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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그룹 본관건물.
ⓒ 오마이뉴스 권우성
삼성그룹이 지난 외환위기 이후 최대의 시련기를 맞고 있다. 지난 97년 불법정치자금 거래 의혹이 담긴 테이프가 공개되면서, '나눔, 상생, 투명경영'을 외쳤던 삼성의 구호는 말뿐이 돼 버렸다.

수백억원 이상 투자했던 '삼성' 브랜드의 대외이미지는 크게 떨어졌고, 대국민 사과문은 진솔함이 없다며 역풍을 받아야만 했다. 이건희 회장-이재용 상무로 이어지는 그룹 지배구조의 완성도 쉽지 않다. 'X파일'과 두산 오너간 분쟁으로 재벌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커지고, 정부의 재벌개혁론이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덧붙여,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2분기 실적은 저조했고, '돈줄' 역할을 해온 일부 사업부문에서는 수익성 악화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고유가와 환율 등 대외여건도 좋지 않다. 게다가 4일 참여연대는 공공연한 비밀로만 떠돌던 삼성그룹의 인맥관리 실태를 공개하며 비판했다.

이에 '삼성게이트'로 촉발된 삼성 위기론에 대한 실제와 전망 등을 2차례에 걸쳐 나눠 싣는다.

삼성맨들 "별 관심없다" - "삼성 흔들어서 좋을 게 뭐냐"

지난 2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그룹 본관 뒤편 시계탑 주변.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임에도 20여명의 삼성맨들이 삼삼오오 모여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X파일' 등 최근 사내 분위기를 묻는 질문에 삼성맨들은 하나같이 언급 자체를 꺼렸다.

자신들의 이름이나 회사가 거론되는 것도 부담스럽다면서 아예 밝히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이날 삼성 타운 일대에서 만난 삼성맨들의 반응은 크게 세가지 였다. '무관심'과 '언론에 대한 불만' 그리고, '실적 하락'.

전자계열쪽에 근무한다고만 밝힌 김아무개 대리는 "'X파일'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솔직히 별다른 관심이 없다"면서 "상반기 실적이 당초 예상보다 나오지 않아 보너스가 줄어든 것이 더 큰 관심사"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사무실 분위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전했다.

입사 9년차라는 이아무개 과장은 정확한 계열사를 밝히지 않았다. 그는 대신 "MBC를 비롯해 언론들이 오버하는 것 아니냐"면서 "시쳇말로 밥 먹으면서 하는 이야기를 누가 엿듣고 있다가, 이를 들고 와서 돈달라고 협박하는 것이 정상이냐"고 따져 묻기도 했다.

일부 자성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주변의 '삼성 죽이기' 분위기에 곧 묻혔다. 생명에 근무한다면서 이름을 밝히길 꺼린 A씨는 "상생, 나눔 경영을 한다고 하지만, (회사 고위층의) 깨끗하지 못한 돈거래 등이 여전한 것 같아 씁쓸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같은 회사 동료라고만 밝힌 B씨는 "정치자금을 주고 싶어서 주는 기업이 어디 있느냐"며 "정권에 밉보여서 쓰러진 기업들을 봐라. 돈은 돈대로 주고, 처벌은 처벌대로 받고…"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다른 직원들은 삼성본관 앞에서 시민사회단체 등의 1인시위 등에 대해서도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남의 회사 앞에서 정치적인 쇼를 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도 있었다.

장아무개씨는 "삼성을 흔들어서 우리나라에 좋을게 뭐가 있나"라며 "정부를 상대로 해야할 1인 시위를 왜 우리 회사 앞에서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X파일'로 도덕성 치명타, '삼성' 브랜드 위상 '흔들'

▲ 삼성 X파일 사건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마친 민주노동당 의원들과 당원들이 삼성 본관을 향해 이건희 회장 구속 수사를 촉구하며 함성을 지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최근 불거진 이른바 'X파일' 사건은 그동안 '삼성'이 외쳐왔던 '상생, 나눔, 투명경영'이 단지 구호에 그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에 충분하다. 불법정치자금 제공 뿐 아니라, 97년 외환위기의 발단이 된 기아자동차 부도 과정에서의 삼성 개입설이 다시 불거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해외 유력 언론이 이번 사건을 앞다퉈 보도하면서, 삼성 브랜드의 대외 이미지와 가치는 크게 추락했다. 이에 불을 붙인 것이 영국의 유력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

이 신문은 지난달 27일치를 통해 이번 사건을 아예 '삼성게이트'라고 명명했다. 이어 폭발적인 뇌물스캔들이 한국사회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 등 세계 유력 언론들도 마찬가지였다.

