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X출산 폐지 데모대. 피켓에 '알아야 할 권리'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 성난 X출신 협회
프랑스에는 'X출산'이란 제도가 있다. 산모가 병원에서 출산할 때 신분을 밝히지 않고 익명으로 출산하는 것을 말한다. 태어나는 아이는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곧바로 다른 집의 양자로 들어가게 된다.

주로 남자에게 버림받은 미혼모가 아이를 낳게 돼 혼자서 아이를 양육할 형편이 안 되거나 아니면 혼외 출산을 하는 경우다.

X출산을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산부인과에서 X출산에 동의한다는 서약서에 서명하면 출산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병원(결국 국가)에서 부담하게끔 돼 있는 것이 공통점이다. 현재 세계에서 X출산을 할 수 있는 나라는 프랑스와 룩셈부르크 두 나라뿐이다.

사실 프랑스에는 신생아를 버리는 역사적 전통이 깊이 남아있다. 17세기에 이미 수도원에 마련된 탑에 신생아를 집어넣고 그 옆에 설치돼 있던 종을 울리면, 수도원에서 사람이 나와 아이를 데리고 갔다고 한다.

이는 당시 성행하던 신생아 살해나 임신중절처럼 신생아를 위험에 노출하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자연주의 작가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장 자크 루소도 자기 아이 5명을 이런 기관에 버린 것으로 유명하다.

프랑스에서 이 수치스런 탑은 1904년까지 계속 이용되다가, 같은 해 6월 '열린 사무실'로 대체된다. 산모가 신생아를 익명으로 버릴 수 있는 것은 여전했지만, 탑 대신에 사무실에 버리는 점만 달라졌다.

이런 전통에 힘입어 비시정부는 1941년 9월 출생 비밀에 관한 법령을 마련해, 2차 세계대전 당시 점령군인 독일군에게 강간당한 많은 프랑스 여성이 X출산을 이용하게 된다. X출산 법령은 몇 차례 수정을 거친 후 1993년 민법에 편입된다.

산모에게는 평생 회한, 아이에게는 평생 수치

X출산은 산모와 신생아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시작됐지만, 결국 모든 이에게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고 있다.

현재 프랑스에는 X출산으로 태어난 사람이 40만명에 이르고 있고 한 해에 평균 400건의 X출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젊은 한때 책임지지 못한 행동을 한 산모는 자식을 버렸다는 죄책감에서 평생 동안 벗어나지 못하고,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버림받았다는 수치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 중요 당사자 외에도 아이의 생부, 그리고 생모가 새로 꾸린 가정의 남편과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까지 합하면 약 200만명의 프랑스인이 X출산이란 시스템으로 고통받고 있는 상태다.

X출산을 한 산모는 보통 태어난 아이를 보지 못하게끔 돼있다. 태어난 아이는 즉시로 산모에게서 떨어져 며칠 동안 병원 측 보호를 받다가 이런 아이들만 담당하는 기관으로 옮겨진다. 신생아들은 2개월 동안 이 곳에 머무는데, 산모가 만약 이 기간 동안 마음을 바꿀 경우 아이를 찾아갈 수 있다.

X출산을 하는 산모는 주로 나이가 어리고 첫 출산인 경우가 많은데, 아무런 경험도 없는 이들은 처음 겪는 당혹스러운 상황에서 아이와 생이별하게 된다. 그나마 조금 이성을 차린 산모라면 아이의 이름을 정하고 부모의 간단한 이력과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적은 글을 남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개인 신상정보는 봉투에 넣어져 굳게 봉해지며, 아이가 성년이 된 후 찾아와 친부모의 신상을 물을 경우에만 개봉된다.

어리둥절한 상황에서 자기 신상에 대해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산모는 아이를 찾는 일을 포기해야 한다. X출산을 한 산모에겐 어떤 경우든 나중에라도 자기 아이를 찾을 권리가 없다.

유일하게 산모가 행사할 수 있는 권리는 나중에 아이가 자기를 찾을 때 자기 신분을 밝힐 권리와 만남을 거절할 수 있는 권리다. 그러므로 생모와 아이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아이가 성년이 돼서 생모를 찾고 그 생모가 부름에 응하는 것이다. 만약 생모의 인적사항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라면 생모 찾기는 당연히 불가능하다.

