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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가 제 자리네요. 반갑습니다."

기차가 영등포역을 서서히 벗어날 무렵이었다. 멍하니 창밖에 눈길을 주고 있다가 우렁찬 인사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키가 후리후리한 70대 가량의 노인이 물색없이 웃고 있었다. 철지난 감색양복에 중절모까지 눌러쓰고 손에는 터질 듯 묵직한 가죽가방을 들고 있었다.

어색하게 목례를 하자 싱긋 웃곤 "이거, 짐 좀 올리겠습니다"하며 부산을 떨기 시작했다. 이어 웃옷을 개어 시렁 위에 올리고 자리에 앉는 듯 하더니, 벌떡 일어나 모자를 얹어놓고 다시 가방을 내려 책과 필기도구를 꺼내고 돋보기를 찾는 둥 정신이 없었다.

마뜩찮게 지켜보다 고개를 돌려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언제는…'하는 심정이 일었다.

언제나 내 옆자리를 피해나가던 아리따운 아가씨들

▲ 여행, 또 다른 만남을 위한 선택이 아닐까.
ⓒ 나영준
여행 그것도 기차에 몸을 싣는, 누군들 낭만 한 자락을 떠올리지 않을까. 아니 사실 '낭만'이라는 단어로 포장되어 그렇지, 좀 더 솔직히 '딱 까놓고' 이야기해 보면 어떨까.

영화, 드라마 혹은 꽤나 팔리는 소설들 중 기차여행이 배경이 되었던 것들을 꼽자면 한도 끝도 없다. 어쩌면 그리도 열차 안에서는 인연들을 잘도 찾는지. 무슨 전생으로 가는 열차도 아니고. 아무튼 기차여행 중 그러한 멋진 상상에 한번 빠져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하지만 '하늘을 봐야 별을 딴다'고. 평소 아가씨들은 어쩌면 그리도 내 곁을 피해 가는지 도무지 그럴 기회 자체가 제공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그날도 '역시나'였다. 포기하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덜컹덜컹, 96년 5월의 어느 날 서울발 부산행 무궁화호가 조금씩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오징어, 땅콩, 음료수 있습니다아~."

정적을 깨뜨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기차를 타기 전 허겁지겁 마시듯 쓸어 넣은 우동 탓에 갈증이 몰려왔다. "아저씨, 여기요!" 음료를 고르다 옆자리의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저 덤덤한 눈길, 갈등을 하다 주스 두 개를 골라 집었다. 계산을 마치고 음료를 건네자 "아이고, 이거 원!"하며 감탄이 쏟아졌다.

"이거, 이거 미안하고 고마워서 어쩌죠. 이 늙은이한테."
"아닙니다. 드세요."

나 못지 않게 목이 탄 듯, 달게 비워낸다. 그러더니 질문을 던져댔다. 어디까지 가느냐, 무슨 일이냐, 대학생인 것 같은데 학기 중이 아니냐 등등. 조금 귀찮아지기 시작했지만 선선히 답해 주었다. 부산에 있는 친한 선배가 연락을 해와 떠난 길이고 현재는 휴학 중이라고.

사실, 그건 거짓이었다. 분명 학기 중이었고 게다가 시험까지 앞두고 있었다. 휴학 중인 선배에게 며칠 신세를 지고 싶다고 연락을 한 것도 나였다. 이유는? 없었다. 아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20대 젊은이들이 통과의례처럼 겪게 되는 평균적 고민이 아니었을까.

노인은 대구에 간다고 했다. 그 곳이 고향이라며 몇 년만에 가보게 되어 기분이 좋다고 했다. 그러더니 문득 내 손목에 걸려 있는 작은 염주를 보더니 불교신자냐고 질문을 던져왔다. 어머니가 절에 다니신다고 답하자 "부처님은 참으로 훌륭한 분"이라며 밝게 웃는다.

"선생님도 절에 다니시나 보죠?"
"그건 아닙니다. 종교학을 공부하는 사람인데, 굳이 밝히자면 기독교 신자죠."

눈썹 하나 까딱 않고 예상을 뒤엎는 모습에 '엉뚱한 노인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젠 보던 책을 덮더니 본격적으로 '대화모드'로 전환해, 부처님이 왜 훌륭한 성자이신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마야부인과 룸비니 동산이 어쩌고저쩌고….

솔직히… 성가셨다. 하지만 열정적인 모습에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기독교 신자라면서도 정작 석가모니와 그의 가르침에 대해 늘어놓고 있었다. 칙칙폭폭, 곤히 한 숨 쉬고 싶었지만 노인의 이야기는 열차바퀴를 따라 고대 동서양의 문화사로 달려 나가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따스한 손길에 쓰린 속은 가시고...

