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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일 오전 직권면직당한 경찰청 고용직 공무원 30여명이 기능직 특별임용을 요구하며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앞 도로 중앙분리대에서 기습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전원 연행당했다. 강제로 경찰버스에 연행당한 전국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며 항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네 손에서 걸레를 놓지 마라."

장희정씨가 고등학교 3학년 시절 경찰청 고용직으로 경찰서에 첫 출근한 날 아침에 들은 말이다. 그 후 장씨는 형사들의 책상 정리, 화장실 청소 그리고 각종 문서 정리와 타이핑 업무를 도맡아 했다. 매일 아침 간부회의 때마다 차를 내오고 컵을 닦는 일도 장씨의 일이었다. 그렇게 9년 동안 경찰서 '허드렛일'을 해온 장씨에게 경찰청은 지난 2004년 12월 31일자로 '직권면직' 처분을 내렸다. 해고였다.

장씨는 "다른 일반 직장 여성들이 상상도 못할 일을 하면서도 9년간 열심히 일했다"며 직권면직 처분에 분통을 터뜨렸다. 그리고 요즘은 출근 첫날 들었던 '네 손에서 걸레를 놓지 마라'는 말이 더욱 가슴에 사무친다고 했다.

장씨처럼 직급상 최하위직인 경찰청 고용직 공무원으로 일했던 여성 노동자 60여명은 지난 12월 16일부터 여의도 민주노동당사에서 거점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의 경력은 짧게는 5년에서부터 길게는 20년까지 다양하다. 근무 연수는 틀리지만 일선 경찰서에서 형사들의 빨래와 밥짓기는 물론 청소와 문서 작성 등을 작성하며 '온갖 잡일'을 한 경력은 동일하다.

빨래와 밥짓기 그리고 화장실 청소까지

기자는 '3·8 세계여성의 날'을 하루 앞둔 7일 저녁 여의도 민주노동당사를 찾았다. 경찰청의 직권면직 처분 철회와 특별임용을 요구하며 82일째 농성을 벌이고 있는 '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조(고용직노조)' 여성조합원들의 모습에는 피곤함이 역력했다. 이들은 경찰청의 자진사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 직권면직당한 경찰청 고용직 공무원들이 경찰청의 직권면직 처분 철회와 특별임용을 요구하며 8일 오전 서대문 경찰청 인근에서 82일째 농성을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들이 한겨울 내내 먹고 자고 생활한 민주노동당사 4층 회의실엔 스티로폼과 침낭 그리고 전기장판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한쪽 구석엔 대형 전기밥솥과 식기도구들이 정리돼 있다. 시큼한 음식 냄새와 건조하고 탁한 공기가 뒤섞인 그곳에서는 여성들의 기침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우리 여성들이 민주노동당사 말고는 갈 곳이 없다. 우리가 경찰의 회유와 협박으로부터 안전하게 농성을 하고 생활할 수 있는 곳은 이곳뿐이다. 이곳 당직자들에게는 무척 미안하다. 이 싸움이 이렇게 길어질 지 몰랐다. 다른 선택의 길이 없다"

문정영 고용직노조 부위원장의 말이다. 문 부위원장은 "한 겨울 내내 노숙 아닌 노숙을 하며 투쟁하다보니 많은 조합원들의 건강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82일 동안 매일 집회를 하고 농성을 해도 아무런 대답이 없는 경찰청의 태도를 지켜보는 게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경찰청 고용직 공무원'은 말만 공무원일 뿐이다. 일선 경찰서에서 일정한 업무와 예산이 있으면 고용했다가 아무 때나 해고할 수 있다. 따라서 일반 계약직 비정규노동자들처럼 일정 기간 계약을 맺는 것도 아니다. 이들의 99% 이상은 여성들이다. 그리고 대부분 고졸의 학력을 가지고 있다.

경찰청, 여성 고용직 해고하고 남성 경찰직 뽑아

▲ 농성에 참여한 한 조합원이 경찰청의 직권면직 처분 철회를 요구하며 함성을 지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정부와 경찰청은 지난 12월 31일자로 전국 경찰청에서 일하는 이들 고용직 공무원에게 대해 강제 직권면직을 내렸다. 2003년 496명을 직권면직한 데 이어 2004년 584명에 대해 직권면직의 칼을 휘두른 것이다. 경찰청은 고용직 공무원 제도가 폐지됐으며 예산이 없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실과 다르다. 문정영 부위원장의 말이다.

