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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형근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4일 국회의원연석회의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경제협력 활성화, 남북자유왕래, 북한 방송.신문 전면수용, 북한 극빈층에 대한 쌀 무상지원 등을 골자로 한 새 대북정책 '한반도 평화비전'을 발표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세상을 살다 보면 별 별일이 다 있다. 한나라당이 그제 내놓은 새 대북정책이 그렇고, 한나라당의 새 대북정책에 대한 보수 언론의 반응이 그렇다. 한미FTA 때와는 정반대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한나라당이 내놓은 새 대북정책은 파격적이다. 누구 말대로 정말 한나라당이 내놓은 정책일까 싶을 정도다. 그것도 과거 대북 강경론자인 정형근 의원이 주도해 만들었다는 점에서 격세지감을 실감케 한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이어지는 구체적인 남북 화해 프로세스를 제시하고, 남북간 통신과 언론의 전면 개방과 자유 왕래 등을 선언한 것은 기존의 햇볕정책 프로그램보다 한 발 앞서 나간 것들이다. 인도적 차원에서의 대북 쌀 15만t 무상 지원(극빈계층 300만명분)이나 연 3만명 규모의 북한 산업연수생 도입처럼 기존의 상호주의를 넘어선 적극적인 대북 협력 자세도 돋보인다. 서울과 평양에 경제대표부를 설치하자는 제안 역시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의 새 대북정책에서 특히 도드라지는 대목은 매우 구체적이라는 점이다. 그만큼 이번 정책 마련에 많은 정성을 쏟았다는 방증이다. 새 대북정책 입안을 주도한 정형근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결코 대선용이 아니"며 "한나라당이 개방정책으로 터닝한 것으로 보아도 좋다"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닐 수 있겠다 싶을 정도다.

그래서인 듯싶다. 오늘(6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한나라당의 새 대북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선 것은.

<조선> "좌파 보수식 성형수술"-<동아> "비빔밥 정책" 비판

▲ <조선>은 반북 이데올로기를 통해 보수 세력의 이념적 지주 역할을 해왔다. 사진은 2004년 11월 조선일보사 앞에서 색깔공세 중단을 촉구하는 규탄집회를 열고 있는 공무원노조, 민주노총, 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 회원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조선일보>는 6일 사설에서 한나라당의 새 대북정책을 한마디로 '좌파 보수식 성형수술'이라고 비아냥댔다. "북핵 6자 회담 진전으로 한나라당만 외톨이가 될 것 같아 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을 상당 부분 따라가겠다는 것"이라고 폄하했다. 이 같은 '왕따공포'에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전쟁이 난다'는 식의 "북한의 협박에 주눅 든 '북풍공포'가 겹쳐져 정당의 기본 노선을 뒤집어 버린 것"이라고 비난했다.

대선 전 남북 정상회담 개최 문제에 찬성한 데 대해서도 "(한나라당) 자신들도 대북 정책을 대선 정략에 이용하려 골몰하고 있다"면서 "북한 김정일 위원장이 한나라당의 이런 '좌파 보수'식 성형 수술을 얼마나 예쁘게 보아 줄지는 두고 볼 일"이라고 했다. 섬뜩한 '저주'마저 읽혀지는 대목이다.

<동아일보>는 '비빔밥 정책'이라고 몰아붙였다. "한나라당의 새 정책은 채찍은 뒤로 돌리고 당근만 앞세우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좌우를 가리지 않고 듣기 좋은 정책들만 모아 놓은 '비빔밥 정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폄하했다. 현 정부가 펴고 있는 것보다 "훨씬 심한 대북 퍼주기가 될 소지마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한나라당의 '변신'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요구했다. "최소한 지지층이라도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질타했다. "대선을 의식해 잠시 옷을 바꿔 입는 식이 돼선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무릇 "대북 정책은 당의 이념과 체질 속에서 체화된 정책이어야 한다"는 주문도 빼놓지 않았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지지층도 공감하기 어려운 대선을 의식한 기회주의적인 대북정책"이라는 평가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한나라당의 새 대북정책에 대해 왜 이렇게 날을 세워 비난하고 나선 것일까?

일단 두 신문의 사설에 나타난 논조로만 보자면 한마디로 한나라당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선을 앞둔 기회주의적 처신이라는 주장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는 <조선일보>가 <동아일보>보다 한층 완강하다. <동아일보>는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싼 한반도 주변정세의 변화에 따른 '변신'의 필요성을 그나마 인정이라도 했지만, <조선일보>는 한나라당이 '북한의 공갈'에 사실상 굴복했다고 강력하게 비난하고 있다. <동아일보>의 한나라당 비판이 새 대북정책이 한나라당의 정체성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에 강조점을 두었다면, <조선일보>는 아예 새 대북정책의 내용과 방향 자체가 잘못됐다고 '원천 무효'임을 주장하고 나섰다.

