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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 4일.

많은 이들과 영화와 음악을 통해 소통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고민을 함께 나누었던 고 정은임 아나운서가 우리 곁을 떠나간 날이다.

▲ 정은임 아나운서가 떠나던 3년전 그날에도 그녀의 부재를 슬퍼하듯 많은 비가 내렸었다.
ⓒ 박병우
그녀가 떠나가던 그날에도 하염없이 비가 내렸었다.

(그녀의 기일 하루 전날 MBC 홈페이지의 아나운서 게시판에 김완태 아나운서의 추모의 글이 포탈사이트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벌써 3년이 흐른 지난 8월 4일. 불의의 사고로 떠난 그녀를 기억하고 뜻을 기리기 위해 '정은임 추모사업회(준)'가 '아름다운가게'(www.beautifulstore.org)와 함께 추모 바자회를 열었다.

▲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 가게가 함께하는 아름다운 하루' 입구
ⓒ 박병우
정은임 아나운서의 사망 1주기를 맞아 '정은임 추모사업회(준)'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탄생하면서 생긴 자체적인 팬 모임(www.worldost.com/정은임.com) 주최로 정은임 아나운서의 기일인 8월 4일에 맞춰 매년 열리는 행사이다.

▲ 정은임 아나운서를 추억하는 팬이 사진을 찍고 있다
ⓒ 박병우
이른 아침부터 '아름다운 가게' 서울역점을 찾은 이들의 발길이 이어진 가운데 엄마 손을 붙들고 나온 어린 아이부터 백발이 흩날리는 노인까지 다양한 이들이 이번 행사에 참여했다.

▲ 이날 행사에는 많은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층의 사람들이 찾아 성황을 이루었다
ⓒ 박병우
▲ 물건을 고른 손님들이 계산을 하고 있다
ⓒ 박병우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 가게가 함께하는 아름다운 하루'라는 타이틀로 열린 이번 행사는 컴퓨터, 모니터, 전자제품, DVD타이틀, 음반, 도서, 의류 등 총 200여점의 물품을 기부받아 치러졌다.

행사가 열린 아름다운 가게 서울역점 내에는 그녀의 음성이 담긴 당시의 < FM영화음악 > 방송이 흘러나왔고 그녀를 기억하는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 행사장안에는 당시의 '정은임의 FM영화음악'이 흘러나와 그녀를 기억하는 팬들의 가슴을 아련하게 했다
ⓒ 박병우
이미 첫해인 1회에는 200만원(특별기부금 70만원 포함), 2회에는 182만 7천원이 기부된 바 있고 올해는 4일 하루동안 수익금 136만2000원이 전액 아름다운 가게에 성금(불우이웃돕기)으로 기부된다.

올해에는 지방에 거주하는 팬들을 위해 지방의 아름다운 가게에 물품을 기증해 참여하기도 했다.

▲ 행사를 마친 정은임 아나운서의 팬들
ⓒ 박병우
비가 많이 내리는 날씨에도 바자회에는 많은 이들이 참여하여 정은임 아나운서를 추억하며 좋은 취지의 행사에 동참했다.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 가게가 함께하는 아름다운 하루'는 내년에도 계속 될 예정이며, 추후 상영회나 봉사활동 등을 통해 너무도 일찍 떠나버린 정은임 아나운서를 추억하며 그녀의 마음을 기억하는 행사 등도 계속될 예정이다.

"FM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
정은임 아나운서를 추억하다

▲ 많은 이들에게 영화와 음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가르쳐 주었던 故 정은임 아나운서
ⓒimbc
정은임 아나운서.

생전 정은임이라는 자신의 이름보다 정든님으로 불리길 더 좋아했던 그녀가 떠난 지 벌써 3년이 지났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그녀를 떠나보낸 수많은 팬들은 아직도 그녀와 방송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도 그녀가 잠들어 있는 대성리 묘소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심야 시간이 되면 아직도 라디오를 통해 그녀의 음성이 들려 올 것만 같다. 그녀의 부재가 믿어지지 않을 따름이다.

1992년 11월~1995년 4월까지 MBC FM의 < FM 영화음악(이하 정영음)>을 진행하면서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씨네21>과 <키노>, 정성일 영화평론가 등과 함께 씨네필 뿐만 아니라 영화를 사랑하던 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영화 정보 전달 역할뿐만 아니라 공유하며 담론을 형성하는 장을 본격적으로 마련해 주었으며, PC통신 게시판을 통한 청취자와의 즉각적인 교류를 시도하였다. 다양한 사회계층을 반영하는 영화와 비할리우드영화들을 국내외 영화들을 소개하며 80년대 문학 청년들의 문화수요욕구 확대와 90년대 이십대청년들의 영화광 세대로 전달되는 다리 역할을 하던 메신저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정은임 아나운서 홈페이지 참조).

1995년 4월, 타의에 의해 방송을 그만두고 난 후 PC통신 등을 통해(추후에는 인터넷 카페 등으로 이어진다) 이례적으로 컴백운동이 몇년간 지속될 정도로 그녀의 방송과 영화에 대한 열정을 사랑하던 이들이 많았다.

영화를 전공하지 않았었으나, 신입 아나운서로서 심야 영화음악 프로를 맡게 된다. 단순히 대본을 읽어나가는 박제된 진행자가 아니라 끊임없이 노력하여 전문적인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열정을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잠든 새벽, 말랑말랑한 음악만을 틀어주는 게 아니라 여태까지 방송으로 접해보지 못했던 다른 그 무엇이 있었다. 단순한 심야 라디오 방송이 아니라 어느새 청취자들에겐 보이지 않는 장벽을 걷어내고 정은임이라는 존재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때론, 청취자들은 '정영음'을 통해 <굿모닝 베트남>나 <볼륨을 높여라> 같은 작품에서 느끼던 일탈의 해방감과 갈증을 해소시키는 청량제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

심야 시간대라고는 하지만 오프닝과 클로징에서 들려주던 그녀의 사회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애정, 때로는 비판적인 멘트는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영향을 준 사건이었다.(후에 그녀는 노조에 적극 참여했다가, 방송을 그만두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성복, 신경림, 정호승 등의 작가를 좋아했었고, '행복한 책읽기'와 '우리말 나들이'를 진행하기도 했던 그녀는 평소 인문, 미술, 예술에도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여 주었었다.

98년 유학길에 올라 노스웨스턴대학교대학원에서 '한국의 영화 마니아'라는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수여하기도 한다. 팬들이 그렇게 기다리던 8년 만에 2003년 10월 'FM영화음악'의 진행을 다시 맡게 된다. 그러나 일년도 채워지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프로그램이 폐지가 되고 만다.

2004년 8월 4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그녀는 그렇게 무정하게 많은 가르침을 남기고 우리 곁은 떠나갔다.

리버 피닉스를 사랑했었고, 타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관심, 항상 청취자와 함께 호흡하며 꿈을 꾸던 '우리의 정든님'은 3년 전 곁을 떠났지만 좋은 세상을 꿈꾸던 그녀의 마음과 방송을 통해 전해주었던 깊은 울림은 오래도록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서 지속될 것이다.

이미 지금쯤 하늘에서 그렇게도 좋아하던 '리버 피닉스'를 만나고 있으셨을지도…

태그:#정은임, #FM영화음악, #아름다운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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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쪽 분야에서 인터넷으로 자유기고가로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에 대한 생생한 소식과 리뷰를 전해 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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