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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몸 박정희>는 2001년에 처음 출간되었다. 그리고 많은 독자들로부터 관심을 끌면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우리 사회는 '박정희'가 지배하는 사회이다. 정치인들도 은근히 박정희의 그림자를 이용하고 있고 많은 국민들은 박정희를 한국의 인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박정희 패러다임을 뛰어넘지 못했다. 이 책이 나왔을 때 독자나 언론이 보인 극단적인 반응들도 '박정희'란 주제가 아직 극복되지 못한 주제임을 시사한다.

<알몸 박정희> 개정판이 출간되었는데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로서 이 시점에서 저자를 만나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6월초에 그를 만났다. 이 책의 저자 최상천(56)은 1951년 대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마친 뒤 고려대학교 사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리고 대구가톨릭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를 지냈다. 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과 함께 학내의 비민주적인 풍토에 맞서 싸우다 2000년 8월 "글이 쓰고 싶다"며 교수직을 그만두고 나왔다. <알몸 박정희>는 그의 첫 작품기도 하다.

<알몸 박정희> 저자를 만나다

▲ <알몸 박정희> 저자 최상천씨
ⓒ 조성용
-'박정희 향수'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 이유를 뭐라고 보시는지요?
"향수 정도가 아니고 숭배죠. 여론조사를 살펴봤더니 박정희는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로 언제나, 무조건, 압도적 1위였습니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여론조사에서도 열 번 중 아홉 번은 1위였어요.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도, 고구려제국을 이룬 광개토대왕도, 조국수호의 대명사 이순신도 가볍게 제쳤습니다. 안중근, 김구, 유관순, 김대중 등등 독립운동가와 민주화 인사를 모두 합해도 박정희한테는 한참 뒤쳐집니다. 이런 정도라면 숭배도 보통 숭배가 아니죠.

언제부터인가 박정희는 '민족사 최고의 영웅'이 되어 있습니다. '국민' 마음속에 박정희는 '한강의 기적'을 창조하고 '5천년 가난의 역사'도 끝장낸 초인적 존재로 각인되어 있죠. 보세요, 기적과 새 역사를 창조한 존재가 뭡니까? 그게 바로 신 아닙니까?

그런데 한반도에는 참으로 놀라운 일치가 있습니다. 남과 북이 똑같이 독재자를 신으로 섬기고 있거든요. 18년 독재자 박정희와 36년 독재자 김일성 둘 다 새 역사를 창조한 신적인 존재가 되어 있어요. 남쪽 국민은 박정희를 '5천년 가난을 물리치고 번영의 새 역사를 창조'한 경제신(經濟神)으로 모시고 있고, 북쪽 인민은 김일성을 '5천년 사대주의를 청산하고 주체의 새 역사'를 창조한 주체신(主體神)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얼핏보면 남과 북은 정반대인데 최고 독재자를 신으로 모시는 건 완전 일치합니다. 이 무슨 '해괴한 일치'입니까?"

- 주권자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안 갑니다. 살아 있을 때 어려웠겠지만, 이제 죽었으니 욕이라도 해야 정상 아닙니까?
"제가 반대로 물어볼게요. 박정희나 김일성이 한 5년 정도 권력을 잡았거나 민주주의를 하고 법을 지켰어도 지금처럼 신격화되었을까요?"

- 그렇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그랬으면 아마 노태우 꼴 났을 겁니다. 전두환과 노태우에 대한 대접을 보세요. 얼굴에 철판 깔고 폭력을 휘두른 전두환은 '전통'이라고 불렀습니다. 한때는 팬클럽까지 있었어요. 박정희 다음으로 세니까 '박통' 급으로 모신 거죠. 반면에 비교적 부드러운 노태우는 물태우라고 불렀어요. 우습게 본 거죠. 한국인 대부분은 조폭적 독재자라야 대통령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보더라도 그래요. 김대중 정권 5년의 업적은 박정희 정권 18년을 압도하고도 남거든요. 한국정치사 최초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었고, 6.25 이래 최대 국난이라는 외환위기를 가장 빠르고 가장 성공적으로 극복했고, 산업 구조조정을 통해 한국을 정보화 선진국으로 만들었고,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평화공존의 길을 열었고, 김대중 개인은 한국인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했습니다.

