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필자는 지난 6월 17일 노무현 대통령과 언론인의 대화에 참석한 뒤로부터 한 달여간 언론단체와 정부와의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 관련 논의에 참여해 왔다. 이 논의에는 언론단체에서 한국인터넷기자협회 회장인 필자를 비롯해 정일용 한국기자협회 회장, 이준안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김환균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회장, 오연호 한국인터넷신문협회 회장 등이 참여했다. 정부 측에서는 안영배 국정홍보처 차장, 양정철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김종민 국정홍보비서관이 대화에 임했다.

이 논의 마당은 한계가 명확한 자리였다. 정부 측은 선진화 방안을 강행할 방침이었고, 언론단체는 철회를 요구하고 있었다. 양측의 입장만 놓고 보면 대화는 불가능했고, 중론의 합의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게임이었다. 그러나 정부와 언론단체 모두 선진화 방안의 문제점을 충분히 인지했고, 대화를 통한 문제점 해소 원칙에 동의해 대화를 진행하게 되었다.

지날 한 달여 동안 모두 4차례의 공식 협의가 진행됐다. 첫 회의에서 대화의 원칙과 주요 의제 등을 확인했고, 두 번째와 세 번째 회의에서는 주요 의제에 대한 장시간 격론과 논의를 진행했다. 그리고 마지막 4차 회의에서 공동발표문 시안을 확정하였다. 이 과정에서 양측은 수시로 의견 조율을 진행하였다.

공동발표문 초안을 마련했을 때 참석한 언론단체장간의 이견은 없었다. 당초 6월 말 중에 논의를 마무리하기로 했지만 기자협회 내부의 입장 확인을 위해서 나머지 언론단체와 정부 측은 2주간의 시간을 더 기다렸다. 지난 5일 기자협회 취재환경개선특별위원회에서의 공동발표문 거부에 이어 12일 기협 운영위의 최종 거부 결정으로 공동발표문 합의가 무산되었다.

기자협회의 위치나 정부 부처 출입 비율을 봤을 때 기협 내부의 입장이 중요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이번 기자협회의 거부 결정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던져주고 있다.

▲ 지난 5월 22일 오후 세종로 정부합동청사 브리핑실에서 국정홍보처의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 발표를 취재하고 있는 기자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공동발표문과 기협 특위안 큰 차이 없어

필자는 기자협회 특위의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한다. 그러나 기자협회 특위가 내세우고 있는 반대의 논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박상범 특위 위원장(KBS 기자)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반대의 논리로 ▲총리 훈령 규정에 대면접촉권 확보를 위한 구체적 내용 부재 ▲정보공개청구제도의 개혁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상 부재 ▲수사기관 등 특수 출입처 기자실 개방시 이름도 알지 못하는 동네신문부터 온갖 사이비 기자들로 넘쳐나게 될 것이므로 엠바고를 깨지 않는다는 신뢰가 있는 출입기자들 출입 등을 내세우고 있다. 또한 박 위원장은 공동발표문을 수용하게 되면 기자협회가 정부 측에 협조한다는 인상을 주게 된다는 우려를 언론매체에 밝힌 바 있다.

기자협회 특위는 별도의 안을 마련해 정부 측과 추가 협상을 벌인다는 방침이다. 그 별도안을 보면 크게 ▲취재 회피 공무원에 대한 처벌과 적극적 취재 응대 공무원 가점 부여 ▲등록기자증을 통한 정부청사 출입 ▲기존의 취재윤리강령 준수 ▲정보공개 회피시 처벌 등 정보공개제도 강화에 대한 조항 ▲수사기관 등 특수 출입처 출입과 관련, 출입기자에게 자율적 운영 보장 ▲서울중앙지검 이외 4개의 지검(서부지검, 동부지검, 남부지검, 북부지검) 독립된 기사송고실 마련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자협회 특위의 안과 정부-언론단체 공동발표문의 14개 합의사항 및 그간 논의 내용을 종합해 볼 때 둘은 큰 차이점이 없다. 공동발표문의 14개 합의사항에는 기협 특위의 요구사항이 거의 반영되어 있다. 다만 검찰청 및 경찰서 출입과 관련 개방형 브리핑제로 전환 존치 내용이 엇갈리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작은 차이는 이후 정부와 언론단체 간의 세부 협의에서 반영될 수 있다고 본다. 정부 측은 합의사항과 적극 검토사항, 추가 논의사항 등으로 그간의 협의 내용을 세분화하고 지속적으로 대화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특히 공무원의 의도적인 취재 회피와 관련해 정부 측은 총리훈령의 구체적인 내용을 언론단체장에게 제시했다. 이 내용에 관한 주요 언론시민단체 관계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오히려 "공직자들이 반발하겠다"는 평가도 있었다.