X출산으로 태어난 아이가 성인이 돼 생모를 찾아나서는 것은 프랑스 텔레비전 단막극에서 많이 다뤄지는 소재다. 병원에서 조산원으로 일했던 한 여인이 병원 몰래 X출산을 한 산모와 아이의 사진을 수첩 하나로 묶어 보관하는 단막극을 본 기억이 난다.

드라마에서 나중에 생모를 찾으러 오는 아이들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생모의 당시 주소를 가르쳐주며 인생의 보람을 찾던 노인네. 나중에 자식을 찾게 된 생모도 이 산파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젊었을 때 생각이 짧아 아이를 버리는 엄청난 과오를 저지른 후 회한의 일생을 살다가 자기를 찾아온 아들에게 용서를 빌고 화해를 나누는 장면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받아 다른 집으로 양자로 들어간 신생아는 양부모가 나중에 비밀을 밝히는 경우 심각한 정체성 문제에 부닥치게 된다. 더욱이 주로 사춘기 시절에 탄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경우가 많은데, 한창 사춘기를 겪고 있는 청소년에게 엄청난 충격이 동반되는 게 다반사다.

"버림받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3세대가 필요하다"는 프랑스의 유명한 정신분석학자 프랑소와즈 돌토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들이 느낄 수치와 고통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X출산 아이들의 노력으로 생모 찾기 가능해져

▲ 세골렌 루아얄.
ⓒ 로이터=연합뉴스
X출산으로 태어난 아이들의 지속적이고도 간곡한 요청에 따라 프랑스 정부는 1996년 신분을 밝히지 않은 생모의 신상 찾기를 허용했다. 이후 CADCO(자기 출신 성분을 알 수 있는 권리를 위한 행동사무소)의 출현으로 이 일은 더욱 활성화된다.

이런 분위기에서 2000년 12월 가족장관보이던 세골렌 루아얄(지난 대선에서 사회당 후보로 출마)은 X출산 개선안을 발표했다. 이 개선안은 구체적인 해결책까지 내놓지는 못했지만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는 점만으로도 하나의 성공이라 할 수 있다.

2년 후인 2002년 루아얄은 X출산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친부모의 신상을 찾는 데 도움이 되도록 'Cnaop(개인신상 정보를 구하기 위한 국가위원회)'를 창설해 이들에게 돌다리 하나를 마련해준다. 성인이 된 아이가 직접 모친에게 연락할 경우 감정적·심리적 문제가 여러 가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기관이 그 중간에서 중개 역할을 해주자는 취지였다.

올해 2월 20일자 <르 파리지앵> 신문은 Cnaop에 부모를 찾는 요구가 2453건 들어온 상태고 그 중 1388건의 서류가 처리됐다고 보도했다. 처리된 서류 중 60%가 미해결 상태로 낙착되었는데 이유는 친부모의 행방 찾기가 불가능해서(45%), 부모가 자식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아서(15%) 등이다. 부모 찾기에 성공한 40% 중 12%는 부모를 찾긴 했지만 이미 사망한 경우였다.

X출산은 주로 정신적·경제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에 빠진 산모가 혼자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 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던 아이의 아버지가, 성인이 된 아이가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뒤늦게 찾아오는 일을 겪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그래서 부권을 주장하는 단체에서는 오래 전부터 X출산 폐지를 요구해왔다. 이들은 그게 안 된다면 적어도 산모 혼자서 결정하는 게 아니라 남자의 동의를 거치게끔 해야 한다며 수정안을 요구하고 있다. 아이의 출생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 있어야 하는, 위협받는 부권의 신장을 요구하는 셈이다. 어떤 단체는 X출산을 유지하되 아이가 성년이 되면 생모의 신상을 공개하자는 수정안을 내놓기도 했다.

