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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에 참석, 할머니에게 드리는 편지를 낭독하는 김민하양
ⓒ 조호진
'평화를 사랑하는 한국 청소년 역사모임'을 추동한 김민하(여·17·성남외국어고1년)양은 지난해 일본에서 열린 '야스쿠니 반대공동행동' 시위에 참석한 전력이 있다. 뿐만 아니다. 중학교 1학년(2004년) 시절에는 정부가 어려운 한자어로 크레파스 명칭을 정해 어린이를 차별했다며 국가인권위에 진정, 마침내 주황색(朱黃色) 명칭이 살구색으로 바뀌게 했던 전력의 주인공이다.

민중교회 목사인 엄마와 외국인노동자 인권운동가인 아버지로 인해 일찌감치 역사와 시대를 읽게 된 소녀. 그는 엄마가 시무하는 성남 '산자교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진경팽(2006년 9월 사망) 할머니를 만나 일본군의 파렴치한 성범죄 행위를 알게 됐다. 그리고 일본에 항의 계획을 세운 끝에 원정시위 하러 나서게 됐다.

다음은 김민하 양과 일문일답.

- 위안부 문제에 대해 관심 갖게 된 계기는.
"아주 어렸을 때라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어머니는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라고 함) 산자교회(경기도 성남의 민중교회 - 담임목사인 김현희 목사가 민하양의 어머니)에 진경팽이란 이름의 위안부 할머니가 계셨어요. 혼자 사시는 그 할머니 집을 엄마와 함께 여러 번 심방을 갔는데 그 과정에서 일본군에게 강제 위안부로 끌려가 고통을 겪었다는 말을 들으면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됐어요.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설명을 들었고, 중학교 3학년인 작년에는 야스쿠니 반대공동행동 시위 참여하기 위해 일본에 가면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더욱 관심 갖게 되었어요."

- 그 할머니의 삶이 어떠했나.
"아주 조그만 단칸방에서 혼자 살고 계셨어요. 누구도 돌봐주는 사람 없이 아픈 과거에 시달리면서 모습을 보면서 정말 안타까웠어요. 할머니께서는 잠을 잘 때마다 일본 군인들의 환청이 들린다며 힘들어 하셨어요."

- 교과서, 학교, 선생님 혹은 친구 등을 통해 위안부 할머니 문제를 들어본 적 있는가.
"고 1때 같은 반 다른 조가 수행평가의 일부로 정신대 할머니들을 찾아가서 동영상을 찍어오는 방학숙제가 있었어요. 그리고 중 3때 배운 근현대사에서 위안부 문제가 조금 자세하게 나왔던 것 같아요."

- 일본에 항의방문을 가야겠다는 마음을 언제 가졌나.
"중학교 1학년 때(2004년 8월) 크레파스 색깔 명칭 때문에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한 적이 있어요. 어린이들이 모르는 어려운 한자인 주황색(軟朱黃)을 크레파스 색 명칭으로 표기한 것은 어린이의 인권을 침해한 것이라는 판단에서 아빠의 도움을 받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고 마침내 바뀌게 됐어요(기술표준원은 2005년 5월 KS 표준의 관용색 명칭을 전면 개편하면서, 기존의 '살색'에 해당하는 명칭을 살구색으로 최종 확정).

그 일을 통해 여럿이 함께하면 잘못된 것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그래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고통을 주고도 모른 체하는 일본에 항의방문 할 자신이 생겼고, 작년에 항의방문단을 만들어 일본에 가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아서 무산됐어요."

(아버지 김해성 목사는 외국인 4명과 함께 지난 2000년 11월 "특정인종(황인종) 피부색과 유사한 색을 살색으로 표기한 것은 차별행위를 조장하는 것"이라며 다른 이름으로 바꾸어달라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같은 진정을 받아들여 산업자원부 산하 기술표준원에 '살색' 이름을 바꿀 것을 권고했고, 기술표준원은 지난 2002년 11월 '살색'을 '연주황'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함께 기념촬영. 아래 왼쪽 첫 번째가 김민하양
ⓒ 조호진
- 최근 미국 하원이 '위안부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는데 혹시 알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미국 의회의 결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뉴스에서 들었어요. 자세히는 알지 못하지만 위안부결의안은 미국 하원에서 일본 정부에게 위안부 문제에 관해 책임을 묻기 위해 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근데 우리나라가 해야 할 일을 미국이 하는 것 같아 뭔가 창피한 느낌이 들어요."

- 일본 정부는 미국 의회 '위안부결의안' 통과를 막으려고 로비를 하는 등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기에 급급했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잘못을 빨리 시인하고 보상해주면 그냥 끝날 텐데, 그걸 지금까지 끌고 온 일본 정부를 볼 때 정말 안타까웠죠."

