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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웃사이더> 최근호에서는 '한국 노동자에게 희망은 있는가'를 특집으로 다루면서 향후 노동운동의 진로를 모색했다.
ⓒ 아웃사이더
이른바 '중앙파(중도좌파)' 단병호는 가고 '국민파' 이수호 시대가 시작됐다. 지난 16일 민주노총의 제4대 위원장으로 당선된 전교조 출신의 이수호씨는 "대안없는 파업 남발은 자제하겠다"며 단병호 체제와의 차별성을 부각했다. 또 언론은 '강성 노동운동 달라지나'라며 이수호 당선자를 조명하고 있다.

한편 단병호 위원장은 송별 인터뷰로 바쁘다. '노동 친화적'이라 기대를 모은 노무현 정부 하에서 1년 동안 4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그 어느 때보다 바람 잘 날 없었던 노동계. 아직도 그 죽음의 원인인 손배가압류, 비정규직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 위원장은 후임자에게 인수인계할 게 많다.

그런 점에서 홍세화 <아웃사이더> 편집위원과 단병호 위원장의 대담은 흥미롭다. 아웃사이더 최근호에서 홍 위원은 대담 서두부터 '한국 노동자에게 희망은 있는가'라고 단독직입적으로 물었고, 이에 단 위원장은 '희망은 만들어 가는 겁니다'라고 즉답했다.

공격적인 인터뷰어로 소문난 홍세화 위원과 강성 노동운동가의 대담은 향후 노동운동의 주요한 쟁점들을 다루고 있었다. 특히 홍 위원은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칼 마르크스의 명제를 뒤엎는 "노동자 의식 없는 노동자"들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고, 이어 "학습 없는" 조직과 투쟁 일변도의 노동운동을 지적했다.

이밖에도 홍 위원은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를 거부한 까닭을 물었고, 또한 물신화된 노동자 의식을 언급하며 '대공장 이기주의'로 드러나는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단호한 태도로 질문공세를 펼쳤다.

@ADTOP@
홍 위원의 날 선 질문에 단 위원장의 답변은 구체적이고 생생했다. 18년 동안 노동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그로서는 누구보다 오랜 고민의 시간을 거쳤을 터. 지난 3년의 임기동안 3개월 수배, 20개월 수감생활, 감옥에 있었던 시간이 더 많았던 그였다. 단 위원장의 고백과 진단은 앞으로 3년, 이수호 당선자가 안고 가야 할 과제이기도 했다.

홍세화 편집위원은 민주노총 산하 언노련 산하의 한겨레 지부 조합원. 홍 위원과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과의 대담은 평조합원과 최상급단체 위원장과의 '맞짱'이라는 점에서도 흥미로웠다.

다음은 아웃사이더 17호 '노동운동 희망은 있는가'라는 주제로 열린 홍세화·단병호 대담을 주요 쟁점별로 정리한 내용이다.

▲ <아웃사이더> 홍세화 편집위원
ⓒ 아웃사이더

[쟁점1] 1400만 노동자라면 응당 1400만 노동자 의식이 있어야 하는데...

이번 대담에서 최대 쟁점은 '노동자의 탈의식화'였다. 홍 위원은 작심한 듯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고 말했던 칼 마르크스의 명제에 따르면, 1400만 노동자라면 응당 1400만 노동자의 의식이 있어야 되는데 왜 그렇지 않은가"라는 문제를 집중 거론했다.

노동자들 역시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살아왔고, 또 교육에 있어 반공의식·냉전의식·안보의식·친미사대로 의식화가 이뤄져 "노동자 의식을 스스로 배반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 따라서 홍 위원은 일반 사회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국가권력에 의해 세뇌된 것을 '탈의식화' 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련해 홍 위원은 노동자에 대한 교육·학습 문제를 제기했다. 그렇지 않으면 신자유주의 시장주의자들의 '무역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 수출을 못하면 망한다'는 이데올로기 공세, 나아가 '부시에게 밉보였다간 국가경제에 불안이 올 것'이라는 경제논리에 말려 파병반대에 적극적이지 못한 모순을 극복할 수 없다.

이에 단 위원장은 "미국의 명분 없는 침략전쟁에 파병은 반대한다"는 점에서 노동자들의 생각은 일반적인 반대논리와 같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실제 생각하는 것과 몸으로 움직이는 것과의 차이는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이어 노조가 "아직도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관련 없는 일에는 소극적인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노동운동의 역사가 길지 않은 속에서 인적·물적 재원 자체가 부족했다"며 "특히 기업별 노조 체제 자체가 장기적인 정책 전개 여력을 근본적으로 봉쇄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홍 위원의 질문은 좀더 공세적으로 이어졌다.

"아주 전일적이고 계획적으로 교육과정이나 수구세력에 의해서 장악된 매체에 의해 헤게모니 작동이 일어나면서 그야말로 사회구성원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심어졌기 때문에 그 속에서 탈의식화가 있기 전에는 1400만 노동자라고 외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거예요."

이 주제에 있어서 만큼은 질문자와 답변자가 바뀌어 있었다. 단 위원장은 답답했는지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되물었다.

"교육의 중요성을 생각하는 것이죠. 결국 지금 노동자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교육과정에서 형성된 의식의 반전을 경험했을 겁니다. 중·고등학교 때 형성된 의식이 뒤집히는 경험이 있기 전에는 노동자 의식을 가질 수 없다는 겁니다."

