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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임단협 때면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수십 차례 공장 라인을 세우고 현대차와 정부에 노동자들의 권리와 이해를 요구하며 싸웠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지난 18일 ‘투싼’ 라인(현대차 5공장)을 멈춘 이들은 그동안 파업대열에 한번도 전면에 나서본 적 없는 사내 하청노동자들이었다."(매일노동뉴스 2005.1.20.)

“자기들 맘대로 봉급을 줘서 안 그런교”

1월 24일 오후 2시. 김영섭(현대자동차 노동조합 비정규직 담당)씨의 안내로 외부인 출입이 금지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정문을 통과해 노조사무실로 들어서자 한 노동자가 뒤따라 들어온다. 자리에 앉기 바쁘게 그는 무엇인가를 까발리듯 그동안 모아둔 월급봉투와 서류 한 장을 코듀로이 바지 호주머니에서 꺼낸다.

“내 참, 하도 기가 막혀서 상담 좀 하러 왔시다.”

▲ 작업도중 사고를 당해 장파열로 입원한 강쾌한씨에게 회사는 퇴직 처리가 됐다고 통보했다. 그는 근로계약서도 없는 비정규직이다.
ⓒ 인권위 김윤섭
노동조합 사무실에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신유기업’ 노동자 강쾌환(50)씨와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경상도 특유의 투박한 말투로 말미암아 아귀는 뒤틀려 보이나 전하고자 하는 그의 심사만큼은 절실하게 다가왔다.

에쿠스 생산라인에서 일하던 강쾌환씨가 병원에 입원한 건 작년 12월 14일. 작업 도중 범퍼 모서리에 복부를 찍으며 넘어진 그는 이틀 후에야 병원을 찾아갔다. 의사가 내린 진단은 장파열. 거동조차 힘들었던 그는 미용학원에 다니고 있는 큰 딸을 시켜 회사에 그 사실을 알리도록 했다. 그러나 회사 측은 수술을 마치고 회복한 상태가 되도록 일언반구도 없었다.

“내가 잘못한 기라. 마, 다친 그날 병원을 찾아갔어야 한 긴데. 나는 나대로 그냥 견뎌보려고 했던 기라.”

그런데 이틀 전, 일을 하기 위해 출근한 그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장과 면담한 결과 자신은 이미 12월 14일자로 퇴사 처리가 되었고, 일터마저 다른 사람한테 빼앗겨버린 것이다.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았고, 지난해 9월부터 370원을 인상한 시급 인상분도 아직 받지 못했고, 연말 성과금도 받지 못했다며 하소연하는 비정규직 강쾌환씨. 입사한 뒤 단 하루도 결근한 적 없다는 그의 월급봉투를 살펴보니 지급 액수가 들쭉날쭉한 것이 제각각이었다.

지난 해 8월 급여액은 잔업과 주·월차수당, 교통비를 합하여 112만 8200원이 지급되었으나 10월분은 187만4060원으로 되어 있다. 의문이 꼬리를 무는 건 그것만이 아니다. 갑근세나 근로소득세의 공제도 없이, 의료보험료도 10월분만 달랑 빠져나간 상태다.

“자기들 맘대로 봉급을 줘서 안 그런교. 이 달에 밀리면 다음달에 보태져서 나오고, 다음달에 밀린 것은 그 다음 다음달에 나오는 기라.”

현대자동차 안에는 이렇듯 하루에도 상담을 하고자 찾아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현대차 안에는 정규직 조합원 2만4000명에 비정규직 노동자가 1만여 명. 그나마 이 수치는 양호한 편이다.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의 2004년 12월 자료에 따르면 임금노동자 가운데 정규직은 645만5000명(44.3%), 비정규직은 813만 명(55.7%)에 이른다. 그러니까 임금노동자 중 그 절반을 넘는 사람들이 일반 임시직(24.9%)이나 기간제고용(12.5%), 임시파트(4.9%), 특수고용(4.8%), 호출근로(3.8%), 용역근로(2.8%) 등을 통해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실정이다.

“신규채용 때가 가장 불안해요. 짤릴까 봐”

예상치 못한 강쾌환씨와의 만남을 뒤로 하고 찾아간 곳은 1차협력업체와 2차협력업체를 포함해 150여 개의 사업장이 공존한다는 ‘투싼’ 라인 5공장 2층 탈의실. 파업으로 인해 주변 분위기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글쎄요.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하나. 작업복도 정규직은 세 벌 나오는데 비정규직은 두 벌밖에 안 나온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예전에는 정규직이 쓰레기통에 버린 작업복을 빨아서 입었거든요.”

