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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자 <조선일보>에서 최보식 기획취재부장은 노 대통령 관련 기사를 모두 1단으로 단신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바로 옆 사설에는 노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하는 사설이 올라와있다.
ⓒ <조선일보> PDF

미움도 깊어지다 보면 사랑이 된다. 적대도 하다 보면 친구가 되기도 한다. 분노의 끝에 용서와 화해에 이를 수 있음 또한 역설의 변증법일 것이다.

<조선일보> 최보식 기획취재부장의 오늘(6월 11일) 칼럼 또한 그렇다. 노무현 대통령 대신 언론을 과녁으로 삼았다. 노 대통령보다, 노 대통령 말 한마디 한마디에 분기탱천하고 있는 언론과 기자들을 '참기가 더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의 칼럼 제목처럼 "요즘 언론이 비판받아도 싼 이유"다.

노무현 대통령은 아무도 못 말려

최보식 부장의 말은 이렇다. 노 대통령을 누가, 어떻게 말리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문제는 언론이다.

"너무 쉽게 대통령으로 지면을 채우려고 한다. 대통령의 말씀이 없다면 신문 지면을 어떻게 채울지 걱정이 다 될 지경이다."

언론과 기자들은 대통령의 말을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해 그럴지 모르겠지만, 최보식 부장은 "그렇게 참지 못하는 요즘 언론에 더 참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왜?

언론 또한 대통령 못지않게 늘 비슷한 레퍼토리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 쓰는 당사자들도 지긋지긋할 텐데, 하물며 읽는 독자들은 어떻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한마디로 '고문'이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식상한 것을 계속 전달하는 것은 '알권리'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고문'이다.

그래서 최보식 부장은 제안한다. "노 대통령 관련 기사를 모두 1단 단신으로 처리하자"고. 그러면 대통령과 시비붙을 일도, 독자들의 정신건강을 해칠 일도 없어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노 대통령 '무시전략'

▲ 우연의 일치일까. 최보식 기획취재부장이 '무시전략'을 제안한 11일, <조선일보>는 노무현 대통령의 6월 항쟁 관련 발언을 짧게 보도했다.
ⓒ <조선일보> PDF
최보식 부장의 제안은 그냥 나온 것 같지는 않다. <조선일보> 내부에서 상당한 공감대를 갖고 있는 듯 하다. 당장 오늘 신문의 지면만 보면 분명 그렇다. 1면 머리기사에서부터 사설·칼럼 등으로 노대통령의 '6·10 항쟁기념사' 내용을 또 문제삼고 나선 다른 신문들과 달리 <조선일보>는 오늘 사설과 관련 기사 한 꼭지로 간단하게 처리했다.

노 대통령의 '도발'에 '인내' 혹은 '외면'으로 맞서기로 작심한 듯 하다. 최보식 부장의 분석처럼 더 이상 "노 대통령의 정치적 의도를 위한 '밥'이 되"지 않기로 한 모양이다.

최보식 부장의 제안을 <조선일보>가 채택한다면 그것은 '무시전략'이 될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은 상대에게 '무시'야말로 최선의 방어이자 공격일 수 있음을 뒤늦게 깨달은 것인지도 모른다. 일종의 회피전략인 '무시전략'은 때에 따라선 적극적인 맞대응 보다 훨씬 효과적일 때가 있다. 특히 쟁점화 자체를 회피하고자 할 때에는 이 보다 좋은 방법이 없다.

하지만 그 뜻대로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당장 최보식 부장의 칼럼 '동서남북' 옆에는 "6·10 항쟁 20주년 날도 허공에 주먹질"이라는 사설이 실려 있다. 또 현직 대통령의 '도발'을 그저 무시하고 외면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의 '관성'도 만만치 않다. <조선일보>의 무시전략이 얼마나 갈 수 있을지, 어떻게 전개될지 지켜볼 일이다.

이 같은 무시전략은 노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조선일보>와 최보식 부장은 일단 부정적인 것 같다.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知止不殆)"라는 노자의 4자 성어까지 동원해 은근히 겁을 주려한 게 단적인 사례다.

"그 결과는 장담 못 하나, 임기 마지막 날까지 계속 마이웨이를 하시길 바란다"는 최보식 부장 칼럼의 마지막 대목은 그러나 '악담' 그 이상, 이하도 아닐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디 <조선일보>의 겁주기에 눈 하나 깜짝이나 하겠는가? 또 누가 노 대통령을 말릴 수 있을 것인가? 또 누가 진정 노 대통령을 말리려고 나서기나 할 것인가?

태그:#백병규, #미디어워치, #노무현, #무시전략, #최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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