대구에서 태어나서 대구에서 살고 있는 제가 보기에도 김대중은 국난 극복, 민주화, 정보화, 남북평화공존 등등에서 그 누구도 뛰어넘기 어려운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호남사람 이외에는 김대중의 업적을 인정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경상도 사람 절대다수는 '김대중이 한 일은 퍼주기밖에 없다'고 욕을 합니다. 김대중이 18년 권력을 잡고 철권통치를 했어도 이런 욕을 먹을까요?"

- 그렇다면 신격화가 장기집권과 독재의 산물이라는 말씀입니까?
"저는 그렇게 봅니다. 장기집권을 해도 유신체제나 유일체제 같은 지독한 일인지배체제를 안 했다면 박정희나 김일성은 절대로 신격화되지 않았을 겁니다. 신격화는 결코 그들의 '뛰어난 업적' 때문이 아닙니다."

- 그럼 무엇 때문입니까?
"김일성과 박정희가 오랫동안 진짜 신처럼 군림한 결과입니다."

서로 비슷한 박정희와 김일성

-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1972년 7.4 공동성명 직후에, 김일성과 박정희는 겉으로는 '민족 대단결'을 한다고 해 놓고는 속으로는 '독재 대야합'을 합니다. 겉보기에는 요란한 통일잔치를 벌여놓고, 뒤로는 박정희와 김일성 모두 국가를 사유화해버린 겁니다. 그게 바로 유신체제와 유일체제입니다. 말하자면 유신과 유일은 대야합으로 낳은 쌍둥이인 셈이죠. 생일은 1972년 12월 27일입니다. 이날 남에서는 유신체제가 출범했고 북에서는 주체헌법이 선포되었습니다. 이게 우연의 일치일까요?

어쨌든 바로 이 유신체제와 유일체제가 독재자를 신으로 만드는 장치예요. 독재자가 국가 위에 올라타고 나라사람을 마음대로 부리는 정치시스템이거든요. 일단 신의 통치가 이루어지면 그 어떤 비판이나 저항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건 신에 대한 도전이고 성역 침범이죠.

어떻게 했느냐. 김일성은 자기의 사상을 아예 '국가의 지도이념'으로 헌법에다 못박아버렸습니다. 박정희는 국회의원 1/3을 임명하고, 판사임면권도 차지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박정희와 김일성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위에 올라타고 전권을 휘두르는 절대자로 군림합니다. 다시 말해서 국가신으로 등극합니다. 이 모델이 바로 일본제 신국(神國) 모델이고, 신국 위에 올라타고 있는 신적인 존재가 천황입니다.

'신의 나라'에서 10년, 20년 살게 되면 개인의 주체성과 주권의식은 사라지고 나라사람은 주권자에서 국가교 신도로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머릿속에 주체성과 주권의식이 있으면 너무 괴롭거든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독재자는 '국민'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전지전능한 '국가신' 아닙니까? 살기 위해서라도 독재자를 신으로 섬겨야죠."

- 박정희의 유신체제와 김일성의 유일체제가 비슷하다고 박정희와 김일성, 그리고 남과 북을 동일시하는 건 곤란하지 않습니까? 우선 두 사람은 업적이 엄청난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비슷한 처지에서 출발했지만, 김일성은 '구걸하는 나라'를 만들었고 박정희는 '한강의 기적'을 창출하지 않았습니까?
"그럴까요? 남에 '한강의 기적'이 있었다면 북에는 '대동강의 기적'이 있었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났을 때 북조선(북한)은 폐허 그 자체였습니다. 미국의 전쟁은 처음부터 끝까지 초토화작전 아니였습니까. 그래서 철저히 당했죠. 그런 나라가 불과 10년 남짓 만에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 가는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니까 '경제 기적'은 조선이 한국보다 10년 정도 먼저 이뤘다는 얘기입니다. 어느 기적이 더 큰 기적인지는 비교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군요. 남이 북을 확실하게 따라잡은 건 박정희가 죽을 무렵인 1970년대 말입니다."