"부권 침해"vs."중절 막기 위해 불가피, 여성의 권리"

이렇게 여러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X출산은 지금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 여기저기서 폐지안과 개선안을 내놓고 있는 와중에도 이 시스템이 계속 유지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답은 간단하다. 어느 누군가에게는 X출산이 필요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을 옹호하는 첫 번째 집단은 교회다. 임신중절을 살인으로 여기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와 신부들은 어떤 조건에서건 출산이 이뤄지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 집단은 양자알선기관이다. 프랑스는 최근 출산율 부분에서 아일랜드와 유럽 1위를 다투고 있지만 양자 수요는 여전히 많다. 양자 수요가 공급을 초과해 주로 외국의 도움을 받는데, 여기에는 외국에서 데려오는 아이의 몸값이 엄청 비쌀 뿐만 아니라 장기간을 기다려야 하는(보통 몇 년 걸린다) 불편함이 있다. 이런 면에서 X출산으로 태어나는 아이를 프랑스 가정에 손쉽게 '공급'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양자알선기관은 X출산제 폐지를 반대한다.

또 한 그룹은 페미니스트들이다. 이들은 X출산을 임신중절 권리처럼 여성이 누릴 수 있는 하나의 권리로 생각한다. 프랑스에서는 임신 12주 이전까지는 중절수술이 가능한데, 이 시기를 넘겨 임신중절을 하고 싶어도 못하게 되는 경우 산모가 선택하는 방법이 X출산이다.

X출산은 부유층부터 가난한 층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계층에서 실행되고 있다. 그러나 자식이 성인이 돼서 친부모(주로 생모)를 찾을 때, 양쪽이 만날 확률은 생모의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낮다.

생모가 낮은 사회계층에 속할 경우 자식을 만날 것을 쉽게 수락하는 반면, 생모가 높은 사회계층에 속할수록 자식 만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부끄럽고 힘든 과거가 현재 영유하는 쾌적한 생활을 파괴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다. 특히 새로 만나 함께 사는 남편의 직위가 높을수록 친자식을 보지 않겠다고 거절하는 비율이 높아진다고 한다.

▲ 자기 신분을 감추기 위해 마스크를 쓴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성난 X출신 협회

왜 버렸는지 묻지 않은 아들, 대성통곡한 엄마

지난 2월 10일 에펠탑 맞은편에 있는 트로카데로 인권광장에서 X출산을 폐지하라는 시위가 열렸다. 주로 X출산으로 출생한 아이들과 생모들로 이뤄진 시위대는 광장에 누워 몸으로 X자를 고통스럽게 재현하기도 했다.

<르 파리지앵>은 이 시위에 참가한 파니(49)라는 여성의 삶을 조명했다. 자신을 '자격 없는' 엄마로 지칭하는 파니는 26년 전 X출산으로 아들을 하나 낳았다. 알제리 출신인 파니가 당시 아이를 임신하자, 아이 아빠는 그 사실을 알고 도망쳐버렸다. 당시 파니가 엄격한 부모에게 자신의 임신을 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임신 6개월에 접어들었을 때 파니는 조국 알제리를 떠나 혼자 마르세이유로 향했다. 가족 중 파니의 임신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파니는 마르세이유에 있는 엄마 친구 집에서 만삭을 맞고 병원에 가서 X출산을 한다. 당시 파니는 이 방법만이 아이를 위한 길이라고 여겼다. 이 한 순간의 결정 때문에 자신의 삶이 회한으로 점철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해마다 아이의 생일이 되면 눈물로 밤을 지새웠던 파니는 아들이 18세 성년이 되는 해 자신의 신분을 밝히기로 결심했다. 자기 신분과 주소를 적은 종이를 아이를 버렸던 기관에 맡기면서 만약 아들이 생모인 자신을 찾으러 오면 전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나왔다. 아들이 반드시 자기를 찾으러 오라는 법은 없었다. 그러나 파니는 이 가냘픈 희망에라도 기대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파니는 마르세이유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아들의 전화를 받는다. 아들이 자기에게 첫 번째로 물어본 것은 다른 형제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왜 자기를 버렸느냐는 질문은 하지 않는 아들의 전화를 받은 후 파니는 대성통곡을 했다.

전화 접촉 후 파니와 아들은 양부모의 허락 아래 상봉했고, 파니는 양부모 밑에서 잘 자라난 아들을 지금까지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양부모의 이해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파니는 이후 아들과 함께 X출산 폐지 운동에 가담했다. 젊은 세대들이 자기와 같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러 회한으로 가슴을 치며 평생을 보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치겠다는 다짐이다.

태그:#프랑스, #X출산, #입양, #생모 찾기, #루아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번역가, 자유기고가, 시네아스트 활동 중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