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어계생가 입구에 지난해에 열린 수세미가 매달려 있다.
ⓒ 김정수
<경남도민일보>에 실린, '누군가 인터넷에 '원북역에 한번이라도 발길을 딛는 사람은 반드시 플랫폼을 거닐고, 주위의 풍경에 빠져들게 된다'고 썼다'는 표현이 지난 가을 필자를 잡아끌었다.

11월의 늦가을 풍경을 잡으려고 벼르고 있었으나 4박5일간의 제주도 여행 등으로 시간을 못 내다가 올해 4월 최고의 봄풍경과 만났다.

▲ 필자의 첫사랑 이름을 닮은 채미정에는 500년생 은행나무가 자라고 있다
ⓒ 김정수
원북역은 경남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에 자리한 무배치 간이역이다. 벚꽃이 만개한 지난 4월 초순 이종찬 기자, 조찬현 기자와 함께 그곳으로 길을 나섰다. 남해고속도로 군북나들목을 빠져나와 군북 방면으로 향했다. 면소재지에서 진주 방면으로 우회전해서 5분 정도 달리자 환상적인 S라인 기찻길이 눈에 들어온다.

S라인 바로 옆 언덕 위에 벚꽃이 만발해 동화 속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철길 위로 기차가 지나간다면 더 멋진 풍경화는 없을 것이다. 아직 기차가 지나갈 시간이 안된 관계로 조선시대 생육신 중의 한 명인 어계 조려 선생의 생가부터 찾았다.

어계생가(경남 유형문화재 제 159호)에는 100년 남짓 되어 보이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서 있다. 늦가을에 찾는다면 어계생가를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반갑게 맞아줄 것이다.

▲ 벚꽃이 만개한 채미정 언덕 아래로 기차가 지나고 있다
ⓒ 김정수
이제 원북역으로 발길을 돌린다. 철길 건널목을 지나 차를 세우고 촬영 채비를 하는데 기적소리가 들려온다. 기차가 원북역에 잠시 정차한 후 진주 방면으로 다시 달린다. 벚꽃 만개한 간이역을 미꾸라지처럼 비틀 몸을 틀며 빠져나간다. 건널목 바로 옆에는 정자가 세워져 있다.

▲ 채미정 앞의 S라인 기찻길 위로 열차가 들어오고 있다.
ⓒ 김정수
정자 입구에는 500년 된 은행나무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채 서 있다. 함안군에서 보호수로 지정한 나무로 높이 20m, 둘레 4.2m에 이른다고 한다. 정자로 들어서자 기와지붕 아래에 정방형의 방이 자리잡고 있다. 정자 옆에는 연못 위로 아치형의 다리가 운치 있게 늘어서 있다.

언덕 위에도 또 하나의 건물이 세워져 있다. 위로 올라서자 육각정 주변에 벚꽃이 만개해 장관을 이룬다. 사진 몇 장을 촬영하고 있는데, "빠앙!"하는 기적소리가 울린다. 다시 역으로 기차가 들어올 시간이다. 서둘러 기찻길 있는 쪽으로 뛰었다. 언덕 끝으로 미처 내려서지도 못했는데 기차가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벚꽃 뒤로 기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하얀 꽃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뒤로 기차가 지나가는 모습은 마치 은하철도 999가 은하수 옆을 지나가는 듯 환상적이다.

▲ 기차가 원북역을 빠져나가고 있다
ⓒ 김정수
열차시각표를 보니 이내 다시 기차가 들어올 시간이라 철길 건널목 있는 곳으로 내려섰다. 건널목 건너편에서 벚꽃이 만개한 언덕 쪽으로 바라보니 S라인이 선명하게 들어온다. 그 사이로 기차가 뱀이 또아리를 틀 듯 몸을 비꼬며 선로 위를 미끄러져 지나간다. 기차는 원북역에서 잠시 멈춘다. 손님 몇 명을 내려놓고는 다시 역을 빠져나가 반대편으로 멀어진다.

다시 철길 건널목을 건넌다. 정자 맞은 편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300년생 이팝나무가 버티고 서 있다. 높이 14m, 둘레 2.8m의 나무가 우람한 덩치를 자랑한다. 여름철 이팝나무에 꽃이 피면 한결 더 아름다운 자태를 뽐낼 것이다.

▲ 채미정 앞쪽의 기찻길을 걷는 이종찬 기자와 조찬현 기자
ⓒ 김정수
"이 앞에 정자가 채미정이라네요."
"네! 제 첫사랑이랑 이름이 비슷하네요."

조찬현 기자의 말에 필자는 다소 엉뚱하게 대꾸했다.

"허허!"

이종찬 기자는 농담이라 생각하고 웃고 만다. 채미정이라, 흔한 여자 아이의 이름을 많이 닮았다. 최미정, 최민정, 차미정, 추미정...

▲ 원북역 앞에서 두 기자가 사진촬영에 열중하고 있다
ⓒ 김정수
이제 발길을 원북역 쪽으로 돌린다. 기찻길을 따라 조금 걷자 역이 눈에 들어온다. 역이라 하기엔 너무나 작고 초라하다. 대부분의 역은 피난선이라는 또 하나의 선로를 두고 급행열차가 지나가는 동안 기다리는 공간이 존재하는데, 원북역은 끝까지 하나의 선로로 이어져 있다. 그리고 버스를 기다리는 대합실 같은 비를 피할 수 있는 조그만한 공간만 있을 뿐 역사가 없다.

이제껏 보아온 역 중에서 가장 작은 곳이라 할만하다. 낙동강의 세평짜리 간이역이라는 승부역보다 더 작다. 그나마 역 주변에 개나리와 벚꽃이 만개해 화려한 풍광을 자랑한다. 꽃마저 없었다면 정말 썰렁한 공간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사진 촬영에 열중하고 있는데, 이종찬 기자와 조찬현 기자가 철길 위로 걸어온다. 뒤로 채미정과 철길 건널목이 어우러진 가운데 두 사람이 걸어오자 한편의 드라마 그 자체다.

이토록 아름다운 간이역을 여행작가로 9년을 살면서도 몰랐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마산에서 1시간도 채 안 걸리는 곳에 자리한 역인데다 필자의 고향인 의령에서도 아주 가까운 곳인데 말이다.

그렇게 카메라의 원북역의 풍경을 담으면서 여름의 이팝나무꽃과 가을에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었을 때도 다시 찾아와야겠다는 생각이 강렬해졌다. 원북역 주변에는 서산서원이며, 전의이씨 쌍절각, 조열선생 신도비 등 많은 볼거리를 간직하고 있다.

이곳은 조금만 가꾸고 홍보하면 함안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부상할 수 있는 곳인데, 이렇게 묻혀 있다는 게 너무 아쉬웠다. 뒤쪽 산 언덕에 S라인 기찻길이 잘 보이게 전망대를 세우고, 도로변 쪽에서 S라인을 보며 사진 촬영을 할 수 있게 2층 규모의 정자만 만들어도 사진 촬영과 관광객들이 조망하기에 더없이 좋은 공간이 될 것이다.

▲ 채미정 앞의 S라인 기찻길 위로 열차가 지나가고 있다.
ⓒ 김정수

덧붙이는 글 | [철도와 함께 떠나는 여행] 응모


태그:#원북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여행작가로 남해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금오산 자락에서 하동사랑초펜션(www.sarangcho.kr)을 운영중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