- 일본을 방문해 위안부 문제를 항의할 텐데, 지금 마음이 어떤가?
"처음 이 일을 하기로 했을 땐 같이 할 애들을 모으기가 어려워서 걱정이 많이 되었는데 11명이 참가하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그런데 조금 떨리기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해요. 하지만 지금은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열심히 할 거예요."

- 일본 정부에 대해 무엇을 항의하고 싶은가.
"먼저 공식적으로 사과하라고 해야겠죠. 그리고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과 필리핀 등 각국의 강제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보상을 해주도록 요구해야죠. 위안부 생활로 인해서 신체적 정신적으로 겪게 된 여러 가지 고통에 대해 보상하라고 요구할 것입니다. 좀 더 공부해서 항의할 내용을 자세하게 만들려고 해요."

- 일본 학생들과 만난다면 혹은 편지를 쓴다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가.
"이번에 학교(성남외고 1학년생 3주간 미국 학교에서 공부)에서 미국에 가게 했는데 거기서 일본 아이들 몇 명을 만났어요. 그래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대부분 잘 몰랐고,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그래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조금 이야기 해주었는데 그래도 관심이 없어 안타까웠어요. 저렇게 무관심하니 일본 정부가 위안부 할머니 문제에 대한 책임을 모른척하고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엇보다 진실 된 역사를 알기 위해 노력하라고 부탁하고 싶어요."

- 일본의 양심세력(시민단체 등)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언제인가 일본의 시민단체에 대한 다큐를 본적이 있는데 거기에 나온 시민단체는 자기 나라의 잘못을 인정하고 우리나라의 유물을 돌려주는 일을 도와주는 것을 본 적이 있어요. 그런 것처럼 일본 시민단체들이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들에게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진실을 알게 하고, 잘못을 인정하게 하는 일을 우선적으로 했으면 좋겠어요. 더 나아가 일본 정부와 국민을 설득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사과와 보상을 하도록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일본 친구들아, 우리 평화의 노래로 만나자!
일본친구들에게 보내는 평화의 편지

'일본 친구들에게 보내는 평화의 편지'는 광복절 62주년인 오는 8월 15일 우에노 공원과 이치가와 루터센터 정문 앞에서 진행하게 될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와 보상을 촉구하는 항의 행동'을 낭독할 예정이다.

다음은 '일본 친구들에게 보내는 평화의 편지' 전문이다.

일본친구들아 안녕?
나는 한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한국 학생 김민하라고 해.
나는 진경팽 할머니라는 분을 교회 목사님인 엄마를 통해서 오래전에 알게 되었어. 어린 나는 엄마와 함께 할머니를 보러 할머니 집에 자주 갔었지. 할머니의 집은 정말 작고 누추한 곳이었어. 햇볕조차 들지 않는 단칸방에는 항상 이불하나가 깔려 있었고 그 위에는 바싹 마른 진경팽할머니가 혼자 계셨어.

진경팽 할머니는 산골의 가난한 집 둘째로 태어나셨어. 집이 너무 가난해서 엄마는 품팔이를 하고 오빠는 머슴살이를 해서 먹고 살았지. 할머니는 엄마를 도와 목화를 따는 일을 했는데 할머니가 15살이 되던 해에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어. 일본 헌병들이 와서 할머니를 끌로 가 버린 거야. 나보다 더 어린 나이인 15세에 말이야.

지금 15살이라고 하면 중학교에 다니는 어리 디 어린 학생인데 생각도 못할 일을 당하고 만 거야. 할머니의 어머니께서는 딸을 잡아가지 못하게 하려고 말리다가 헌병의 발에 차여 쓰러지시고 할머니는 엄마만 연발 외치다가 일본 헌병들에게 끌려갈 수밖엔 다른 수가 없었어. 그렇게 끌려간 할머니는 배를 타고 여러 군데를 거쳐 대만 기륭의 굴속의 위안소로 끌려갔어.

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신대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고, 그것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도 조금은 알 수 있었어. 정신대로 끌려간 할머니와 다른 여자들은 매일매일 7시쯤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9시부터 군인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데. 보통 20분 정도씩 군인을 상대했는데 그렇게 해서 늦은 밤까지 군인들을 받아야만 했었어. 또 저녁밥 먹는 시간도 따로 없어서 밥을 못 먹을 때도 많았고…….