그렇게 대화는 역사의 골짜기와 강을 격찬 어조로 때로는 낮은 숨결로 타넘었다. 중간 중간 말씀을 낮추라 해도 가볍게 손을 저을 뿐이었다. 그런데 대전역을 지날 무렵 속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가볍게 울렁이나 했더니 이내 아랫배가 꼬여오는 느낌이었다.

술, 지난밤의 과음 때문이었다. 아마 고백조차 못하고 가슴 저려하던 짝사랑의 아픔도 한몫했을 것이다. 도대체 세상 시련은 혼자 짊어진 듯 독주를 들이부었으니 멀쩡하다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었다. 점점 숨쉬기가 가빠졌다. "저기, 잠깐만요." 노인의 말허리를 자르고 화장실을 향해 내달았다.

변기를 부여잡은 지 한참, 세수를 하고 나가려다 다시 무릎을 꿇고 헛구역질을 하고. 속이 제대로 뒤틀린 모양이었다. 한참 만에 비틀거리며 제자리에 몸을 내던지자 노인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어왔다.

"속이 많이 안 좋은 것 같은데… 이거 내가 괜히 아픈 사람을 붙잡고, 미안해서 원."
"아닙니다. 그냥… 잠시 쉬면 괜찮아질 겁니다."

대화는 끊기고, 먼 곳을 응시하며 숨을 골랐다. 하지만 여전히 속은 가라앉지 않았다. 자책해도 소용이 없었다. 어느새 머릿속까지 하얗게 변해가는 느낌이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다 나도 몰래 '끄응'하는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 때였다.

"저기 역무원 선생님, 혹시 휴대용 침통 있습니까? 여기 학생이 많이 아픈 듯 한데."

내내 지켜보고 있었던 듯 지나던 역무원을 불러 세우는 노인. 역무원은 늘 상비하고 있다는 듯 상의에서 볼펜형 침을 건넸다. 주변의 시선이 일제히 쏠려왔다. 부끄러움에 별것 아니라고 손을 내저어도 소용이 없었다. 노인은 익숙한 솜씨로 손끝으로 피를 모아나갔다.

"보아하니 얼굴이 창백한 게 아주 꽉 체했어요. 이럴 땐 그저 손을 따는 게 최고지. 아이고, 피가 새까매요. 자, 저쪽 손도 이리주고."

이어 노인은 배가 따뜻해야 한다며 시렁 위에 놓인 웃옷을 내려 한사코 배 위로 덮어주기까지 했다. 그리고 다시 엄지와 검지 사이를 힘주어 주물러주고…. 잠시 후 온 몸에 다시 피가 도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곤, 깜박 잠이 몰려왔다.

낯선 도시에서 보내온 엽서

▲ 이탈리아에서 날아 온 사진엽서
ⓒ 나영준
얼마 후 잠과 현실 사이를 오가다 눈을 뜨자 속은 거짓말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목적지가 다가오는 듯 노인은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있었다. 그때서야 아까 못한 감사의 말을 전하자 그는 선선히 웃음 지었다.

"아니, 오늘 아주 재미있었어요. 심심치 않게 말동무를 해줘서 고마워요. 사실 옆 자리에 예쁜 아가씨가 앉았어야 재미가 있었을 텐데 미안하네요. 참, 술은 과하지 않게만 마셔요. 부처님은 '저기 술집을 가리키지 말라'고 하셨다던데. 허허허."

겸연쩍고 죄송한 와중에도 훗날 인사를 하고 싶어 연락처를 물었다. 노인은 반대로 내 주소를 적어갔다. 당분간 이탈리아에 나가게 될 것 같아 국내 연락처는 필요 없을 것이라 했다. 아직 기운이 남아있을 때, 더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잠시 후 노인은 처음처럼 환한 미소를 남기며 열차에서 내려섰다. 그 순간, 왜 그랬을까. 플랫폼을 터벅터벅 걷는 노인의 뒷모습에, 까닭없이 목젖이 아려왔다. 못내 성가셔하던 마음을 모를 턱이 없었을 그, 그래도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던 노인. 뭔지 모를 삶의 속삭임이 바삭거리며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두어 달 후, 낯선 도시의 주소가 적혀 있는 엽서 한 장이 도착했다. 결국 노인은 약속을 지킨 것이다. 이번에 그는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려 펜을 들었을까. 잠시 숨을 고르다 천천히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다시 기차바퀴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여행은 즐거웠는지요. 벌써 한 달이 지나버린 일인데도 그 날 나누던 이야기가 생생합니다. 영준군, 여기는 지금 멀고 먼 이탈리아의…"

덧붙이는 글 | <철도와 함께 떠나는 여행> 응모


태그:#노인, #기차, #아가씨, #부처, #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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