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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달간 '팍스 아메리카나'의 미래에 대한 조명에 이어, 오늘부터 한달간은 21세기 세계질서의 최대 변수로 일컬어지는 미중관계를 다룰 예정입니다. '제국'을 꿈꾼 부시 행정부는 역설적으로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말을 앞당기고 있습니다. 반면 21세기 미국의 경쟁자라고 일컬어지는 중국은 19-20세기 초반의 '치욕의 역사'를 딛고 강대국으로 '다시' 부상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미중 양국 관계의 미래를 낙관하기 어렵고, 그 사이에 끼여 있는 한반도에 미칠 영향이 대단히 클 수밖에 없다는 점에 있습니다. 오늘날 갈등과 협력이 공존하고 있는 미중관계의 저변에는 자국 주도의 단극 체제를 유지·강화하려는 미국과 장기적으로 다극 체제를 지향하는 중국 사이의 전략적 갈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기획 2부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다뤄나갈 것입니다. 중국과 미국의 국력 비교를 통해 미국의 대중 전략 및 중국의 대응 전략, 그리고 급변하고 있는 동북아와 한반도 질서에 갖는 함의를 차분히 짚어보고자 합니다...<필자 주>


중국은 미국을 추월할 수 있을까? 그리고 미국과 중국은 협력관계로 갈 것인가, 아니면 대립관계로 갈 것인가?

중국의 눈부신 성장이 지속되면서, 미국의 전략가들이 10년 넘게 붙잡고 씨름해온 질문들이다. '설마 했는데 중국이 벌써 미국의 등뒤까지 추격해오고 있다'는 불안감의 반영이기도 하다.

그러나 적어도 경제력과 군사력 등 '하드 파워'를 기준으로 볼 때, '넘버 1 미국'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레이건 행정부 말기 때 무역 및 재정 적자라는 '쌍둥이 적자'에 직면한 미국의 경제적 지위가 쇠퇴할 것이라는 전망이 팽배했으나, 1990년대에 국내총생산(GNP)이 27% 증가했다.

같은 시기에 유럽과 일본의 GNP가 각각 16%와 7% 증가한 것이 비춰볼 때, 이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2004년 미국의 경제규모는 2~5위인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를 합친 것과 비슷하다.

군사비 비중은 더욱 높다. 클린턴 행정부 때 하향 추세로 접어들었던 미국의 군사비는 부시 행정부 출범과 함께 급상승세로 돌아서 2005년에는 약 5000억 달러에 이르렀다. 이는 세계 군사비 지출의 48%를 차지한다.

이를 잠재적 경쟁자로 일컬어지는 중국과 비교해보면, 미국의 경제력은 중국의 약 6배, 군사비는 약 10배가 높다. 이는 미국 패권주의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케 하는 물리적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무서운 추격

그러나 중국의 성장 속도도 만만치 않다. 중국이 국제정치 무대의 전면에 부상하게 된 배경에는 급격한 경제성장이 자리잡고 있다. 개혁개방이 본격화된 1978년부터 2003년까지 25년간의 중국의 경제성장을 보면, 연평균 9.5%의 경제성장률을 바탕으로 국내총생산(GDP)은 4배로 늘었고, 무역규모는 세계 30위에서 3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아울러 세계 최대의 해외직접투자 유치국이자 GDP의 약 80%를 무역에 의존하는 무역 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성장의 추세가 지속될 경우 중국이 2030년경에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비약적인 경제성장은 중국인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도 크게 기여해왔다. 약 4억명이 절대빈곤에서 벗어났고, 평균수명은 72세로 늘었으며, 문맹률도 3분의 2 정도 줄었다. 또한 1000명당 영아(5세 미만) 사망자 수는 1970년 120명에서 2004년 31명으로 줄었다.