"경찰청 말대로 고용직 공무원 제도는 1989년에 폐지됐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경찰청은 필요할 때마다 고용직 공무원을 채용했다. 경찰이 먼저 원칙을 어기는 모순을 드러낸 것 아닌가. 우리가 필요하면 아무 때나 채용했다가 마음대로 버리는 그런 하찮은 소모품인가. 또한 관련 예산도 올해 3715억원이 증액됐다. 모든 게 말이 안 된다."

경찰청은 지난 98년부터 2003년까지 고용직 공무원 2500명을 면직했다. 이들의 대부분은 여성들이었다. 그리고 경찰청은 같은 기간동안 새로운 경찰인력 2536명을 증원했다. 반대로 이들 대부분은 남성들이었다.

"10년 동안 일하면서 내 노동조건이 창피해서 가까운 친구에게조차 말하지 못했다. 성차별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끝도 없다.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면서 시간외 노동을 해도 100만원이 조금 넘는 월급을 받았다. 이것도 경력이 웬만큼 쌓였을 때 이야기다. 우리가 아무리 학력이 짧은 여성들이라고 이런 식으로 쫓아내는 건 억울해서 참을 수가 없다."

전북 군산의 파출소와 경찰서에서 10년 근무하며 "경찰서 강아지까지 키워야했다"는 안선형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들 노조원들끼리도 자신들이 겪은 부당한 노동조건을 풀어내는 대도 1주일이 걸렸다고 한다. "그만큼 창피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들이 많았다"는 게 안씨의 설명이다.

경찰청 고용직 공무원들의 정년은 43세까지다. 경력 15년 된 사람의 기본급은 올해 인상이 돼서 60만원이 조금 넘는다. 최소한 경력 10년을 넘기고 각종 수당을 더해야 월 100만원이 넘는 임금을 받을 수 있다.

경력 16년, 월급은 120만원

전남에서 근무한 문정희씨는 경력 14년째다. 문씨는 "최고 많이 받은 고정 월급이 120만원"이라며 "이 월급으로 투병중인 남편을 돌보고 11살, 4살 두 아이를 키웠다"고 밝혔다. 이어 문씨는 "내가 이렇게 갑자기 쫓겨나 당장 가족들의 생활이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 지난 4일 오전 버스를 타고와서 기습적으로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앞 도로의 중앙 분리대를 점거한 상복 차림의 전국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이 자신들의 요구사항이 적힌 현수막을 펼쳐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고용직노조 지도부는 지난 2월 25일 경찰청 쪽과 농성이후 첫 협상을 했다. 경찰청 쪽은 "직권면직 철회는 불가능하고 빨리 손털고 다른 일을 찾아 보라"는 견해를 반복했다. 경찰청 인사기획계의 한 관계자도 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르고 원칙대로 가는 것 아니냐"고 소극적 의견을 밝혔다.

문정영 부위원장은 "솔직히 꽃피는 봄이 오면 이 힘겨운 싸움이 끝날 줄 알았다"며 "우리 여성들은 이미 수모를 당할 만큼 당했다, 더 이상 부당함을 참아가며 살수 없다"며 끝까지 투쟁할 것을 다짐했다.

'3·8세계여성의 날'은 1908년 3월 8일 미국 뉴욕 루트커스 광장에서 참정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권리를 외치던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정신을 기리면서 시작됐다. 경찰청 고용직노조원 60여명은 이날에도 어김없이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복직을 요구하는 집회를 연다.

여성 노동자 69.2%가 비정규직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따르면 2004년 국내 여성 노동자의 69.2%가 비정규직이다. 여성노동자는 10명 중 7명이 비정규직인 셈이다. 이들이 받는 임금은 남성 정규직의 42.6%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2003년 기준 여성비정규직을 고용형태별로 보면 임시근로가 68.6%(장기임시근로 42.9%)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상시고용 업무에서 반복 계약을 하고 있는 경우이다.

임금은 남자 정규직을 100을 할 때 남자 비정규직 52, 여자 정규직 72, 여자 비정규직은 38에 불과하다. 비정규직 남성노동자 대비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월평균 임금은 65.6%이다. 연령별 분포는 남자의 경우 20대 초반 이하와 50대 후반 이상에서 비정규직 비중이 높은 반면, 여자의 경우 모든 연령층에서 비정규직이 많으나, 20대 초반과 40대 초반은 눈에 띄게 많다.

전체적으로 여성비정규직의 경우 모든 연령층과 전 산업에 걸쳐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으며, 기혼여성의 경우는 80%가 비정규직이다. 노동조합 가입률은 비정규직 전체 2.4%에 불과하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은 60만명이 조금 넘는 수치를 보이고 있으며 이 중 61.7%가 여성이다. / 전국여성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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