래를 불렀다.

"재미있게 운동한다" "신선하고 흥미롭다"

▲ 인터넷에 퍼져있는 '투표부대' 포스터 중 일부. 2차대전 당시 전시 포스터를 패러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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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들은 사회단체나 국가기관과 달리 당위보다는 재미를 원동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자발적인 참여가 두드러진다. 일을 주도하는 '지도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몇몇이 행사 기획을 도맡지는 않는다.

'폐인햏자' 인형옷을 입고 '무적의 투표부대' 캠페인에 나선 '안덕삼선생'이라는 닉네임의 네티즌은 이날 행사를 "기존 집회보다 재미있고 흥미로운 형식"이라고 평가하며 "젊은층이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다른 재미있는 것들이 정치보다 많은 것"이라고 전했다. 캠페인에 나선 네티즌들은 정치가 재미있어서 나왔다는 분석이다.

네티즌들은 전화가 아닌 인터넷 게시판 리플이나 메신저를 통해 대화를 주고받고 행사를 기획하는데 이 게시판만 봐도, 네티즌들의 자발성과 흥미를 느낄 수 있다.

'무적의 투표부대' 제안글에는 "(행사에서) 지나친 햏언(인터넷 유형어)은 괴리감을 줄 것 같다" "보편적인 햏언은 좀 섞어도 무방할 듯 하다" 등 다양한 리플이 300개 넘게 이어진다. "꽃씨보다는 먹을 게 좋다" "(선거법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데 사탕은 향응 제공이 되지 않겠냐" 등 배포물에 대한 고민도 흥미롭다.

일단 재미와 자발성을 모토로 한 이들의 활동은 일반 시민들에게서도 좋은 점수를 얻고 있다. 10일 광화문을 지나는 시민들은 캠페인을 보고 투표를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웠고, 어린이들은 캐릭터 인형에 흥미를 느끼며 악수를 청하기도 했다.

김다혜(22, 학생), 정수정(22, 학생)씨는 "단체가 아닌 네티즌들이 이런 일을 한다니 더 순수하고 대단하다. 피켓이나 캐릭터가 낯설지 않아서 좋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유학하다 잠시 한국에 왔다는 김은하(32), 김동준(32)씨 역시 "젊은 사람들이 먼저 나서는 게 신선하다. 앞으로 많이 변할 것 같아서 기대가 크다"며 "이번 투표율은 75% 정도 나오지 않겠냐"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미 온라인은 17대 총선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투표참여운동으로 모아지는 네티즌들의 사회참여 열기가 투표율을 얼마나 올릴 수 있을지 아직은 미지수지만, 20대 네티즌의 투표참여는 이번 17대 총선을 재미있게 지켜볼 수 있는 또하나의 관전 포인트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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