정보공개제도강화와 관련해서는 공동발표문 합의 이후에 별도의 정보공개TFT를 구성해 학계-언론계-정부-국회의 참여를 바탕으로 한 정보공개법 개정안을 만들어 9월 정기 국회에 개정을 요청하기로 했다.

필자가 봤을 때 기자협회 특위의 안과 언론단체-정부와의 공동발표문 및 세부 협의 사항은 큰 차이가 없다. 부분적 차이점은 향후 충분히 개선하고 대책을 강구할 수 있는 사항이다.

그러나 기자협회 특위는 현장 기자들의 여론을 수렴하지 않고 정일용 기자협회 회장이 독단적으로 정부와 협상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점을 분명히 하자. 공동발표문 합의 시안은 언론5단체장이 참여해 정부 측과의 협의를 통해 만든 안이다. 기자협회장이 혼자 제시한 안이 아니다. 협의 과정에서 여타 언론단체장과 정부 측은 기자협회의 입장을 충분히 논의하고 반영하고자 했다. 기사송고석 총량유지를 비롯, 검찰청과 경찰청 기자실 유지, 취재 회피 공무원에 대한 징계 등 대부분은 기자협회 현장 기자들이 요구해 온 사항이었다.

정부 기자실이 메이저언론 기자들만의 공간인가

기자협회 특위의 공동발표문 거부는 정부와의 기 싸움에서 지지 않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라고 본다.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 기자실은 기자협회 기자들만의 독점적 공간이 아니다. 정부 부처 기자실과 브리핑 룸은 출입과 취재를 원하는 등록된 기자에게 개방돼야 하며 불편함과 차별 대우 없이 운영되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기자협회 특위는 반대 결정 과정에서 여타 언론단체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보인다. 특히 정부 부처를 빈번하게 출입, 취재하고 있는 인터넷언론과 전문지, 풀뿌리매체, 시사프로그램 PD 등이 겪는 어려움과 차별에 대해서 아무런 해소대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는 박상범 기자협회 특위 위원장의 인식에 잘 나타나 있다.

"수사기관 등 특수 출입처의 기자실을 개방하게 되면 이름도 알지 못하는 동네신문부터 검경 수사내용 자체를 돈으로 사고파는 온갖 사이비 기자들로 넘쳐나게 될 것"이라며 "검경 수사상황 등을 고려하고 엠바고를 깨지 않는다는 신뢰가 있는 출입기자들이 출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오마이뉴스> 7월 12일 "기자실 개선이 헌법소원감? 코미디다")

이 같은 인식은 어불성설이다. 기득권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반대 논리에 불과하다. '이름도 알지 못하는 동네신문'은 검찰이나 경찰서 기자실을 출입하는 안 되는가? '엠바고를 깨지 않는 출입기자'들? 여지껏 검찰 및 경찰서 출입을 독점하면서도 경우에 따라서 특종 경쟁으로 엠바고를 허다하게 파기한 전례는 대부분 기성 언론에서 이뤄졌다.

현재 정부부처 출입은 기자협회 등 주요 언론단체 소속 언론사에 한해 가능하게 되어 있다. 이 제도를 원천적으로 폐지하지 않는 한 박 위원장이 말하듯 동네신문부터 온갖 사이비 기자들로 넘쳐나게 될 수 없다. 해당 언론단체에 가입할 때 여러 가지를 점검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면 해당 언론단체에서 걸르면 된다. 박 위원장의 말에 따르면 기자협회를 비롯한 인터넷기자협회, 인터넷신문협회 등은 이름도 알지 못하는 동네신문부터 온갖 사이비 기자들이 가입한 단체가 된다. 전혀 그렇지 않다.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검찰과 경찰서 출입기자실을 메이저 언론이 여전히 점유하겠다는 발상이 아니라면 박 위원장은 이런 인식을 버려야 한다. 박 위원장은 KBS <미디어포커스>의 진행자로서 우리 사회의 언론개혁을 위해 뛰고 있고, 기성 언론의 잘못된 취재 및 보도 행태를 비판하는 주요한 역량이다. 스스로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