그 때문에 한국에 돌아 와서도 밥을 조금씩밖에 드시지 못하는 것 같았어. 할머니 집에는 아침마다 도시락 하나가 배달되는데 할머니는 그걸로 3끼를 다 해결하고도 매일 밥을 남기셨어. 할머니는 내가 방문할 때마다 점점 더 마르시는 것 같았어. 할머니의 팔과 다리는 정말 뼈밖에 남지 않아 정말 안타까웠어. 아니 할머니의 몸 전체가 정말 앙상한 뼈밖에 없었어.

할머니는 강제로 끌려간 위안소에서 매독이라는 성병에 걸려 고생하셨고, 병원도 없어 군인이 일주일 마다 검사를 하고 주사를 놔주었다고 했어. 그렇게 끔찍한 생활을 하면서 할머니는 죽고도 싶고 도망치고도 싶었지만 그 곳에서 감시를 당하며 살아가는 할머니의 머릿속에는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을 거야.

한 2년 전쯤 할머니 댁에 갔었는데 할머니의 얼굴은 더욱 좋지 않아 보였어. 할머니께서는 밤마다 군인들이 부르는 환청이 들려 잠을 이룰 수 없었고, 문 앞에서 군인들이 서 있는 모습이 자꾸 보여서 집에 있는 것조차 무섭다고 했어. 그 때 나는 할머니께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정말 미안한 마음밖에는 없었어. 그러다 할머니는 너무 힘들어서 양아들의 집으로 가셨는데 작년 8월에 전화통화까지 했는데 돌아가시고 말았어.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

할머니는 생활보호대상자로 한 달에 한번 돈을 받으셨는데, 여기저기 아프신 데가 많아 약값을 대기에는 역부족이었어. 진경팽 할머니는 다리가 많이 아프셔서 걸어 다니지 못했기 때문에 자원봉사자들이 할머니의 잔심부름 등을 도와드렸어. 게다가 할머니는 밥을 조금밖에 드시지 못해서 점점 앉아있거나 누워 있는 시간이 늘은 거지. 만약에 할머니가 정상적으로 치료를 받고 사회적으로 좋은 환경에서 생활할 수만 있었다면 이렇게 힘든 삶을 사시다가 돌아가시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할머니를 통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알기 시작했고, 그 때문에 일본과 우리나라 간에 여러 가지 갈등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 그래서 작년에는 야스쿠니 반대 시위에도 참여했었어. 또 그것을 하면서 강제 위안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어. 일본은 우리나라 강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한 적이 없었고, 그에 따른 보상도 없는 것은 당연했지.

나는 사과와 보상 없이는 일본과 한국이 진정한 이웃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 그래서 나와 한국의 몇몇 친구들과 함께 일본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하기로 한 거야. 나는 아빠의 도움을 받아서 이번 방문단을 구성했고, 이번에 일본에 가서 일본 정부와 아베 총리에게 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한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게 될 거야.

지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의 나라에서는 전쟁과 테러가 끊이지 않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있지.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은 전쟁으로 평화를 파괴시키려는 사람이 계속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지금 일본은 과거 일본군대의 침략전쟁과 범죄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하기 보다는 감추려고만 하는 것 같아 안타깝고 불안해.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의 사람들은 일본의 그런 태도를 군국주의 부활 움직임으로 보고 있어.

일본의 친구들아!
한국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이러한 끔찍한 비극은 또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 우리 서로 친구가 되지 못하고 또 다시 가해자와 피해자로 만난다면 그것은 생각만 해도 견딜 수 없는 일이야. 그래서 일본이 전쟁범죄로 피해를 준 모든 국가와 사람들에게 공식으로 사과하고 보상하라고 끊임없이 촉구하는 거야.

하지만 일본에도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믿고 있어. 한국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고 일본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아. 그런 사람들이 손에 손을 맞잡고 힘을 모은다면 못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해. 그렇게 된다면 한국과 일본의 밝은 미래는 열릴 거야. 우리 한국과 일본 간의 갈등을 해결하고 세계의 평화를 열어가는 데 합심하는 친구가 될 수 있으면 좋겠구나.

일본 친구들아!
우리 함께 평화가 넘치는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었으면 좋겠어. 모든 것을 파괴하고 사람들에게 고통만 주는 전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꼭, 꼭 기억하자. 그래서 너희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 일본의 역사를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거야. 진정한 평화는 전쟁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기억을 바탕으로 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럼, 우리 만날 때마다 평화의 노래를 부르고, 평화의 악수를 나누고, 평화의 음식을 나누면서 하늘과 땅에도 평화, 우리 몸과 마음에도 평화의 열매가 가득 열리게 하자. 그럼 공부 열심히 하면서 건강하게 잘 지내. 안녕!!!

2007년 8월 15일
대한민국 경기도 성남 외국어고등학교 1학년 김민하

태그:#김민하, #김해성 목사, #산자교회, #진경팽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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