파업 중인 노동자들 틈에 끼어 앉아 한 라인에서 일하는 동료들의 작업복이 다르고, 탈의실이 다른 건 옛 추억거리쯤으로 들려왔다. 문제는 고용불안이었다.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저는 신규채용 때가 가장 불안해요. 그때 ‘짤릴’ 확률이 가장 높거든요.”

‘평원산업’ 4년차인 노상봉(29)씨는 그야말로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쩌면 그것은 고용불안에 앞서 조금 전 형님이 이곳을 다녀간 탓인지도 몰랐다. 비정규직 파업이 일주일째로 접어들자 노상봉씨의 형님에게 손해배상청구와 가압류, 차압을 하겠다는 익명의 전화가 수시로 걸려온 것이다.

▲ 현대자동차의 비정규노조가 지난달 18일부터 불법파견 철회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다.
ⓒ 인권위 김윤섭
그동안 고용이 뭔지도 모르고 서른 해를 살아왔다는 그에게 몇 마디 질문을 건네자 그는 뜻밖에도 결혼 문제로 복잡한 심사를 내보였다.

“저는 돈에 너무 욕심 부리고 싶지 않습니다. 고용이 뭔지도 모르고 일해 왔거든요.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일하고 싶고, 결혼을 위해서도 정규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정규직이면 적어도 아내 될 사람한테 떳떳할 수 있으니까요.”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니 며칠 전 어느 기사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있긴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밝히기 꺼려하던 그도 결혼 상대를 만나기 위해 온라인 채팅방에 들어가 자신의 직업을 자랑스럽게 밝혔다고 했던가. 문제의 갈림길은 그 다음이었다. 상대방으로부터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채팅은 이미 ‘쫑 나고’ 말았던 것이다.

비정규직에 관한 차별 사례 중 이와 같은 경험은 그러나 한바탕 웃음으로 넘길 수 있는 일. 파업에 동참한 아주머니들의 이야기가 뒤를 잇자 분위기는 사뭇 숙연해지고 말았다.

“여자들은 작업 도중 화장실 갈 때 많이 망설여요. 남자들보다 시간이 더 걸리잖아요.”

이 또한 얼마 전 뉴스에서 들은 바 있다. 공중변소를 취재한 한 기자의 말을 빌리자면 남자들은 1분 30초면 가능하지만 여자는 그보다 1분이 더 걸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요, 작업시간에 쓸데없이 화장실을 들락거린다고 잔소리하기에 한번은 이런 마음을 먹은 적도 있어요. 작업 도중에 오줌을 싸 버릴까 하는. 여자들의 생리문제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아요.”
“월차 한번 쓰려면 온갖 눈치를 다 봐야 해요”

올해로 9년차가 된다는 55세의 아주머니도, 남편이 몸져누운 뒤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대학 다니는 아들과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는 정씨 아주머니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월차를 한번 쓰려면 온갖 눈치를 다 봐야 해요. 무슨 범법자가 된 기분이라고 할까요. 월차를 내려면 적어도 일주일 전에 이야기해야 하는데 몸 아플 때가 가장 서러워요. 몸은 미리 아플 거라고 예고하지 않잖아요. 의사도 거기까진 모르는 일이고요.”
“봉급도 그래요. 입사한 햇수도 같고, 한 라인에서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정규직 봉급과 비정규직 봉급은 하늘과 땅이에요. 우리 같은 비정규직은 150만원에서 200만원 받지만 정규직은 350만원에서 400만원 받거든요.”

월급봉투의 차액을 미처 계산하기도 전에, 너무 억울하다는 붙임말을 채 듣기도 전에, 분위기는 더욱 우울해지고 있었다. 동료들이 털어놓는 이야기를 다소곳이 듣고 있던 한 아주머니가 입을 열면서부터였다. 2년차로 접어든다는 그는 목이 메는지 이야기를 꺼내려다 눈물부터 쏟아내기 시작했다.

“정규직은 간식도 제과점 빵이 나오는데 비정규직은 구멍가게 빵이 나와요. 차라리 안 보면 좋겠는데 한 라인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니 그때 심정이 어떻겠어요. 그런 날은 집에 들어가면 잠이….”

말을 꺼내놓고 잇지 못하는, 이름 밝히기를 꺼려하는 아주머니. 그는 자식 둘을 가르치기 위해 신용카드를 긁어 신용카드로 막으면서 겨우겨우 생활한다고 했다. 비정규직으로 일한다는 건 그처럼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거나 다름없어 보였다.

어느 날인가는 출근해서 보니 다른 곳으로 옮기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가서 보니 업체가 바뀌어 있었다. 바뀐 건 주인만이 아니었다. 전화 한 통 없이 업체가 바뀌자 6년의 공적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어 버렸고, 열심히 일해서 쌓아놓은 시급 또한 바닥으로 추락해 버린 것이다.