- 그렇다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앞서거니 뒤서거니 '기적'을 이뤘는데, 어째서 남은 흥하고 북은 망한 겁니까?
"제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북은 유일체제가 강화되었기 때문에 망했고, 남은 유신체제가 무너졌기 때문에 흥했습니다."

- 왜 그렇게 보십니까?
"유신체제나 유일체제 같은 독재체제는 10년을 넘기면 반드시 망조가 들기 시작합니다. 정치도 경제도 엉망이 됩니다. 예외 없이 그렇습니다.정치는 오직 한 분의 입만 쳐다보는 신의 통치가 될 수밖에 없고, 경제도 오직 한 분의 처분에 달려 있으니까 시장체제가 망가지죠. 이래 가지고는 정치도 경제도 동맥경화에 걸리고, 반신불수가 되고, 결국은 사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자원을 국가가 독점소유 하거나 독점관리하고, 독재자 마음대로 배분하는 경제가 얼마나 지속되겠습니까? 10년 정도는 '기적'처럼 고도성장을 하지만, 자원 배분이 심하게 왜곡되면서 경제도 뒤틀립니다. 일본의 천황체제, 한국의 유신체제, 조선의 유일체제, 구소련의 스탈린체제, 중남미 군사독제체제가 다 그랬어요. 재벌 독점, 국가 독점을 벗어날 수가 없고, 시장 대신 독재자가 좌우하니까 경제논리는 사라지고 정경유착이 판을 칩니다. 이런 경제가 망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스탈린의 '공산당 기적'은 '한강의 기적'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유럽의 변방 국가를 미국 다음 가는 공업국가로 만들어낸 '슈퍼 기적'이었죠. 그런데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더 발전하기는커녕 나라가 망하고 무려 15개 국가로 쪼개졌습니다. 북조선(북한)도 거의 망했죠."

- 박정희가 죽었기 때문에 한국 경제가 기사회생했다는 말씀을 하고 싶은 거죠?
"박정희가 죽고 유신체제가 무너졌기 때문에 소련 꼴, 중남미 꼴, 조선(북한) 꼴이 안 난 겁니다. 간발의 차이로 파산을 면했다고 봅니다."

- 아주 독특한 시각이네요. 그런 주장의 근거라도 있습니까?
"박정희 경제는 1970년대 말에 이르면 파산 직전이 됩니다. 박정희 정권 마지막 해인 1979년에는 GNP 성장이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경상수지는 사상 최악인 41억5천만 달러의 적자를 냈고, 기름은 7일분밖에 남지 않았고, 소비자 물가는 18.3%나 뛰었고, 외환보유고는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서 일본에서 40억 달러를 들여와서야 외환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만약에 박정희의 유신체제가 계속되었더라면 경제위기가 1997년이 아니라 1980년대에 찾아왔을지도 모릅니다. 정권 교체 없이 이런 경제위기를 맞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북조선(북한) 꼴 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경제는 '각하'의 명령으로 되는 게 아니거든요."

- 선생님 얘기를 들어보면 군사독재정권의 총결산이 1997년의 경제위기군요.
"그렇죠. 김대중 정권이 이 경제위기를 극복한 방법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김대중은 군사독재정권과 경제위기 극복의 대안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제시했습니다. 구체적 처방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방향은 옳습니다. 결국 독재와 독점이 문제를 만든 겁니다. 정치든 경제든 돈이든 순리적으로 돌아야 정상화되고 발전도 합니다. 그런데 독재 권력은 정치를 반신불수로 만들어버렸고, 독점 재벌은 시장경제를 동맥경화증에 걸리게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기업은 빚으로 연명하고, 정치는 기업 돈 뜯기 바쁘고, 은행은 부실덩어리가 되었죠. 이런 독재와 독점에 대한 개혁방향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였습니다."

