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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 이주민 자녀의 인권 현황을 주제로 열린 이주인권포럼에 따와(22·몽골)씨와 김은주(24·새터민 출신)씨가 참석했다.(왼쪽부터) 이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바탕으로 이주 1.5세대가 겪은 어려움을 소개했다.(본인 요청으로 얼굴 공개하지 않음)
ⓒ 오마이뉴스 이민정

"조승희씨 사건을 보고 느낀 점이 많았다. 무엇보다 성장 배경이 비슷해 놀랐다. 이민 1.5세대인 점이나 언어 문제로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것이나. 학교에서 대화 상대도 없었다."

32명의 사상자를 낸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사건의 장본인인 조승희씨에게 동질감을 느낀 사람이 있었다.

따와(22·남·몽골)씨는 이민 1.5세대인 성장배경, 의사 소통 문제와 문화적 차이 때문에 또래 친구들과 멀리 지낸 과거 등을 들어 '시한폭탄' 같았던 조씨와 자신을 비슷한 인물로 봤다.

따와씨는 22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 주최로 열린 제3차 이주인권포럼에 이주민 자녀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발언자로 나섰다. 그가 들려준 국내 이주민 자녀의 생활은 미국 사회에 어울리지 못했던 조승희씨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17세 늦깎이 중학생, 졸업생 아닌 수료증 받은 이유

그는 14살 때, 먼저 입국해 일하고 있던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일본과 비슷한 나라일 것이라는 막연한 지식뿐이었다. 지난 1999년 4월 한국에 발을 디뎌놓던 날, 공항에서 맡은 매캐한 자동차 매연은 앞으로 그의 한국 생활을 암시하는 듯했다.

3년만의 모자 상봉의 기쁨도 잠시. 두 사람은 화장실도 없는 반지하 방에서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그 지하방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며 "창문 하나 없이 어두웠고, 바람이 들어오지 않아 항상 퀴퀴한 냄새가 났다"고 회상했다.

크고 화려한 빌딩숲, 멋진 자동차, 쭉쭉 뻗은 자동차의 나라였던 한국과 따와씨의 눈앞에 펼쳐진 한국은 다른 나라 같았다.

따와씨와 그의 모친을 더욱 힘들게 한 것은 '불법 체류'라는 불편한 꼬리표. 그는 "신분이 그랬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모든 게 걱정스러웠고,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하면 두렵고 어두웠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한국에 온지 2년만에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학교를 가게 됐다"며 17세 늦깎이 중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학교를 가게 됐을 때 어머니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며 "하지만 반 아이들보다 나이도 많고, 한국어도 못하고, 가난한 나라에서 온 탓인지 친구들과 어울리기는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가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처음으로 차별의 벽에 부딪혔다. 친구들은 졸업장을 받았지만, 그는 정식 재학생이 아닌 청강생이었기 때문에 수료증에 만족해야 했다. 그는 "차별이 무엇인지 느꼈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양아버지를 만나 결혼하면서 신분상의 불안은 없어졌다. 그는 현재 검정고시를 거쳐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1학년이다.

그는 서툰 한국어로 발언을 끝맺으며 "오늘같은 자리를 만들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면서도 "말씀드리고 싶은 것도, 불만도 많은데 오늘은 준비한 것까지 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탈북자는 남한 사람들에게 외계인"

따와씨 같은 타민족 이민 1.5세대가 의사소통, 사회제도 등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탈북 청소년들도 이 사회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새터민 출신 김은주(24)씨는 "내 과거를 모르는 이들과 새터민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우리들에 대한 차별적인 태도를 알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정부가 그만큼 해줬으면 됐지, 무엇을 더 원하느냐'는 말을 들었을 때 심정은 형언할 수 없다"며 "대한민국 주민등록증을 가진 합법적인 국민임에도 우리는 아직 남한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들에게 귀찮은 손님 같은 존재라고 느껴진다"고 말했다.