또한 등록기자증을 갖고 청사 출입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기자협회 특위는 주장하고 있다. 현재 등록기자증을 갖고 청사 출입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기협 특위는 이 점을 말하고자 할 것이다. 사전 약속 없이도 등록기자증을 제시하면 청사 출입과 공무원 대면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취재에는 최소한의 원칙이 있어야 한다. 무턱대고 쳐들어가서 뒤지는 식의 취재로 인해 발생하는 인권침해와 부적절한 정보 유출 등에 대해서 기자들도 자제하고 책임의식이 있어야 한다.

▲ 지난 6월 17일 오후 서울 상암동 디지털매직스페이스 스튜디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과 언론인과의 대화' 장면.
ⓒ 청와대브리핑

언론문제, 위헌 소송으로 해결될 문제 아냐

기협 특위는 정보공개의 수위를 높이고 이를 회피할 경우에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필요한 주장이다. 하지만 이는 구호와 주장으로서 가능하지 않다. 법령에 의거해야 한다. 즉 정보공개법 개정안을 만들고 국회에서 처리해야 발효된다. 정부가 임의로 정보공개제도 강화를 위해서 공무원을 자의적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 이를 잘 알고 있을 기자협회 특위가 구호로만 점철된 정보공개제도 강화를 외쳐봐야 실효성이 없다. 따라서 정보공개법 개정을 위한 학계-언론계-정부-국회 간의 TFT를 구성해 개정안을 만들고 9월 국회에 합의 상정해 통과시켜야 한다. 이런 방안이 이번 언론단체와 정부 간의 협의에서 충분히 논의됐고 구체적인 방안까지 검토한 바 있다.

언론단체와 정부의 협의 과정은 한계가 있는 논의였다. 앞서 말했지만 근본적으로 정부와 언론단체의 입장이 정반대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결론은 자명하다. 정부는 강행하고 언론인은 저지를 위해 맞서게 된다. 언론의 문제는 헌법재판소에 위헌 소송을 하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언론 스스로 풀 문제이다. 폐쇄적 배타적 기자실 문화와 출입기자단의 특권화 등은 올바른 취재 관행과 문화라는 측면에서 언론계가 자발적으로 해법을 제시하고, 정부와 협의해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문제다.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이 언론계의 여론 수렴을 제대로 하지 않고 급하게 강요되는 바람에 큰 갈등과 대립을 낳은 점은 분명하다. 정부는 언론의 대정부-정보접근권 차단의 문제를 너무나 안일하게 여긴 측면이 있다. 이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근본적인 취지인 권력과 언론의 투명한 관계정립과 취재 문화의 개선은 절실한 과제이다. 이 점에 있어서 언론 스스로 대안을 내놓지 않고 반대만을 하고 있다. '국민의 알권리'를 볼모로 내세우면서 정작 '언론인의 책무와 과제'는 제시하지 않고 있다.

필자는 10개의 브리핑룸과 기사 송고석과 국가보안법 개폐 중 어느 하나를 택하라면 국가보안법 폐지를 택하겠다. 브리핑 룸과 기자실은 없어도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해 보도할 수 있지만 언론과 표현, 사상과 출판의 자유를 가로막고 있는 희대의 악법 국가보안법 문제를 외면하는 언론인에게 '언론자유와 국민의 알권리'를 논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악의적 보도를 일삼는 <조선일보> 등 수구언론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다. 필자의 글이 오도되지 않도록 사족 같지만 덧붙인다. 브리핑 룸과 기사송고석은 당연히 필요하다. 또한 국가보안법도 없어져야 한다.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 분명 문제가 심각하다. 그러나 반대로 언론의 취재 관행과 일부 수구언론의 품질 역시 너무나 큰 해악을 끼치고 있다. 정부를 비롯해 언론자유를 저해하는 우리 내부의 적과도 치열한 투쟁이 있어야 한다. 공동발표문 합의 발표가 무산되었지만 언론자유와 국민의 알권리 신장은 언론에 있어서 영원한 과제이다. 이제 반대만을 위한 반대를 접어야 한다. 언론 스스로 해법을 제시하고, 실천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대자보 등 여타 매체에도 중복 게재할 계획입니다.


태그:#기자실, #공동발표문, #한국인터넷기자협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