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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1월이면 미국의 한인 이민 역사가 100년이 된다고 한다. 그 행사준비로 분주한 한인 사회를 보면서, 생각보다 역사가 무척 긴 것에 감탄하고, 낯선 땅에서 지금의 한인 사회를 일구어 놓은 초기의 이민자들에게 미안함과 경외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의 미국 내 한인들의 실제 위상을 떠올리고, 한국과 북한과 관계를 그들이 떠나왔던 50-80년대식의 시대착오적인 사고방식으로만 인식하고, 미국의 눈으로 세계사를 이해하는 한인들을 여전히 심심찮게 접하게 되면 한인 이민 100년사가 결코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1903년 1월 13일 미국 하와이주 오아후섬 남동부에 있는 호놀룰루항에 갤릭호를 타고 온 102명의 한인들로 시작된 초기 미주한인 역사는 우리들 대부분이 알고 있는 것처럼 사탕수수밭의 노동자로서의 힘겹고, 고단한 삶이었다.

1902-1903년에 이어진 기근과 열강들의 틈에 끼어 허덕이던 대한제국의 말로를 뒤로 한 채 그들은 희망과 꿈을 안고 미주이민의 첫발을 딛게 되지만, 흔들리던 조국은 몇 년 후 을사조약을 체결하고 결국은 일본제국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고, 그들은 머나먼 낯선 땅에서 나라 없는 백성으로 살아가야 했다.

하루 10시간의 노동과 한 달 월급 15달러를 받으며 사탕수수 노동자로서, 그리고 나라 없는 백성의 설움을 껴안고, 다른 나라 땅에서 살아갔던 그들이 바로 미주 한인 1세대들이다.

그런데도 주권을 상실한 조국을 위해 그들은 힘든 노동의 대가를 주권을 찾기 위한 독립자금에 아낌없이 받쳤다고 한다. 그들에게 조국은 도와줘야 할 나라, 살려내야 할 나라였다. 차별 받고, 천대 받는 미국생활에서 든든한 방패막이 역할은 결코 기대조차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미국은 무엇이었을까? 나라 없는 백성으로 미국에서 살아가는 그들에게 강대한 미국은 고국의 운명을 위해 도움을 요청해야만 하는 대상이었다. 따라서 그들에게 가해졌던 차별과 천대에 항의는 생각조차 할 수도 없는 나라였다.

이민 1세대에 이어 다음 세대의 한인들은 조국의 광복과 더불어 나라 없는 백성의 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들의 부모보다 상당한 수준의 교육을 받으며,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생활을 할 수가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주로 노동자로서 살았던 이민 1세대에 비해 다양한 전문직종으로 사회활동 영역을 넓혀가게 되었으니 할아버지-아버지-나에 이르는 이민역사에서 이민 1세대의 역할은 다음 세대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102명(미국에 정착한 정확한 이민자 수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하지만)으로 시작된 미국 속의 한인 이민자들은, 2000년도에는 75만7천여명(그 중에 시민권자는 42.2%)에 달하게 되었다. 이밖에 매년 유학을 위해 미국을 찾는 사람, 사업상 상당 기간 머무는 한인 등을 포함한다면 상당한 수의 한국인들이 지금 미국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3년 동안의 미국생활 속에서 얻은 나의 솔직한 생각은 상당수의 한인들이 각기 다른 환경 속의 한인들과 서로 이해하며 사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떠나온 한국에 대해 바르게 인식하고 있지도, 무엇보다 그들이 미국 속에서 당당히 살아가는 것 같지도 않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미주 이민역사를 잘 몰랐던 나는 미국 생활 초기에 상당수의 이민 2세대나 3세대들이 피상적으로, 비논리적으로 무조건 한국의 현실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솔직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더욱이 새로 유입되어 들어오는 한국인들 중 상당수가 한국의 정치나 사회 현상에 지독한 반감을 가지고 있거나, 미국에 대해 대책 없는 짝사랑에 취해 있는 경우가 많아 그들과 한국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면 그들이 언어와 생김새만 같지 사실은 서로 다른 민족이라는 생각이 들고 했다.

