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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캠프 첫날 저녁 놀이시간 중 한 자원봉사자가 원폭피해자 할머니의 손을 잡으며 놀이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 원폭피해자와 함께하는 평화캠프에서 참가자들이 노래에 맞춰 흥겨운 듯 춤을 추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것 같지 않더니…. 일찍 죽은 사람들이 서럽제. 이래라도 살아있으이 좋은 날도 있지 않나."

이마에 주름이 깊게 박힌 진점시(82. 경남 합천) 할머니가 담배 한 개비를 피우다 말고 눈물을 훔쳤다. 오늘 따라 유난히 일찍 여윈 남편과 아들이 생각나는 듯 보였다.

일제 강점기 일본 히로시마로 남편을 따라 건너간 진 할머니는 해방되던 그해, 원폭 피해를 입었다. 당시 할머니는 다행히 신체에 '눈에 띄는'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남편과 아들 2명은 원폭으로 화상을 입었다.

원폭피해자 할머니의 '눈물'

▲ 할머니들이 서로의 어깨를 만지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그해 45년 10월 '무일푼'으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주위의 냉대는 예상밖이었고 고생 길은 시작이었다. 진 할머니는 이 당시를 "죽도록 안 해본 고생이 없었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한국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후 자식들도 일찍 저세상으로 보내야 했다. 진 할머니는 지난 98년부터 경남 합천에 있는 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다.

찾아오는 이 드문 복지회관에서 생활하던 진 할머니에게 경남 남해로 떠났던 1박 2일의 나들이는 기쁘면서도 먼저 간 가족들과 삶에 대한 애잔함이 함께 묻어 나는 시간이었다. 지난 4~5일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서 생활하고 있는 할머니·할아버지 31명이 7년만에 경남 남해로 1박 2일간의 여행을 떠났다. 지난 97년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이 생긴 이래 첫 1박 2일의 여행을 떠나 온 것.

복지회관은 원폭피해자들을 치료하고 노후를 보내기 위해 설립됐고, 현재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피해자들은 70여명에 이른다. 이 중 거동이 불편하고 중증인 피해자들이 이번 캠프에는 아쉽게 제외됐다.

이번 나들이는 복지회관 측이 그동안 복지관에서만 생활해오던 원폭피해자들을 위로한다는 차원에서 제안했고, 대구에 있는 시민단체인 대구KYC(한국청년연합회 대구본부. www.tgkyc.or.kr) 평화통일센터가 공동으로 주관하기로 해 '원폭피해자와 함께 하는 평화캠프'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원폭피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떠난 7년만의 여행

평화캠프에는 대구KYC 회원과 함께 10대에서 20대까지 청소년, 영진전문대 사회복지학과 학생 등 30여명이 할머니 할아버지 나들이를 돕기 위해 자원봉사 형식으로 참여했다.

평화캠프 첫날인 4일 오후, 경남 남해 한 유스호스텔에서 처음으로 만난 원폭피해자와 자원봉사자들간에는 다소 서먹한 기운도 엿보였다. 하지만 저녁 식사 후 가진 다과회와 한마당 놀이시간을 가지면서 원폭피해자 할머니 할아버지와 자원봉사자들간에 서막함도 사라지고 있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할머니! 이거 한번 드셔보세요."
"고마워. 이렇게 좋은 곳에 데려다 주고…."

손자 손녀같은 자원봉사자들의 손을 꼭잡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서로를 소개하면 연신 반가움을 보였다. 레크레이션 사회자의 진행으로 열린 놀이시간에는 원폭피해자와 자원봉사자들이 한데 어우려져 노래 실력을 뽐내며 춤을 추는 등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또 평화캠프 이튿날에는 참가자들이 숙소 앞에 있는 갯벌에 나가 조개와 백합을 잡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원폭피해자 정순덕(86) 할머니는 "적적하게 보내던 시간들이 많았는데 젊은 사람들이 따뜻하게 맞아줘 너무 고마웠다"면서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 임세희(19. 영진전문대 1년)씨는 "원폭 피해자 문제는 TV를 통해서 본 것이 전부였는데 실제로 피해를 겪으신 분들을 만나 보니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면서 "1박 2일이라는 시간이 너무 아쉽다, 다음 번에는 더 긴 시간 동안 할머니들과 함께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윤영(19. 영진전문대 1년)씨도 "할머니들을 돌보려고 참여했지만 오히려 할머니들이 우리를 더 따뜻하게 대해 주셨다"면서 "사회에서 원폭 피해자들에 대한 관심을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김광혜 사회복지사는 "개관 이후 처음 가지는 1박 행사인데다 대부분이 연세 많은 노인분들이라 조심스러웠다"면서 "전쟁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원폭피해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는 행사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 복지사는 또 "원폭피해자들에겐 자연과 만나는 여행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부대끼는 이런 평화캠프가 더욱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대구KYC 김동렬 사무처장은 "이번 캠프를 통해 외롭게 지냈던 원폭 피해자들은 젊은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기쁨을 가지게 됐고, 젊은 세대들도 말로만이 아닌 직접적인 만남으로 원폭 피해문제를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처장은 또 "원폭 피해자들은 전세계에서 유일한 대량살상무기의 희생자들"이라면서 "한국 정부의 무관심과 직접 가해자인 일본과 미국이 외면하고 있던 피해자들에게 이제는 적절한 사과와 배상이 이뤄져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복지관과 대구KYC는 앞으로도 매년 1회씩 원폭피해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나들이를 떠나는 평화캠프를 열 계획이다.

▲ 평화캠프 첫날 마지막 순서로 참가자들이 모두 손을 잡고 '사랑으로'를 부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할머니 할아버지 건강하게 살아 계세요~"

1박 2일의 평화캠프는 원폭피해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한데 모여 갯벌에서 주워온 조개 껍데기에 '원폭피해자와 함께하는 평화캠프'라는 글자를 나눠 쓰면서 끝을 맺었다. 평화캠프에 참석했던 자원봉사자들은 "앞으로 건강하게 꼭 살아계십시오"라고 인사말을 건네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박수를 치며 "감사합니다"라며 발길을 돌렸다.

1박 2일의 평화캠프는 참가자들이 차창 밖으로 건네는 수인사로 뒤로하고 내년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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