5년 전 한국에 온 그는 "남용되는 외래어부터 우리가 부딪쳐야 할 일은 끝이 없었다"며 "반공교육을 받은 분들이나 북한에 대해 무관심한 이들은 우리를 우주에서 내려온 외계인 취급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한국의 대학에 북한학과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재학중인 동국대에도 북한학과가 폐과될 위기"라며 "북한을 알리고, 북한 사회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공간을 위해서 북한학과는 살아있어야 한다"며 북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당부했다.

이날 포럼의 사회를 맡은 최영애 이주인권포럼 위원장은 "버지니아공대 총기사건을 통해 이민 1.5세대의 현주소를 보기 위해 오늘 포럼을 개최했다"며 "자녀 문제는 중장기적인 계획 속에서 차근차근 실현돼야 한다"고 밝혔다.

▲ 22일 국가인권위원회 주최로 열린 제3차 이주인권포럼에는 이주민 자녀의 인권을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이주민 자녀, 이주 청소년 학교 관계자, 정부 부처 관계자 등이 참석해 이주민 자녀들에 대한 정책과 사회적 지원을 알아봤다.
ⓒ 오마이뉴스 이민정

"후대에 '제2의 조승희' 나올 수 있다"

"우리 사회 이주민 자녀들의 문제를 방치하면 언젠가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인식 개선, 법제도 개정이 없으면 '제2의 조승희'가 나올 수 있다." (이강애 재한몽골학교 교감)

미국 버지니아 총기난사사건으로 1.5세대 이주 청소년들이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국내 이주민 자녀들의 현주소를 알아보는 토론회가 열렸다.

22일 오후 서울 명동 이비스호텔에서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안경환) 주최로 열린 '제3차 이주인권포럼'에서 이주 청소년 학교 관계자들이 참석해 1.5세대가 겪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2006년 교육인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이주노동자 중 법무부에 등록된 이들의 취학 가능 아동은 총 1만7287명이지만, 이 가운데 일반 학교에 다니는 재학생은 1574명에 불과하다.

이날 참석자들은 1.5세대가 겪는 대표적 어려움으로 ▲언어 장벽 ▲문화적 차이 ▲차별, 편견 등 폐쇄적 사회 구조 등을 꼽으며, 이들이 국적 정체성을 갖고 한국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학교 교육을 강조했다.

이강애 교감은 "한국 사회는 아직도 두터운 편견의 벽에 둘러 싸여 있다"며 "미국 등 선진국 외국인에게는 무조건 호의적인 반면 못 사는 나라 출신자들에 대해서는 우월감을 느끼며 차별하고 무시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주민 자녀들은 장차 자기 나라에 돌아가야 할 아이들이다, 모국에 대한 정체성 교육과 함께 한국에 대한 호감을 갖도록 자라야 한다"고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 1999년 개교한 재한몽골학교의 경우 현재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총 65명의 몽골 출신 아이들이 재학중이다.

이현선 장수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 소장은 "국제결혼가족의 자녀들은 정상적으로 태어났지만 한국 사회에서 방치되고 있다"며 "부모들의 이해부족, 교육당국의 무괌심 등이 아이들의 장래까지 고민할 여력이 없는 국제결혼가정에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하지만 이주여성가정의 현실은 복잡하지만 되레 자녀들이 다언어, 다문화를 배울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모국어, 한국어, 나아가 영어 등 이중·삼중언어교육 실시를 제안했다.

이 외에도 정부는 다문화 가정 자녀들을 위해 '다문화 가정 자녀 교육지원 대책'(교육인적자원부), 결혼이민자 자녀가 아동센터를 우선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서비스(보건복지부·농림부), 산전 후 도우미 서비스(여성가족부) 등을 제공하고 있다.

한건수 강원대(문화인류학) 교수는 "다문화가족 자녀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 고민과 논의가 필수적임에도 한국 사회의 지원 현황은 '응급구조'에 머물고 있다"며 "적응지원에 초점을 맞춰 정책 대부분이 한국문화에 대한 동화주의적 지원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태그:#이주민 자녀, #조승희, #국가인권위원회, #이주인권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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