▲ 중학교 졸업후 18년간 공장 노동자로 살았다는 이상호씨는 '쓰다 버린 소모품' 정도로 다뤄지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 인권위 김윤섭
장소를 마산으로 옮겨 만난 이상호(34)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GM대우 마산공장에서 일하는 그 역시 ‘잘리는 것’으로 포문을 열었다.

“비정규직은 입사도 퇴사도 오너 맘대로 아닌가요? 절차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것마저 허용하지 않지요. 바로 그 시각이 해고거든요.”

그러면서 그는 전에 일하던 곳에서 겪었던 한 사례를 들려 주었다. 그러니까 출근해서 작업복으로 막 갈아입었을 때였다. 사내방송을 통해 몇몇 사람의 이름이 호명되고 있었다. 물론 이상호씨의 이름도 끼어 있었다. 그러나 2층 사무실로 들어서는 순간 그는 눈앞이 캄캄해지고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회사가 너무 어려워 그런다며 한 달치 급여를 미리 줄 테니 그만두라고 하더군요. 암담하데요. 그래서 하는 데까지 해보자는 심정으로 그날 노동부를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회사가 퇴사를 종용해도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것이 노동부의 대답이었거든요. 그런데 말예요,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이 그런 일을 당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중학교를 졸업한 뒤 노동자의 길로 들어선 이상호씨의 노동경력은 19년째.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그야말로 몸뚱이 하나에 의지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불행하게도 부당한 세상을 먼저 보아 버렸다.

“우리나라 구조는 3개월 계약, 3개월 계약 이런 식이지요. 1년짜리 계약은 퇴직금을 줘야 하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는 1년 계약, 1년 계약이지요.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올려야 하거든요. 그래서 한번 물어보고 싶을 때가 있어요.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들 중 몇 퍼센트나 산재처리를 받아 봤을까 하고. 아마 대부분의 비정규직이 산재에 가기 전에 공상 처리로 끝났을 겁니다.”

임금투쟁? 비정규직에겐 어림없다

이야기를 하다 말고 담배를 입에 문 그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은 분명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아니 그 차별은 도를 넘어섰다고 결론을 내린다.

“정규직은 해마다 임금인상 투쟁을 합니다. 하지만 비정규직은 어림없는 일이지요. 그것만이 아닙니다. 정규직이 파업에 들어가면 비정규직은 빗자루를 들어야 하는데 문제는 일당에 있습니다. 정규직은 파업을 해도 일당이 나오지만 비정규직은 그렇지 못하거든요. 그래요, 거기까지도 참을 수 있습니다. 더욱 비애스러운 건 회의실로 모이라고 할 때입니다. 모이라고 해서 회의에 참석하려고 하면 뭐라고 하는 줄 아십니까? 비정규직은 제외라고 말합니다. 아마 이런 경험을 해본 사람이면 살고 싶지 않을 겁니다.”

▲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며 분신을 기도했던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최남선씨
ⓒ 인권위 김윤섭
그럴 때 우리는 뒤돌아서야만 하는 그 발길을 허탈한 발길이라고 말하던가. 보너스가 400%이니, 600%이니 하는 것은 어쩌면 다음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이상호씨의 말에서 알 수 있듯 공동체서 외면당한다는 것, 그것은 곧 모멸로 이어지는 것이다. 취재가 끝나갈 무렵 자리에서 일어서다 말고 그는 당부하듯 이런 말도 들려 주었다.

“정규직도 좋으나 그보다 먼저 저는 퇴사 당하지 않고 끊임없이 일할 수 있는 곳에서 일했으면 합니다. 더는 쓰다 버린 소모품 정도로 다뤄지는 그런 인생이 아니었으면 좋겠고요. 인격은 고사하고 인간적인 차별까지 받고 살아야 한다면 너무 억울하잖습니까?”

내친김에 지난 1월 22일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분신을 기도한 최남선(현대자동차 CKD대연근무)씨를 만나 보기 위해 대구의 한 병실을 찾았다. 전신 15%, 2도 화상을 입고 누워 있는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 주었다.

“가족들한테조차 내 직업에 대해 말할 수 없을 때 가장 힘들었어요. 이런 제가 무엇을 더 바라겠어요. 정규직과 비정규직, 이런 거 구분 없는 세상에 살고 싶습니다. 아마 이것은 누구한테 물어봐도 다들 원하는 세상일 겁니다. 그래야 세상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 점에서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 아닌, 한 형제로 보아 줄 줄 아는 각성이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인권> 2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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