지금의 한국 현실이 한국인이 원하는 이상적인 상황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싸잡아 매도할 만큼 형편없이 부패하거나 희망이 없는 나라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그렇게 생각 없이 비판만 하는 것이 그들에게 무슨 이득이 되는 건지 난 도통 모르겠다.

난 개인적으로 한국은 지난 한국전쟁 이후 독재정부에서 군부통치시대로, 그리고 그 후에 시작된 민주정부와 지금의 국민의정부까지 이르는 과정이 발전을 향해 한 단계 한 단계 차근차근, 하지만 좀 답답하게 밟아가고 있을 뿐이지 과거로의 회귀나 후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내가 생각하기에) 수구보수 냉전적 사고 방식을 가진 일부 한국의 정치인이나 언론들과 같은 시각으로 한국을 보고 있을까?

그 이유는 짐작컨대, 미국이 그들에게 생존을 위한 비상구였다는 사실과 미국 내 한국언론의 영향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무슨 말인고 하니, 그들에게 미국은 자의든 타의든 오랜 세월 생활 기반이 되어 온 곳이었던 반면에, 한국은 사실상 귀환이 불가능한 곳으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결코 기댈 언덕이 아니었다는 것이다(지금도 상당 부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생존을 위해 미국정부의 감정을 건드리는 것을 원치 않았고, 더 나아가 정서적으로 이름뿐인 한국보다 미국이 좀더 가깝게 느껴졌을 거라는 것이다.

게다가, 이곳에서 3년 동안 살면서 접해본 미국 내 한국 언론들은 분단이라는 한반도 상황을 들먹이며, 철저히 미국정부 편에서 한반도의 상황을 이해하고 설명하려 드는 논조의 글을 쓴다는 것이다.

미국 내 한국 언론들은 한국 내 보수언론보다 더 보수적이다. 그리고 거의 항상 양비론적 입장에서 국내 정치를 평한다. 이들 언론은 즉 민족적 주체 의식도 없으며, 다양한 시각을 전달하지도 못하고,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그것을 접하는 한인들의 시각이 어떻겠는가(50-80년대의 미국 내 한국 언론도 그랬을까?).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이 곳에 살면서, 이런 부류의 한인들이나 언론들에 대해 가장 유감스러운 것은 한국에 대해선 지나칠 정도의 비판을 서슴지 않고 훈수 두기를 좋아하는 그들이 미국에 살면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에는 그리 깊은 사유를 하지 않으며, 적당히 포기하고 여전히 고개 숙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 성장을 기초로 이제는 제 목소리를 내고 살아도 될 것 같은데 아직도 미국의 보수 한국 언론들이나, 미국정부의 소리에 흔들리는 갈대 같은 한인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는데, 이런 내 감정이 그들 말처럼 내가 아직 미국생활이 짧아 뭘 몰라서일까?

힘든 노동으로 고단한 삶을 살았지만, 조국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을 보여주었던 이민 1세대들이 다음 세대에 바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조국을 빼앗기고 떠도는 설움 없이 당당히 미국사회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민 1세대 이후엔 조국 없는 설움도 없고, 미국 속에 한인의 위상도 높아져가고, 무엇보다 교육받은 많은 한인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데도, 왜 미국 내 한인들의 목소리는 작기만 한 것일까? 그것이 모두 한국정부의 무능 탓이라고만 해야 한다면 이민 1백년 역사 동안 그들은 무엇을 했을까?

미군의 탱크에 깔려죽은 가엾은 여중생들의 재판이 무죄로 판결이 났어도 어느 곳 하나 미국정부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미국 내 한국 언론들과, 두 미군들이 실형을 받게 되면 미국인들이 한인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것을 두려워해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미군 가족에게 위로금을 전달하는 '좋은 이웃 되기 운동'이라는 이름의 한인단체를 보면서 연민과 함께 분노를 느낀다. 그들은 이민 1세들이 그들에게 바란 것이 '비굴한 이웃'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 걸까?

당당히 사는 것이 그들에겐 그렇게 어려운 걸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미국의 모든 한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님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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