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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의 콩코르드 광장에서 사르코지의 당선을 축하하는 공연이 열리고 있다.
ⓒ 박영신
▲ 콩코르드 광장 분수대에 올라가 엉덩이에 '세골렌'이란 글씨는 쓰고 조롱하는 사르코지 지지자들.
ⓒ 박영신

니콜라 사르코지(53.2%) 집권 대중운동연합(UMP) 후보가 세골렌 루아얄(46.8%) 사회당(PS)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 6일 밤 11시(현지시각).

파리의 콩코르드 광장은 승리에 도취한 시민 3만여명이 '접수'했다. 광장에 설치된 초대형 무대 위로 티나 아레나·앙리코 마시아스·지베르 몽타녜 등 인기 가수들의 축하 공연이 차례대로 펼쳐졌다.

콩코르드 광장에서는 노래와 샴페인이

이날 콩코르드 광장에서 '제2의 에디트 피아프'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미레이 마티유가 프랑스의 국가 '라 마르세예즈'를 노래할 때 승리의 기쁨은 절정에 달했다.

광장 한가운데에 자리한 대형 분수대에 몸을 던지는 청년이 있는가 하면 분수대 위에 올라 프랑스의 삼색기를 흔들며 '사르코지 대통령'을 연호하는 일단의 무리도 보였다. 바닥을 구르고 샴페인을 터뜨린 젊은이들은 서로 끌어안고 환호성을 질러댔다.

여기저기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와 대형 무대의 조명이 어울려 밤하늘의 별보다 아름다운 장관이 연출됐다. 축제였다.

콩코르드 광장 주변 세느강을 타고 바삐 움직이는 자동차들이 보인 것은 밤 11시 경이었다. 경찰 차량의 급박한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애초 콩코르드 광장으로 통하는 세느강의 모든 다리는 경찰에 봉쇄된 상태였다. '수상쩍은' 사람은 검문을 받아야 했다. 그 옆으로 경찰차들이 날쌔게 몰려간다. 목적지는 바스티유 광장.

사르코지가 당선되면 폭동이 일어날 거라는 '소문'이 있었다. 지난 4일 브레스트에서 마지막 유세를 마친 루아얄 또한 폭동을 '경고'한 바 있다.

'소문'과 '경고'는 현실로 드러났다. 파리 서쪽 콩코르드 광장에서 샴페인을 터뜨리는 동안 파리 동쪽 바스티유 광장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투표 결과에 분노한 시민들이었다.

프랑스 제5공화국 제6대 대통령이 탄생하던 날 밤 파리는 '콩코르드'와 '바스티유'로 철저히 나뉘었다.

▲ 6일 밤 프랑스 대선에서 승리한 사르코지에 반대하며 툴루즈에서 벌어진 시위를 진압하러 나온 경찰들.
ⓒ AP=연합뉴스
바스티유 광장에서는 구호와 방화가

저녁 9시 30분 경 복면을 쓴 100~300여 시위대가 바스티유 광장을 점령했고 이어서 달려온 경찰과 대치했다. 투표 결과가 발표된 저녁 8시 시위를 계획한 극좌파 단체와 무정부주의자들이 주축이 됐다.

이들의 시위는 인터넷 대화방을 통해 급속도로 번져나갔다. 시위대가 광장의 포석을 뜯어 경찰을 향해 던지는 것을 시작으로 빈 병과 함성이 밤하늘을 날았다.

광장 부근 보마르셰 대로에 몰려있던 5000여 시위대를 향해 경찰이 물대포를 쏜 것은 밤 10시 30분 경. 예정된 수순대로 최루탄이 터지고 곤봉이 날아들었다.

한 시간 여 대치 끝에 광장은 평화를 찾았으나 시위 장소만 변경됐을 뿐이다. 경찰에 밀린 시위대 2000여 명이 리옹역으로 자리를 옮긴 것. 불타는 쓰레기통과 가로수 버팀목을 뜯어내 바리케이드를 친 시위대는 격렬하게 저항했다.

이런 가운데 오토바이와 소형 트럭이 불에 탔고 카메라를 든 사진기자는 시위대가 던진 돌에 맞아 실려나갔다. 취재 중이던 몇몇 카메라맨과 사진기자들이 시위대의 표적이었던 것이다. 죄목은? '사르코지 대통령 만들기'에 언론이 가세했다는 '혐의'였다.

리옹역에서는 상점의 진열창이 박살났다. 10여 대의 자동차가 뒤집혔고 이 중 몇 대는 불에 탔다. 리옹역 시위대가 해산한 것은 7일 새벽 1시 경이었다.

두 얼굴의 밤... 2007년 프랑스의 초상

▲ 차기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된 사르코지가 연설하고 있다.
ⓒ 박영신
▲ 가보 콘서트홀에 모인 사르코지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 박영신
같은 시간, 파리의 공화국 광장에서도 고등학생을 비롯한 수 백명의 시위대가 집결해 '안티 사르코지' 시위를 전개했다. "스톱 사르코" "사르코를 카처로(청소하라)!" 등의 구호가 터져 나왔다.

'고압세척기'를 일컫는 '카처'는 지난 2005년 말 프랑스에서 발생한 방리외(파리를 비롯한 대도시 외곽지역) 소요 기간, 당시 내무장관이었던 사르코지의 발언에서 기인한다. 사르코지는 방리외의 젊은이들을 "카처로 청소해야할 오물"로 취급했던 것. 때문에 지난 대선 기간 동안 카처는 사르코지 뒤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단어다.

지난 2005년 방리외 소요의 진원지인 파리 외곽 센-생-드니 시내에서도 20~30대의 자동차들이 화염을 뿜었다. 발-드-마른에서도 20여 대의 자동차가 불에 탔다. 릴에서는 시위가 시작되자마자 몇 명이 체포되는 것으로 마무리 됐으나 불에 탄 자동차만 60여 대다.

별다른 폭력 사태 없이 해산한 스트라스부르에서는 200여 명이 모였으나 툴루즈에서는 2500여 시위대가 경찰과 대치했다.

낭시·메츠·낭트·리옹 등 프랑스의 대도시에서도 200~700여 시위대가 결집한 가운데 유사한 일들이 벌어졌다. 마르세유에서는 200~300여 시위대가 모였으나 경찰의 최루탄 발사로 일찌감치 해산했다. 2000여 명이 모인 보르도에서도 '안티 사르코지'의 함성은 거셌다. 돌과 최루탄이 난무했다.

'모든 프랑스인의 대통령'이 탄생하던 밤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6일 저녁 8시 30분 경 지지자들이 기다리는 가보 콘서트 홀의 무대에 오른 사르코지는 말했다.

"나는 모든 프랑스인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좌우파를 가르지 않고, 루아얄에 표를 던진 유권자들까지 포용하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모든 프랑스인의 대통령'이 탄생하던 날 밤, 절반의 프랑스가 축제를 벌이는 동안 반대편에서는 몸살을 앓고 있었다. 2007년 프랑스의 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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