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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철씨, 박종근씨 부부가 결혼식을 마치며 키스를 나누고 있다.
ⓒ 권박효원
"이상철님은 박종근님을 평생의 동반자로 맞아 어떠한 경우라도 항시 사랑하고 존중하며 어른을 공경하고 진실한 동반자로서의 도리를 다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룰 것을 맹세합니까?"

"네!"

"박종근님은 이상철님을 평생의 동반자로 맞아 어떠한 경우라도 항시 사랑하고 존중하며 어른을 공경하고 진실한 동반자로서의 도리를 다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룰 것을 맹세합니까?"

"네!"

"이제 양 배우자 이상철님과 박종근님은 많은 하객들을 모신 자리에서 부부가 되기를 굳게 맹세하였습니다. 이에 주례는 이 혼인이 원만하게 이루어진 것을 엄숙하게 선언합니다."


7일 낮 12시 30분께, 서울 종로구의 모 주점에서는 보기 드문 결혼식이 열렸다. 각자의 부모와 형제, 친척들이 참석하지 않아 하객이 많지 않았고, 교회나 결혼식장에서 올리는 성대한 예식도 아니었지만 주례자 앞에 선 두 사람은 그저 들뜨고 행복에 겨운 표정이었다. 이들 신혼부부가 여느 커플과 다른 점이 있다면, 두 사람이 모두 남성이라는 점 뿐이었다.

대부분의 신혼부부가 그렇겠지만 이상철씨, 박종근씨 역시 어지간한 '닭살 커플'이다. 각각 하얀색, 회색 조끼에 검은 양복으로 예복을 갖춰입은 두 사람은 손을 꼭 붙잡고 동시 입장했다. 이들은 식이 진행되는 내내 가끔씩 귓속말을 주고받거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다정함을 과시해 하객들의 부러움을 샀다.

"서로의 어디가 그렇게 좋았냐"는 질문을 던지자 이상철씨는 "상대방의 마음씨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나는 살면서 이 친구보다 착하고 예쁜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새 물건이 생기면 나 쓰라고 줘요"라며 동반자 칭찬에 여념이 없다.

박씨는 "원래 헌 게 더 좋아요"라고 잠시 쑥스러워 하더니 이내 "(이씨의) 얼굴이 잘생겼고 마음도 예뻐요"라며 자랑을 했다. 이씨와 박씨는 서로를 각자 "애기" "자기"라고 부른다고 한다.

"공개결혼, 동성애 인권운동의 연장선"

"두 사람은 2002년 가을 극장에서 만났다. 박종근씨가 너무 착해 보였다는 이씨가 먼저 "커피 한잔 마시자"며 '작업'을 걸었고, 박씨도 이를 거부하지 않았다. 이상철씨의 목소리가 무척 근사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1달 뒤 동거에 들어갔다. 그리고 최근 'EBS'와 동성애에 대한 기획 프로그램을 고민하다가 공개 결혼식을 생각하게 됐다.

한국 최초 공개결혼식에 모인 취재진은 약 20여명. 하객이 10여명이니 2배 정도 된다. 처음 결혼식을 준비할 때는 EBS에서만 촬영한다고 생각했지만 일이 커진 것이다. 이상철씨는 어수선하고 부담스러운 이 결혼식에 대해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인권운동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주례를 맡은 박철민 '딴생각'(동성애자들이 만든 주식회사, www.happyeban.com) 대표 역시 "오늘의 결혼의식이 단순히 형식과 보여주기의 통과의례가 아니라, 앞으로 한국사회에서 떳떳한 동성애자로서 살아갈 것을 굳게 다짐하며, 아직까지 방황하고 고민하는 동료 동성애자들에게 징표가 되는 의미 있는 의식"이라고 강조했다.

인권운동으로서의 결혼식을 강행한 이상철씨는 이미 구청에서 혼인신고서를 받아두었다. 롯데월드와 청평댐으로 1박2일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월요일인 8일 오전에 혼인신고를 시도해볼 생각. 신고가 안 되면 혼인에 대한 변호사의 공증을 받은 뒤 한국 남성동성애자인권단체인 '친구사이' 등과 함께 법적인 대응방법을 검토할 계획이다.

이씨와 박씨는 "가능하면 법적으로 부부임을 인정받고 아이도 입양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이성애자 부부들이 받고 있는 세제혜택이나 건강보험혜택 등 사회보장을 동등하게 누리겠다는 뜻이다.

"동성애자나 이성애자나 사랑은 똑같다."

이 신혼부부가 넘어야 할 고비는 혼인신고서 접수만이 아니다. 동성애자들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왜곡된 시선도 만만치 않은 벽이다.

두 사람은 모두 사회적 편견 때문에 몇 차례 자살시도를 했다. 박씨는 아직 다리에 칼자국이 남아있었다. 이상철씨는 지난 95년 게이업소에 드나드는 것을 본 직장 동료에 의해 강제 커밍아웃 당했지만, 박종근씨는 아직 커밍아웃도 하지 않았다.

이상철씨는 "사실 커밍아웃하지 않은 분들은 결혼하지 않기를 권한다. 일반 직장에서 커밍아웃은 보통 힘든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딴생각 여행사업부에서 일하지만, 예전 직장에서는 동료들이 술마실 때마다 안주삼아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이제 당당하게 공개결혼식을 감행하는 두 사람이지만, 가족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두 사람은 부모에게 아직 결혼 사실조차 알리지 못했다.

이들은 "가족들이 동성애자 인권을 위해 희생당하는 셈"이라며 "결혼식 사진도 되도록 옆모습이나 뒷모습으로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자신들은 괜찮지만, 작은 동네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부모나 형제가 주변 이웃들로부터 피해를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하객으로 참여한 인터넷 게이 커뮤니티 '맨 앤 워크' 운영자 정직한(가명, 42세)씨는 "동성애자의 사랑도 이성애자의 사랑과 똑같다. 오히려 이성애자보다 게이가 오래 상대방을 아끼며 사랑한다"며 사회적 시선의 변화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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