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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형사9부·고의영 부장판사)은 14일 술자리 강제 성추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최연희(62) 의원에 대해 벌금 500만원의 선고 유예 판결을 내렸다. 최 의원은 1심에서 징역 6개월(집행유예 1년)을 받아 의원직 상실 위기를 맞았지만, 이번 판결이 확정될 경우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다. 여성계가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문건영(법무법인 한결) 변호사가 재판부의 판결에 대한 반박문을 <오마이뉴스>에 보내왔다. <편집자주>
▲ <동아일보> 여기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지난해 11월 10일 1심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은 최연희 의원이 서울중앙지법 재판정을 나오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최연희 의원의 강제추행 사건에 대해 항소심 판결이 선고됐다.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던 1심을 파기하고, 벌금 500만원에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선고유예란 무엇인가. 경미한 죄를 저지른 자 중에 뉘우치는 태도가 현저한 사람에 대해서 형의 선고를 미루었다가, 2년간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형벌을 내리지 않는 제도다.

즉 '앞으로 2년간 문제를 안 일으키면 없던 걸로 해 주겠다'는 뜻이다. 담당 판사는 판결을 선고하면서 "친고죄에서 용서의 의사가 표시됐으니, 처벌 조건이 약화 혹은 소멸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언뜻 들으면 그럴듯하다. 하지만 가슴 한 구석이 답답하다. 단지 감정적인 이유뿐일까?

재판부, 강제 추행이 친고죄인 이유 몰랐나

범죄가 성립하는데도 선고를 유예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재판부가 이번 사건에서 선고를 유예하면서 든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피고인이 당초부터 피해자에 대한 가해의사를 가졌다고 보기 어렵고, 추행 수단인 폭행이나 협박의 정도가 고도에 이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 강제추행죄는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거나 1심 판결 선고 전까지 고소를 취소하면 처벌을 할 수 없는 친고죄인데, 피해자가 1심 판결 선고 후에 피고인을 용서하는 의사를 표시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들은 기존의 판례와 법 이론에 비추어 논리적으로 타당한가?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친고죄와 관련된 근거를 먼저 보자. 죄를 지은 자가 처벌받는 것은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다. 예를 들어 상해를 입은 자가 피해자를 처벌하지 말라고 간곡히 요청한다고 해도 국가는 형벌권을 발동해 객관적 질서를 유지한다.

다만 예외적으로 피해자가 처벌을 요구해야 국가가 처벌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이것을 친고죄라고 하는데, 어떤 죄를 친고죄로 정해 두는 이유는 제각각 다르다. 예컨대 일정한 범위의 친척 사이에서 일어나는 절도죄를 친고죄로 정한 것은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자율적인 문제 해결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반면 강제추행과 같은 성폭력 범죄를 친고죄로 정한 것은 범인을 처벌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피해자의 명예가 훼손될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친고죄이더라도 1심 판결이 선고되면 피해자가 고소를 취소할 수 없다. 이는 국가형벌권이 너무 오랫동안 피해자의 의사에 좌지우지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다.

강제 추행죄는 친고죄다. 이번 사건은 1심 판결이 선고됐으므로 피해자가 고소를 취소할 수가 없다. 또 실제로 피해자는 용서의 감정을 표시했을 뿐 처벌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하는 '고소 취소'의 뜻을 표시한 것도 아니다.

강제 추행죄를 친고죄로 한 이유는 피해자의 뜻에 따라 처벌 수위를 맞추려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피해자가 밝힌 용서의 의사를 형식적인 고소취소에 준하는 것으로 해석한다고 해도 이는 피의자에 대한 처벌 강도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정당한 범위 내에서 양형에 고려될 수 있을 뿐이다.

1심 선고 후 피해자의 용서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친고죄의 처벌조건이 약화되거나 소멸됐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난센스'다.

피해자 사라진 강제 추행에 대한 판결

또 다른 판결 근거도 자세히 보자. 법전에서 강제 추행죄를 찾아보면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적혀 있다.

여기서 요구되는 폭행의 정도에 대해서 견해가 나뉜다. 1980년대 초 범인이 피해자를 팔로 힘껏 껴안고 강제로 두 차례 입을 맞추어 강제 추행한 사건이 있었다. 원심은 "강제 추행죄가 성립하려면 폭행의 정도가 상대방의 의사를 억압할 정도가 돼야 하는데, 그 정도의 폭행은 없었다"고 하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에 대해 "강제 추행죄의 폭행은 피해자의 의사를 억압할 정도가 돼야 하는 것은 아니고,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신체에 직접적인 물리력 행사뿐 아니라 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까지 포함하는 광의의 폭력)의 행사가 있는 이상 그 힘의 강약을 불문한다"고 밝혔다.

즉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힘의 행사가 있으면 되는 것일 뿐, 저항이 불가능할 정도로 피해자를 억압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원심처럼 강제추행의 성립 요건을 '의사를 억압할 정도'로 규정한 것은 피해자의 의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해석이다.

원심은 외적으로 가해진 힘의 정도와 피해자의 물리적 저항이 가능했는지를 고려한 그야말로 '가해자 중심적인 사고방식'이다.

대법원은 그 후 일관되게 이런 판결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판결로 돌아가 보자. "추행의 수단인 폭행이나 협박의 정도가 고도에 이르지 않았다"는 것은 여전히 외적으로 가해진 힘의 정도만을 기준으로 하는 사고방식의 발현이다.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서 행해졌는지를 따져야 할 강제 추행죄에서, 피해자의 자리는 사라져버렸다.

법치주의는 사람이 아니라 법이 사회를 지배한다는 의미다. 통치하는 사람 마음이 아니라 미리 정해 놓은 법에 따라 객관적으로 통치하겠다는 뜻이다.

촘촘히 짜여 있는 거미줄 같은 법망 안에서 우리는 법치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바로 법을 적용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법을 통치자와 구분해서 만들어 놓아도 판사가 마음대로 법을 주무르면 법치주의는 껍데기만 남는다. 지금은 법치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다는 막연한 환상조차 무참히 깨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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