중국의 경제성장과 관련해 더욱 주목할 점은 중국이 동아시아 경제의 '성장 엔진'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1993년부터 2003년까지 중국의 아시아 주요국들과의 무역 규모를 보면, 한국 670%, 일본 250%, 대만 300%, 말레이시아 1025%, 싱가포르 350%, 필리핀 1800%, 태국 835%, 인도 1025% 등의 증가율을 보인 바 있고, 이러한 증가 추세는 최근에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주요 아시아 국가들은 중국과의 무역에서 대규모의 흑자를 나타내고 있어 중국의 경제성장을 '기회'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미국은 중국이 아시아에서의 무역적자를 대미 수출에서 만회함에 따라 '위기'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중국 경제에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05년 중국은 영국을 제치고 GDP 순위 세계 4위로 도약했지만, 1인당 GDP는 세계 128위다. 이에 따라 2020년에 GDP가 일본을 추월하더라도 1인당 GDP는 일본의 10분의 1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빈부격차가 점차 커지고 있는데 세계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약 2억명 가량이 하루 소득 1달러 미만의 절대 빈곤층을 이루고 있고, 도농간, 지역간 격차 해소도 쉬운 과제가 아니다. 특히 급격한 자본주의화의 와중에 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아, 사회 불만 세력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아울러 GDP의 80%, 에너지 수요의 70%를 무역에 의존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높아지는 것 역시 중국 경제의 취약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중국의 경제성장은 빛과 그림자를 함께 드리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중국이 당분간 내부적 문제 해결과 경제성장에 집중할 것이라는 전망의 근거가 되고 있다.

이와 같은 중국의 경제성장은 미국에게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긍정적인 측면으로는 중국의 경제성장이 미국 기업의 수출과 투자 증대로 이어져 이윤 창출에 기여하고 있고, 중국이 약 2000억 달러에 달하는 재무부 채권을 구매·보유함으로써 미국 이자율을 낮게 유지하는데 기여하고 있으며, 저가의 중국 상품이 미국의 물가상승을 억제하고 있다는 점 등이 거론된다.

부정적인 측면으로는 2005년 2000억 달러에 달하는 대중 무역적자가 보여주듯 무역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고 있고, 중국의 지적재산권 위반으로 미국 기업이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으며, 중국의 저환율 정책으로 미국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고, 중국의 막대한 에너지 소비와 확보 추구로 미국의 안정적인 석유 확보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 등이 지적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경제력 자체가 국제정치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원천이자, 군사력 증강의 물리적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중국의 경제성장은 미국 내 '중국위협론'의 근원이 되고 있기도 하다.

미국이 이라크에 발목 잡힌 사이 중국은

미국과 중국의 국력 비교

 

 

GDP(2004)

인구(2004)

국방비(2004)

병력수(2005)

핵무기(2005)

에너지사용량(2004)

미국

10,763.9

293.7

465.0

1,474

10,300

100.4

중국

1,715.0

1,296.2

62.5

2,255

410

59.6

출처: Strategic Asia 2006-07: Trade, Interdependence, and Security, National Bureau of Asian Research(September, 2006)

ⓒ 정욱식
중국의 강대국화는 경제적인 영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공식적인 핵 보유국으로서 국제정치의 핵심적인 행위자이다. 최근 유엔 안보리를 통한 대이란 제재를 추진해왔던 미국은 중국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되고 있는 것이나, 중국이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을 계속함으로써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의 효과가 반감되고 있는 현실은 중국의 국제적 위상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이다.

또한 중국은 급격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지난 10여년간 연평균 10% 이상으로 군사비를 증강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의 군사비는 중국 정부의 공식 발표로는 세계 6위, 미국 국방부 추정으로는 세계 2위 수준이다. 특히 중국은 최근 위성파괴무기 개발, 항공모함 보유 추진,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MD)에 대응하기 위한 핵미사일 전력 증강 등 군사력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은 또한 다자 외교를 주도함으로써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있다. 1990년대 말 아시아를 강타한 금융 위기에도 불구하고 인민폐의 가치 절하를 자제함으로써 아시아 국가의 환심을 샀고, 이는 이후 ASEAN과의 자유무역협정(FTA) 및 ASEAN+3(한, 중, 일)과 동아시아 공동체(EAC) 논의를 주도하는 배경이 되었다. 또한 상하이 협력기구(SCO)와 6자회담을 주도해 중앙아시아와 동북아에서 그 위상을 제고하고 있고, 과거 적대 관계에 있었던 러시아, 베트남, 인도와의 관계 개선에 나서는 한편, 1990년대 소원해졌던 북한과의 관계도 강화하고 있다.

