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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건설플랜트노조원 3명이 지난달 30일부터 원청 회사인 SK의 서울 마포 공사현장 타워크레인을 기습 점거해서 무기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전투적 노조. 한국노동조합을 이르는 말이다. 한국 언론이 집요하게 퍼트려왔다. 국내 언론보도의 영향아래 취재하기 일쑤인 외국 특파원들의 기사를 타고 세계적 '공인'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다. 적잖은 사람들에게 노조는 '이기적 집단'으로 덧칠되어 있다. 심지어 일부 진보적 지식인들까지 '사익 추구집단'이라며 노조 사냥에 가세한다.

딴은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곰비임비 불거지는 노조 간부의 비리는 신문과 방송을 통해 큰 쟁점으로 부각된다. 단 한 번도 노동조합의 도덕성을 온전히 평가하지 않았던 자들까지 일제히 노조의 타락을 들먹인다.

타락한 노조 간부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두남둘 뜻도 전혀 없다. 문제는 노조를 겨냥한 냉갈령 속에 정작 가난한 노동자들이 고통과 절망으로 내몰리는 현실에 있다.

타락한 노조 간부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보라. 울산건설플랜트노동자와 청주하이닉스반도체 노동자들을. 신문과 방송이 대부분 외면하고 있지만 울산의 일용직 건설노동자들이 생계를 접고 파업에 나선지 어느새 60일에 이른다. 그들의 요구도 거창한 게 아니다. 화장실과 탈의실 설치다. 비와 쇳가루, 모래를 가릴 수 있는 천막 아래 점심밥을 먹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이다.

하지만 교섭의 형식을 '명분'으로 내세워 아예 대화에 나서지 않고 있다. 게다가 공권력은 무자비한 탄압으로 일관한다. 820명의 모든 조합원을 연행하고 22명을 구속했다. 7명은 체포영장 발부상태다. 그런데도 어쩌다가 언론이 보도할 때는 노동자들의 '폭력'만 부각한다.

청주 하이닉스에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대량해고에 몰려있다. 그런데도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선거공약으로 내건 노무현 정권이 그들에게 준 '선물'은 폭력이다. 4월 1일에 이어 5월 1일 노동절에 폭력진압이 벌어졌다.

집회참가자들이 '비폭력 저항'을 선언했음에도 경찰은 여성과 아이들이 있는 곳까지 물대포를 난사했다. 군사독재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토끼몰이'에 방패질로 마구 폭력을 휘둘렀다. 100여명의 노동자들이 중경상을 입었다. 노조간부 3명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20여명의 노동자들이 연행 위협을 받고 있다.

민주노총은 울산과 청주의 노동자들이 경찰의 폭력침탈에 맞서 자신의 몸에 신나를 뿌리고 저항하고 있다며 경고했다. "더 이상 내몰릴 곳이 없는 노동자들은 극단의 투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다. 참여정부에 명토박아 둔다. 만일 울산이나 청주에서 다시 비극적인 참사가 일어난다면 그 책임은 정부에 있다.

아울러 정계와 경제계 그리고 언론계에 수두룩한 노동귀족론자들에게 묻는다. 언제나 비정규직 노동자를 내세워 정규직을 '노동귀족'으로 살천스레 몰아댄 당신들 아닌가.

정규직 노조간부들의 비리를 마음껏 질타해도 좋다. 하지만 울산과 청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폭력적 탄압에 왜 당신들은 침묵으로 일관하는가. 정규직 노동자 전반을 싸잡아 귀족으로 몰아갈 만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옹호하던 당신들 아닌가.

노사정 가운데 가장 전투적인 쪽은 사용자, 다음은 정부

현실을 냉철히 톺아볼 때다. 한국의 '전투적 노사관계'에서 가장 전투적인 쪽은 사용자들이다. 얼마나 모진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를 아예 묵살하고 있지 않은가. 사용자들의 전투는 정부당국의 공권력으로 구체화한다.

그럼에도 현실은 물구나무 서있다. 방어적 싸움에 나선 노동자들을 전투적이라고 착각한다. 신문과 방송의 '확성기' 탓이다.

반면에 울산과 청주에서 외롭게 부르짖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절한 호소는 들리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 어디일까. 그 분노의 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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