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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터넷을 여행하다 보면 이런 경험을 하게 된다. 게시판에 글 또는 댓글을 작성할 때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다. 이게 무슨 연유인가 살펴보면 말뜻도 두루뭉술한 '제한적 본인확인제'라고 한다.

빨리 댓글도 달아야겠고, 늘 내 집처럼 드나들던 포털인데, 귀찮아서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쓰고 클릭을 한다.

하지만 귀찮아서 토를 달지 않고 누른 클릭 한 번이 나비효과처럼 미래사회를 위협하지는 않을까? 다가오는 감시 사회 또는 누군가가 나를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으로 감시할 수 있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는 사회를 만드는 첫단추는 아닐까? 누군가 나를 지켜볼 수 있다는 염려는 우리를 수동적인 사람으로 바꾸지는 않을까?

귀찮아서 누른 클릭 한 번에 프라이버시가 죽어간다면 믿을 것인가

전 세계적으로 사례가 드문 일이면서도, 우리나라에서만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들이 있다. 성인이 되기 전에 동사무소에 가서 열 손가락을 회전지문으로 찍었던 기억, 주민등록번호 13자리 속에 감출 수 없는 정보들이다.

대게 이런 정보를 얻고자 하는 정부는 범인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는 점과 행정 처리 등에서 효율성이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과연 CSI 같은 과학수사로 '미드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미국이나 여름이면 수많은 젊은이들이 떠나는 유럽에서는 이런 일들이 당연한 일일까?

놀랍게도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에서 지문을 수집하는 경우는 범죄인에게만 제한된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전 국민을 잠재적 범인으로 간주한다.

행정의 효율성과 복지가 발달한 선진국에서도 사회보장번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당신 한 사람을 꼬집어 잡아낼 수 있는 유일한 식별번호를 가진 번호 체계가 아니다. 말 그대로 사회복지를 위한 번호로서 생년월일, 남녀, 출생신고지 등을 기록할 수 없으며, 어느 도시에 가서 언제든지 사회복지번호를 재발급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재발급 받아 본 분이 있는가?

이처럼 선진국에서는 국민의 개인정보를 지켜주기 위하여, 고유한 식별 체계나 생체 정보를 국민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아날로그 시대의 주민등록번호를 발 빠르게 디지털하고 있다.

이미 프라이버시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이 주민등록번호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여왔다. 고유한 식별번호로 국민의 정보를 컴파일링 하는 문제에서부터 시맨틱웹 기술로 개인의 행동을 예측하고 추론하는 문제로까지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를 '빅브라더스'라고 부른다. 빅브라더스가 무서운 것은 감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할 국민이 늘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눅이 들어버린다는 점이다.

결국 수백만을 먹여 살릴 천재, 창의력 있는 인재를 양성할 수 없을 것이며, 웹 2.0과 같은 새로운 개념과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할 역량도 사회는 잃어버릴 것이다.

오늘날 국민의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할 국가가 앞장서서 주민등록번호 체제를 옹호하고 유지하고 있다. 마치 사이버 공간에 익명성이 사라지면, 악플과 욕도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주면서 말이다.

국가는 일제강점기부터 국민의 통치 수단으로 자리 잡은 제도들이 디지털 시대에는 잘만 활용하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도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빈대가 무서워 초가삼간을 불태울 지침을 내놓고 있는 정부

지금 글로벌 경쟁을 하는 모든 기업들은 포털에서 플랫폼 기반의 웹 2.0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 유독 IT 강국 대한민국의 선관위에서만 선거 UCC를 홍보하고 발전시킬 생각은 못하고 빈대가 무서워 초가삼간을 불태울 지침을 내놓고 있다.

유독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표현의 자유를 살려나갈 수 있도록 사이버 공간을 설계하고 제시해야 할 정보통신부가 앞장서서 주민등록번호체제를 옹호하고 지키려 한다.

더 염려되는 것은 IT 강국 우리나라에 프라이버시와 표현의 자유 등 논란거리에 대한 주장이 균형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정보인권 등 가상공간의 문제를 염려하는 시민단체는 함께하는 시민행동과 진보네트워크 정도에 그치고 있다. 국민도 편리함만을 쫓는 함정에 빠져있다. 결국 행정의 효율 또는 오랜 통치 수단의 디지털화만을 고려하는 정부를 견제할 세력이 균형을 이루고 있지 못하다.

다시 말해 다가오는 유비쿼터스 사회의 프라이버시는 보호할 세력과 활용해야 할 세력 간에 힘의 균형을 잃은 것이다.

우리의 프라이버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 44조의 5(게시판이용자의 본인확인)에서 정한 '제한적 본인확인제'의 시행에 따라 7월 27일부터 본인확인이 되지 않은 이용자는 인터넷의 공개 게시판에 게시물 작성이 제한된다. 

익명성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 하지만 실명제가 반드시 악플과 욕설을 줄이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건에서 악플로 고소당한 사람들이 이미 실명등록을 하였으며 IP가 추적되는 집 등에서 글을 쓰다 적발된 사례에서도 알 수 있다. 

오히려 작은 악플 하나로 고소까지 당하리라는 생각, 많은 악플러를 일일이 찾아가 공권력이 조사하기 어려운 여건, 군중심리 등 다른 요인들에 의해 악플과 악플러는 증가한다.

주민등록번호를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법 자체가 가지고 있는 위협이 크다. 주민등록번호체제 자체는 일찌기 사라졌어야 할 문제점이 너무나 많은 식별체제이기 때문이다. 

유비쿼터스 사회에는 이보다 더 많은 디지털 식별체제가 등장하여 프라이버시는 설땅을 잃어가고 있다. 국민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야 할 국가가 앞장서서 문제가 생길때마다 주민등록번호체제를 이용하여 쉽게 해결하려는 발상이 가진 심각한 위협을 깨달아야 한다. 

주민등록체제를 하루 빨리 없애고 새로운 번호체제를 선진국처럼 구축해야할 정부가 문제해결의 방법으로 제시하는 주민등록번호의 활용은 임시방편일뿐 미래 사회를 밝게하는 정책이 될 수 없다.


태그:#제한적 본인확인제, #프라이버시, #개인정보, #UCC, #주민등록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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