삼성 쪽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불법 도청 테이프 내용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과 함께 브랜드 가치 훼손 등을 광범위하게 포함해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브랜드 가치의 경우 다소 추상적인 개념인 데다, 명예훼손은 '국민의 알권리'에 따른 공적인 영역이라는 주장과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상황이 결코 삼성에 유리하지만은 않다. 따라서 소송을 제기한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법원이 삼성쪽 손을 들어줄지도 불투명하다.

H증권의 한 애널리스트는 "<파이낸셜타임스>의 '삼성게이트'라는 제목 하나만 가지고도 해외에서의 삼성 이미지는 크게 떨어졌을 것"이라며 "브랜드 가치 훼손을 가지고 소송을 한다고 하지만, 논란의 소지도 여전해 삼성 쪽에서도 부담이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법원에서도 인정한 불법 도청테이프를 가지고, 현행법을 어겨가며 보도한 언론사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검찰 수사와 함께 개인 명예 뿐 아니라 삼성이라는 브랜드 가치 훼손 등 민사상 손해배상 여부를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자쪽 수익성 악화 우려 속, 물산(건설) 등 사고로 잇단 악재

▲ 삼성전자가 전 세계 26개 공항을 대상으로 설치 중인 대형 손 조형물. 이 조형물은 삼성전자 휴대폰의 세계적 명성을 대변하는 대표적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들어 휴대폰 판매실적이 떨어지고 있어 내부로부터 위기의 목소리가 새어나오고 있다.
ⓒ 삼성전자 제공
'X파일' 사건과 함께 그룹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수익성 악화 우려도 삼성의 고민을 더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전자의 주요 '돈줄' 역할을 해 온 정보통신부문(휴대전화)에서 글로벌 업체와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실적 개선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세계 휴대전화 시장 2위 업체인 모토로라와 삼성전자간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최근 발표된 2분기 실적을 보면, 보다 뚜렷해진다.

삼성전자는 지난 15일 2분기 실적 발표에서 상반기에 휴대폰 4900만대를 판매했다고 발표했다. 반면, 지난 19일(미국 현지시간) 실적을 발표한 모토로라는 상반기에 6260만대를 판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시장 점유율도 모토로라와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최근에 나온 국제시장조사기관의 조사를 보면, 노키아가 34%로 1위를 달리고 있고, 모토로라 18%, 삼성전자 12.9%, LG전자 6.4%로 그 뒤를 잇고 있다. 특히 노키아와 모토로라의 점유율은 각각 1.3%, 1.5% 늘어났지만, 삼성전자는 1.2% 줄었고 LG전자는 정체 상태다.

게다가 지난 1분기까지 매출규모에서 삼성전자에 뒤쳐졌던 모토로라는 2분기 들어 49억달러를 기록하면서, 삼성전자를 따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휴대폰 한대를 팔아 남기는 영업이익률은 삼성전자가 여전히 앞서 있지만, 모토로라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이를 두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달 26일치 기업면 기사에서 삼성전자 등 한국의 대표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이 중국과 인도 등 이머징마켓의 저가 휴대폰 시장을 간과해 수익성과 장내 입지가 급격히 축소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3일 "휴대폰 업체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마케팅 비용 등으로 실적이 다소 떨어진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작년에 비해 실적이 양호하고, 경쟁사보다 영업이익률 등에서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중국과 인도 등지에서 노키아와 모토로라 등에 밀리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렇다고 휴대폰의 프리미엄 전략을 바꿀 계획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전자 뿐 아니라 다른 계열사들도 잇단 악재가 터져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정부로부터 국내 최고의 시공능력 평가를 받은 삼성물산 건설부문. 물산은 최근 싱가포르에서 30층짜리 고층빌딩을 부실하게 시공했다는 혐의로 싱가포르 검찰에 기소됐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어 소양강 다목적댐 보조 여수로 터널공사 현장에서 지난 3월과 4월 터널이 무너지는 사고가 두 차례나 발생했다. 회사 쪽은 "터널공사의 일반적인 과정"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연이은 부실시공 의혹에 난감해 하고 있다.

권영준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장(경희대 교수)은 "대우계열사들의 경우 오너가 퇴출된 다음 구조조정을 거쳐 기업 가치가 크게 올랐다"면서 "경영을 잘못하거나 불법을 자행한 경영인은 퇴출되고 교체되는 것이 기업과 국가경제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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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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