<한겨레> <중앙> 등 '한나라당 전향' 반겨

반면 <한겨레>는 "한나라당이 적극 비판해온 햇볕정책을 대폭 인정한 것은 물론이고 더 적극적인 내용까지 담고 있다"고 높게 평가했다. "한나라당이 냉전적 정체성을 벗고 평화통일 주도세력으로 거듭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도 했다. "일부 짜임새가 부족하고 현실성과 구체성이 떨어지는 대목이 적잖다"고 지적했지만 "좀 더 미래지향적이고 일관성 있게 다듬어 당론으로 확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중앙일보> 역시 한나라당의 새 대북정책은 "안보가 우선이어야 한다"고 강조해 일부 부정적인 시각도 없지 않지만 전체적으로는 "전향적인 방향으로 대북 정책을 바꾼 것"을 환영했다.

<한국일보>는 '묵은 때 벗은 한나라당의 대북정책'이란 사설에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반응을 예상이라도 했던 것처럼 "(일부) 수구언론이 '햇볕정책 베끼기' 따위의 비판에 열 올리는 것이 누구를 위해선지 모르지만, 한나라당이 어렵게 내디딘 발걸음을 멈칫대거나 되돌린다면 어리석다"고 조언했다. "설령 오로지 집권을 위한 노선 수정일지라도, 그것이 국민의 지지 기반을 넓히는 선택이라면 진작 갔어야 할 올바른 길"이라고도 했다.

이들 신문들의 사설이 한나라당이 새 대북정책을 발표한 지 이틀이 지나 나왔다는 점도 시사적이다. 그만큼 한나라당의 획기적인 변화를 평가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는 이야기다.

그런 고심 끝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한나라당의 새 대북정책을 죽이기로 작정한 듯하다. 왜 그런 결론에 도달한 것일까?

한나라당 '배신'에 '왕따' 위기 느끼나

무엇보다 한나라당이 보수의 길에서 벗어났다는 판단이 그 근저에 깔려 있다. <조선일보>가 특히 그렇다. 당장 눈앞에 다가온 대선에서 표를 좀 얻자고 시류에 영합하고 북한의 공갈에 굴복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한국 사회 보수 세력의 '리더'임을 자임하고 있는 이들 두 신문의 위기의식이 강하게 작용한 듯하다. 한나라당의 이 같은 대북 정책의 변화가 몰고 올 이데올로기 지형상의 변화가 자신들의 앞길에 결정적인 타격을 미칠 수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가 한나라당을 비판하면서 '좌파'라는 용어까지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한나라당의 새 대북정책에 큰 충격을 받았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 <동아>는 <조선>과 함께 반북 이데올로기의 중심에 서왔다. 사진은 지난 2005년 10월 동아일보사 앞에서 '동아일보의 현대판 마녀사냥 규탄 및 허위보도 언론중재위 조정신청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회원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외톨이가 될지 모른다는 '왕따 공포'에 북한의 협박에 '주눅 든 북풍공포'가 겹쳐서 정당의 기본 노선을 뒤집어 버린 것"이라는 <조선일보>의 평가에선 한나라당마저 대북 화해 노선으로 간다면 자신들이야말로 '왕따'가 돼버릴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읽혀진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독자들을 사로잡아왔던 이념축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반북 이데올로기이고, 다른 하나는 경쟁과 규제 완화, 세계화를 축으로 하는 시장주의다.

이 두 가지 이념 축 가운데서도 이 두 신문이 보수 세력의 이념적 지주로서 강력한 힘을 발휘해왔던 것은 바로 반북 이데올로기이다. 그런 반북 이데올로기가 한나라당의 '배신'으로 그 뿌리부터 흔들릴 위기에 처한 것이다. 두 신문이 한나라당의 새 대북정책을 '죽이기'로 작심하고 나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이제 공은 다시 한나라당으로 넘어갔다. 새 대북정책의 입안을 주도했던 정형근 의원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기존의 수구, 보수적이고, 수동 방어적인 대북정책에서 과감하고 공세적인 정책으로 북한을 개혁 개방으로 이끌자는 것"이라면서 "한나라당의 지지층도 이제는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이나 그 지지층은 변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보수 본색'임을 자임하고 있는 <조선일보>나 <동아일보>는 그러나 변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한나라당의 변화를 '원천 봉쇄'하기로 작심한 듯하다.

한나라당은 지난 6월 임시국회에서 자당 소속 법조인 출신 의원들의 반발과 저지로 2일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법을 처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가 <조선일보>의 일갈(7월 3일자 사설 '한나라당은 전국 대학에 2020억원을 배상하라')에 즉각 '처리'로 방향을 선회한 적이 있다.

과연 한나라당은, 또 정형근 의원은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들은 그들의 도움과 협력이 절실한 <조선일보>나 <동아일보>의 이 같은 공세와 주문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한나라당의 새 대북정책이 기로에 서 있다. 아니, 대한민국의 '보수'가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는 것일 수 있다.

태그:#정형근, #한나라당, #대북정책, #햇볕정책, #평화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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