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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이 22일 오후 세종로 정부합동청사 브리핑실에서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생각할수록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여태껏 이토록 모든 언론이 들고일어나 반대에 나선 일이 있었던가? 연일 모든 신문들은 1면 머리기사를 비롯하여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하여 정부의 이른바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맹폭격 해대고 있다.

그것도 <조선일보>부터 <한겨레>까지 성향을 가리지 않고 폭격자로 나서니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경향신문>은 1면 머리기사의 제목을 '5공의 악몽'이 떠오른다고 뽑아 올리기까지 했다. 도대체 무슨 일들이 벌어지기에 이렇듯 난리들인가? 정부가 모든 신문사에 검열관이라도 파견했다는 말인가?

보수부터 진보까지 '기득권 언론'의 일치단결

그런데 그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이라는 것이, 다소 단순화시킨다면 정부의 각 부처와 경찰서에 있던 기자실을 정부청사와 경찰청에 통합시킨다는 것과 기자들의 정부 청사 내 출입과 공무원 접촉 제한을 강화시킨다는 정도이다. 물론 제대로 된 의견 수렴 없이 갑자기 이런 방안을 시행하기로 했으니 언론사들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게 전 언론사들이 나서서 며칠씩 이렇게 지면을 통틀어 정부를 공격해 댈 만한 사안인지 모르겠다. 신문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욱하는 성질'과 '언론에 대한 히스테리'가 이번 사태를 불러왔다고 분석하고들 있지만, 신문들의 작금의 행태는 오히려 그들이 '욱해서 히스테리를 부리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얼마 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보복폭행 건으로 결국 구속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순전히 언론의 힘 때문이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언론이 파헤치지 않았더라면 조용히 넘어갈 수도 있었던 사건이었다. 경찰로 하여금 김 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토록 한 것은 언론이었다.

현장을 발로 뛰면서 제대로 사실을 취재하고, 재벌 앞에서 몸 사리지 않았던 <한겨레>의 근성과 용기가 큰 역할을 했다. 경찰서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서는 죽었다 깨도 나올 수가 없는 기사였다. 이제껏 언론사의 특종이 기자실에서 '죽치고' 앉아서 나온 적을 별로 보지 못했다. 기자들, 이제 폐쇄적인 기자실을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나?

기자들의 기사 송고 편의를 위해서라는 명분은 좋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이 생각하는 기자실은 해당 부처의 공무원들에게 대접받고, 그럼으로써 공무원들과 유착하는 장소라는 인식이 아직도 강하다. 이제 기사 송고 편의는 기자실이 아니더라도 인터넷선이 있거나 무선 인터넷이 가능한 곳이면 가능하지 않은가.

더 강력해진 언론의 카르텔

이번 사안이 논란이 되면서 오랜만에 기자실의 모습들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 기자실의 모습이 수년 전의 그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데에 놀랐다. 2001년에 <오마이뉴스> 기자가 인천공항 기자실에서 쫓겨날 때도 기존의 언론사들은 침묵을 지켰다. 침묵의 카르텔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 이 사건 때문에 기자실의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기자실 개혁의 목소리가 커졌고 , 참여정부 출범 후 브리핑제를 도입하면서 폐쇄적인 기자실의 문화가 많이 개선된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번에 보니 그 카르텔은 여전했고, 오히려 더 강력해 진 것 같다.

이번 기자실 폐쇄 논란이 벌어지면서 자세히 보니, 기자실의 근원적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는 듯 하다. 왜 기자들이 자기 회사 놔두고 정부 부처내의 기자실이라는 데에 자기 사물들까지 비치해 두고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는 것인가? 기자는 현장에서 취재를 해야지 자리를 지키는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무슨 고시원 같은 이런 기자실의 모습을 과연 다른 선진적인 나라에서도 볼 수 있단 말인가?

대다수 언론들은 이번 정부의 조치를 두고 국민의 알 권리가 축소되고 행정기관 감시가 약화되는 등 역효과가 날 것이 분명하다고 한 목소리로 비판하고 있다. 기존의 정부 브리핑이 충실하지 못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하더라도, 그렇다고 해서 기자실을 존속시킨다고 해서 그런 것들이 더 좋아질 수 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자실에 매일 자리잡고 공무원들과 서로 안면 익히고, 가만히 앉아서 가져다주는 보도자료에 안주하다보면 행정기관 감시가 강화되고 국민들의 알 권리가 신장되는가? 오히려 그것이 정부와 언론의 유착을 가져오고 정부의 언론통제에 길들여지는 길은 아닌가?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노 대통령이 '기자들이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기사를 담합한다'고 한 말을 부정할 수 있는 언론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얼마나 많은 특혜를 누려왔기에

온 언론들이 나서서 거품을 물고 반대하는 것을 보면서 '그동안 언론들이 기자실에서 얼마나 특혜를 많이 누려왔기에 저렇게 난리를 치는 것일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이번 정부의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두고 수많은 비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물론 이번 조치가 비판받을 만한 내용도 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그런 언론들의 비판이 순수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런 태도에서 기자실이라는 그들만의 특혜를 놓치는 데 대한 절박함이 느껴진다. 언론들은 기자실 폐쇄와 통합에 대해서는 스스로 개혁적인 자세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고 나서 정부의 언론정책을 비판해야 한다.

정치인들의 추문이나 비리에 언론인들이 개입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연희 의원의 성추행을 욕하지만, 그 이면에는 정치와 언론의 유착이라는 문제가 있었다. 왜 언론은 남을 비판하는 데는 스스럼이 없으면서 자신을 개혁하는 데는 이렇듯 인색하단 말인가? 빛의 속도로 변하는 이 시대에 기자실을 벗어나기가 그리 힘들단 말인가?

언론들이 거창하게 국민들 알권리니 정부 감시니 하며 필사적으로 '기자실 구하기 작전'에 나서는 모습은 정말 보기 좋지 않다. 대다수 국민들은 기자실이 있든 없든 별로 관심 없으니 아까운 지면 동원해서 독자들 현혹시키지 말자.

이번 사안에 대한 언론들의 비판, 다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기자실을 뺏기지 않으려는 한, 이런 언론들의 주장에는 공감하기 어렵다. 그들만의 장소인 전근대적 기자실의 개혁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이제는 기자들을 기자실에서 쫓아내야 한다.

태그:#조선일보, #한겨레, #기자실, #통폐합, #언론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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