'박정희 향수'가 생긴 이유

- 선생님 얘기에 따르면 김대중 정권은 경제위기를 극복했을 뿐 아니라 정보화에도 일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엄청난 성공을 거둔 김대중 정권 때 '박정희 향수'가 폭발한 겁니까?
"정말 좋은 질문입니다. 민주화와 경제회생에 성공했는데 그 주역인 김대중을 존경하기는커녕 80% 이상 한국인은 김대중 반대쪽에 있는 박정희를 그리워하고 존경하고 신격화까지 했습니다. 이 얄궂은 현상을 설명할 수 있어야 '박정희 향수'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한 가지 이유는 앞에서 얘기한대로 많은 한국인이 아직도 '박정희 국민'에서 벗어나지 못한 데 있습니다. 특히 경상도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학교 선후배나 군대 상하관계처럼,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고 하듯이, 한번 '박정희 국민'은 영원히 '박정희의 국민'일지도 모릅니다. 탈북자 중에서 김일성을 비판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현상과 비슷합니다. 아무리 싫어도 해병 출신이 해병을 욕하고, '김일성의 인민'이 김일성을 비판하기는 쉽지 않겠죠. 다만 호남사람들은 예외입니다. 광주항쟁이라는 혁명적 체험이 있었기 때문에 군사독재정권의 정체를 확인하며 '박정희의 국민'에서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 죽은 박정희는 신격화하면서, 살아 있는 김대중이나 현직 대통령 노무현은 자유자재로 비판하는데, 왜 그렇다고 보십니까?
"지위가 180도 바뀌었잖아요. 유신시대에는 '박정희의 국민'이었지만 지금은 '대한민국의 주권자' 아닙니까. '국민'은 통치대상이고 주권자는 권리주체입니다. 황국신민이 천황을 씹으면 안 되죠. 그러나 민주공화국에서 대통령 씹는 건 주권자의 권리입니다."

- '박정희 향수'를 이야기할 때는 그의 경제적인 업적을 언급하곤 하는데요.
"박정희 향수의 또다른 배경으론 민주화정권의 민주화가 자유화에 머물러버린 면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자유화는 있는 사람, 자본가에게 훨씬 유리하거든요. 더 이상 독재국가는 없습니다. 이제 돈의 자유를 막을 힘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있는 사람은 돈으로 세상을 살 수도 있고, 자본가는 자유의 이름으로 노동자를 마음 놓고 정리해고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에게 자유는 시위할 때 외에는 무용지물입니다. 아니 엄청난 고통을 가져다줬습니다. 취직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고, 잘리기는 누워서 떡먹기보다 쉬워졌습니다. 자유화의 이름으로 홀로서기를 강요하면서도 아무런 지원도 없어요. 죽을 맛이죠. '국민'이라는 집단 귀속감마저 없어져 버렸습니다.

한마디로 국가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바뀌고 국가동원체제에서 무한경쟁체제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보통사람들 입장에서는 뺑뺑이 돌기는 마찬가지죠. 아니, 뺑뺑이는 무한경쟁체제가 훨씬 더 힘들고 위험합니다. 국민동원체제에서는 줄만 서면 '국민'으로 인정해주지 않습니까. 그러나 무한경쟁체제에서는 '너는 자유야!'라며 무한경쟁의 전쟁터로 내던져버리는 것입니다. 적어도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게 느낍니다.

민주화가 자유화에 머물러버리면 양극화는 피할 수 없고, 그 나라는 많아야 10% 적게는 1%의 나라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민주화 되고 나서 좋아진 건 5대 재벌, 일류대, 톱스타뿐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민주화 이후 최상위 1%가 50% 이상을 차지하는 독점현상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게 민주화인지 독점화인지 구분이 안 될 지경입니다.