또한 최근 들어 중국이 이른바 '연성권력'(soft power) 측면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평가도 많이 등장한다. 즉, 중국이 경제력과 군사력 등 '강성권력'(hard power) 영역뿐만 아니라 문화, 교육, 외교 등 강압적인 힘에 의존하지 않고도 상대방에게 영향력을 투사할 수 있는 연성권력도 함께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연성권력의 강화를 통해 자국의 부상이 위협이 아니라 기회임을 강조하고, 경제성장에 필수적인 에너지원과 수출 시장을 확보하며, 대만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중국의 연성권력의 신장에 주목해 미국 스스로도 동아시아에서 연성권력을 증진시켜야 중국과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주문이 최근 많이 나오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 침공을 비롯한 과도한 일방주의 추구로 국제사회에서의 위신이 땅에 떨어진 반면에, 중국은 '소프트 파워' 외교를 강화해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국이 급격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경제적, 군사적, 외교적, 지적·문화적 위상을 높여감에 따라 향후 미중관계 및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 방향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낙관주의자들은 중국은 패권 추구보다는 경제성장에 주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패권 추구를 전제로 한 미중간의 충돌은 가능성이 낮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에, 비관주의자들은 중국이 아시아 패권을 추구할 것이고 미국은 이를 사전에 억제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미중간의 충돌은 불가피하다도 본다.

역사적으로 볼 때에도 미중관계의 진폭은 컸다. 1949년 중국공산당이 국민당을 대륙에서 축출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건설한 이후 미중관계는 크게 네 차례에 걸쳐 변화를 겪어왔다. 1949부터 헨리 키신저의 중국 방문 이전인 1971년까지는 "죽의 장막"(Bamboo Curtain)이라는 표현이 잘 보여주듯 미국 내에서 중국은 공산주의 독재체제 가운데 하나로 인식되었고, 이에 따라 미중관계라고 할 것조차도 없었다.

키신저와 뒤이은 닉슨 대통령의 방중으로 미중관계는 새로운 관계로 접어들었는데, 1989년 천안문 사태 이전까지 양국 관계는 대소 견제 및 봉쇄에 초점을 맞춘 '냉전 시대 동반자'가 되었다. 이 시기는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이 본격화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1989년 천안문 사태가 발생하자 양국 관계는 조정기에 들어갔고, 한동안 미국의 주된 관심사는 중국의 인권 문제로 모아졌다.

미중관계 미래 어디로?

1990년대 후반 이후 미중관계는 여러 가지 악재를 거치기도 했다. 1996년 대만 해협 위기, 1999년 중국의 미국 핵기술 절취 혐의 및 미국의 콕스 보고서 발표, 1999년 5월 미국의 중국 대사관 오폭 사고,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 박차 및 이에 대한 중국의 반발, 2001년 4월 미국 정찰기 사건 등이 겹치면서 미중관계는 악화되었다. 특히 이 즈음에 등장한 부시 행정부는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함으로써, 미중관계의 불안한 앞날을 예고하는 듯 했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 미중관계는 협력 기조로 돌아섰다. 미국으로서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협력이 필요했고, 중국 역시 '테러와의 전쟁'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자국 내의 분리주의 움직임을 '테러와의 전쟁'의 연장선상에서 다루고 싶어했던 것이다.

이처럼 사안별 협력과 갈등을 반복해온 미중관계는 전략적 차원에서 근본적인 갈등을 점차 내재시키고 있다. 21세기에도 단일 패권 체제를 공고화하려는 미국의 전략과 장기적으로 다극 체제를 선호하고 있는 중국의 전략은 양립하기 어려운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일종의 '거울영상효과'를 야기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언젠가 자신의 패권적 지위에 도전할 것으로 보고 이를 사전에 차단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반면에 중국은 미국의 단일 패권 체제가 내부 통합 유지와 경제성장, 대만 통일 및 한반도 안정 유지 등 자신의 사활적 문제가 걸린 사안들까지도 침해될 수 있다고 보고, 점진적이지만 착실히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키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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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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