홍 위원은 좀더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운동은 조직, 학습, 선전인데 지금까지의 노동운동은 조직이나 투쟁 이런 부분에 너무 집중됐다"는 점이었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이 노동자들의 정당인 민주노동당에 표를 주지 않는 이유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교육비·의료비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있는 서민들이 무상의료·무상교육에 비상한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왜 그러지 못하고 뭔가 두려움을 느끼냐는 거죠. 결국은 그런 의식이 주입돼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존재의 요구마저 거부하려는 의식화가 이뤄졌다는 겁니다. 때문에 탈의식화가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에 자꾸 집요하게 말씀 드리는 겁니다."

▲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 그는 이달말로 임기가 끝나고 평조합원으로 돌아간다.
ⓒ 아웃사이더

[쟁점2] 민주노총은 왜 사회적 합의틀인 노사정위를 거부하는가

이 주제에선 단 위원장의 말이 단연 많았다. 홍 위원의 "제도화된 3자 교섭의 틀인 노사정위원회를 거부하면서 별도의 노사교섭·노정교섭을 요구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는 지적에 대해 단 위원장은 4가지 문제를 꼽으면 조목조목 반박했다.

우선 단 위원장은 98년 DJ 당선 시절 노사정위원회를 만들고 참여했다가 탈퇴한 이유에 대해 "합의하면 뭐 합니까? 이행이 안 되는데"라고 잘라 말한다. 대표적으로 실업자 노조가입문제와 노동시간 단축문제를 꼽았다. 또한 전교조 합법화도 합의해놓고 시행하지 않는 바람에 결국 투쟁으로 쟁취하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두번째로 꼽은 이유는 노사정에서 합의된 내용들이 제도화·입법화되려면 노동자 정당 등 사회적·정치적 환경이 마련되어 있어야 하는데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노사정 논의가 활발한 북유럽과 단순 비교할 수 없다는 얘기다.

세번째로 단 위원장은 자본이 노동자를 보는 시각을 들었다. 노동자를 경영주체나 파트너로 인정하거나 동등한 시각으로 보지 않고 관리대상·통제대상으로만 보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의 '무노조 신화'가 대표적이다.

마지막으로 정부와 재계는 노사정 위원회에 들어와서 대화로 합의하자고 하지만 정작 책임주체는 없는 협의체라는 점이다. 단 위원장은 "노사정위에 들어와 있는 재계 대표인 경총과 전경련은 협의구조이기 때문에 노사정위에서 합의가 된 사항도 산하 기업들이 안 지키면 그만"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노사정위는 사회적 합의라는 원론만 되풀이하는 현실성 없는 협의체라고 주장했다.

[쟁점3] 물신화된 노동운동... 대공장 이기주의·비정규직 문제 어떻게 극복할건가

"이렇게 사는 게 행복하다"
18년 노동운동에 대한 자평

ⓒ오마이뉴스 권우성

단병호 위원장은 현재 세계사회포럼 참석차 인도 뭄바이로 떠난 상태. 여기서 단 위원장은 만델라를 당선시킨 남아프리카공화국 노총 코사투(COSATU)와 룰라를 탄생시킨 브라질 노총 꾸띠(CUT) 대표자들과 함께 회의를 갖는다. 이들 두 노총은 한국의 민주노총과 함께 '세계 3대 노총'으로 꼽힌다.

단 위원장의 임기는 이달말까지. 그의 행보에 대해서는 '민주노동당행' '비례대표 출마설' 등 분분하지만, 노동자로서 그는 2월부터 금속노조 평조합원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는 지나온 18년 노동운동 삶에 대해 "한번도 후회한 적은 없노라"며 "이렇게 사는 게 행복하다"고 말한다.
홍 위원은 또 다른 신자유주의의 공세로 '물신숭배'를 꼽았다. 그것은 연대의 본질적인 의미를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비정규직 문제를 대하는 대기업 노조, 정규직 노동자들의 태도는 우려스럽다. 이에 단 위원장은 노동운동이 초토화된 멕시코의 예를 들었다.

"지금의 신자유주의와 마찬가지인 60년대 미국의 초국적 자본이 들어와서 노동자의 분리정책을 시도하면서 조직화된 노동자는 우대하고 나머지는 착취하는 구조를 취했어요. 그러자 조직화된 노동자는 자기 우월성에 스스로 빠지면서 결국 무력화되었고 이런 현상이 멕시코 노동운동의 몰락과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어 단 위원장은 현재 비정규직의 임금이나 그 밖의 조건이 대공장 노동자들의 절반 수준도 안된다는 우리의 현실을 들어 우리도 똑같은 양상이 펼쳐질 수 있음을 경고했다.

"한편으로는 대공장 이기주의라고 비난하면서도 우월성을 만들어 주고 있고, 마치 대공장 노동자들에게 특혜를 주는 것처럼 해서 그네들은 우월성을 가지게끔 하고 한편으로는 고용불안을 가지고 협박합니다."

덧붙여 단 위원장은 "노조결성의 기업별 구조가 그러한 양상을 더욱 먹히게끔 한다"고 말한다. 이어진 기업별노조의 산별노조로의 전환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핵심은 금속산업의 대공장들과 정부 공공부분 대기업"이라며 "이 부분만 전환시키면 나머지는 자동적으로 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2004년에는 가능하면 자동차 산업에 대한 공동투쟁을 정말 제대로 한번 조직을 한다든가 해서 그걸 계기로 산별 전환을 시도하면서 새로운 모색을 해볼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아마 2·3년 내에 대기업 노조를 산별로 전환시키지 못하면 가면 갈수록 더 어려워 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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