민주화 이후에 독재 시절보다 안전보장이 더 안 되고 있습니다. 낡은 가족보장제도로는 사교육을 감당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대책은 부실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살자가 속출하고, 신용불량자가 넘쳐나고, 가계부채가 폭증했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도대체 누구를 위한 민주화입니까? 이 장면에서 민중은 민주화정권과 민주화세력을 거부하고 죽은 박정희를 살려냅니다. 자유경쟁의 이름으로 홀로서기를 강요하면서도 대책 없이 팽개쳐버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외면하고 박정희식 집단안보를 선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민중이 자유를 싫어하거나 홀로서기를 거부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유는 누구에게나 좋은 것이고 홀로서기는 모든 사람의 꿈입니다. 문제는 홀로서기가 너무 어렵고 고통스럽다는 것입니다. 조기유학, 사교육, 대학편입시험, 취업재수 등등을 보세요. 사람 잡죠."

"독재자 국민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고 싶었다"

▲ <알몸 박정희> 개정판
ⓒ 인물과사상사
- 책 얘기를 좀 하죠. <알몸 박정희>를 쓰시게 된 동기를 말씀해 주십시오.
"남과 북에서 박정희와 김일성 청산은 일제 잔재 청산보다 100배는 더 중요합니다. 박정희와 김일성은 자기가 법이요 진리였습니다. 박정희와 김일성 청산은 민족통일보다 더 중요합니다. 권력이 분단을 악용하지만 않는다면, 통일은 안 해도 별문제가 없습니다. 통일 이전의 서독을 보세요. 분단 상태에서도 세계 제3의 경제대국, 모범적인 복지국가를 만들었습니다. 대한민국도 그렇습니다. 제3세계 최초로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 시장경제에 모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민주화 이후 얼마나 자유롭게 삽니까? 미국이나 일본보다 더 자유를 누리는 나라가 되었어요.

분단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자유와 번영과 복지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와 김일성을 청산하지 않으면 '독재자의 국민'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독재자의 국민'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언제 또다시 유신체제로 돌아갈지 모릅니다.

어쩌면 박정희식 군사유신보다 더 무서운 문민유신으로 갈지도 모릅니다.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3개 대학 출신이 한국사회 요직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지독한 학벌사회가 왠지 두렵습니다. 어쩌면 이번 대선이 문민유신으로 가는 고비가 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곤 합니다. 이런 걱정 때문에 <알몸 박정희> 개정판을 내기로 했습니다. 우선 박정희의 정체를 밝히고 싶고, 독자들과 함께 '독재자의 국민'에서 벗어나는 길도 찾고 싶습니다."

- <알몸 박정희>를 보면 꼭 박정희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와서 책을 쓰신 듯합니다. 보통의 경우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한테는 관심조차 가지기 싫어 하잖아요. 그런데 박정희를 전면 부정하시면서 어떻게 그의 정신세계를 그렇게 정밀하게 해부할 수 있었습니까?
"일본제국이 싫다고 일본 탐구를 안 하면 독립할 수가 없죠. 독립운동하자면 일본탐구는 필수 아닙니까? 유신체제, 조폭적 국가체제, 국가교 따위를 진정으로 청산하자면 박정희는 반드시 탐구해야 할 인물입니다.

박정희 정신 탐험은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박정희란 사람이 워낙 기상천외한 인물이라 호기심도 발동했고요. 박정희의 정신세계를 들여다 볼 때는 관아법(觀我法)이랄까 관심법(觀心法)을 좀 활용했는데요, 나를 아주 깊숙이 들여다 보면 박정희도 보이거든요. 제 정신세계가 박정희의 정신세계보다 얕거나 좁지는 않을 것 같아서, 박정희를 더 깊이 보고 싶을 때마다 나를 들여다봤습니다. 그랬더니 수수께끼가 풀리데요. 아무튼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아주 많은 것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 <알몸 박정희>를 보면 박정희의 변화무쌍한 삶의 편력이 잘 드러나는데 험난한 시대를 살았던 분들의 처세술로 이해할 부분이 있는 건 아닐까요?
"물론 이해하고 용납할 건 용납해야죠. 그러나 용납하는 데도 기준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일제시대 대부분 조선인은 살아남기 위해서 침묵하고 시키는 대로 따랐죠. 생존을 위해 부역도 하고 얼렁뚱땅 넘기는 일도 많았죠. 이런 처세술을 문제 삼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러나 아무리 일제시대지만 제국의 앞잡이가 되어서 조국과 동포에게 총을 겨누는 것은 안 되죠. 그런 것까지 '시대 탓'으로 돌린다면 나라꼴이 뭐가 되겠습니까?"

