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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하던 인질 전원 석방 소식이 전해지자 환호성과 함께 감격의 눈물을 쏟아낸 아프간 피랍인질 가족들.
ⓒ 오마이뉴스 안윤학
아프가니스탄에 남아있던 한국인 인질이 모두 풀려난다. 다행이다. 모든 신문이 1면에 통단으로 편집했다. 방송도 환호했다.

당연한 일이다. 19명의 목숨마저 위태로웠기에 더 그렇다. 다만 조금은 냉철할 때다. 석방의 환호 속에 억장이 무너지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살해당한 두 명, 그 가족이다.

유족의 슬픔을 위로만 할 일은 아니다. 마땅히 교훈을 얻어야 옳다. <조선일보> 사설마저 "이 사태가 남긴 교훈에 대해서도 모두가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져야 할 시점"이라고 썼다.

하지만 생뚱맞다. "우리는 이번 사태에서 납치 테러단체와 직접 협상하는 선례"를 만들었단다. <조선일보>는 "이것이 앞으로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러한가. 문제의 핵심이 탈레반과 직접 협상으로 추락한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에 있을까. 심지어 <조선일보>는 "국내 일부 세력은 이 불행한 사태마저 반미에 이용하려 시도"했다고 꼬집었다. 그 비야냥은 한국에서 미국 책임론을 제기하는 여론이 전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고려하지 않는다. <조선일보> 스스로 말했듯이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적극적 협조가 없었다면 이번 사태가 해결되기는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새삼 <조선일보>의 사설을 비판하는 까닭은 더 있다. 적잖은 사람이 그 논리에 공감하고 있어서다. 그래서다. 우리는, 대한민국은, 또다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잘못을 되풀이 할 가능성이 높다.

인질 사태를 차분히 톺아볼 때다. 석방 합의의 이면에 어떤 조건이 있는지 보다 중요한 게 있다. 김선일에 이어 다시 한국인 두 명이 생떼같은 목숨을 뺏기지 않았던가.

왜 그럴까. 어느새 잊고 있지만 인질 사건을 주도한 탈레반 사령관이 밝힌 이유를 이제라도 곰곰 새겨야 옳다.

"우리 조국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게 침략 당했다.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보내고 미국을 도운 모든 나라들은 우리의 적일 수밖에 없다."

탈레반 사령관의 울분에서 '아프가니스탄'을 '이라크'로 바꿔 볼 일이다. 아니, 이라크는 9·11테러와도 아무 관련이 없기에 더 그렇다.

그래서다. 명토박아 둔다. 또 다른 한국인이 참극을 당하기 전에, 이라크 철군을 진지하게 검토할 때다. 이라크에 더 머물기는 젊은 군인들을 위해서도 위험하다.

최근 서울에서 만난 미국 정치학자 조지 카치아피카스는 부시의 이란 침략이 차근차근 준비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카치아피카스는 미국이 6자회담에 적극적으로 나선 가장 큰 이유가 이란 침략에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미국 조지 부시 정권의 제국주의 야욕이 이란 침략을 꾀하는 징후는 여러 곳에서 읽을 수 있다. 부통령 딕 체니는 곳곳에서 '군사 공격'을 살천스레 들먹인다. 이라크를 점령한 미군은 자신을 공격하는 민중의 배후로 이란의 혁명수비대를 지목한 지 오래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전쟁 가능성은 100%가 아니다. 여러 가지 정치 변수가 있다. 하지만 평화를 바라는 민중이 할 일은 언제나 전쟁의 작은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최대한 비극을 막는 데 있다.

분명, 미국의 부시 정권이 도박할 가능성은 높아가고 있다. 카치아피카스는 네오콘이 부시 이후까지 집권을 노리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고 김선일이 참혹하게 숨졌을 때 경고했듯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남은 인질이 모두 풀려나기로 합의된 오늘, 거듭 진지하게 당부한다. 이라크에서는 자주적 결정으로 철군해야 옳다. 그것이 또 다른 참극을 막는 유일한 길이다. 침략전쟁 파병으로 추락한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스스로 높일 길이다. 다음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도 이라크 철군 문제에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밝힐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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