- <알몸 박정희>를 읽다 보니, 박정희가 극단적인 인물이기는 하지만, 한국에는 아직도 박정희식의 사고와 행태가 널리 퍼져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 박정희 패러다임을 대체할 사회적, 국가적, 문화적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박정희를 넘어서지 못했고, 민주화정권도 박정희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극복하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죽은 박정희를 살려냈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제가 보기에 박정희 패러다임의 키워드는 국가안보와 경제성장입니다. 즉 대외적으로는 국가안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대내적으로는 경제성장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해서, 국가안보와 경제성장에 자원을 집중투입하고, 이를 통해 부국강병을 이루고 강대국에 진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박정희 패러다임 또는 부국강병 패러다임의 근간입니다. 민족적 자학과 약소국 콤플렉스에 빠져 있는 한국인에게 이보다 더 어필하는 패러다임은 찾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쓰리고 서럽던 약소국에서 벗어나 강대국 진입의 꿈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일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부국강병 패러다임에는 무서운 함정이 있습니다. 국가안보와 경제성장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 한 국가주의와 국민동원체제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힘만 생기면 언제든지 군국주의, 제국주의로 전화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입니다. 부국강병주의는 제국주의시대에나 걸맞은 낡은 이념이죠. 세계화시대, 개인화시대에는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고물입니다. 그런데도 한국인에게는 아직 매력 덩어리입니다.

김대중이 제시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양대 축으로 하는 '민주주의+시장 패러다임'은 군사정권 청산에는 유효했지만 사람들의 삶을 질을 높이는 데는 무대책입니다. 민주주의와 시장의 결합 방식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즉 미국식 자유시장경제인지, 유럽식 사회적 시장경제인지, 중국식 사회주의적 시장경제인지,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인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애매한 모습이니까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한국은 지금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고 반드시 찾아내야 합니다."

- <알몸 박정희>를 읽어보면 문체가 아주 독특합니다. 역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신 분이신데 소설보다 흥미롭게 쓰신 것 같습니다. 이런 평전은 저도 처음입니다. 최 선생님은 이를 혁명적 글쓰기라고 하셨는데 그런 문투를 채택하신 이유는 뭔가요?
"저는 나름대로 다른 발상과 다른 생각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그런 게 15년 정도 쌓였습니다. 이렇게 쌓인 것들을 세상에 던져보고 싶었습니다. 새로운 발상을 세상에 던지는 방식을 '혁명적 글쓰기'라고 이름 붙여 봤습니다.

혁명적 글쓰기는 세 가지 원칙을 지키려고 합니다. 혁명적 발상을 세상에 제시하되, 고등학생 수준이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글로 표현하고, 어떤 계기가 되면 사회혁명을 유발할 수 있는 폭발력을 가진 글을 쓴다는 것입니다. <알몸 박정희>는 이런 혁명적 글쓰기의 첫 작품입니다. 혁명적 글쓰기가 맞는지 아닌지는 독자들이 평가하겠죠.

- 대학교수직을 그만두셨는데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자유롭게 살고 싶었어요. 교수생활 18년 동안 가톨릭 권위주의, 대학 권위주의와 싸우고 나니까, '이러다가 내 인생 이렇게 종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데요. 권력과 맞장 뜨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었어요."

- 그게 뭡니까?
"앞에서 얘기했던 '혁명적 글쓰기'죠. 제가 생각하는 '혁명적 글쓰기'의 최종 목표는 국가주의,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사람나라의 철학과 시스템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교수 그만두기 전에 대충 윤곽은 잡아놨습니다만 딴 짓 하느라고 자꾸 늦어지고 있습니다."

-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이 나라에 훌륭한 시스템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알몸 박정희 - 개정판

최상천 지음, 인물과사상사(2007)


태그:#박정희, #김일성, #독재, #최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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